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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43화 (24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43화

    54. 다른 누구도 아닌(9)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이를 대서 특필하여 소식을 알렸다.

    배도빈을 통해 클래식 음악 열풍이 몰아쳤던 만큼 오케스트라 대전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고 팬들의 반응 은 뜨거웠다.

    ㄴ 당연하지. 세계 톱 수준으로 올 라왔다는 건데.

    ㄴ 대한국립교향악단이 진짜 우여곡 절이 많았음. 진짜 눈물 난다.

    ㄴ 무슨 소리임?

    ㄴ 광복 되고 고려교향악단이라고 있었는데 재정난 때문에 망했었음. 거기 단원들이 모여 만든 게 대한교향악단인데 6.25 때문에 또 망함. 연습실이고 뭐고 악기랑 악보도 다 날아가고 단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는 데 부산에서 다시 모였다가 겨우 대 한교향악단이 된 거임. 그 이후에도 운영은 말할 것도 없었고.1)

    ㄴ 뭔지 몰라도 대단하다는 거 아냐.

    ㄴ ㅇㅇ.  힘들게 유럽에도 간혹 가서 연주회에도 참가하고 UN에도 가 고 했는데 진짜 제대로 인정받은 거임.

    1)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의 대표 오케스트라다. 건립 시기는 19 45년과 1948년, 1957년 등 모체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양한 의견 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고난과 침체기를 겪었다. 재단 법인화 과정과 지휘자 정명훈이 합 류, 제도 개선으로 개혁에 성공했다.

    ㄴ 키야아~ 주모! 고모! 이모! 숙모! 계모!

    이러한 상황에 대한민국 출신의 음악계 종사자들은 더없이 기뻐했다.

    잡지 관중석에서 30년 가까이 활 동했던 이필호 기자는 패자부활전이 예정된 날까지 대한국립교향악단을 칭찬할 정도로 특히나 기뻐했다.

    2차전에서 배도빈과 최지훈, 션윈 과 최성신이 확정된 데다 최명운과 남궁예건까지 추가되었으니 특집호가 제대로 팔리는 걸 넘어서 클래식 음악 팬으로서 자국의 발전에 감격한 것이었다.

    며칠째 그의 입이 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빰빰빰 하는 부분이 정 말 최고였다는 거지.”

    “맞아요!”

    그러나 기쁜 것은 이해해도 3일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통에 차채은은 조금씩 지쳐갔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필호 기자의 말을 조금씩 흘려듣게 되었다.

    “편집장님 진짜 대단하시다. 그건 대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그러나 정세윤 기자는 당일과 같은 느낌으로 반응하며 이필호가 더 신나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정세윤 기자님도 대단하네.’

    어떻게 대해야 편집장이 기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어디••••••

    이내 관심을 끊은 차채은은 수첩을 펼쳤다.

    1차전을 통과한 악단이 차례로 적 혀 있었고 그 옆에 각 연주를 듣고 느꼈던 감상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악단은 여섯 악단이었는데 대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언급되었던 곳들이었다.

    ‘이름값은 한다는 거지. 대한국립 교향악단 외에는 이변은 없는 건가?’

    차채은이 자신이 남긴 메모를 훑었다.

    첫 장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한 기록이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베를린 필하모닉 A와 배도빈의 베를린 필하모닉 B는 각각 79.2점과 74.2점으로 1차전 1위와 3위를 차지했었다.

    차채은이 빙그레 웃었다.

    바로 어제 마리 얀스의 로얄 콘세 르트허바우가 75점을 획득해 조 1 위로 진출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과 자신이 최고라 자부하던 배도빈 이 얼마나 약이 올라 있을지 생각하 면 웃음이 나왔다.

    ‘재밌어하겠지.’

    돌이켜 보면 배도빈은 차채은에게 항상 큰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 간부터 배도빈은 득도라도 한 듯 행동했었다.

    언어, 사회, 문화 등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의 배도빈을 기억하는 차채은으로서는 가끔 지금의 그가 너무도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정 도였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대전에 참가한 뒤로는 감정이 꽤 자주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화나 문자를 통해서 최지훈과 함께 적당히 놀리는 맛이 제법이었다.

    분해서 끙끙대거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는 걸 꼬집는데 본인은 아닌 척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연습 방해하는 거 같아서 만나지 도 못하는데 이따 전화라도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페이지를 넘기니 런던 심포니와 런던 필하모닉에 대해 적어둔 것이 보였다.

    전체 4위에 해당하는 고득점을 취한 런던 심포니와 달리 런던 필하모닉은 평균적인 점수였지만 심사 위원단의 평은 무척 높은 편이었다.

    미운털이 박혀 있었지만 실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이 적혀있었다.

    전체 5위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를 얻고 진출한 곳이었는데 차채은은 그들을 짐승 같다고 적어 놓았다.

    러시아 쪽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없었다.

    부모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볼쇼이 서커스를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펼 쳐진 것만이 기억에 깊게 남아 있을 뿐.

    그마저도 오래된 기억이었다.

    이번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여긴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차채은이 혼자 중얼거린 말을 정세윤 기자가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어딘데?”

    혼잣말이었을 뿐인데 너무도 적극 적으로 달려들어 차채은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정세윤의 간절한 얼굴을 보 고선 수첩을 보여주었다.

    “모스크바 교향악단이요.”

    “아,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 말이지?”

    대한국립교향악단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던 이필호 편집장도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게 길게 불러야 해요?”

    “러시아 악단은 이름이 길고 모호 하니까 정확한 명칭을 말하지 않으면 헷갈릴 수 있어.”

    “아.”

    “모스크바 교향악단이라고 하면 모스코바 필하모닉 교향악단인지 모스 코바 방송 교향악단인지, 모스코바 라디오 교향악단인지 알 수가 없거든. 아,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이 모스코바 라디오 교향악 단이야. 옛날 이름이지.”

    차채은과 정세윤의 표정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너무도 길고 복잡한 이름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더군다나 이필호는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의 정식 명칭  ‘Grand Symphony Orchestra n amed after Pyotr Ilyich Tchaikovs ky of Moscow Radio’이라는 말까지 붙이면서 두 사람의 뇌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교향 악단은 진짜 대단하지. 예카트리나 베제노바도 대단한 지휘자고. 그렇게 야생적인 연주를 하는 데도 몇 없어. 도빈 군이 마음먹고 힘쓸 때나 비슷할까?”

    이필호가 또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정세윤 기자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채은은 다시 관심을 돌려 팸플릿을 보았다.

    41개 악단 중 2차전에 진출하는 곳은 총 24개 악단이었다.

    10개 조에서 각각 2개 조가 진출 하려 20개 악단이 확정되고, 패자부 활전을 통해 나머지 21개 조 중 4

    개 조가 진출할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5일간 패자부활전이 시작 되었고, 2차전이 24강이 되는 만큼 진행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차채은이 물었다.

    “정세윤 기자님, 2차전에 24개 악 단이 올라가잖아요?”

    “응!”

    정세윤 기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팸플릿이 영어라서 잘 모르겠는데 12개 악단을 뽑는 거예요?”

    “아, 맞아. 1차전하고 똑같이 한 조에 4개 악단이 들어가서 점수 경 쟁을 하는 거야. 그래서 각 조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두 악단이 진출하는 거고.”

    “으음……. 그럼 12강이 되잖아요. 이렇게 계속 진행하면 대진이 안 맞지 않아요?”

    “그거 때문에 욕 많이 먹더라.”

    정세윤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복잡할 거 없어. 2차전 점수로 3 차전 시드가 정해지거든.”

    “……시드가 뭐예요?”

    “부전승이라고 생각하면 돼. 경쟁을 덜 하는 악단을 뽑는 거지.”

    정세윤 기자가 태블릿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2차전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4 개 악단이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 8 개 악단이 경쟁하는 거야.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8강이 되는 거지. 이렇게.”

    12강으로 이루어지는 3차전에서는 상위 4개 악단이 부전승, 나머지 8 개 악단이 각각 경쟁 상대를 만나도 록 구성되어 있었다.

    “2차전이 엄청 중요하겠네요.”

    “응. 아무래도 바로 8강에 오를 수 있는 기회니까. 네 자리밖에 없어서 다들 노리고 있을 거야.”

    설명을 들은 차채은이 고개를 끄덕 이고 있는데 이필호가 나섰다.

    “처음이라 그런지 대회 방식이 좀 이상하긴 해. 애초에 3차전부터는 완전 토너먼트라니. 스포츠 시합도 아니고 말이야.”

    “선의의 경쟁을 통한 성장이 정신 이라고 해도 평가 방식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차라리 다른 콩쿠르처럼 하면 좋을 텐데.”

    “아마 대회 기간이 너무 늘어나는 걸 의식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시드도 문제가 있어. 암 스테르담이나 베를린, 런던이 독식할 게 뻔하니까.”

    차채은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최지훈이 보낸 메시지였다.

    최지훈

    어제 암스테르담 들었어?

    차채은

    ㅇㅇ 진짜 대박 쩔어.

    최지훈

    정말 마리 얀스가 왜 세계적인 거 장인지 알 것 같더근h 4악장 마지막 부분이 특히! 미뉴에트 다시 넣은 것도 흥미롭고.

    차채은

    나두 나두! 그거 베토벤이 일부러 클리셰 강조했던 거지? 그거 살짝 비틀어서 더 크게 했던 거 같던데.

    최지훈

    맞아. 진짜 베를린 A랑 암스테르담 베토벤 교향곡은 깊으면서도 매번 신선한 거 같아.

    배도빈, 최지훈, 차채은 세 명이 있는 단체 메시지 방은 푸르트벵글러와 마리 얀스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런 와중에 배도빈은 메시지를 확 인했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채은

    2차전 진짜 기대된다. 이필호 편집 장님은 암스테르담 이야기하시더라.

    최지훈

    나도 가장 유력하다고 보는데.

    배도빈

    누가 그런 생각하래. 빨리 와.

    최지훈

    오늘은 연습 없잖아?

    배도빈

    방금 잡혔어.

    차채은

    파이팅!

    차채은은 앞으로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에서 배도빈과 최지훈이 함께한다는 것에 잔뜩 기대되었다.

    최지훈이 슬럼프를 겪었을 때도 그 랬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면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기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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