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07화 (20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07화

    46. 그 누구도 끄지 못하리라(1)

    [고뇌와 비상 그리고 불멸의 이야기]

    전략.

    미궁에 갇힌 이카로스는 아버지와 함께 떨어진 깃털을 밀랍으로 굳혀 날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침내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한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것에 심취했고 찬란한 태양에 매료되었다.

    높이 더 높이 태양에 가까워지고 싶었던 이카로스는 밀랍이 녹는 것도 망 각한 채 그저 날갯짓을 할 뿐이었다.

    작곡가 배도빈의 열세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 ‘찰스 브라움’은 철없는 산새가 태양을 사랑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상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산 새의 날갯짓은 힘차고 굳세나 결국 힘 이 다하고 만다.

    독주자이자 이 곡을 헌정 받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찰스 브라움은 파 이어버드의 음색을 발휘하여 산새의 천진난만함과 점차 태양을 알아가는 심적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그러나 작곡가 배도빈의 모든 곡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힘이 다해 떨어진 산새는 다시금 도 약했고 떨어지길 반복했다.

    마치 불새처럼.

    떨어져도, 떨어져도 굴하지 않고 부 활하여 태양을 향해 도전하는 3악장은 그 비장하고 웅장한 반주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산새를 그려냈다.

    그 누구도 작은 새를 어리석다 할 수 없었다. 처절하기까지 한 파이어버드의 음색이 폐부에 스며들 듯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바이올린 곡 중 가장 빠른 템포로 11분간의 처절한 연주를 마친 찰스 브라움은 땀에 적었다.

    하이라이트 아래에서 사력을 다한 찰스 브라움의 모습은 ‘찰스 브라움’이 왜 그에게 헌정되었고 그를 위한 곡인 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누구도 ‘찰스 브라움’을 연주하진 못할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여 끝끝내 태양에 닿 은 파이어버드에 경의를 표하며 작곡 가 배도빈의 새로운 시도와 성공적인

    확장에 다시 한번 압도되었다.

    -관중석 칼럼 기자 차채은

    배도빈의 신곡 ‘찰스 브라움’은 지 금까지 배도빈의 발표곡 중 가장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뉴튜브, 웹플릭스, 베를린 필 디지 털 콘서트홀 도합, 기존 2,100만 명 이었던 동시 접속 시청자가 2악장에 끝날 무렵에는 7,000만 명까지 상승.

    세계 각지에서 찬탄이 끊이질 않았다.

    이상을 향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3 악장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 사카모토 료이치, 칼 에케르트, 제르바 루빈스 타인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에게서 극찬을 받았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브루노 발터와 런던 필하모닉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마저 언론을 통해 배도빈과 찰스 브라움에 경의를 표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3악장, 11분간.

    혼신을 다해 연주한 찰스 브라움이 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 스트라고 인정받았고 함께한 베를린 필하모닉 B는 비로소 그 이름에 걸맞은 연주를 했다는 평을 받았다.

    실황 앨범 주문이 쏟아졌고 베를린 필하모닉 레코드가 행복한 비명을 질러댈 때.

    한 남자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파인 리파스토.

    인터플레이가 인수한 영국의 작은 클래식 음악 잡지사의 편집장이자 평론가인 그는 ‘찰스 브라움’을 ‘비 난’하라는 요구를 받고 며칠째 술을 들이켰다.

    ‘어쩌라는 거냐.’

    서서히 무너지는 사세.

    이름 있는 평론가였고 인망이 두터 운 파인 리파스토였으나 잡지 판매 량은 분기마다 바닥을 뚫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인터플레이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대표와 파인 리파스토는 그들의 잡 지를 인수하고 빚은 대환해 준다는 인터플레이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고 그것이 파인 리파스토를 또 다른 절망에 빠뜨렸다.

    인터플레이는 그들이 바라는 기사를 쓰길 바랐고 파인 리파스토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배도빈에 대한 비난성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럴듯하게 써낸 기 사로 인해 파인 리파스토의 명망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자네에게 크게 실망했네.’

    ‘어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자네 대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쯧. 차라리 솔직히 말하게. 인터플레이에게 돈을 받았다고. 어차피 다 들 뻔히 알고 있는데 입 다물고 있다고 해결되나?’

    그의 죄였기에 파인 리파스토는 변명하지 않았다.

    두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비록 사 실일지라도 자신의 죄를 자식들에게 까지 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찰스 브라움’을 공격하라는 요구 에 파인 리파스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그럴듯한 말을 지어냈으나 배도빈의 신곡 ‘찰스 브라움’의 초연은 그가 생각하기에 단 하나의 단점조차 없이 완벽했다.

    이미 버린 평론가로서의 자부심은 오물에 젖어 다시 빨아낼 수도 없이

    더러워졌으나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자꾸만 그를 괴롭혔다.

    키보드 앞에서 싸구려 진을 들이켜 며 방황한 지 나흘째.

    그의 큰아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요즘 많이 힘들죠?”

    파인 리파스토는 큰아들이 건네준 따뜻한 꿀물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이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다 컸네, 우리 아들. 아빠는 괜찮으니 걱정 마.”

    “저……

    아들이 우물쭈물하자 파인 리파스 토가 취중에도 그 눈치를 알아보았다. 평소 옷 한 벌 사달라는 말조차 어려워하는 아들이었기에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아빠한테는 다 말해도 돼. 무슨 일이니. 용돈이 필요해?”

    파인 리파스토가 웃으며 물었다.

    그의 아들이 고개를 젓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다음 주까지 찰스 브라움을 재연한대요. 혹시 아 빠랑 갈 수 있나 해서……

    파인 리파스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앤도 듣고 싶다고……

    어린 둘째도 듣고 싶다는 말에 명 예를 버린 평론가는 가슴이 짓이겨 지는 듯했다.

    “오빠, 뭐 해?”

    그때 그의 방으로 어린 앤이 들어 섰다. 문 옆에 조심스레 서 있는 앤 은 아빠와 오빠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파인 리파스토가 딸에게 물었다.

    “앤, 찰스 브라움 듣고 싶니?”

    앤은 아빠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딸의 그 모습에 파인 리파스토의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려운 형편에 너무 어려서부터 철 이 든 아이들은 는•치가 빨랐다.

    파인 리파스토가 얼마나 힘들어하 는지 알았고 또 ‘어렵게 말한 나들 이’를 아빠가 망설이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다시금 하고 싶은 일을 부 정하는 모습에 파인 리파스토는 비 로소 절감했다.

    자신이 정말 못된 아버지였음을.

    두 아이에게 그토록 훌륭한 음악조 차 들려주지 못한다면 이렇게 살아 야 할 이유는 없다고.

    파인 리파스토가 인터넷을 켜 구매 할 수 있는 티켓을 확인했고 그 즉 시 결제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자. 대신 일 요일에 돌아오니 숙제는 다 해놓고 출발해야 한다?”

    파인 리파스토의 말에 두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이토록 웃는 얼굴을 본 적이 대체 언제였을까.

    달려든 두 아이를 끌어안고 달랜 뒤 돌려보낸 파인 리파스토가 모니터를 바라보다 이내 키보드를 두드 리기 시작했다.

    【빛나는 인류애를 노래한 음악가에 대해]

    키보드를 누르는 그의 손에서 망설 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우철을 만난 카밀라 앤더슨은 다 소 흥분해 있었다.

    최근 너무도 많은 업무에 치였고 동시에 연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쓰러지면서 그녀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일을 문제없이 처 리하고 대인 관계를 무탈히 유지한 것은 그녀의 초인적인 이성 덕분이었는데.

    역사상 유례없이 성공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말 연주회에 대한 비난 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마 침내 그녀도 폭발한 것이었다.

    “당장 법적 조치를 취해야겠어요. 도와주세요.”

    그녀가 자신을 최대한 억누르며 정 중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는 행동은 평소 베를린 필하모닉 사무 국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최우철이 그녀에게 차를 권했다.

    “천천히 말씀 나누시죠. 앤더슨 국 장. 갑자기 이리 나오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더는 좌시할 수 없어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말 연주회는 최고였어요. 그렇게 명백한 일에 저치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언론을 흐리고 있어요.”

    최우철이 손가락 끝을 모은 채 물었다.

    “앤더슨 국장의 말대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현재 과거 그 어떤 때보다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단 순 매출로만 따져도 재작년에 비해 320% 상승했죠.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조급하게 하는 겁니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건강.

    자랑스러운 배도빈이 짊어질 부담.

    무지한 자들의 근거 없는 비난으로 고통받는 단원들.

    이유는 차고 넘쳤다.

    카밀라의 설명을 들은 최우철은 빙 그레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고소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언하건대 지금으로써는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인터플레이가 의도적으로 하는 짓 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아는데 무슨 근거로 못 막는다 하시죠?”

    “그게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미 다 알고 있죠. 그런데 왜 어려울 까요. 언론사를 이용해 관심사를 돌 리는 일은 많이 해봐서 압니다.”

    최우철이 카밀라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꼬리가 걸릴 일을 그 친구 들이 왜 하겠습니까? 들켰다가는 기 업 이미지는 걸레짝이 될 겁니다. 차라리 사명을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걸리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행하는 겁니다. 국 장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인정되는 것 은 다른 문제예요. 누가 모릅니까. 문제 덮으려는 의도로. 관심 돌리려는 의도로 다른 기사를 쓰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지만 여러 사례가 결과를 말해줍니다. 그래도 인터플 레이는 잘 돌아갈 겁니다.”

    “이슈가 될 수는 있겠죠. 동조도 많이 받을 겁니다. 어쩌면 유럽이니 인터플레이 불매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 터플레이가 돈을 쥐고 음악가들을 휘두르는 이상, 콘텐츠가 있는 이상 그들은 무너지지 않아요.”

    “그럼 대체 어떻게!”

    “음악가와 평론가가 스스로 떠나게 해야죠.”

    최우철의 자신 있는 모습에 카밀라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방법이 있군요.”

    “네. 보안을 위한 일이라 말씀드리진 않지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참,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도 한번 사용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음집을 비롯해 기존 녹음 기기의 성능을 1.8배까지 끌어올린 제품입니다.”

    해가 바뀌고 런던 증권가에 두 가 지 소문이 퍼졌다.

    인터플레이가 수익을 부풀리고 있다는 이야기와 총 대표인 제임스 버 만이 그룹 외 유통업체를 만들어 운

    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플레이의 자회사에서 만들어낸 제품이 그룹 밖, 제임스 버만의 사기 업을 통해 유통된다는 소문이었다.

    증권가의 이러한 찌라시는 언제나 상주해 있지만 그 정보처가 다른 어 디도 아닌 인터플레이에 인수된 한 기업이었기에 소문은 일파만파 번져 가기 시작했다.

    ‘재밌단 말이야.’

    남을 짓밟고 일구어낸 거대한 성.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은 언제 해도 최우철에게 큰 가학적 기쁨을 선사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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