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52화 (25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52화

56. 계절(3)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수채화 같았다.

단 하나의 음조차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정교하게 표현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본연의 음색을 충분히 낼 수 있었고 그것이 선명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위대한 베토벤의 의지를 이어받아 그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이 가진 수직적, 수평적 진행을 과감히 이어나갔다.

그것이 입체감을 주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심상 속으로 빠 질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다.

그 속에서 악성이 무엇을 추구했는 지 명확해졌다.

현대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인해, 배도빈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

1809년 빈.

“축하하네.”

“매년 4천 플로린이라니. 출세했군. 출세했어.”

“이번 달부터 수령한다지?”

세상이 마침내 나의 위대함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빈과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적어도 생활고를 겪지 않고 저축도 넉넉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들갑 떨지 말게. 고작 이 정도 로 만족할 내가 아니지.”

“하하하하! 루이 이 친구 욕심 많은 건 알아줘야지! 내 자네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걸 모를 줄 알았나?”

확실히.

그간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작은 성공에 만족할 리 없다.

명예와 돈이 가까워지는 만큼 멀어 지는 소리가 재촉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이라도 많은 소리를 기억해 두라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평소처럼 건반을 누르려다가 손을 멈췄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소리를 못 듣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 이르러서도 내 영혼은 곡을 써야만 위로받을 테고, 루트비히로 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길은 없다.

‘피아노 없이 작곡하는 법을 익혀야 해.’

쉽지 않겠지만 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음을 떠올려 보자.

두 달 뒤.

상상만으로 곡을 작곡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신경이 온통 날카로워 있는데 루돌프 대공의 하인이 아침부 터 호들갑을 떨었다.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 큰일 났습니다!”

크게 말하는 것만은 마음에 든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커피나 마실 때가 아니라고요! 나 폴레옹이 쳐들어왔습니다! 전쟁이라 고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폭력에 귀를 송곳에 찔린 듯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루돌프 대공은?”

“모두 피난 가셨습니다. 대공께서 마에스트로를 모시고 탈출하라 하셨습니다.”

“피난이라니. 그럼 그 돼지 새끼는 누가 막고.”

“아이고! 그 나폴레옹을 누가 막는단 말씀이십니까. 왕께서도 다른 귀 족분들도 모두 대피하셨어요. 오래 못 버틸 겁니다. 어서 준비하세요!”

“뭐라?”

납득할 수 없었다.

왕과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저항은 커녕 도망이나 치다니.

빈에 사는 수많은 사람은 어찌하란 말인가.

“마에스트로!”

“난 떠나지 않네. 돌아가 루돌프 대공에게 잘 있을 테니 걱정 마시라 전하게.”

“아이참! 지금 고집 피우실 때가 아니라니까요!”

“시끄러워! 더러운 돼지 새끼 때문에 작업을 중단할 순 없지.”

루돌프 대공에게 전할 편지를 휘갈겨 적은 다음 하인을 내쫓듯이 내보 냈다.

쿠궁! 쿠구구궁!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다시금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충격을 받아서는 내 병이 더해질지 모른다.

포탄이 멈추길 기다리며 베개로 귀를 막았다.

소용없었다.

나폴레옹의 빈 점령과 이후 오스트리아의 반격으로 인해 당시 빈은 폭음과 화약 냄새로 가득했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이 완성되기 직전이었고, 베토벤은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빈에 남았다.

불멸의 음악가는 전쟁으로 인한 폭 음에서 악화되는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베개로 귀를 감싸고 곡을 적었다.

약속받았던 평생 연금을 수령할 방 법조차 없어 생활고까지 겹쳤고 음식과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베토벤은 더 할 수 없을 만큼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치밀히 준비했다.

전쟁의 포화도 영혼을 불사른 악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음악적 긴밀성과 구조적 장치는 완벽하게 맞물렸고 20세기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숱한 작곡가들에게 지침과 영감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연주되는 음악은 더없이 단순했다. 추구하는 바도 그러했다.

푸르트벵글러는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 멜로디를 더욱 키웠고 글렌 골드와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 요구 에 적절히, 유기적으로 반응했다.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야.’

당연하게도, 명사 사카모토 료이치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감탄을 넘어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후대 사람들은 감동한 나머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이야말로 황 제라며 그와 같은 이름을 명명했다.

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곡의 분위기 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카모토 료이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 곡 5번이라면 황제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황제는 단순하고 명쾌한 곡이었다.

그 안에서는 희망과 환희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을 바닥까지 이해하고 완벽히 들려주는 악단은 몇 없었다.

적어도 사카모토 료이치는 베를린 필하모닉만큼 연주할 수 있는 악단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너무도 가혹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 이기에 다른 어떤 곡보다 베토벤의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고.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건드는 지휘자의 역량과 그것을 표 현하는 연주자들의 실력이 높이 요구되었다.

‘깊이 있는 해석이라 함은 이런 걸 뜻하겠지. 베토벤이 들었다면 자네 에게 고마워할 것일세, 빌헬름.’

사카모토가 슬슬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베를린 필하모닉이 펼치는 심 상에 몸을 맡겼다.

한편.

일찌감치 연주를 마치고 차분히 다른 악단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던 마 리 얀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오래 준비했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치밀하게 준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베토벤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자네가 없는 오케스트라 대전은 상상할 수 없네.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카모토와 마리 얀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음악을 깊게 아는 사람일수록이 밝고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술적, 음악적 지식이 압축되 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과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뛰어난 음악가인 레몽 도네크가 그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스승 푸르트벵글러의 위대함을 다 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지휘를 할 수 있음에도 왜 변화를 추구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목 아래가 묵직해졌다.

항상 그러했지만 곡을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포탄도 총성도 군대가 행군할 때 울리는 진동마저 배제하기 위해 노 력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경이 내게 피아노 없이 작곡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뭘 연주해도 시끄러워 들리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장치를 활용하기도 했는데, 푸르트벵글러는 그것을 철저히 감추었다.

그래 봤자 수준급 음악인들은 알아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치열한 준비가 아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주제와 그것을 확 장시키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 화가 청중에게 닿는가.

푸르트벵글러는 그러한 내 의지를 잘 이해하고 주 멜로디를 키우며 다른 요소는 배제했다.

어찌 보면 악보에 충실한 연주다.

하지만 내가 만든 악보 자체가 작곡 당시 힘들었던 나를 감추고 대중 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것이었으니.

결국에는 나와 사카모토, 푸르트벵글러의 기본 정신에 부합되기도 한다.

연주가 끝났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회장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했고.

경의와 감사를 다해 베를린 필하모닉과 글렌 골드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도 내 의도를 이렇게나 잘 표현 해 준 동료와 글렌 골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으아아아.”

최지훈이 앓는 소리를 내기에 고개를 돌렸다.

“또 걱정되는 거야?”

“아니.”

말뿐만이 아니라 표정도 전과 다르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와 오늘이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베를린이 1위야.”

오래 이어진 논쟁.

사실, 정답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번 3조의 결과만으로 누가 옳은지 판가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수가 진실이 아닐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답이 없기에 답을 찾으려 애쓸 수밖에 없는 것이 음악가라는 불쌍한 존재다.

동시에 평생 그 고난의 길을 걸어 답에 근접하기에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잠시 뒤.

오케스트라 대전 최고의 경쟁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했던 OOTY 오케스트라 대전 2라운드, 3조의 결과를 발 표하겠습니다. 총투표수는 3,804,18 7표. 현재까지 가장 많은 인원께서

투표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럼, 곧장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3라운드 진출 악단, 공개합니다!”

콘서트홀 정면의 초대형 스크린에 베르린 필하모닉의 로고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환호성이 일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A

심사 위원단: 30(300점) 팬 투표: 37.1(2,016,219표) 합계 67.1(1 위)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심사 위원단: 30(300점) 팬 투표: 32.2(1,749,926표) 합계 62.2(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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