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45화 (245/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45화

55. 사기꾼들(1)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세계 굴지의 악단들이 자웅을 겨루는 유일한 무대였지만, 클래식 음악 팬들의 축제이기도 했다.

대전을 즐기는 팬 중에 교향곡만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었고 유명 피아니스트의 참전은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특히나 피아니스트로서 각별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음악계가 들썩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 잘츠부르크의 한 카페에 모인 대학생 일행은 아침 기사로 발 표된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곤 혀를 내둘렀다.

“이거 그냥 국제 콩쿠르 수준이 아니잖아?”

“말도 마. 진짜 쩐다니까.”

“배도빈 가우왕 경연 이후 이 정도 사람들이 경쟁한 건 처음 아냐?”

“그때보다 더 하지. 배도빈이 피아니스트로 활동도 많이 안 했고 가우왕도 개화하기 전이었으니까.”

“……와 진짜 소름 돋네. 밀스 베 레조프스키도 나오네?”

“그 괴물이?”

“여기 봐봐. 부다페스트랑 같이한대.”

일행이 내민 기사를 본 그는 혀를 내둘렀다.

밀스 베레조프스키는 기교에서나 깊이에 있어서나 러시아를 넘어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였다.

1990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로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해 온 그는 초절기교 12곡을 연달아 연주한 일화로 유명 했다.

가우왕이 황태자로 군림하기 이전부터 거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지금은 은퇴한 미카엘 블레하츠와 동시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이가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짧은 머리의 대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바로 아래에 소개된 인물을 보았고 이번에도 입을 닫을 수 없었다.

그 이름 앞에 최고의 피아니스트란 수식어가 붙어 있는, 20세기와 21세 기에 걸쳐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인 정받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세상에. 지메르만도 나온대.”

“뭐? 어디랑?”

“빈 필하모닉.”

신문을 낚아챈 남자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기사와 일행을 번갈아 보며 놀라움을 표했다.

“……정말이네. 빈 필과 지메르만의 협연이라니. 진심으로 우승할 생각인가 본데?”

“그렇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할 리 없잖아. 이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대회에 참가하겠어? 와, 미친. 가우왕도 나와.”

“진짜 미쳤네. 밀스와 지메르만에 가우왕이라니. 가우왕은 어디랑 하는데? 베를린 B랑 나오는 거야?”

“아니. 암스테르담. ……나 닭살 오른 것 좀 봐.”

“마에스트로 배도빈과 함께할 줄 알았는데. 친하잖아.”

“그러니까. 으음……. 배는 최와 함께한다나 봐.”

“최?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런 걸 지금에서야 발표 하다니. 표를 안 사뒀으면 어쩔 뻔 했어?”

“내 말이.”

대학생들이 안도 아닌 안도를 했다.

미리 표를 모두 구매했기에 다행이었지 놓친 것이 있었더라면 땅을 치 고 후회할 정도로 모든 참가자가 대 단해 보였다.

“대체 왜 이렇게 늦게 발표했을까? 표 안 구했던 사람들은 진짜 억울하겠는데.”

“보통은 안 구하는 게 아니라 못 구한 거겠지.”

“마케팅 같은 느낌 아닐까? 왜,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몇몇 악단은 그들과 함께하기로 한 피아니스트를 일찌감치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발표를 미루었다.

모두 피아니스트들이 참가 여부를 밝히는 일에 신중했기 때문이었다.

함께하기로 한 악단이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의식 하기도 했으며.

그와 함께 대회 참가 여부 자체를 고심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밀스 베레조프스키와 크리스틴 지메르만, 가우왕과 같은 인물들은 이 미 이러한 ‘경쟁’에 나올 만한 입장 이 아니었다.

쌓아온 명성이 있었기에 자칫 잘못되었다간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많은 악단이 협연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각 악단과 피아니스트 사이의 조율은 대회가 시작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이 범지구적인 인기를 끌었고 모든 연주가 수준 이상임이 증명되 면서 거장급 피아니스트들도 참가를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토록 어렵게 성사된 만남은 2라운드 참가자 명단 발표를 늦추었고 덕분에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악!”

“왜. 또 놀랄 게 남았어?”

“글렌 골드랑 베를린 필하모닉 A 라고?”

“뭐? 이리 내놔봐.”

“……글렌이 그 폭군과 함께라니. 완전 사기잖아.”

한편.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온 사카모토 료이치도 히무라를 통해 발표 명단을 접할 수 있었다.

“오, 명단 발표가 되었나보군.”

“네.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어디.”

사카모토가 잡지 무지카를 펼쳐 가장 첫 기사를 찾았다.

그러고는 행복하게 웃었다.

“글렌과 빌이라니. 이거 암스테르담 못지않은 만남이구만. 아니, 어쩌면 더한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오오. 크리스틴도."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 이름들을 보 며 자연스레 젊었을 적을 회상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과 글렌 골드.

두 사람 모두 피아니스트로서는 사카모토 료이치 이상의 천재 중의 천재였다.

지금은 함께 늙어가고 있지만 비슷한 연배였던 만큼 여러 무대에서 만 나곤 했었다.

사카모토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참가할 걸 그랬어. 하하하.”

“아주 멋진 승부가 되었을 겁니다.”

히무라 쇼우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지휘자로서나 피아니스트로서 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사카모토 료이치가 빠진 것이 이번 00 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유일한 홈이 라고 생각했다.

배도빈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사카모토 료이치의 피아노라면 베를린 A나 암스테르담, 빈 필하모닉에 못지않은, 아니, 최고의 조합이었다.

“2회 때는 꼭 참가하시죠.”

히무라의 말에 사카모토는 그저 작게 웃을 뿐, 대답을 아끼며 페이지를 넘겼다.

“런던 심포니도 대단하군. 칼을 간 듯하네.”

“같은 생각이시네요. 그레고리 소 콜라브 선생이 참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카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가 긴장 좀 하겠구만.”

배도빈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2015년) 사카모토 료이치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를 제자로 들였었다.

8년이 흐른 현재는 니나 케베리히 와 함께 샛별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스타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카모토는 그녀가 평소 모국의 전 설적인 피아니스트 그레고리 소콜라 브의 연주를 즐겨 듣고 이야기하던 것을 떠올랐다.

“하하. 엘리자베타가 선생님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니까요. 모스코바 방송 오케스트라와 함께한다죠?”

“그러하네. 오, 도빈 군은 지훈 군 과 함께하는 걸로 완전히 결정된 모양이군.”

“네. 준비하느라 바쁜지 패자부활 전이 진행될 때도 연습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두 사람이면 분명 멋진 연주를 들려주겠지. ……어쩌면 시드 확보는 힘들지도 모르겠네만.”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 모였으니까요.”

"응"

배도빈이 불세출의 음악가라는 사실 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명백했다.

더욱이 베를린 필하모닉 B는 1차 전에서 전체 3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그 이름이 속 빈 강정이 아님을 증 명해냈다.

그럼에도 사카모토와 히무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B의 고전을 예상했는데 피아노 협주곡에서 독주 피아노의 역할은 절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최지훈이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십 년간 명성을 쌓은 전설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사실 이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1티어 피아니스트에 글렌 골드(베를린 A), 가우왕(암 스테르담), 그레고리 소콜라브(런던 심포니), 크리스틴 지메르만(빈), 밀 스 베레조프스키(부다페스트) 정도를 손꼽았다.

그 아래 니나 케베리히, 최성신 등 나머지 피아니스트들이 비슷하게 평가받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1티어에 비해서는 이름값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하니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엘리자베타와 최지훈은 최하 위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고.

최지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카모토와 히무라도 응원과는 별개로 2 라운드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B가 호성적을 내기란 어려울 거라 판단한 것이었다.

“아, 배도빈 악장님. 잠시만요.”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마침 멀 핀 과장이 2라운드 참가 명단을 주었다.

뭐가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법 두툼한 걸 보니 쓸데없는 약력 같은 것도 포함된 기사인 듯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참, 내일 저녁에는 조 추첨이 있으니 잊지 마시고요.”

“네. 그리고 다음부턴 편하게 부르세요. 단원들도 다른 직원들도 그러니까.”

“어……. 안 돼요.”

멀핀 과장이 웃으며 돌아갔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공적인 관 계에 꽤 선을 긋는 성향인 듯하다.

‘어디••••••

멀핀과 인사한 뒤 명단을 펼쳤는데,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니 식욕이 돌았다.

“나도 보여줘.”

궁금해하는 최지훈에게 명단을 넘 겨주고 빵을 집었다.

“딸꾹.”

최지훈이 딸꾹질을 했다.

눈을 깜빡이면서 잘못 본 것은 아 닌지 수차례 확인하고 나서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한다.

“말도 안 돼……. 어째서?”

현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에서 혼란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야?”

“응.”

“……아니잖아.”

“그래. 아니야.”

녀석이 당황하는 건 오랜만이라 재밌어서 지켜보고 있자니 앉았다가 일어났고 서성이다가 발을 동동 구 르고 난리도 아니다.

녀석이 테이블 위에 기사를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이건 사기야!”

적절한 표현이다.

내가 보기에도 2라운드 참가 명단은 사기꾼들로 가득해 보였다.

애초에 피아노계에서는 푸르트벵글러나 사카모토 료이치급으로 평가받는 인간들이 마찬가지로 정상급 악 단과 어울렸다.

마리 얀스와 가우왕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우승하지 못하면 떠나라고?’

그중에서도 푸르트벵글러가 가장 못됐다.

그런 내기를 걸었으면서 글렌 골드를 영입할 줄이야.

은퇴한 미카엘 블레하츠를 데려와 도 치사하다 생각할 터인데, 이제 보니 푸르트벵글러에게 사기꾼 기질 이 있는 듯하다.

“지금이라도 바꿀래?”

“뭐?”

“사카모토 선생님이면 해주실 거야. 응. 분명.”

부탁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뭐가 걱정이야. 농담도 적당히 해.”

“농담 아니야! 이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경쟁하라는 거야? 전부 교과서 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들이잖아.”

“너도 적힐 거야.”

“농담 아니라니까?”

“나도 아니야.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너한테 중요한 대회잖아! 지면 베를린에서 떠나야 한다며!”

“그러니까 부른 거잖아.”

“ 어?”

“ 괜찮아.”

빵에 잼을 듬뿍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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