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218화
48. 오케스트라 대전(5)
[OOTY 오케스트라 대전 개최!]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이사. 미카엘 블레하츠.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의 결정체입니다. 각 악단이 꽃피운 클래식이 앞으로도 사랑받길 바랍니다.”]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의 참가 악단과 우승 후보는?]
[마리 얀스. “부정할 수 없이 현재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다. 도전하는 입장이다.”]
【오케스트라 대전 우승 후보! 기자 단 투표 결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압도적!】
【속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구스타프 하나엘 건강 문제로 사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우리에게는 배도빈 못지않은 젊고 유능한 악장이 있다. 그가 오케스트라 대전을 이끌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최연소 악장, 아리엘 핀 얀스(22세). 그는 누구인가기
【해먼 쇼익, “브루노 발터가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우승이 확실하다.”]
[브루노 발터, “저 푼수 입 좀 틀어 막아.”]
* * *
오케스트라 대전의 의의는 더 아름다운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조금씩 경직되던 클래식 음악계가 나로 인해 자극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불편할 뿐이다.
오직 나를 위해 음악을 할 뿐이라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하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한 귀를 흘릴 뿐.
먼젓번 삶이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은 똑같다.
아무튼 그 탓인지 OOTY 운영위 원회는 오케스트라 대전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길 바랐다.
아무래도 호황기를 맞이한 클래식 음악계가 더욱 커지길 바란 것 같은데 그 마음이 오케스트라 대전의 심사 방법으로 표출되었다.
심사위원단을 언제 파견하는지, 누 구를 보내는지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부친 것이다.
평소의 연주회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다르게 말하면 평소에 열심히 하라는 말.
다들 그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협연자와의 첫 미팅 시작 전.
가우왕과 함께 미팅실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오케스트라 대전에 대한 이야기다.
“으으. 좀 불안한데.”
“아무래도 그렇지. 마음의 준비라는 게 있잖아.”
“나 대학 동창들이 베를린 필하모닉이라고 대단하다고 오케스트라 대 전도 우승하겠다고 막 그러는데 웃을 수가 없더라.”
“솔직히 우리랑 A는 다르고…… 찰스 브라움도 배도빈 악장이랑 찰스 브라움 악장 덕분에 성공한 거니 까.”
“하아. 진짜 한숨밖에 안 나온다.”
“ 나두.”
“나윤희 수석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 저요? 저는......
“……우승 못 하면 세프가 얼마나 화낼까?”
“화만 내면 다행이지. 그 성격에 아예 안 돌아올지도 몰라.”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협연자인 가우왕도 분명 들었을 테니 더욱 달갑지 않았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언제부 터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렇게 자신 감이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
안타깝다.
문을 열자 단원들이 인사했다.
“아, 악장. 가우왕 씨.”
아니나 다를까 성질 더러운 가우왕이 단원들을 둘러보더니 인상을 썼다.
“꼬맹이, 베를린 필하모닉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진 거야?”
내게 하는 말이지만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한 행동이다. 부끄럽지만 나 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악단이랑 협연이라니 끔찍하군. 난 돌아가겠어.”
가우왕이 돌아섰고 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보는 대신 단원들을 살폈다. 그리고 물었다.
“불안한가요.”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악장 소소와 제2바이올린 수석 나윤희, 팀파니스트 디스카우를 제외하고 다들 내 눈을 피했다.
나윤희에게 물었다.
“나윤희 수석.”
“……네.”
“불안하십니까?”
나윤희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 덕이며 그렇다고 힘겹게 답했다.
나는 그녀가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다 시 물었다.
“무엇이 불안한가요.”
“아, 아으……
나윤희는 거의 울 것 같았고 소소 가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는 듯한 제 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난 소소에게 눈길을 주어 그녀를 말렸다.
나윤희는 소심할지언정 바보도 멍청이도 아니다. 당장 어제저녁만 해 도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갈고닦은 그녀다.
베를린 필하모닉 B에서 가장 믿음 직스러운 사람이었기에 나는 단원들 이 그녀를 본받길 바랐다.
다시 나윤희에게 시선을 두자 그녀 가 말을 더듬으면서 질문에 답했다.
어제 대화의 반복이다.
“다, 다, 다들 저희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요.”
잠시 간격을 두고 말을 잇는다.
“우, 우리는 아직 지휘자를 따라가 지도 못하는데 다른 대, 대단한 악단들이 그러니까요.”
제2바이올린 부수석이 나윤희의 말 에 동조했다.
“맞아요. 사실 A라면 모를까. 빈이나 암스테르담, 런던에 시카고까지. 우리가 그런 곳을 이길 수 있을 리 가 없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를 보았다. 더 이상 답이 없기에 다시 나윤희에게 물었다.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나윤희 수 석은 무엇을 하셨나요?”
한참을 망설이던 나윤희가 나를 보았다.
나는 나와 그녀를 믿는다.
나윤희는 나를 믿는 만큼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
노력했기 때문.
나는 나와 나윤희의 대화로 단원들 에게 그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 주고 싶었다.
비록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으나 마 음을 먹었는지 나윤희가 더듬거리지 않고 말했다.
“ 연습했어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노력 한다. 그럼으로써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머리 다 큰 어른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어렸을 적에 몇 번이고 뛰어 넘었던 한계가 이제는 너무나 높게 보이니까.
나조차 부담스러운 마리 얀스의 암 스테르담이나 빈 필하모닉이 상대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나윤희는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더 멋진 음악을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그러다 보면 분명,
분명 또 찰스 브라움 같은 멋진 공 연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멋진 대답 감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나윤희 수석 께서 대신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느낄 부담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더 멋진 음악을 하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때 비올라 주자가 나섰다.
“하지만 세프께선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또 다른 사람이 나섰다.
“다들 우리를 목표로 하고 있잖아요. 차라리 A팀이 출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A팀이라면 분명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저희는……
“맞아요. 실제로 베를린 필하모닉 B는 아직 빈이나 암스테르담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사실이다.
“그럼 대체 왜……
순위 매기기에는 질색하는 나와 푸르트벵글러가 왜 이 대회에 출전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인터플레이의 언론 공세도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자존심 대결도 있지만 푸르트벵글러는 분명히 말했다.
만약 그것 때문이라면 일정에 문제 가 있었어도 푸르트벵글러가 혹은 내가 A팀을 이끌고 참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베를린 필하모닉 B에게 맡겼다.
“다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 되었을 때 푸르트벵글러가 한 말 기억하십니까?”
“너희가 아직 부족함은 나도 잘 알 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참가한다면 용서치 않는다. B팀이라 해서 2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짐 싸 들고 나가라 고……
첼로 수석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기억력도 좋다.
덕분에 설명하기 편해졌다.
“맞습니다. 푸르트벵글러는 우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에요. 대회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성 과를 냈고 성공했습니다. 그의 말대 로 2군이라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러러보 고 있는 A팀과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베를린 필하모닉이에요. 세계 최 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입니다.”
나윤희를 보며 말했다. 두 손을 앞 에 두고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오케스트라 대전은 그것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다들 각자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찰스 브라움’을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내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소화할 수 없었을 거다.
나는 이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들의 선배, A팀과 푸르트벵글러 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하기에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이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의 목표가 되는 부담은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부 담에 눌리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거예요. 여러분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지 다른 음악가를 이겨 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경쟁이라는 자극은 서로의 실 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에 매 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음악을 하죠.”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디스카우가 손을 들었다.
“네.”
“한마디 거들어도 되겠소, 악장?”
“그럼요.”
디스카우가 일어서서 단원들을 둘 러본 뒤 말했다.
“커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이 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베를린 필하모닉은 최고요. 최고. 다들 부담스러워 해서 어찌 달랠까 고민했는데 보소. 우리 지휘자인 배도빈 악장이 우승 못 해도 된다 했으니 다들 부담감 같은 거 집어치우 고 음악가면 음악가답게 열심히 연 습이나 합시다! 안 그렇소, 악장?”
다들 황당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 아뇨.”
웃으며 말했다.
“우승 못 하면 용서 못해요.”
***
밖으로 나오자 가우왕이 멀찍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뒤로 가서 등을 때렸다.
“ 악.”
“왜 우리 단원들 기를 죽여요?”
“그런 한심한 놈들인 줄 알았더라면 너한테 부탁도 안 했어. ……미안. 너도 고생이겠네.”
다시 한번 등을 때렸다.
“내일 다시 봐요. 다들 잠깐 흔들렸을 뿐이에요.”
가우왕이 날 보더니 눈매를 좁혔다.
“너 좀 변했다?”
“뭐가요?”
“아니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요. 답답하게 굴지 말고.”
“됐어.”
가우왕이 담배를 끄고 쓰레기통에 버린 뒤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더 만나보지.”
실은 나라도 협연을 하러 왔는데 악단 분위기가 저렇다면 몹시 실망 했을 것이다.
가우왕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서운한 건 서운한 일.
어차피 독주자와 콘서트마스터는 자리부터 가까울 수밖에 없으니 소 소와 많이 붙여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