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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24화 (22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4화

    50. 새 시대(3)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 는데 주인장 김덕배가 카드를 받곤 목소리를 낮췄다.

    “잠깐 가게 밖에서 보자.”

    뭔가 할 말이 있겠거니 싶어 나섰 고 나윤희에게는 먼저 돌아가라 하였다.

    가게 옆 작은 주차장에서 김덕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요?”

    “……아무래도 달래 일 그만두는 게 좋겠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독일 말을 빨리 배우고 용돈도 스 스로 벌고자 의욕적이었던 진달래가 떠올라 되물었다.

    “실은 말이다.”

    나윤희와 진달래가 막 친해졌을 무 렵, 진달래는 나윤희를 자신이 일하는 슈퍼 슈바인으로 초대했다.

    “저……

    “언니! 빨리 와! 빨리!”

    조심스레 매장에 들어선 나윤희를 반갑게 맞이한 진달래가 자리를 안 내했다.

    어색하게 자리를 잡은 나윤희에게 진달래가 메뉴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기본 카레만으로도 엄 청나게 맛있어. 양파를 무지무지 많이 넣어서 볶아서 단맛이 간질간질거린단 말이야.”

    나윤희는 그런 진달래를 보며 슬며 시 미소 지었다.

    단맛이 간질거린다는 표현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조잘대는 진달래가 그저 귀여웠다.

    “그럼 그걸로 줘.”

    “오케이! 여기 야채 카레 1인분!”

    나윤희는 장애를 입고 연고조차 없는 타국에서도 밝고 당당하게 지내는 진달래가 멋져 보였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는데 저렇게 씩씩하다니.

    배우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자! 음료수는 서비스야.”

    “괜찮은 거야?”

    “그럼! 놀러오셨는데 이 정도는 대접해 드려야지!”

    배시시 웃는 진달래를 보곤 나윤희가 따라 웃었다. 카레를 떠먹고는 감탄했다. 뭐라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 표정 변화에 진달래가 만족하고는 서빙을 보러 갔다.

    ‘ 맛있다.’

    소박하게 나온 무짠지도 훌륭했다.

    그때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잠깐 말 좀 하자는데 왜 이렇게 까칠해?”

    “이, 이거 놔.”

    나윤희가 고개를 돌렸다.

    매장 안의 한 남자가 진달래의 오 른손을 잡고 있었다.

    진달래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팔을 빼내려 했지만 그러기 엔 역부족이었다.

    “어이, 우리 종업원한테 무슨 짓이야?”

    그 광경을 보던 슈퍼 슈바인의 주인장 김덕배가 나섰다.

    겉으로도 드러나는 그의 위협적인 덩치에 남자가 혀를 찼다.

    “흥. 이래서 칭총들이 하는 식당은 안 된다니까.”1)

    1)유럽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호 칭.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비하 발언이다. 한국인, 일본인들에게도 구분 없이 사용한다.

    남자의 무례한 행동에 나윤희는 진 달래가 걱정되었다.

    ‘어쩌지……. 달래 도와줘야 하는 데. 무서울 텐데. 경찰. 경찰 불러야 하나?’

    당황한 나윤희가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쥐고 있던 진달래의 오른손을 살폈다.

    “……뭐야, 이거. 의수잖아? 허. 기 가 차는군. 흥이 식었어. 가 봐.”

    그 말에.

    진달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진달래는 나윤희가 지금껏 봐왔던 당당하 고 밝은 동생이 아니었다.

    “이, 이건……

    나윤희는 진달래의 옆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다.

    무례한 남자를 가로막았다.

    “사, 사과하세요.”

    나윤희는 진달래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자기 등 뒤에 세웠다.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도 무서워 다리가 떨렸다. 당장에라 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두려운 상황에 놀란 진달래를 위해서라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뭐라고?”

    무례한 남자가 일어섰다.

    나윤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나윤희에게 다가와 그녀를 내 려다봤고 그녀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양팔을 벌렸다.

    “사, 사과하세요.”

    “이 주변이 언제부터 차이나타운이 된 거야? 어이가 없네.”

    “우, 우린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이에요. 동양인이라 해서 그런 말을 들을 이유도, 다, 다, 다, 당신이 그 런 말을 할 권리도 없어요. 이, 이, 이 아이는 당신이 그렇게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 말더듬이가 뭐라는 거야?”

    그 순간 김덕배가 카운터에서 나와 무례한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서 들었다.

    “뭐야! 뭐하는 짓이야? 중국인 새 끼가 사람을 치려고 하네?”

    남자가 바둥거렸지만 김덕배의 억 센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덕배가 나윤희와 진달래를 보며 말했다.

    “가게에 벌레가 들어온 모양이다. 빨리 쫓아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러고는 가게 문을 열고 남자를 밖으로 밀어 던졌다.

    내팽개쳐진 남자가 악을 썼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고도 여기 서 장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빌 어먹을 원숭이 새끼야!”

    김덕배는 명심하라는 듯 그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신 얼씬대지 마.”

    김덕배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주저앉아 서로를 꼭 안고 있는 두 여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매일같이 오더구나. 아마 달래가 걱정되었겠지.”

    나윤희와 묘하게 슈퍼 슈바인에서 자주 마주친다 생각했는데 그런 일을 겪었을 줄이야.

    그 무례한 짐승에게도.

    내 식구가 그런 힘든 일을 겪었는데도 알지 못했던 내게도 화가 났다.

    동시에 찰스 브라움이 왜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고자 열을 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인종차별 문제로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심지어는 음악가로서의 진로조차 방 해받는 걸 안타깝게 여긴 찰스 브라움은 이곳 베를린에 유학생들을 위 한 학과를 설립, 직접 교수일도 병 행해 왔었다.

    그의 말을 떠올려 보면 비단 독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유럽의 문제 인 듯하지만 주변 사람이 겪으니 비 로소 체감되었다.

    “또 그 녀석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와 작업한다며?”

    “네.”

    진달래가 자랑한 모양이다.

    “그렇게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면 최선을 다해야지. 지금은 달래를 위 해서라도 그쪽 일에 집중하게 해주는 게 좋아.”

    김덕배의 말이 맞다.

    정신 나간 개에게 물린 일도 걱정 되지만 그 일뿐이라면 진달래가 안전 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옳다.

    짐승 때문에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둬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고 그건 김덕배도 같은 생각일 거다.

    하지만 지금 녀석에게는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푸르트벵글러만 한 사람과 작업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평생 에 단 한 번 얻을 기회.

    여러 상황을 보더라도 김덕배의 말 처럼 봉달 서커스 OST 작업에 집 중하는 게 옳다.

    그 사건은 그저 여러 계기 중 하 나일 뿐이다.

    “고마워요.”

    “무슨. 나야 싹싹한 종업원이 나가 면 아쉽지만 그 아이를 보면 응원해 주고 싶어서 말이야.”

    “같은 생각이에요.”

    비단 진달래뿐만이 아니라 힘든 환 경 때문에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을 생각하니 진정 가슴이 아팠다.

    창문으로 매장 안에서 열심히 그릇을 나르고 있는 진달래를 보며 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아이들만이 라도 지켜주자고.

    나와 그들이 만들어나갈 새로운 시 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진달래를 앉혀놓았다.

    “뭐, 뭔데 그렇게 무게를 잡아?”

    “푸르트벵글러랑 작업한 지 꽤 되었잖아. 어때?”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던지 진달래 가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재밌는 할아버지?”

    어이가 없어 가만히 보고 있자 말을 덧붙였다.

    “좀 대단해야 하다고 할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집어내기도 하고 곡 도 진짜 좋고. 응. 근데 왜?”

    “푸르트벵글러는 최고야.”

    “어……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모든 음악가로부터 존경받고 역사에 기록 될 사람이야. 넌 그런 사람에게 음악을 배우고 있고 함께하고 있는 거야.”

    가만히 듣던 진달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할게.”

    “네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는 걸로는 안 돼.”

    진달래와 눈을 마주하곤 말했다.

    “음악을 정말 하고 싶다고 했잖아.”

    “당연하지.”

    “그럼 다른 걸 포기해야 해. 네가 하는 게임이든 아르바이트든 모두.”

    아직 어린 진달래는 분명 또 고집을 세울 거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이 아이의 진 정성을 확인했었기에 믿는다.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면 ‘은혜 갚 기’와 ‘놀이’를 포기할 수 있을 거라 고 말이다.

    “알았어.”

    예상과 다른 반응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장님한 테 죄송해서 어떻게 말하지? 끄응.”

    “고집 안 부리네.”

    “뭘?”

    “일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할 거 라 생각했어.”

    진달래가 내 말을 듣더니 방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알고 있어. 지금 이 상태로는 부족하니까.”

    자각하고 있긴 했던 모양이다.

    “그치만 진짜 마냥 공부만 하는게……

    “쓸데없는 고민하지 마. 수술 받을 때 마음만 생각해.”

    진달래가 끙끙 앓더니 이내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 열심히 공부해서 빚은 꼭 갚을게!”

    “그래.”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찰스 브라움을 찾아 전화를 거니 이내 그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받았다.

    -찰스 브라움입니다.

    “저예요. 오늘 잠깐 시간 좀 내주 세요.”

    -으음. 오늘은……. 아니다. 이쪽으로 와줄 수 있어?

    “갈게요. 어디에요?”

    -베를린 대학. 교수실에 있어.

    “지금 출발할게요. 이따 봐요.”

    통화를 마치고 집사에게 차를 부탁 해 베를린 대학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가까워 도착한 주말의 베를린 대학은 한산했다. 찰스 브라움의 교수실로 향하자 그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와.”

    “피곤해 보이네요.”

    “과제를 봐주고 있거든. 어제부터.”

    그의 방에서 커피향이 짙게 나는 것으로 보아 꽤 지쳐 있는 듯했다.

    그가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권했고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별당하는 학생들을 위해 여길 만들었다고 했죠?”

    “영향력 있는 자의 의무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는 거다.

    “어떤가요? 지금 유럽 상황은.”

    “흐음.”

    찰스 브라움이 일어서 커피포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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