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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20화 (22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20화

    49. 몰락과 비상⑵

    “꼬맹이. 너, 나한테 뭐 섭섭한 거 있냐?”

    “그럴 리가요.”

    “그럼 네가 말해도 될 걸 왜 자꾸 소소하고 말하게 하는 거야?”

    “이번 기회에 다시 친해지면 좋잖아요.”

    “안 좋아. 네가 모르는 거 같은데 쟤하고 만나면 자꾸 어디가 아프다 니까?”

    “그건 무슨 말이에요?”

    “어지럽다든지 갑자기 몸살이 난다 든지 말이야.”

    “거짓말하지 말아요.”

    “진짜라니까? 아무튼 난 너랑 이야 기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고는 들으라는 듯 중얼 거렸다.

    “오케스트라 대전이 끝나면 곡 하 나 만들어 주려 했는데 이렇게 깐깐 하니 별수 없네.”

    “……어? 방금 뭐라 했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곡 만들어 준다 했잖아!”

    “들었어요? 귀도 밝네. 근데 자꾸 쪼잔하게 나오니까 안 그러려고요.”

    “너 지금 나 협박하냐?”

    “네.”

    “요 꼬맹이가.”

    가우왕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안 한 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곡을 받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자 존심이 허락지 않아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로스앤젤레스의 구스 타프 하나엘 영감이 쓰러졌다던데. 들었냐?”

    “ 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으나 그의 연주회는 몇 번 들어본 바 있었다.

    토마스 필스 사후 구스타프 하나엘 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거기도 너처럼 건방진 꼬맹이가 한 명 있는데.”

    배도빈이 인상을 쓰자 가우왕이 어 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리엘 핀 얀스라고 마리 얀스 영 감 손자야. LA필 최연소 악장인데 이번에 지휘자로 나선 사람 중에 너 다음으로 어릴걸?”

    “대단하네요. 어린 나이에.”

    가우왕이 배도빈을 보았다.

    아직 성인도 안 된 만 17살의 배도빈은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 식 후계자로 근 1년간 지휘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네가 할 말이냐?”

    배도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가우왕과 소소가 친해지길 바라서 조금 괴롭혔더니 이제 눈을 마주친 다고 해서 기겁하진 않게 되었다.

    멋진 발전이다.

    그러는 사이 협연 준비는 차근차근 준비되었고 공연 당일이 밝았다.

    마지막 리허설을 위해 평소보다 일 찍 출근했는데 무슨 일인지 단원들이 나보다 일찍 도착해 연습 중이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잠시 연습실 밖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 악장.”

    인사를 나누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한 뒤 듣고 있자니 다른 단원들도 평소보다 빨리 출근했다.

    내친김에 아직 자고 있을 가우왕을 깨워 빨리 오라 재촉했고 무대 위에 서 리허설을 하였다.

    좋은 느낌이다.

    다들 자신 있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이들 가슴에 조금씩 자부심이 생긴 듯해 더없이 기뻤다.

    “배도빈 악장?”

    카밀라가 연습실을 찾았다.

    “네.”

    “잠깐 괜찮을까요?”

    복도로 나섰더니 카밀라가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서는 조금 그렇고 사무실에서 이야기해 줄게.”

    그런가 보다 싶은데 카밀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뉴스 봤어?”

    평소에도 TV는 거의 안 본다.

    고개를 젓자 카밀라가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인터플레이 요즘 엄청 곤란한가 봐. 다들 난리도 아니야. 자.”

    카밀라가 핸드폰을 펼쳐 내게 보여 주었다.

    인터플레이의 서비스에 문제가 많아 이용자들이 여러모로 불편을 겪는 모양이다.

    “문제가 많나 보네요.”

    “별로 감흥이 없나 봐?”

    “신경 안 썼으니까요. 그래도 단원 들이 보면 통쾌해하겠네요.”

    “아무렴.”

    푸르트벵글러의 말이 맞다.

    단원 중에는 짖는 개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무서울 수도 있고 더럽게 생각할 수도 있고 예민 한 사람들이니 영향을 안 받는 것도 힘들 거다.

    다 나 같을 순 없을 거다.

    그래서 나도 인터플레이 측에서 나 오는 이야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나도 짖을 순 없지 않은 가?

    그래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찰스 브라움을 만들 때 그렇게 어 렵게 만든 것도 베를린 필하모닉만 이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곡을 만 들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

    결과적으로는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는데 그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담감이 생긴 것도 대화와 연습으로 해결하는 중이니 나만의 방법이 통한 거라 생각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있었다.

    진 마르코와 나카무라 료코다.

    “마르코. 료코.”

    마르코가 웃으며 다가와 나를 껴안았고 료코는 여전히 투지에 불타고 있다.

    눈에서 불이라도 나올 것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케르바 슈타인이랑 악장단이 B팀 인원에 대해 건의했잖아?”

    40명 구성의 베를린 필하모닉 B는 확실히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챔버 오케스트라 수준에 타악기와 금.목관 연주자 몇몇이 함께할 뿐이다.

    더군다나 A팀에 공석이 생기면 B 팀에서 채우는 식으로 운영하던 기 존 체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지휘를 맡으면서 B의 스케줄이 늘었기에 h도 B도 인원 확충이 절실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악장단 회의에서도 몇 번 안건이 나왔는데 푸르트벵글러의 반대로 몇 번 무산되었다.

    이유는 수준.

    푸르트벵글러의 깐깐한 기준에 부 합하는 연주자가 많지 않았던 탓인 데 그가 휴가를 간 사이 잠시 정권을 쥔 케르바 슈타인은 인원 확충에 노력하고 있었다.

    서로 워낙 바쁜 탓에 공식 오디션 은 못 하지만 악장단만이라도 모여 보자고 이야기 나눈 바 있었다.

    그리고 그 후보들이 이 두 사람인 모양이다.

    솔로 오보이스트로 활동한다 했던 마르코와 아직 학부생인 나카무라 료코라서 이럴 줄은 생각지 못했고.

    그렇기에 더욱 반가웠다.

    “두 사람 모두 A로 가기에 충분했는데 굳이 B로 지원하더라고. 그래 서 오디션을 보려 했는데 면접할 때 두 사람 모두 너랑 친분이 있다고 해서.”

    “ 아.”

    “어떻게 할래?”

    푸르트벵글러가 본래 전권을 가지 고 있었던 것처럼 베를린 필하모닉 B에 대해서는 내가 그러했기에 카 밀라가 센스 좋게 먼저 묻는 것이다.

    어차피 두 사람이라면 실력을 잘 아는 만큼 오디션을 굳이 다시 볼 필요가 없고 또 당분간 바쁜데 따로 시간을 내기도 부담스럽다.

    고민할 이유 따위 조금도 없다.

    “두 사람 모두 채용할게요.”

    “그래.”

    마르코가 놀랐다.

    “그, 그래도 되는 거예요?”

    “다른 악단이나 다른 사람은 안 되 지만 예외는 있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이 그러겠다는데 말릴 수 있는 사람 있을까요?”

    카밀라 앤더슨의 말에 마르코가 고 개를 끄덕였다.

    뭔가 폭정을 저지르고 합리화 받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데 눈에 료코가 들어왔다.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벌써부터 투 지가 넘쳐나니 베를린 필하모닉 B 에 좋은 자극을 줄 거라 기대된다.

    “만세!”

    그리고 밝은 마르코도 분명 좋은 영향을 미칠 테니 벌써부터 든든하다.

    “그럼 공연 준비 때문에 먼저 가볼 게요. 마르코. 내일은 휴무니까 모레 단원들이랑 인사하도록 해요.”

    “그래! 잘 부탁해요, 지휘자님 !”

    “직급은 일단 악장이에요.”

    마르코와 웃으며 인사했고 료코에 게도 인사를 건넸다.

    사실 좀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 데 이렇게나 빨리 와줘서 고맙다.

    어찌 되었든 카밀라가 내게 직접 연결해 줄 정도라면 서류상으로라도 기본 소양은 인정받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축하해.”

    “……왜 오디션 안 보는 거야?”

    오디션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게 절차지만 네 연주는 들어봤으니까. 그래도 처음에는 적 응하기 힘들 거야.”

    “그 정도쯤은 알고 있어.”

    “그래. 얼굴만 봐도 얼마나 각오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모레 보자.”

    “그럼 공연 준비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혹시 가능하면 두 사람이 오 늘 공연 볼 수 있도록 임시석이라도 마련해 주세요.”

    “그래. 보조 의자라도 가져다 놓으면 되니까.”

    그렇게 인사하고 복도로 나오자 괜히 뿌듯해졌다.

    지휘자 대기실에서 커피 알을 60개 세어 갈기 시작했다. 입자가 제 법 크게 남긴 뒤 물을 따르자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항상 하던 행동을 반복할 때 마음 이 안정되는 법.

    조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소 대로의 지휘를 하기 위해 집중하자 어느새 부대 위로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오케스트라 대전이라.

    누가 생각했는지 참 재밌는 일을 시작했다.

    다시 태어난 뒤 경쟁할 만한 사람 이 없어 피했는데 예전에는 명사들 과 겨루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던 탓인데 마리 얀스와 빈 필하모닉, 제르바 루빈스타인 등과 진검승부를 벌인다 고 생각하니 기껏 진정했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안 되지. 안 돼.’

    오늘은 오늘의 연주만을 생각하자.

    발을 옮겼다.

    언제나 그러하듯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내빈과 관객, 기자들로 가득 찼다.

    공연 직전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에 접속한 사람은 200만 명에 달했다.

    모두 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가우왕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협연을 듣기 위함이었다.

    기자들이 음악계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따는 도중 출장을 온 이시하 라 린이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밝은 금발은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져 어깨에 닿았다. 푸른 눈과 얇은 눈썹은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었다.

    “와.”

    이시하라 린이 촬영 기자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 왜 그래요?”

    “따라와. 대박이야.”

    이시하라 린이 인파를 헤치고 그에 게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아리엘 핀 얀스 악장.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라 린입니다. 잠시 인터뷰 가능하시겠어요?”

    아리엘 핀 얀스가 이시하라 린을 보았다.

    ‘미쳤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

    눈을 마주하자 이시하라 린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잘생긴 사람 은 수없이 많이 만났지만 아리엘 핀 얀스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그가 입을 열자 이시하라 린은 숨 이 멎을 것만 같았다.

    “하찮군. 거절하겠어.”

    “••••••네?”

    “무례하군. 두 번 거절하게 할 생 각인가?”

    아리엘 핀 얀스가 가슴주머니에 꽂 힌 하얀 장미를 꺼내 이시하라 린에 게 향했다.

    “오늘의 만남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아르엘 핀 얀스가 콘서트홀로 돌아 갔고 자신도 모르게 하얀 장미를 받 은 이시하라 린은 얼이 빠져 버렸다.

    “쟤…… 뭐니?”

    “심각한 흑염룡 환자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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