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22화 (22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2화

    50. 새 시대(1)

    동시에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독일의 저명한 문화평론가 게르트 카리우스는 배도빈 연구에 있어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2010년부터 스테른지를 통해 배도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해 왔었다.

    여러 칼럼을 통해 게르트 카리우스는 배도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열정. 인류애.

    배도빈의 작품 활동은 그 어떤 음악가보다 왕성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음악에 쏟아부었다.

    게르트 카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 장했다.

    “배도빈은 지친 현시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의 천재성보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모습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게르트 카리우스는 일찍이 21세기를 박탈의 시대라 부른 적 있었다.

    경제의 양극화, 새로운 이념 다툼, 다원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책과 시민 의식으로 인해 21세기를 살아 가는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거세당 했다고 평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좌절했던 이들이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었다.

    게르트 카리우스는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배도빈에게서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음악 세계는 항상 고난과 역 경 그리고 번뇌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끝은 희망에 차 있지요. 그는 본인의 삶과 음악 내 적인 메시지로 말합니다. 나와 당신 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게르트 카리우스의 말대로 배도빈 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클래식 음악계는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다.

    21세기부터 활동을 시작한 음악가 중 주목할 만한 사람을 손꼽는다면 니나 케베리히, 엘리자베타 툭타미 셰바, 아리엘 핀 얀스, 진 마르코, 소소, 나윤희, 최지훈, 최성신, 남궁 예건 등이 있었다.

    모두 배도빈과 연관이 있었는데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해 온 이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놀라운 열정을 보여주었고.

    게르트 카리우스는 이 세대를 ‘Lei denschaft (라이든샤프트: 격정, 격 앙)’으로 명명했다.

    또한, 이 시대의 선구자로 배도빈을 지목하였고 음악학회에서도 이를 수용하였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재 음악가 배도빈보다는 ‘인류의 희망’으로서의 인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가난한 음악가를 대상으로 한 배도빈의 투자 사업과 기초 교육을 병행한 기아 구제는 배도빈의 음악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바탕 지식 이 되었으며.

    동시에 배도빈의 음악을 듣고 배도빈의 도움을 받으며 자란 세대가 사 회로 나와 활동하기 시작했기에 게 르트 카리우스의 배도빈에 의한 라 이든샤프트 세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음악계 종사자들 사이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터플레이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정의.

    약 1년간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런던의 전통파와 베를린의 혁신파 사이의 갈등이 한 음악가에 의해 명확 히 종결된 것이었다.

    희망조차 없었던 시대에 한 인간의 진실이 거대 자본에 앞선 유일한 사례였다.

    가우왕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빨간 가죽 재킷과 꽉 조이는 흰 바지를 입고 발에는 고동색 워커를 신고 있다.

    거기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데 왜 항상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상하게 보고 있자 가우왕이 씩 하고 웃었다.

    “어때. 멋있지? 이게 공항패션이라는 거야.”

    “틀림없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거예요”

    “쯧쯧. 뭘 모르는구만. 정장만 입는 네 취향이 이상한 거야.”

    “차라리 도빈이가 나아.”

    소소의 타박에 가우왕도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헛기침을 하고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그래. 네 말대로 베를린 필하모닉 B 제법 괜찮은 곳이었어.”

    “물론이죠.”

    “좀 멍청해 보이긴 해도 음악에 대 해서만큼은 진심인 것 같더라. 그것 도 다 네 덕분인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가우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에 비 해 가우왕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자기만 아는 성격에다가 연주도 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협연도 다니고 성 격도 꽤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개떡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말이다.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우승 못 하 면 혼날 줄 알아.”

    “농담이죠?”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

    가우왕이 씩 하고 웃었다.

    “곡 만들어준다고 했던 말 잊지 말 고.”

    “생각 좀 해볼게요.”

    “뭐, 뭐라고?”

    한참 웃은 뒤 악수를 했다.

    손끝으로 아쉬움이 전해졌다.

    또 당분간 못 보겠지만 세계 어디 에 있든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우왕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가우왕이 가방을 고쳐 메고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있어 만족하는 것 같은데, 적당히 해둬.”

    “무슨 말이에요?”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도 결국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잖아.”

    멍청해 보여도 가끔 이렇게 맥락을 짚을 때가 있다.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마. 베를린 필하모닉은 네가 없어도 잘 해나갈 테니까. 이번에 같이 해보니 알겠더라.”

    가우왕이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내가 갈 길이 있으니 너무 돌아가 지 말라는 뜻이다.

    조금씩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성장해 나가는 베를린 필하모닉 B와 좀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이 제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 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아 고민 하던 중이었다.

    이번에 협연을 하면서 베를린 필하모닉 으에 대해 알게 된 가우왕은 이제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인사를 마치고 한발 물러서자 언제 화해했는지 남매가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좀 쉬어야지.’

    가우왕을 배웅하고 소소와 함께 귀가했다.

    “ 피곤해.”

    “저도 그래요.”

    일요일이라서 공연도 없고 하루 정도 푹 쉴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푸르트벵글러가 왔는지 2층에서 그가 작업하고 있는 곡과 진달래의 노 래가 들려왔다.

    이제는 제법 중심이 잡힌 듯하다.

    푸르트벵글러가 잘 가르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노래는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순전히 개인 교습을 통해 연습하고 있을 테니 그 끈기가 기특하다.

    “나 잘래.”

    소소가 터벅터벅 계단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지라 아침 일찍 배웅하는 일이 그녀에겐 꽤 큰일이었던 모양이다.

    “다녀오셨습니까.”

    집사가 다가와 짐을 들어주었다.

    “네. 아버지랑 어머니는요?”

    “주인님께선 오늘도 발굴 현장에 계십니다. 안주인님께선 도진 도련 님과 함께 외출하셨습니다.”

    벌써 몇 달째 집에 계신 날보다 밖에 계신다.

    피곤하긴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또 한동안 오케스트라 대전으로 바쁠 테니 못 뵐 것 같다.

    “차 좀 준비해 주세요. 아버지께 가려고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소파에 앉아 조금 눈을 붙였다가 기사와 함께 아버지의 발굴 현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니 꽤 넓은 범위에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변부에는 건설 기계가 있었지만 발굴이 되는 부근에는 없고 인부들 이 직접 작업하는 것을 보니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듯하다.

    따라라라 따라라라라-

    사무실로 향하는데 바가텔 A단조가 16비트로 들렸다.

    ‘ 음?’

    “어이! 거기 조심해!”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니 작업차가 후진을 해와 뒤로 물러섰다.

    “조심하십시오, 도련님.”

    집사가 다가와 걱정하는데 의아해서 물었다.

    “바가텔 A단조는……

    “네?”

    “……엘리제를 위하여.”

    “아. 네. 공사현장에서 후진할 때 많이 사용되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대체 왜 이 곡이 이런 데 사용되는 거지.’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찝찝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가 계실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도빈아.”

    책상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일어 나 나를 반기셨다. 꽤 오래 못 뵈었는데 그새 또 얼굴이 수척해지셨다.

    얼굴은 탔고 버짐이 피었는데 표정 만큼은 무척 밝으셨다.

    “어이구.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다 큰 아들을 꽉 안으시고 얼굴을 문대시는데 이제는 거절할 마음도 안 생긴다.

    아버지만의 애정 표현이리라.

    “시간이 나서요. 또 걱정되기도 하 고.”

    “하하. 미안. 미안. 아빠가 같이 있어 주고 해야 하는데.”

    “저랑 어머니는 괜찮아요. 도진이 가 많이 보고 싶어 해요.”

    “……그러게.”

    조금 분위기가 낮아졌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10년 이상을 못 하셨으니 그 갈증 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거다.

    나도 작업에 집중하면 며칠씩 밖으로 나가질 않으니 아버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도진이에 대한 미안 한 감정도 있으실 테니 나라도 조금 은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아드렸다.

    아버지가 씩 하고 웃으며 나와 집 사에게 인스턴트커피를 타 주셨다.

    슬쩍 아버지 책상을 보는데 ‘테메 스’라는 단어가 보여 물었다.

    “테메스가 뭐예요?”

    “아, 문헌으로 남은 옛 문명이야.”

    아버지께서 설명을 시작하셨는데 그렇게 신난 아버지는 블랙나이트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이후로 처음 이었다.

    나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었다.

    “30년 전에 발견된 비석에 소개되 어 있는데 테메스는 테메스라라는 지도자가 이끈 도시국가 같아. 수렵과 음악을 즐겼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이들의 문화가 헬레니즘에 큰 영 향을 주었다고 추측된다는 거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무척 즐거워하시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에 의하면 테메스의 지도자는 영적인 능력이 강하다고 하는데 해석해 보면 음악으로 환자를 치료했다나 봐.”

    “음악으로요?”

    “아마 플라시보 효과겠지. 의학이 덜 발전했을 때니 그런 일을 믿었던 것 같아. 이 문명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한다면 서양 고대사가 완전히 달라져. 황금으로 만든 제사단도 있었다는데.”

    황금으로 만든 제사단이라니 그건 좀 관심이 간다.

    그렇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 지 대충 듣고 나서 본론을 꺼냈다.

    “두 분 결혼기념일 곧이잖아요.”

    “ 아.”

    “하하하하.”

    깜빡하신 모양이다.

    “당일이라도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도진이는 걱정하지 마시고요.”

    “도빈이 정말 다 컸네. 엄마 아빠 기념일도 챙겨주고.”

    “아버지가 안 챙기시니까요.”

    나도 이런 일에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외골 수적인 면을 이해하시나.

    두 분을 위해서라도 자식 된 도리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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