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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94화 (19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94화

    44. 맑은 오보에와 불쌍한 팀파니⑴

    -내가 뭐…… 그니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참말로 고마워야.

    “별말씀을요. 준비는 도빈 재단에 서 해줄 거예요.”

    칠삼과 통화하는 와중에 도진이가 진달래를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냐. 지가 아니라 기.”

    “으으.”

    아마도 내년에는 베를린 대학에 입 학할 것 같은 도빈이와 함께 대학 진학 공부를 시작한 진달래는 외국 어라는 벽에 막혀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만 있을 게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게 하는 게 언어를 배우는 데 빠를 것 같다.

    -그랴. 조만간 함 갈게.

    “네. 다음에 봐요.”

    통화를 마치고 옷을 챙겨 입었다.

    10월이 되니 어느새 날이 쌀쌀해졌는데 야외에서 하는 투란도트 공연에 영향이 생길까 조금 걱정되기 도 한다.

    “어머니,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도진이와 진달래에게도 인사한 뒤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향 했다.

    그간 콘서트홀 증축 공사로 인해 모든 단원이 함께하는 일은 드물었는데(보통은 투란도트 팀과 실내악 팀으로 나누어 운용되었다) 모처럼 만에 함께할 수 있었다.

    “우와.”

    “근사한데?”

    “엄청 커졌잖아.”

    나도 단원들도 모두 새로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둘러보며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장 공사를 마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기존의 독특한 구조를 유지한 채 3,500석까지 증축되었다.

    규모가 커진 것뿐만이 아니라 음향 시설에도 크게 투자해 실황 녹음의 질도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제 얼마 뒤면 다시 정기 연주회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모르겠다.

    “으으. 빨리 돌아오고 싶다.”

    “저, 저도요.”

    다들 몸이 달아올랐는지 연습에 들어서자 의지를 불태웠다.

    푸르트벵글러도 마찬가지다 .

    “다들 그간 감이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 오늘은 복귀 첫 무대를 연습하는 자리니 긴장 바짝들 해.”

    “예!”

    먼저 완공된 연습실에서 복귀 무대를 준비했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세 달 전과 같이 여전했다.

    연습하는 도중에 푸르트벵글러가 지시한 것을 악보에 옮겨 적었고 단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카밀라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세프.”

    "음."

    “세프랑 악장단. 사무국으로 잠시 와주세요.”

    케르바 슈타인과 서로 마주 봤지만 그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눈치다.

    ‘레몽 도네크는 아직인가.’

    아들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아직 휴 가에서 돌아오지 않은 듯하니 병세 가 심각한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국 미팅실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레몽 도네크가 사직서를 냈어요.”

    항상 가족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버 릇처럼 보곤 했던 다정한 레몽 도네크.

    그가 아들 곁을 지키기 위해 사직 했다는 말에 악장단도 푸르트벵글러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는가.”

    카밀라 앤더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요즘에는 제 연락도 잘 안 받아서요. 정신이 없는 모양이에요. 찾아가 보려 해도 묘하게 거절 하는 느낌이라 무작정 가기도 껄끄 럽 고요.”

    “내가 연락해 보지.”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단원을 더 뽑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 아.”

    나와 케르바 슈타인 그리고 헨리 빈프스키가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냈다.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가지는 정기 연주회와 토요일 오전과 오 후에 각각 한 번씩 가지는 실내악 무대.

    거기에 비정기적인 스케줄(녹음이 라든가 출장이라든가)도 있으니 현 재 있는 단원만으로는 솔직히 버거운 업무량이다.

    예전에는 정기 연주회 이외의 일은 푸르트벵글러가 최대한 받지 않아서 버틸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여러 방면에서 일을 하게 된 만큼 단원 증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단원들도 악장단도 이런 의견을 꾸 준히 피력해 왔기에 너무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악장도 한 명 더 뽑아야겠군.”

    케르바 슈타인과 헨리 빈프스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이 있어요.”

    “음?”

    “찰스 브라움이요.”

    “아. 좋은 생각인데. 세프, 찰스 브라움이라면 레몽 도네크의 빈자리를 잘 채워줄 겁니다.”

    “흐음.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겠지.”

    푸르트벵글러도 찰스 브라움을 나쁘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나와 함께 악장 오디션을 치르기도 했고 그때 그의 실력을 확실히 확인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빨리 오디션 준비해요.”

    벌써 1년 가까이 된 일인데 다시금 멋진 예비 악장들을 볼 수 있다 고 생각하니 기쁘다.

    “네가 들어왔을 때랑은 좀 다를 거야. 공개 채용이긴 해도.”

    그때 카밀라가 아쉬운 말을 했다.

    “그때 그렇게 크게 할 수 있었던 건 네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세프가 네게 정통성을 주고 싶어 하기도 했고.”

    “크흠흠! 쓸데없는 말 말게.”

    아무튼 그렇게 단원 증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늦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별말씀을. 국장님이야말로 이제부 터잖아요. 감사합니다.”

    “제 일인걸요.”

    얼른 돌아가서 도진이와 놀아줄 생 각으로 일어났는데 푸르트벵글러가 나를 붙잡았다.

    “잠깐 앉거라.”

    “무슨 일이에요?”

    잠시 자기 사무실로 갔던 카밀라도 다시 와 앉기에 두 사람을 이상하게 봤는데.

    두 사람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씰룩거리는 입가를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모양이다.

    “ 뭔데요.”

    “에코 클래식을 수상할 것 같아. 그쪽에서 연락을 해왔어.”

    카밀라를 보고 있는데 아무 말이 없길래 계속 그러고 있을 뿐이었다.

    “베를린시에서 네게 공로상을 준다고 하더구나.”

    그러다 푸르트벵글러가 말을 꺼내 그에게 시선을 주었는데 또 별다른 말을 안 해서 계속 서로를 볼 뿐이었다.

    그러다 카밀라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투란도트 블루레이 구매한 사람들의 댓글이야.”

    “오. 고마워요, 카밀라.”

    그녀가 두툼한 종이 뭉치를 넘겨주었고 그것을 반갑게 받아드니 카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에코 클래식은 정말 멋진 상이라고. 베를린 시장과 시의회에서 널 기린다고 하는데 그런 건 기쁘지 않나 보네.”

    “음악가한테 음악 잘 들었다는 이 야기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내가 말했잖나. 이럴 거 같다고.”

    “아무튼 베를린 환상곡이랑 투란도 트 때문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어. 일정은 최대한 심플하게 가져가겠지만 넘겨주는 일은 되도록 참가해 줬으면 해. 네게도 베를린 필에도 중요한 일이니까.”

    “일이면 해야죠.”

    귀찮지만 상을 받으러 가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카밀라는 여전히 내가 꽉 막혔다고 하지만 ‘일이니까 받는다’ 정도로 바뀌었으니 분명 내겐 크나큰 변화다.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찰스 브라움 에게 쳐들어갔다.

    “베를린 필로 오게.”

    “베를린 필로 와요.”

    당황한 찰스 브라움이 설명을 요구 했고 푸르트벵글러는 으르렁거렸다.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아니 그러니까.”

    “기쁘죠?”

    “기쁘고 자시고.”

    “자시고?”

    옆에서 보다 못한 카밀라가 그에게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고 찰스 브라움은 잠시 고민하더니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러니까 실은 베를린 필에 들어 오고 싶어서 오디션을 본 게 아니라 저랑 대결하고 싶었던 거라고요?”

    “그래.”

    생각보다 더 찌질하고 황당한 사고 방식이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있는 대로 화가 나 서 찰스 브라움에게 호통을 쳤다.

    “감히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오 디션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참가했다 고!”

    까마득한 대선배.

    굳이 선배가 아니더라도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의 노호성에 찰스 브라움이 쭈 글쭈글해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내 화가 풀릴 거라 생각했나! 내 자네를 높이 산 걸 이토록 후회할 줄은 몰랐어!”

    고개를 숙인 찰스 브라움.

    사실 악장 오디션을 본 뒤로 그가 많이 변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과거의 그’가 얼마나 찌질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

    “찰스의 도움이 필요해요.”

    “••••••나는.”

    “저랑 같이 음악 해요. 여기 세프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과 함께요. 분명 즐거울 거예요.”

    “영광으로 알아야지!”

    “가만히 좀 있어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카밀라가 분개한 푸르트벵글러를 열심히 막아섰고 고민하는 듯한 찰스 브라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인터플레이의 제안과 영국 내에서 의 그의 입지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는 큰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카밀라와 미리 말을 맞췄던 이야기를 꺼냈다.

    “베를린 대학 음대에 지원을 해줄 게요. 거기 졸업생은 베를린 필 입 단심사를 우선적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해줄 거고요.”

    그 말에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몇몇 뜻있는 음악인이 만든 음대였기에 찰스 브라움은 어떻게든 그것을 지키고 살리고 싶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애착 또한 깊으니 받아 들일 거라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곡, 저작권 걱정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곳은 베를린 필뿐이에요.”

    악보 하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배도빈 바이올린 협주곡 13번, 찰스 브라움이란 제목을 보고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당장 사인하지 못해!”

    푸르트벵글러의 호통과 함께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못 당하겠군.”

    개체명 찰스 브라움.

    성격 찌질함.

    훌륭한 몬스터를 잡았다.

    찰스 브라움의 베를린 필하모닉 입 단 소식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몇 달간 런던과 베를린 사이 에 마찰이 있었음은 알게 모르게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퍼졌고.

    런던 필하모닉 악장 출신의 왕자 찰스 브라움이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영국 클래식 팬들 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인 터플레이와 연계하고 있던 그래모폰은 다음 날 즉시 하나의 기사를 발 표했는데.

    영국이 받은 충격만큼이나 베를린 역시 놀라고 말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출신의 레 몽 도네크, 런던 필하모닉 전격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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