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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09화 (20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09화

    46. 그 누구도 끄지 못하리라(3)

    새해가 밝고 2주 뒤.

    여전히 세계 모든 언론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칭송하였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파인 리파스토의 칼럼이었다.

    ‘찰스 브라움’을 작곡하고 지휘한 배도빈의 천재적 음악성과 극악의 난이도의 연주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찰스 브라움.

    그리고 투혼을 보여준 거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진솔한 찬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동시에 그간 자신이 낸 기사를 부 정하니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파인 리파스토의 태도가 변한 이유 에 대해 의문을 가진 몇몇 이가 그 에게 질문을 하였고 파인 리파스토는 자신이 설립한 잡지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최우철이 그를 찾아갔다.

    “반갑습니다. 최우철입니다.”

    비록 파인 리파스토가 음악 관련 잡지사를 운영했다고는 하나 세계적 기업인 EI전자의 사장이었던 최우철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파인 리파스토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어쩐 일로 절 보자고 하셨는지.”

    “아아. 직원이 필요해서 말이죠.”

    “예?”

    “영국과 프랑스에 선도 여럿 대고 계시고 본인도 뛰어난 평론가라 들었는데 말이죠. 음악계 전반에 대한 지식도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사업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우 철이 클래식 음악에 관련성이 적었다.

    굳이 하나 꼽자면 그의 아들이자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최지훈이 있을 것이다.

    “혹시 최지훈 피아니스트에 관한 일인가요?”

    “하하하! 아닙니다. 제 아들이지만 우수해서 알아서 잘하고 있거든요. 다름이 아니라 유럽에서 클래식 음악 사업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 아.”

    최우철이 파인 리파스토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의 성장으로 인해 클래식 음악 시장은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본 고장인 유럽은 두말할 필요 없겠죠.”

    파인 리파스토는 서류를 살폈다.

    실제 유장혁, 최우철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 만 그의 눈에는 충분히 방대한 범위 의 사업이었다.

    일반인, 학생, 평단이 클래식 음악계의 소식과 검증된 지식 등을 얻을 수 있는, 어찌 보면 공익성이 짙은 일이었다.

    “여러 인재가 준비하고 있지만 음악가들과 소통하고 그에 관련한 정 보를 입수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 런 면에서 파인 리파스토 씨가 활약 해 줄 수 있을 듯한데. 어떠십니까.”

    “ 저는••••••

    파인 리파스토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이 세웠던 잡지사에서 나올 때 그는 속죄의 의미로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우철이 파인 리파스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속죄를 하실 거라면 이보다 좋은 일도 없지 않습니까?”

    “••••••네?”

    “인터플레이 아래에서 후회할 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올바른 지식을 전파하고 사람들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일하시는 것이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길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최우철의 말을 들은 파인 리파스토 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자 조적으로 웃었다.

    이미 양심을 팔아먹은 자신이 ‘클래식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기업의 이미지만 망칠 뿐이었다.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했지만 파인 리파스토는 최우철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알고 계신다면 제가 이런 일을 맡으면 어떤 이미지로 비칠지 예상하 실 수 있으시겠죠.”

    “물론이죠.”

    너무도 담담한 최우철의 태도에 파 인 리파스토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 보았다.

    “그럼 왜……

    “인터플레이의 외압에 양심을 지켜 나온 최초의 지식인. 그 정도면 충 분할 듯하네요.”

    “지금 절 놀리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최우철이 자신의 핸드폰을 펼쳤다.

    넓은 액정에 검색결과창이 떠 있었고 파인 리파스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양심을 지킨 평론가의 은퇴에 대해]

    【런던과 베를린의 관계에 관한 고찰]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을 석권한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

    【파인 리파스토의 잡지 먼즈, 1년 전 인터플레이의 자회사에 인수?]

    “언론인으로서도 평론가로서도 오래 활동하신 당신이라면 잘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또 권력에 복종하라 말씀하시는 듯하군요.”

    “아아아. 그래서 훌륭한 명분을 알 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최우철은 복종하라는 말을 부정하 지 않았다. 그저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당신의 과거를 씻어내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좋은 일까지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파인 리파스토 씨.”

    말을 끊어낸 최우철이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인터플레이처럼 굶기고 굶겨서 복종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풀어놓고 자유롭게 키우는 사람도 있죠. 사실 양쪽 다 바라는 건 같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공을 물어오라 하면 물어오고 손을 내 밀라 하면 그러면 되는 거지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십니까?”

    최우철이 파인 리파스토의 눈을 응 시하다가 품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것과 명함을 테이블 위에 올 려놓고 일어섰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내일 뵙도록 하죠.”

    최우철이 나서자 파인 리파스토는 떨리는 손으로 최우철이 남기고 간 종이를 펼쳤다.

    치욕스러워 이가 바득 갈렸으나 파 인 리파스토는 최우철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친 잡지사 ‘먼즈’가 인터플레이의 농간으로 재정 위기를 겪게 되었음을 증 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버만은 눈매를 좁히며 보고 사항을 들었다. 이내 눈을 감고 콧 등을 만지던 그가 짜증스럽게 손을 저었다.

    보고자가 말을 멈추었고 제임스 버 만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도 제임스 버만의 질문에 답하 지 못했다.

    잠시 대답을 기다렸던 제임스 버만 이 책상을 내려치고서는 역정을 냈다.

    “대체 뭣들 하고 있냐는 말이야!”

    호기롭게 출발했던 인터플레이.

    독점적 사업을 기반으로 인터플레 이는 현재도 영화, 드라마 등의 영 상 스트리밍에서는 전 유럽과 북미 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유독 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바로 배도빈 이 베를린에 합류한 뒤부터 조금씩 힘을 잃고 있었다.

    2021년 하반기 기준 유럽 시장의 47%를 차지하고 있던 인터플레이의 2022년 하반기 27%를 기록.

    여전히 유럽 1위의 음악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소속 악단은 그러지 못했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 시장을 100퍼센트로 두었을 때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고정 팬은 11퍼센트로, 78 퍼센트를 확보하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최고의 음악’이 있다면 다른 음악을 듣지 않을 거란 제임스 버만의 생각과는 다르게 클래식 음악 팬들 은 ‘좋은 음악’이면 런던이든 베를린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만들 거 라는 제임스 버만의 생각은 얕고 부질없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모르고 자신의 생각 이라면 무조건 관철되는 삶을 살았던 제임스 버만이 그것을 납득할 리 없었다.

    “대체 당신들 그 자리에서 뭘 하고 있냐고 묻잖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최고다.

    양식조차 지키지 않는 베를린 음악 은 질 낮은 음악이다.

    세계 최고의 지휘자와 연주자를 섭 외하고 최상의 인프라를 구축한 뒤 사람들을 끌어모았으니 그의 편협한 사고방식으로는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더욱 2/4분기부터 2퍼센트 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인터플레이와는 달리 베를린 연합은 1년 내내 분기마다 두 자릿수의 고성장을 이 어오고 있었다.

    인터플레이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 하였지만 기울어지려는 판을 뒤집을 순 없었다.

    인터플레이가 아무리 언론을 통제 하려 해도 배도빈의 명성에는 조금도 흠을 낼 수 없었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인터플레이의 중역 회의에 모인 이 들 중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로 배도빈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플레이, 아니, 제임스 버만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압도적인 자본력 앞에 인터플레이 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황당하게도.

    세계적 기업 인터플레이가 단 한 명의 음악가에게 밀리고 있음을 말이다.

    오죽했으면 영국에서도 베를린 필하모닉은 클래식 음악 시장의 30퍼 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어렵게 초빙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닉의 지휘자 브 루노 발터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마 저 베를린 필의 연말 연주회를 극찬 하였다.

    이제는 그들이 직접적으로 부렸던 평론가 중에서도 배도빈을 찬양하고 있으니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배도빈, 아니, 그의 음악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그 흐름은 돈으로 감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에 담음으로써 제임스 버만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어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거운 침묵을 가르고 제임스 버만 이 레독의 케이 볼튼을 불렀다.

    “볼튼, 리빌딩은 잘 진행되고 있겠지?”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인터 플레이는 두 개의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케이 볼튼이 맡은 일은 그중에서도

    독점 상품에 대한 녹음 음질, 서비 스 개선과 대규모 플랫폼 업데이트.

    무거운 회의장의 분위기를 개선할 좋은 기회였기에 케이 볼튼이 자신 있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통스 튀샹의 기술은 독보적입니다. 베를린이 아무리 노 력해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1억 파운드에 달하는 거액을 들인 사업이었고 제임스 버만 본인도 충 분히 확인했던 일이었다.

    제임스 버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엄 포를 늘어놓았다.

    “브루노 발터에게 전하시오. 이번 OOTY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우승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할 거라고.”

    “……예.”

    2월 말부터 시작되는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푸르트벵글러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B가 참가하기로 해 당분간 A팀의 부담이 커질 수밖 에 없을 텐데 자꾸만 고집을 부리니 짜증이 났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푸르트벵글러 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단원들이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걱정이지 않아?”

    “내 말이. 저러다 또 쓰러지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정말 과로일 뿐이라면 푹 쉬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나윤희 가 평소와 같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저……

    과거에도 몇 번 단원들이 생각지 못한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나윤희가 모처럼만에 손을 들어서 다 들 관심을 가졌다.

    그러자 나윤희가 더욱 소심해져 입을 떼지 못했다.

    “뭔데. 말해봐.”

    이승희가 물으니 힘을 내서 말했다.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응응.”

    이승희가 능숙한 솜씨로 나윤희를 달랬다. 나윤희가 자꾸만 망설여도 이승희가 힘을 불어넣자 눈을 꼭 감 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 그, 그러니까 결국엔 쉬시라는 말을 안 들으시는 게 문제잖아요.”

    “그렇지.”

    다들 동조했다.

    “그, 그.”

    “아! 쫌! 답답해 죽겠네. 뭔데 그래?”

    “넌 닥치고 있어, 한스!”

    이승희가 한스를 타박하자 마침내 마음을 다진 나윤희가 외쳤다.

    “투, 투, 투, 투표 때 안 뽑으면 쉬, 쉬실 수밖에 없어요!”

    그 말에 나는 정말 깜짝 놀랐고.

    단원들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 사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재임 기간 무려 약 30년.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실각 위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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