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35화 (235/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9화

52. 천재들의 앙상블(3)

“다들 악기 가져오세요!”

오케스트라 대전을 이틀 앞둔 날.

잘츠부르크로 향하기 위해 아침부 터 분주했다.

사무국 직원들과 배송업체 그리고 단원들이 뒤섞여 주차장은 난리도 아니다.

단원과 직원들은 전용기로 이동하 지만 악기는 트럭으로 옮길 예정이다.

사무국 직원들이 부른 배송업체가 준비한 거대한 트럭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다.

“본인 박스 잘 확인하고 가져와 주 세요!”

악기와 그것을 담은 케이스를 안전 하게 보관할 수 있는 철제 박스를 고가로 장만해 여럿 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마음을 놓을 수도 없는 법.

“잘 확인하고 넣어.”

“으으그냥 가지고 가면 안 될까요?”

“이쪽이 더 안전해.”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단원들이 불안한 심정으로 박스에 악기를 담았다.

“의상은 이쪽입니다!”

내부가 작은 옷장처럼 생긴 철제 박스를 연 배송업체 직원이 소리쳤고 단원들은 또 우르르 그쪽에 몰려 들었다.

타 지역으로 갈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정말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도빈아.”

카밀라다.

고개를 돌리니 사무국 직원인 멀핀 이 함께 서 있었다.

“멀핀 알지? 이번에 과장으로 진급 했어.”

“축하해요.”

멀핀과 악수를 나누었다.

쑥스러운지 작게 웃는다.

“이번 일부터 B팀 전담을 맡게 되었어. 유능한 친구니까 잘해줄 거야. 혹 시나 불편한 거 있으면 꼭 말하고.”

“맡겨주세요.”

카밀라의 소개 끝에 멀핀이 다짐하 듯 말했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은 종종 봤던 만큼 나도 믿고 함께할 수 있다. 그 녀가 없었더라면 카밀라 역시 과로 로 쓰러졌을 것이다.

“잘 부탁해요.”

성실한 사람이기에 반갑게 받아들였다.

“ A팀은요?”

“반대편에서 준비 중이야. 같이 처 리하면 훨씬 편한데 굳이 따로 가야 한다고 고집을 쓰니 진짜 이해 못 하겠어.”

카밀라가 투덜댔다.

푸르트벵글러가 오케스트라 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A와 B를 철저히 분 리시켜 놓은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덕분에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사무국 직원 들의 불만도 납득할 수 있다.

“제대로 붙고 싶나 봐요.”

“그게 문제야. 배려심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줄만 알지. 도빈아, 뒤는 걱정하지 말고 아주 코를 뭉개버려. 내가 지켜줄게.”

카밀라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푸르트벵글러와의 개인적 친분을 생각하면 그를 응원하는 게 당연할 텐데.

역시 재밌는 사람이다.

“그럴 생각이에요.”

“좋아!”

“아, 준비 끝난 듯하네요.”

“나도 가봐야겠다. 그럼 잘츠부르크에서 봐.”

카밀라가 A팀이 있을 반대편 주차 장으로 향했다.

멀핀이 나와 단원들을 안내했고 전 용기에 탑승.

한 시간 정도를 걸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로 분주했다.

배도빈이란 걸출한 인물의 등장으로 어린 음악 영재를 발굴, 육성하 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 취지로 만들어진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는 벌써 10회째를 맞이 하고 있었다.

어린 음악가들이 소화하기에는 스케줄이 지나치게 빡빡하다는 이유로 지역 예선인 칸토가 6월에서 2월로 앞당겨졌고 본 무대인 크리크는 기 존 7월에서 6월로 조정되었는데(결 선 기준).

때마침 앞뒤로 오케스트라 대전과 잘츠부르크 축제까지 열리니 5월부 터 8월까지 잘츠부르크는 모든 거리 에 음악이 넘쳐나게 되었다.

당연히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모이는 것도 과언은 아니었다.

주최 측인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WCMA: World Classical music Association)에서는 이런 드문 기회를 십분 활용.

음악인들이 친분을 교류할 수 있도 록 전야제를 이틀간 성대하게 열었다.

클래식 음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 한 거장들의 교류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각자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증명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하하호호 잘 지낼 리 만무.

특히 인터플레이로 인해 사이가 극 도로 악화되었던 베를린 필하모닉과 런던 필하모닉의 두 지휘자가 만나 자마자 으르렁댔다.

“오오. 쫓겨났다더니 용케 참가했군, 푸르트벵글러.”

런던 필하모닉의 아르투로 토스카 니니가 푸르트벵글러를 보자마자 대 뜸 시비를 걸었다.

푸르트벵글러가 그를 본 뒤 고개를 돌려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말했다.

“자네도 알았나? 토스카니니가 살 아 있어. 노망나 뒈진 줄 알았는데.”

“뭐라?”

토스카니니가 멋지게 맞받아친 푸르트벵글러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더러운 입 열지 말게. 인터플 레이 엉덩이를 핥아서 그런지 똥 냄새가 심하군.”

“뭐, 뭐가 어쩌고 저째!”

두 거장의 말싸움이 험해지고 있을 때 배도빈은 그런 일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듯 브라우니를 먹고 있었다.

심지어 단맛에 부족함을 느끼고 초 콜릿 퐁듀에 담가 먹기까지 했다.

“푸르트벵글러 입심은 여전하네. 공개석상에서 저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사람뿐일 거야. 안 그래?”

가우왕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싸움에 감탄 했다.

“그러게요.”

그러나 평화롭게 디저트나 먹는 배도빈을 보고 힘을 풀렸다.

“그 미칠 듯이 단것 좀 그만 먹어. 그러다 죽어.”

“가우왕은 슬슬 관리해야 하지만 전 아직 괜찮아요.”

“……빌어먹을.”

“가우왕이야말로 술 좀 줄여요. 술 마셔서 득 본 사람 못 봤어요.”

“네가 술맛을 알아?”

“가우왕보단 제가 더 잘 알걸요?”

가우왕이 혀를 찬 뒤 샴페인을 마 시는데 멀리서 최지훈이 두 사람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가우왕 씨! 와 계셨네요!”

“그래.”

“잘 지내셨죠?”

“이거 먹어.”

“아, 고마워. ……근데 너무 달 것 같은데.”

최지훈이 배도빈에게서 브라우니를 건네받아 한 입 먹고는 눈을 크게 떴다. 배도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 이니 비로소 배도빈이 만족하고 다 시금 디저트에 집중했다.

“가우왕 씨도 혹시 참가하시는 거예요?”

“아아. 암스테르담이랑.”

“네?”

가우왕의 말에 최지훈이 깜짝 놀랐다.

그러지 않아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가 2차 전 협주자로 가우왕을 영입했다니.

배도빈과 함께 반드시 우승하고 싶었던 최지훈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배도빈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 진짜예요?”

“드디어 네 콧대를 눌러줄 기회가 온 거지.”

“사람들이 한 번 졌던 건 이해해도 두 번 지면 불쌍하게 생각할 텐데.”

“뭐라고?”

가우왕의 참전 소식에 놀랐던 최지훈은 가우왕을 놀리며 작게 웃는 배도빈을 보고선 안도했다.

분명 넘보기 힘든 상대가 생겼지만 지금은 형제 같은 배도빈이 오케스트라 대전을 즐기고 있음이 더 기뻤다.

가우왕이 최지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늘었던데? 쇼팽 에튀드 좋았다.”

“연주회 와주셨던 거예요?”

“뭐. 가까웠으니까.”

“거짓말 말아요. 베를린이랑 프라 하면 적어도 3, 4시간은 걸릴 텐데.”

“그냥 먹던 거나 계속 먹어.”

한편 내빈으로 초대받은 히무라가 배도빈, 최지훈, 가우왕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배도빈이 최지훈에게 초콜릿을 묻 힌 브라우니를 권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러 막 발을 떼려던 차, 한 남자가 히무라 곁으로 와 말을 걸었다.

“신기하네요. 가우왕이 다른 사람 이랑 친하게 지내다니.”

“아, 스클레너 씨.”

히무라가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이사인 레이 스클레너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레이 스클레너도 엑스톤을 시작으로 배도빈 등 여러 음악가를 발굴,

육성한 히무라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다시 배도빈 일행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가우왕은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시하기로 유명했다.

목이 뻣뻣하여 사람들과 잘 안 어울린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이야기와는 달리 배도빈, 최지훈과 잘 지내 니 레이 스클레너에게는 의외였다.

“이렇게 보니 가우왕이 사람을 가 린다는 이야기도 뜬소문이었던 모양 이네요.”

“하하. 정확히 알고 계신 겁니다.”

히무라가 예전 배도빈과 가우왕이 함께 작업할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도빈이도 지훈이도 가우왕이 인정 하는 사람이니 저렇게 지내는 거죠. 보세요. 장 니콜라는 이번에도 무시 당했네요.”

최지훈의 압도적 실력에 밀려 매번 준우승에 그쳤던 2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 장 니콜라가 가우왕에게 무 시당하고 있었다.

“배도빈 군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최지훈 군도 대단한 모양이네요.”

“그럼요. 정확한 타건과 깊이 있는 해석이 절대 저 나이에 나올 수 있는 실력이 아니죠.”

“역시 히무라 씨의 안목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실은 협회 이사를 맡고 있긴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조용한 자리 에서 고견을 들려주시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히무라는 이번 기회에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에 연줄을 만들 좋은 기회라 여기며 얼른 자리를 옮겼다.

파티장에서 조금 떨어진 방에 이르 자 히무라는 화려한 테이블을 맞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부를 생각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앉자 아니나 다 를까 레이 스클레너가 본론을 꺼냈다.

“미카엘 블레하츠에게 라이징스타 엔터테인먼트와 도빈 재단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히무라가 살짝 웃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도빈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시 작도 도빈이의 수집, 아니, 투자였으니까요. 저는 그저 도울 뿐입니다.”

“배도빈 군과 WH그룹도 히무라 씨를 높게 평가하니 전적으로 일을 맡긴 거겠죠. 실은 오늘 그와 관련 된 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히무라가 고개를 끄덕여 레이 스클 레너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시다시피 오케스트라 대전은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말이죠. 때 문에 협회에서는 도빈 재단을 통해 후원받은 지망생들이 라이징스타 엔 터테인먼트를 통해 활동하는 과정을 무척 인상 깊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래서 두 단체와 협력 관계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 아.”

“정리해 말씀드리면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도빈 재단에 후원하길 바랍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조건도 있겠죠?”

“네. 라이징스타 엔터테인먼트 소 속 음악가들이 협회의 일을 홍보해 주었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지속 적으로요.”

‘나쁘지 않은데.’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와 연을 맺 어 나쁠 일은 없었다.

도리어 그러길 바랐기에 레이 스클 레너를 따라 이 방에 들어왔었다.

정보와 지원 그리고 홍보 수단으로 서 협회는 큰 역할을 해줄 터.

배도빈이 그리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협회와 함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판단했다.

“좋은 일입니다. 긍정적으로 검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충분히 긍정적인 뜻을 비쳤으나 확 답은 하지 않는 히무라를 보며 레이 스클레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회와도 얘기해 보셔야 할 테니까요.”

“실은 재단주의 의견을 묻는 거지만요.”

“재단주?”

“도빈이가 도빈 재단의 주인입니다. 저랑 몇몇이 이사로 있긴 하지 만 직책일 뿐, 도빈이의 뜻으로 운 영되고 있죠.”

“……수천만 달러 규모의 재단이요?”

“자본이 주체고 그 자본이 모두 도빈이 것이니까요.”

레이 스클레너가 얼이 빠졌다.

“그럼 조만간 세부 논의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죠. 도빈 재단 역시 협회의 정신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히무라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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