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19화 (21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19화

    49. 몰락과 비상⑴

    2023년 2월에 접어들면서 인터플 레이 고객센터에 클레임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안식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터플 레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아내랑 함께 영화를 보는 중에 갑자기 연결이 끊어져서요. TV 말고 핸드폰이나 PC로 보려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떤 콘텐츠를 감상하고 계셨는지 알려주신다면 속히 해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랙나이트 오리진입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문의자의 개인 정보를 확인한 뒤.

    상담자가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서버에 상황을 기입, 기술 관련 부서 로 이관하였다.

    그러나 곧 대응 불능이라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당황한 상담자가 일어나 우선 팀장을 찾았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녀의 상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사과하시고 빠른 시일 내에 서비스 복구를 약속드린 다 하세요.”

    “하지만 그럼 아무것도 해결해 드리지 못하는 건데……

    팀장이 타이르듯 말했다.

    “앤, 당신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해요. 그리고 이 관련 건으로 오 늘 오전에만 1,700건이 넘게 항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기술부서에서 단시간 안에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안내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대로 이러한 일은 상담사 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월 말부터 조금씩 인터플레이의 온라인 서비스에 작은 문제가 생기 기 시작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걷 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온라인 고객센터와 전화 상담 센터 등이 마비가 올 정도로 다양한 문제 들이 제보되기 시작했고 이는 언론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운 영진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 히 대책위원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대책위원 회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제임스 버만의 진노를 샀다.

    대책위원장이 운영진 앞에 섰다.

    인터플레이의 이사 중 한 명이 물었다.

    “대체 문제가 뭡니까?”

    “파악 중에 있습니다. 아마 연초에 시작된 플랫폼 리뉴얼이 원인이라……

    “아마? 지금 환불 요청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거 맞습니까?”

    “환불뿐만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가 날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안식과 즐거움을 준다는 인터플레이가 스트 레스를 만든다는 말 못 들었습니까?”

    “당장 주식부터 떨어지고 있어요! 대책위원장은 일주일간 문제 파악조차 못 하고 뭘 했습니까?”

    대책위원장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누구보다도 인터플레이가 처 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업 확장으로 인터플 레이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보다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여러 중소기업을 합병해 일을 처리해 왔었다.

    또 인력이 부족했기에 하청을 주어 필요한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번 플랫폼 대개편 역시 같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 업체에서 제 작, 관리하던 일이었기에 인터플레 이 소속 직원 중에 새롭게 만들어진 플랫폼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하청업체에 문제 파악과 해결을 독촉했지만 그들 역시 그 아 래 외주 업체를 두고 있었다.

    그것이 현재 인터플레이에 생긴 문 제들을 신속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여러 분야에 걸쳐 이뤄지던 일에 문제가 생기자 인터플레이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하청 업체들은 그들이 외주를 준 또 다른 기업 에게 책임을 미루었다.

    법적인 의무에 대해서는 인터플레 이가 하청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지만 이미 인터플레이는 신뢰를 잃고 말았다.

    제임스 버만은 방도는 없이 책임을 독촉할 뿐인 운영이사회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때 제임스 버만의 비서가 급히 들어섰다. 그리고 문서 하나를 건네 며 귓속말을 했다.

    “런던 심포니 필하모닉의 실황 스 트리밍이 중단되었습니다.”

    “뭐라고?”

    제임스 버만이 비서를 보며 되물었다.

    런던 심포니 필하모닉의 실황 스트 리밍은 인터플레이가 2023년, 기술 혁신을 통해 준비한 서비스였다.

    현실과 매우 유사한 수준의 VR 환경과 음질을 실시간 중계로 관람 할 수 있었고 인터플레이 사용자들 은 이를 30유로라는 적지 않은 비 용으로 반복해 감상할 수 있었다.

    “……복구 불능입니다.”

    쾅.

    제임스 버만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이사들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도중, 제임스 버만이 핸드폰을 꺼내 인터플레이의 자회사 레독의 대표에 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케이 볼튼이 전화를 받았다.

    -예, 회장님.

    “지금 당장…… 통스 뒤샹을 데리 고 내 눈앞에 오시오.”

    -그, 그게…….

    “감히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마시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 하지만.

    케이 볼튼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통스 뒤샹이 사라졌습니다.

    한편 인터플레이의 상황을 지켜보 고 있던 최우철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아, 너무 즐겁군.’

    통스 뒤샹을 비롯해 유럽 내 8개 업체를 손에 넣은 최우철의 머릿속 에는 작년부터 이미 이러한 환경을 그리고 있었다.

    인터플레이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 확장과 플랫폼 개편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

    그룹 특성상 자체 기술보다는 M&A 와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인터플레이의 사업을 망가뜨 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들도 문제의 원인을 추 적할 수 있을 테지만 이렇게 비열한 짓으로 세계적 기업의 사장직까지 오른 최우철에 닿을 수는 없었다.

    인터플레이가 현재 어디까지 파악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있으면 올해 초에 제작한 음반에도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면 제임스 버만의 속이 뒤집어질 거라 생각했다.

    ‘자연스레 음악가들도 떠나겠지.’

    어느 음악가가 자신의 연주를 엉망으로 서비스하는 곳과 계약을 하겠으며 심지어 ‘기술적 문제’로 서비 스조차 안 된다는데 자신들의 소중한 ‘기록’을 넘겨줄 리가 없었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카드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최우철의 조커 카드가 막 모습을 보였다.

    “반갑습니다, 한스 레넌 기자.”

    “안녕하십니까.”

    한스 레넌의 눈에는 독기가 차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잡지 그래모폰의 편집장까지 올랐던 그는 현재 좌천에 좌천을 거듭했다.

    단 1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으며 그는 현 편집장의 허가가 없으면 기 사조차 낼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인터플레이가 원하는 내용을 싣지 않았던 그의 신념에 대한 보복이었다.

    배도빈이 어렸을 적부터 그에 관련한 기사를 써 왔던 한스 레넌은 이 러한 상황에 크게 분노해 있었고.

    최우철은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한스 레넌이 그 손을 맞잡은 것이었다.

    “준비는 잘 되고 있으십니까?”

    “네. 증인도 증거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결코 이 사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아주 좋습니다.”

    “법정에서도 분명.”

    “아,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셔 도 됩니다. 어차피 돈 많은 작자들 이야 빠져나가는 거 일도 아니고 설 사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금방 재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이슈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아, 본 인의 명예를 위한 일이라면 저도 개 인적으로 지원해 드리죠.”

    한스 레넌이 생각을 하다 이내 물었다.

    “이제 터뜨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네. 다음번에 만날 때는 축배라도 들죠.”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한스 레넌은 최우철이 두려웠다.

    인터플레이가 무너지고 유럽에 최우 철이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독과점이 일어나지 않을 까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이익 집단을 위한 언론 플레이가 또다시 발생할 테고 그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주체가 달라질 뿐, 지금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때는 최우철을 무너뜨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고 말이다.

    한스 레넌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인터플레이가 무너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만난 뒤로 인터 플레이보다 당신이 더 두렵더군요. 말씀해 보십쇼. 당신이 제2의 제임 스 버만이 아니라는 걸 제가 어떻게 믿을 수 있죠?”

    한스 레넌의 말에 최우철이 크게 웃었다.

    조금 소름 돋기까지 한 그 모습에 한스 레넌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간신히 진정한 최우철이 입을 뗐다.

    “그러니 지금 걱정하시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베를린의 독주입니다.”

    최우철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한스 레넌이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의 음악 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하 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되어서는 안 되죠. 하지만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의 위상과…… 당신이 함께하게 된 다면 그럴 수 있겠죠.”

    “ 아.”

    최우철이 손바닥을 보이며 좌우로 흔들었다.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만 저와 베를린 필하모닉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물론 도빈이도요.”

    “……당신 뒤에 WH가 있다는 것 쯤은 저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게다 가 배도빈과 최지훈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더욱이 베를린 연 합은 인터플레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이래도 부정 하시는 겁니까?”

    “그럼요. 정말 아무 상관 없습니다.”

    최우철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쪽은 도리어 한스 레넌이었다. 그가 재차 물었다.

    “당신은 인터플레이에 반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은 최우철이 고개를 저으며 사과했다.

    “이거 미안합니다. 너무 웃겨서 말이죠.”

    “음. 이건 기자님이 사업을 해보신 적이 없으셔서 그런 것 같아 생기는 오해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업가도 그런 동기로 시작하진 않아요. 백이 면 백 망합니다.”

    최우철이 시가를 꺼내 한스 레넌에 게 권했다. 한스 레넌이 그것을 받 아들자 커터와 성냥이 든 케이스를 밀어주었다.

    그런 도중에도 최우철의 말은 계속 되었다.

    “기자님은 지금 정의의 편에서 계신 거겠지만 저는 달라요. 저는 도 리어 인터플레이의 사업 방향이 틀 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크게 성공했으니까요. 제가 왜 그들을 무너뜨리는지 궁금하시겠죠? 하 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기자님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 독과점 시장을 주도하는 저들을 벌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최우철도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렇다고 사심으로 지훈이에게 이득을 주진 않을 겁니다. 제 아들이 지만 저를 닮아 능력도 좋고 자립심 도 아주 높거든요. 베를린 필하모닉 이라. 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죠. 있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하죠. 다소 법에 어긋나는 일도 합니다. 그를 통해 잃는 것 과 얻는 것을 저울질하면서 말이에요. 지금은 인터플레이가 가진 것이

    탐이 날 뿐입니다. 제가 콘텐츠 사업을 한다면 아주 공평할 겁니다. 인기가 많은 작품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 되겠죠. 아주 전통적인 시장의 논리 입니다.”

    최우철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뒤 말했다.

    “뭐, 결론적으로 인터플레이가 하는 것처럼 특정 단체 밀어주기가 결 코 개인의 욕심에 의하진 않을 거라 고는 말해드릴 수 있겠네요.”

    ‘미친놈이다.’

    한스 레넌은 생각했다.

    합리적이란 말과 미쳤다는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기자였기에 여러 형태의 인물상을 만나본 한스 레넌이었지만 그가 보기에 최우철은 미친 사람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명석한 사업가였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히 자본에 미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자신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신념을 이루는 데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인터플레이. 존재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놈들이지 않습니까?”

    한스 레넌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가 같을 때는 함께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는 거리를 두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