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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38화 (23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38화

    54. 다른 누구도 아닌(4)

    런던 필하모닉이 준비한 곡은 공교 롭게도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 에로이카였다.

    배도빈이 첫 번째 날에 지휘했고 그 파장이 컸던 만큼 런던 필하모닉 은 또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관심이 쏠렸다.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절제 된 손동작과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악성 베토벤이 기존 고전 양식의 틀을 깨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기념비적인 작품 에로이카는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재연되었다.

    풍부한 악상.

    악장 전체를 아우르는 경과적 동기들.

    그러나 단순히 패턴의 변화나 여러 악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모든 장치가 맞물려 절정으로 치닿기를 반복하는 음악적 완성성은 왜 베토벤 사후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객석에 앉아 그것을 듣는 배도빈은 에로이카가 당시 자신이 바랐던 형태로 연주됨에 눈을 감고 사색에 잠 겼다.

    친애하는 코라머에게.

    여행은 잘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몇 해 전부터 귀에 이상이 생긴 탓에 이 나의 삶이 이대로 무너지는 듯해 괴로웠네.

    그러나 자네, 몇 해 전 프랑스에서 일었던 혁명을 기억하는가?

    세상은 그토록 변화하고 있다네.

    어떤 어둠이라도 아침이 되면 물러나기 마련이고 나는 그 혁명을 통해 바라는 바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네.

    역겨운 귀족 나부랭이들이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구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태를 맞이하는 이 순간.

    투쟁하라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내 가슴에 닿은 듯하이.

    끝끝내 자유를 쟁취한 그들의 고결한 목소리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랑은 많지 않을 것이야.

    나와 음악가로서의 내가 그들의 정신에 공명하듯 자네도 이 역정을 이해할 거라 믿네.

    고맙군.

    빈에 도착하면 내 작업실에 들러주길 바라네.

    1811년, 봉을 기다리여 루트비히

    크라머에게 보낼 편지를 쓴 뒤 편 지지에 촛농을 떨어뜨려 굳혔다.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 맞이 한 매서운 한파도 내 열정만큼은  힐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곡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 는지 가슴에서 꿈틀대던 열망과 시 대가 말해주는 듯했다.

    안주는 죄라고 외쳤다.

    ‘지금까지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확신을 가진 뒤에는 지금껏 소극적이었던 나를 깨고, 하이든과 아마데가 확고히 했던 양식을 부술 수 있었다.

    약 1년간의 도전 끝에 마지막 지 시문을 적은 뒤.

    첫 장에 이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을 적었다.1)

    1)베토벤은 3번 교향곡을 지은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고자 보나파르트라 명명했다.

    Bonaparte

    창문을 열자 얼어붙었던 어젯밤과 달리 제법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봄이 왔는가.’

    고개를 숙이니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한 풀을 볼 수 있었다.

    새 시대를 알리는 곡을 완성했음을 호응하는 듯하다.

    1804년, 6월이 되기 전.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보나파르트의 초연을 준비 하고 있는데 크라머가 허겁지겁 작업실로 들어왔다.

    “루트비히,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뭐라고? 다시 말해보게.”

    “소식 들었냐니까.”

    “크게 말하게. 크게.”

    “나폴레옹이 즉위했다는 소식 말일세!”

    “……뭐라고?”

    “이미 보름은 지난 것 같더군. 거리마다 난리도 아닐세.”

    어찌하여.

    어찌하여 새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 가!

    대체 ‘시민’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 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네. 대체 어떤 놈이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니 나! 앞장서게.”

    “답답한 친구. 자. 보게.”

    크라머가 내게 너덜너덜한 전단을 넘겼다.

    나폴레옹이 교황에게 대관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자유, 평등, 소유권을 기치로 내걸어 공화정을 수립했다는 이야기였다.

    두 눈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반복해 읽을 때마다 종이가 더욱 구겨졌고 분을 억누를 수 없어 찢어 버렸다.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어찌 황제에 오른단 말인가! 그 땅딸막한 돼지 새끼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 나!”

    “허이. 이 친구! 말조심하게.”

    책상에 두었던 잉크병이 눈에 들어 왔고 한쪽 벽에 던져 버렸다. 의자 가 거치적거려 걷어차 버렸다.

    그런 뒤에 페르디난트 리스가 필사한 보나파르트라 적힌, 세 번째 교향곡의 첫 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 자네 무슨!”

    “서, 선생님!”

    그것을 북북 찢어내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분명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일었던 혁명을 육신과 정신이 욕망으로 가득 찬 돼지 새끼가 이끌어나갈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그를 영웅으로 생각했고.

    한 사람의 영웅을 기리기 위해 에로이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즉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로소 내 무지함을 깨달은 것 이다.

    혁명은 단 한 사람의 영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들의 수탈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형적인 사회에 굴복하지 않고 싸웠던 이 모두가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에로이카에 부제를 달았다.

    처음에는 ‘모든 영웅을 기리며’라 고 적으려 했으나 그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

    혁명에 동참했던 각각의 인물을 떠 올릴 수 있도록, 그 모든 사람이 모 두 영웅으로 칭송받길 바라며 부제를 붙였다.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가 끝났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악보에 준수한 연주였다.

    지휘자나 연주자로서는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에로이카를 만든 나로서는 퍽 감동적인 무대였다.

    푸르트벵글러와 마리 얀스와 더불 어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중의 거장 이라 불린다더니, 아르투로 토스카 니니의 절제된 지휘와 런던 필하모닉의 정제된 연주력은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나 악장을 맡은 레몽 도네크도 큰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는 베를린 에 있을 때보다 더욱 정교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끄는 현악기는 아르투로 토 스카니니의 지휘에 놀랍도록 부응했고 덕분에 곡이 더욱 풍성해지는 효 과를 보았다.

    ‘가서도 노력했구나.’

    레몽 도네크와는 사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예전 과 달리 조급해 보였고 나를 멀리 했다.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했기 에 그가 런던으로 향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는데 저리 발전한 모습을 보 니 그에게도 분명 전환점이 필요했고 결단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는데 저렇게 훌륭한 연주를 하는 것을 보니 음악가로서의 그는 흔들리지 않은 듯하다.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아, 진짜 좋다.”

    옆에 앉은 진달래가 감동했는지 작 게 중얼거렸다.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은 관객들은 저마다 고조된 마음을 달래기 바빴다.

    가슴 깊게 스며든 감동에 눈을 감고 연주를 떠올리며 온몸으로 여운을 즐겼다.

    “역시 런던 필하모닉인가.”

    이필호 관중석 편집장이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했어요.”

    정세윤 기자가 동조했고 차채은은 인터플레이에 동조해 베를린 필하모닉과 대립하고 있는 런던 필하모닉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입을 쭉 내 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심이 판단력을 흐린 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평론을 쓰면 해먼 쇼익 등과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자세였다.

    “확실히 고전을 대표한다고 스스로 밝힐 만하네요. 방금 연주가 초연이 랑 비슷할까요?”

    “아마 그럴 거야. 토스카니니만큼 시대연주에 집착하는 지휘자도 드무 니까.”

    이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이렇게 감동적인데 당시에는 난리도 아니었겠네요.”

    “그렇지만도 않아.”

    “네?”

    정세윤 기자는 이필호의 대답에 의아했다. 차채은도 무슨 말인지 궁금 해 이필호의 말을 기다렸다.

    “1805년에 초연된 걸로 아는데 당 시만 해도 너무 길어서 반응은 좋지 않았대. 곡 길이도 다른 곡의 두 배 인데 앞선 하이든, 모차르트의 곡들 보다 훨씬 복잡했으니까.”

    “말도 안 돼.”

    “다들 베토벤이 모든 곡을 성공했다고 쉽게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은 게 많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했던 만큼 당시 대중에게는 어필되지 않았던 거지.”

    차채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베토벤도 많이 실패했다고 들었어요.”

    “그래? 누구한테?”

    “도빈 오빠한테요.”

    “도빈 군이 음악사에도 조예가 있는 줄은 몰랐네. 대학을 그쪽으로 가서 그런가.”

    이필호가 혼잣말을 하다 이내 정세 윤 기자와 차채은을 보며 다시금 이 야기를 이어갔다.

    “난 베토벤이 변화하게 된 계기를 그걸로 봐. 청중들이 이해하기엔 베토벤의 초기 곡은 너무 어려웠고 베토벤 본인은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과 대중 사이에서 고민했겠지. 보통 에로이카를 베토벤의 터닝 포인트라 여기는데 그것도 그 때문일 거야. 기존 양식을 무너뜨리면서도 음악적 심상은 깊은데, 그것을 이해 하지 못해도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곡. 난 그게 베토벤의 가장 큰 장점 이라 생각해.”

    “ 아.”

    차채은은 이필호의 말을 듣고 비로 소 자신이 명확히 알 수 없었던 베토벤과 배도빈의 공통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배도빈의 음악을 가 장 가까이서 반복해 들었던 차채은에게 유일하게 어필되었던 고전 음악가는 베토벤이었다.

    막연하게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채은에게 이필호의 말은 두 인물 의 공통점을 정리해 주는 좋은 지침 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항상 배도빈을 모차르 트에 비유하지만 차채은은 그것을 항상 못마땅하게 여겼던 터라 좋은 단서를 얻은 듯했다.

    ‘베토벤과 도빈 오빠에 대해 쓰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차채은은 이번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통해 배도빈과 베토벤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쓸 것을 마음먹었다.

    ‘쓸 게 너무 많잖아.’

    다소 평가가 빈약한 이승희, 이승훈, 나윤희에 대해서도 쓰기로 했으니 차채은은 벌써부터 의욕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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