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23화 (22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3화

50. 새 시대(2)

-그럼 료코, 힘내.

아빠랑 통화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아빠는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며 쉽게 말하지만 내가 정말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잘할 수 있을까 싶다.

솔직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배도빈과 음악을 하는 일은 어렸을 적부터 꿈이자 목표였고 지금까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변변치 못한 지금의 나로서는 떨려서 말이 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다.

택시에서 내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앞에 내렸다.

오늘 모임을 가진다는 연습실로 향 했는데 문 앞에 다다르자 가슴이 요동쳤다.

손바닥에 참을 인을 써서 먹었는데 도 나아지지 않는다.

“••••••저어.”

깜짝 놀라 돌아보니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제2바이올린 수석 나윤희 님이 서 있었다.

입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석 이 된 엄청나게 멋진 사람을 앞에 두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아. 그.”

“아, 죄, 죄송해요.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어, 없었어요.”

“흐어?”

흐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말 바보 같다.

“부,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저는 단지 들어가고 싶어서……

“아. 아아.”

또 오해를 산 모양이다.

나윤희 님이 잔뜩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 뒷걸음질 쳐 자리를 내주자 나윤희 님이 꾸벅 인사하시곤 후다 닥 안으로 들어가셨다.

‘ 아.’

겨우 문이 열렸는데 또다시 닫히고 말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소심 한 성격 때문에 선배님들과의 첫 만남을 망칠 수는 없다.

똑 부러지게 인사하자고 단단히 마 음먹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앞에 수십, 아니, 백 명은 훌쩍 넘길 만 큼 많은 사람이 보였다.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에서 가장 힘 있는 첼리스트인 이승희 님을 포함해 명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자랑이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들까지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오! 신입이다!”

당황한 나머지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어쩌자고 다시 닫았는지 다시는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빠, 큰일 났어.’

새로 입단한 진 마르코와 나카무라 료코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아침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신입이 온다며?”

“진 마르코는 빈 필에 있었잖아.

파릇파릇하다고 하기엔 경력자지.”

“아니. 대학생이 온다고 들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일본 사람이었는데.”

“나카무라 료코예요. 일본 내에서는 꽤 유명해요.”

“그래?”

“네, 비올라의 카리스마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무대 위에서의 눈빛이 정말 엄청 나대요. 연주도 시원시원하고.”

“궁금한데? 언제쯤 오려나.”

단원들이 나카무라 료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 때마침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고 평소 보다 다급히 들어오는 나윤희에게 시선이 모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어?”

이승희가 다가가 물었다.

“밖에…… 무서운 분이 계셔서.”

나윤희가 말끝을 흐렸다.

이승희와 단원들이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금 문이 열렸고 이목이 집중되었다.

잔뜩 힘을 낸 나카무라 료코가 마치 꿰뚫듯이 연습실을 훑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오! 신입니다!”

디스카우가 반갑게 외쳤고 료코는 요란하게 문을 닫았다.

“어…… 나 뭐 잘못했나?”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 디스카우를 뒤로 하고 소소가 문을 열었다.

“들어와.”

“아. 으.”

“괜찮아. 옳지.”

소소의 손을 잡고 들어온 나카무라 료코가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녀와 눈을 마주친 사람들은 딴청을 부렸다.

마치 야생동물을 마주한 듯한 기분 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 앉아.”

소소가 료코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주머니에서 누네띠네를 꺼내 주었다.

불안하여 주변을 살피던 료코는 일 단 할 일이 주어지자 과자를 먹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 모습이 단원 들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소소 악장 뭔가 조련사 같지 않아?”

“그러게. 잘 다루잖아.”

나카무라 료코의 기백에 움찔했던 단원들도 얌전히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보고서는 슬며시 다가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배도빈과 진 마르코가 도착했다.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금세 단원들과 친근하게 지내게 된 진 마르코는 나카무라 료코의 부러움을 샀고 그 녀의 시선에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마르코와 료코가 잘 적응해서 다행 이다.

다들 료코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묘하게 소소를 잘 따랐고 사교성이 좋은 마르코는 벌써부터 기존 단원 들과 거리를 좁힌 듯하다.

미팅이 끝나자 케르바 슈타인이 나섰다.

“그럼 A는 30분 뒤 제1연습실에서 모이겠습니다.”

A팀 단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케르바 슈타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미켈란젤리 페스티벌 준비는 괜찮아요?”

이탈리아의 북쪽에 있는 도시 브레 시아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에 A팀이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B를 만들 때는 이런 외부 공연을 맡기고 A는 정기 연주회에 집중하고자 했는데 오케스트라 대전 때문에 일을 미룬 꼴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했고 그렇지 않아도 바쁜 케르바 슈타인이 걱정되었다.

“하던 연주를 하는 거야 문제없지 만 아무래도 레파토리를 추가하는 게 문제지.”

케르바 슈타인이 이제는 거의 다 벗겨진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꽤 힘에 부친 듯했다.

미켈란젤리 페스티벌을 포함해 고 정적으로 참가하는 몇몇 축제에서는 새 곡을 준비했는데 푸르트벵글러가 만든 전통이다.

단원들이 힘겨워 하는 것도 이해되는 일이다.

케르바 슈타인을 위로하고 손뼉을 쳤다.

“우리도 시작하죠. 디스카우, 부탁 했던 건 준비되었나요?”

“물론! 기대하시게.”

디스카우가 브레이크 드럼을 들어 보였다.

자동차 바퀴에 사용되는 금속이다.

타악부의 특성상 타악기 연주자는 여러 악기를 다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악기가 아닌 것도 악기처럼

다루려면 디스카우 같은 노련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준비하는 곡은 타 악기가 다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만큼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절실 하다.

‘든든하네.’

오보에가 人음을 냈고 다들 조율을 마쳤다.

단원들이 준비를 마친 듯해 오늘 연습할 곡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서 한차례 미팅을 가져 개론을 했지만 마르코와 료코를 위해 요약 정도는 필요할 듯하다.

“최은수의 마네킹은 심상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음은 신비롭고 변화가 많지만 그걸 연주하는 우리는 그 불안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1)

1)진은숙(1961〜) 대한민국의 작곡가. 그라베마이어, 쇤베르크, 시벨리 우스상 수상자. 국내외를 통틀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마네킹(Mannequin)은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듣는 사람의 내면에 불안 함을 자극하는 곡이다.

예측하기 힘든 돌출적인 부분과 날카로운 음색 활용은 공포 영화에 어울릴 듯하지만 그렇다고 여타 다른 실험적인 곡처럼 괴상하진 않다.

추상적인 형태와 구체적인 분위기.

그 독특함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우리 연주를 듣는 팬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소소에게 눈길을 주어 연습을 시작하자는 뜻을 전했다.

단원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손을 저었다.

“디스카우는 포르티시모를 의식해 주세요. 바이올린은 더블 포르티시 모입니다.”

곡을 조율해 나가는 동안 마르코와 료코도 열심히 쫓아온다. 처음일 텐데 곧잘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문제야.’

오늘은 피아노 없이 가지만 이 곡에서 피아노는 빠질 수 없다. 도리어 그 역할이 매우 큰데 악단에 상 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얼마 전 은퇴 하면서 맡아줄 사람이 없어졌다.

연습을 이어가다가 피아노 없이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연습을 종료했다.

‘내가 할까. ……아니야.’

곡에 따라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면 서도 지휘가 가능해도 세심한 부분 까지 잡으면서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베를린 필하모닉 B는 내가 신 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기에 연주와 지휘를 병행하기에는 걱정되는 일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진달래에 게 문자를 보냈다. 특제 카레가 남았냐는 질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1인분만 남았다는 말에 발을 재촉했는 데 저 앞에 나윤희가 보였다.

슈퍼 슈바인으로 가는 듯하다.

다가가 물었다.

“카레 먹으러 가요?”

“아, 응.”

“오늘 연주 좋았어요. 제2바이올린 섹션이 돌출부를 잘 이끈 덕에 다음 연주회도 기대돼요.”

나윤희가 쑥쓰러운 듯 작게 웃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슈퍼 슈바인에 도착.

푸근한 주인장과 불량한 종업원이 반겼다.

“별일이네? 같이 오고.”

진달래가 물었다.

“오는 길에 만났어. 난 버섯 카레랑 밥 추가.”

“특제 카레 하나......

“버섯에 밥 추가. 슈니첼 특제 카레…… 오케이.”

주문을 확인한 진달래가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윤희가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왜 그래요?”

“특제 카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좋아해요.”

“그런데 왜 버섯 카레만 먹어? 저 번이랑 지지난번에도.”

“슈니첼 특제 카레가 더 맛있으니 까요.”

나윤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고 난 다시 피아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에 빠졌다.

한두 번이라면 외부에서 사람을 초청해도 될 텐데 정규 레퍼토리에 넣으려 했기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남아 있었다.

최지훈이나 니나 케베리히가 떠올랐지만 두 사람 모두 독주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베를린 필하모닉에 두자니 그들의 앞길을 막는 듯 해 배제하였다.

루트비히 오케스트라처럼 거의 대부분의 곡에 피아노를 쓸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나중에 하자.’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고민하다 보니 피곤해져 고개를 흔들어 애써 잊었다.

“자, 여기.”

진달래가 카레를 가져다주었고 그 풍미 깊은 향을 느끼자 이내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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