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33화 (23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7화

52. 천재들의 앙상블(1)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푸르트벵글러의 발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푸르트벵글러도 배도빈도 베를린 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배도빈이 복귀하면서 베를린 필은 가파르게 성장했고 단원과 운영진을 포함, 겨우 250명 정도의 인원을 가 진 악단이 연 매출 수천억 원을 올 리게 되었다.

푸르트벵글러는 베를린 필을 최고 의 현대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그의 공백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는 지난 휴식 기간을 통해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케르바 슈타인과 악장단이 최선을 다했으나 팬들은 연일 푸르트벵글러 의 복귀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닉 A와 B로 나뉘어 스스로 경쟁 구도를 만들다 니.

마누엘 노이어가 나섰다.

“세프, 우리에겐 당신도 배도빈 악 장도 소중합니다. 우승하지 못하면 떠나라됴.”

“맞아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단원들이 마누엘 노이어에 동조하였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배도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또 성과를 보였는 지 알았기에 푸르트벵글러의 발언에 상처받지는 않을까 우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조금도 자 신의 의견을 꺾지 않았다. 그저 단상에서 배도빈을 볼 뿐이었다.

긴장의 순간.

배도빈의 웃음이 그 팽팽했던 분위 기를 깨뜨리고 말았다.

“도빈아?”

마누엘 노이어와 함께 푸르트벵글러에게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던 이승희가 배도빈을 걱정스레 불렀다.

하지만 그녀, 아니, 모든 단원의 걱정과는 달리 배도빈은 전에 없던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총기와 열망으로 가득했다.

“재밌겠네요.”

배도빈이 입을 떼자 회장은 순식간 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푸르트벵글러의 마음을 돌리려는 사람과 배도빈을 설득하려는 사람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등 여러 말이 한꺼번에 오갔다.

“세프!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도빈아, 너 왜 그래?”

“우리끼리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애초에 오케스트라 대전은 B가 참가하기로 했잖아. 설명 좀 해달라고!”

여러 말이 오가는 사이 푸르트벵글러가 단상을 내려쳤다.

그 소리에 단원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푸르트벵글러는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A팀 단원들은 30분 뒤에 제1연습 실에 모이도록.”

푸르트벵글러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어 왔던 케르바 슈타인은 전체 미팅이 끝나자마자 푸르트벵글러를 찾았다.

그 외에도 많은 단원이 함께했지만 케르바 슈타인은 자신이 먼저 이야 기를 나눠보겠다고 단원들을 진정시 킨 뒤 푸르트벵글러와 독대하였다.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케르바 슈타인은 차분히 물었다.

폭군이라 불리지만 푸르트벵글러가 이유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릴 리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창문 밖에 시선을 둔 채 답을 아꼈다.

“세프!”

“……작년은 참 즐거웠지?”

“예?”

푸르트벵글러의 선문답 같은 질문 에 케르바 슈타인은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푸르트벵글러 의 말에 이내 씁쓸히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어. 악단이 하나처럼 되어 새로운 곡을 반복해 연습했지. 베를린 환상곡을 처음 연주했을 때의 관객들의 박수 소리는 잊을 수 없어.”

푸르트벵글러는 여전히 베를린 시 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첫 번째 자선 공연과 투란도트는 또 어땠나.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공연이었지. ……모두 녀석 덕분이야.”

“세프••••••

“베를린 필하모닉의 보석.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도빈이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녀석을 상임 작곡가 자리에 앉혀놓고 싶어. 이 몸이 바스러질 때까지 녀 석의 곡을 지휘하며 말이다.”

푸르트벵글러가 돌아섰다.

케르바 슈타인은 푸르트벵글러의 눈을 보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젖은 눈이 그가 배도빈을 얼마나 아끼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다. 아니, 우리 모두의 욕심이지. 케르바, 자네 도 대교향곡에 대해 들었을 테지?”

“……네.”

“나는 나의 악단이 녀석의 걸림돌 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녀석을 보내는 게 옳아.”

케르바 슈타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을 떠나보내 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을 위한 강경책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마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겠냐고 자문하는 듯했다.

“단원들에게 전하게. 도빈이와 함께하고 싶다면 전력을 다해 녀석에 게 어울리는 악단이 되라고.”

“알겠습니다.”

푸르트벵글러의 뜻을 이해한 케르 바 슈타인은 제1연습실로 향했다.

케르바 슈타인을 기다리고 있던 A 팀 단원들은 케르바 슈타인을 보자 다급히 질문을 쏟아냈다.

그들을 진정시킨 케브라 슈타인이 푸르트벵글러의 뜻을 전하자 다들 숙연해졌다.

“함께하기 위해서……

배도빈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 라도 적어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현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에게 어울 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간 너무도 승승장구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단원들은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사실 도빈이가 맡은 일이 많긴 하지. 거의 모든 섹션에 관여하고 있잖아. A든 B든.”

“하고 싶은 작곡도 더딜 수밖에 없겠지. 어렸을 때는 그렇게 많은 곡을 발표했는데 작년에는 단 두 곡뿐 이었으니까.”

“단 두 곡이라니. 그런 곡을 쓰고 싶어도 평생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기준이 도빈이니까.”

단원들의 말이 조금씩 도빈이에 대 한 미안함과 애석함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마누엘 노이어가 혀를 찼다.

“다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럼 뭐, 그 녀석을 보내줘야 한다는 뜻이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우리가 아니면 누가 녀석에 맞춰줄 수 있냐고. 안 그래?”

마누엘 노이어의 언성이 높아졌다.

“빈? 암스테르담? 런던? 녀석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줄 악단이 우리 말고 누구란 말이야. 우리가 아니면 그 미친 천재 녀석이 마음 놓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겠냔 말이야!”

마누엘 노이어의 외침은 베를린 필하모닉 A를 울렸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는 베를린 필하모닉마저 배도빈을 감쌀 수 없다면 배도빈은 어디에서 악단 생 활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이 단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천재는 고독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 역시 또래에서는 비할 자가 없었고 그렇기 에 수많은 시기와 질투, 고독을 느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이곳.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한 뒤에서야 진정 음악을 함께 향유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유대와 소속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마저 배도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배도빈은 어디서 교향곡을 연주하고 지휘해야 할까.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도빈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던 단원들은 그제야 조금 푸르트벵글러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을 내쫓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이 배도빈에게 어울리는지 시험하는 것이었다.

단원들이 마음을 굳게 먹었고.

때맞춰 푸르트벵글러가 제1연습실로 들어왔다.

단원들을 앞에 두고 그들을 둘러본 푸르트벵글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A장조. 시작하지.”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 B 단원들은 A팀과는 다른 이유로 잔뜩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승.

사실상 살아 있는 전설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 A를 뛰어넘지 못하면 배도빈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정작 당사자인 배도빈이 싱글벙글하고 웃고 있었기에 단원들 은 더욱 걱정되었다.

평소 무뚝뚝한 편이었던 배도빈이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 단원도 적지 않았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시엔 얀이 소소에게 말을 걸었다.

“악장 평소랑 좀 다르지 않아요?”

소소가 배도빈을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운 것 같아.”

“그쵸? 이상한 거 맞죠?”

소소가 고개를 돌려 의아하게 물었다.

“ 이상해?”

“그렇잖아요! 우승하지 못하면 떠 나야 하는데!”

시엔 양의 말을 들은 소소가 배도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시엔이 너 이상하대.”

소소의 말에 시엔 양이 화들짝 놀라 급히 소소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모습을 본 배도빈이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시엔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소소가 시엔의 손을 내리고 물었다.

“재밌어?”

“그럼요.”

배도빈의 대답에 소소가 살짝 미소 지었다. 마치 어린애처럼(아직 성인도 안 되었지만) 순수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배도빈을 보니 소소 도 기분이 좋아졌다.

“커흠. 이거 나도 좀 간이 떨리는 데. 우승 못하면 배도빈 악장이 떠나야 한다니.”

타악기 수석 디스카우가 나서서 단원들의 난감함을 배도빈에게 전했다.

“걱정 말아요. 다들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배도빈은 콧노래 까지 흥얼거리며 캐논을 켰다. 경쾌 한 연주에 묘하게 분위기가 진정되 는데 제2바이올린 주자 오오타 타카

히코가 수석인 나윤희에게 귓속말을 했다.

“악장이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 아요?”

그 말에 나윤희가 음 하고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원래 이런 경연 별로 안 좋아한다 고 들었는데.”

“들었는데?”

“상대할 사람이 없어서라고……

“조금 이상하지만 도빈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에는 더 그랬을 테니까요.”

나윤희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배도빈이 출전한 콩쿠르나 경연에서 그의 우승을 점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미 만 8살에 피아노계의 황태자라는 가우왕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홈그라운드에서 박살을 내버렸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크리크 콩쿠르나 쇼팽 콩쿠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나윤희와 찰스 브라움이 참가했던 베를린 필 악 장 오디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배도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들은 죄다 클래식 음악계 에서 30〜40년씩 활동했던 리빙 레 전드뿐이었으니.

배도빈이 그들과 경쟁할 명분도 기 회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즐겁나 봐요.”

오오타 타카히코는 나윤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윤희는 최근 무료해 보였던 배도빈이 생기를 찾은 듯해 조금 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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