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93화
43. 도전(7)
병원을 찾았다.
과로로 쓰러진 적이 몇 번 있다 보니 할아버지께서 굳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게 하셨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도 하고 나 도 멀쩡한 몸이 망가지는 것은 경계 하고 있어 귀찮더라도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음. 문제없어. 그래도 조금 피곤해 보이니 당분간은 푹 쉬고.”
“네, 고마워요.”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던 찰나 문득 마음에 걸리던 것이 떠올라 다시 자 리에 앉았다.
의사가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응. 왜.”
“……지인 중에 손을 잃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없나요.”
사람이 달에도 다녀왔던 세상이니까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저런. 어떻게?”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갔대요.”
여러모로 도움을 준 칠삼의 조카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도울 방법이 있길 바라며 그에게 들 은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의사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오래된 일이고 또 떨어져 나간 부위도 오래됐을 테니 어려울 거 야. 사고 당시라고 해도 어찌 될지 모를 일이고.”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보통 그런 경우면 의수를 달지. 자기 손만큼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있는 편이 좋으니까.”
손목에 나무를 댄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외관이라도 갖추는 것이 좋은지 나로서는 진달래의 마 음을 함부로 넘겨짚을 수 없었다.
“한번 볼래?”
의사가 태블릿 PC를 만지고 내 앞에 두었다.
놀랍게도 마치 의수를 단 사람의 의지대로 기계가 움직이는 듯했다.
“상용화가 되려면 아직 몇 년 더 걸리겠지만 실제로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
“이런 것도 가능해요?”
“처음에는 전쟁 부상자들 위해 개 발되었지. 15년에 오스트리아 빈 의 과대학에서 성공했는데 꽤 개발된 상태야.”
“연주도 가능할까요?”
“연주? 글쎄. 피아노 같은 건 무리 일 텐데.”
“베이스에요.”
“기타 같은 거지? 난 악기를 모르 니까 어떤 부위가 필요한지도 모르 지. 단순히 피크? 같은 걸 쥘 수 있는 거라면 가능할 거야.”
손목 스냅을 사용하는 건 어려우려나.
의사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온 집사의 차에 탔다.
‘칠삼에게 물어봐야겠지.’
담당의가 말하기로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 원한다면 전문의를 소 개해 준다고 했다.
예상 비용은 최신 기술을 도입한 의수로 약 3억 원.
내게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적지도 않았고 칠삼과 특히 진달래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안 받으려 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와 도진이가 안 보여 집사에 게 물었더니 어머니는 박선영과 함께 이승희를 만나러 외출하셨다고 한다.
도진이는 1층 놀이방에 있다고 해 서 갔더니 얼후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솜씨를 보니 분명 소소다.
기대 이상으로 성공한 투란도트 덕 분에 당분간 독일에 머물게 되었으니 그녀의 얼후를 들을 수 있는 것 은 복이고.
그녀가 두려워 가우왕이 우리 집에 오지 않는 것은 조금 재밌는 일이다.
문을 열자 소소의 얼후가 보다 선 명히 들렸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주잉님 드러주세요. 아아. 주잉님. 드러주세요. 조는 더 이상 차믈 수업어요.”
‘뭐야 이 엉망인 발음은.’
아마 투란도트의 1막 칼라프가 류 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류의 노래 가사 같다.
어눌한 발음을 들으며 발을 옮기려 할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 에 없었다.
진달래가 소소 곁에서 쪽지를 보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C6 음의 위치에 서 감미롭게 울렸다.
앳된 그 노래는.
‘ 엉망이잖아.’
록을 했던 탓인지 노래하는 방법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빠져들었고 이내 진달래가 노래를 마치자 도진이가 손뼉을 쳤다.
진달래가 허리를 숙이며 손을 앞으로 거두어 제법 예를 표했고 소소가 웃었다.
“헉. 언제 왔어.”
“형아다.”
달려드는 도진이의 머리를 쓰다듬 고는 진달래에게 말했다.
“ 엉망이잖아.”
“나, 남이사! 웃겨, 진짜.”
“목소리는 좋던데.”
“달래 누나 노래 좋아.”
도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솔직한 도진이다운 평이다.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면 저 목소리를 훨씬 더 아름답게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누나 멍청해. 형보다.”
“하하.”
아무리 즐거워도 크게 웃는 법이 없던 소소가 드물게 소리 내서 웃었다.
* * *
저녁을 먹고 옥상 정원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찌고이네르바이젠(집시의 아리아).
바이올린 곡은 모차르트와 더불어 이 스페인의 천재 파블로 데 사라사 테를 좋아한다.
애수 어린 음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생각은 조금도 안 나고 음악에만 빠져들 수 있다.
오랜만에 반쯤 누워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왔다.
소소다.
“잠깐 괜찮아?”
“그럼요.”
“부탁이 있어.”
“뭐든 말해봐요.”
얼후 선생이자 이번 투란도트에서 큰 역할을 맡아준 소소의 부탁이라 면 뭐든 들어주고 싶다.
“나 여기서 음악하는 거 재밌어. 여기 있을래.”
“어…… 그건 히무라에게 말해야 해요.”
소소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허락의 문제야. 난 도빈이하 고 같이 음악하고 싶어. 도빈이가 안 해주면 안 돼.”
얼후를 넣은 오케스트라라.
사실 얼후를 활용해 곡을 지은 것 도 이번 투란도트가 처음이었기에 고생깨나 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녀만을 위해 매번 얼후를 활용할 수도 없다.
당분간은 투란도트 공연을 몇 번 더 가질 계획이기에 괜찮겠지만 그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소소와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솔직히 말하자 소소가 문제없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담담하게.
“괜찮아. 나 베이스 잘해.”
“콘트라베이스도 할 줄 알아요?”
“현악기는 대부분.”
그럼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소소 스스로 자신을 보이는 걸 보면 얼후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수준급일 것이다.
이상한 말은 하지만 헛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알겠어요. 베를린 필에 이야기해 둘게요. 시간은 언제가 좋아요?”
“언제든지 괜찮아.”
그렇게 약속을 하고 다시 누우려 하는데 소소가 무슨 말을 하려다 삼 켰다.
“무슨 일 있어요?”
“••••••달래.”
소소가 최근 한두 달간 친하게 지낸 달래에 대해 언급했다.
“바보지만 순수해. 음악 무척 좋아 하고.”
“그렇죠.”
“그리고 목소리 예뻐. 그런데 거지야.”
내가 어렸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한국어 어휘가 부족하기에 그런 거 라 생각했다.
소소가 솔직해도 가우왕 이외의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못 봤으니까.
“내가 갚을 테니까 달래 도와주면 안 돼? 꼭 빨리 갚을게.”
“소소는 달래에게 뭐 해주고 싶은 데요?”
“학교 보내주고 싶어. 노래 제대로 배우면 분명 잘할 거야. ……음악 못 배워서 쓸쓸한가 봐. 다 혼자 익 혔대.”
어떠한 천재라도 스승이 없으면 발 전이 더딘 법.
베이스라면 칠삼에게 배웠겠지만 노래는 아닐 거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달래의 베이 스는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음색과 목청은 탁월해 보였다.
“거지라서 공부 못 해. 달래 불쌍해.”
“그 말 달래 앞에서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응."
소소에게 주의를 주고는 잠자코 생각 해 봤다.
나 역시 어렸을 적 가난한 집안 상황 때문에 하마터면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기 전까지는 음악을 못 할 뻔했던 기억이 났다.
배영빈이 요상한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히무라와 나 카무라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답 답해서 화병이 났을 것이다.
‘칠삼에게는 빚도 있고.’
또 재능이 있는 음악가에게 투자해 나중에 루트비히 오케스트라의 충실 한 종, 아니, 가수로 데려올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의수는 본래 해줄 생각이었고 후원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달래가 좋은 친구를 사귀었네요.”
“친구 아니야. 언니.”
나이 차이가 7살 정도 나니 중국이 나 한국처럼 나이를 따진다면 확실히 그렇다.
진달래와 박선영을 불렀다.
어제 소소와 나눈 이야기를 풀어내니 박선영은 ‘포켓몬 마스터도 아니 고’라고 궁시렁댔고 진달래는 조금 당황한 눈치다.
다짜고짜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어색하게 쭈뼛대더니 막상 부르기 시 작하니 어제처럼 멋진 목소리를 들 려주었다.
박선영의 표정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시 자리를 잡고 본론을 꺼냈다.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의수와 학비와 생활금을 지원하는 대신 샛 별 엔터테인먼트와 도빈 재단에 소 속되는 이야기다.
“다시 칠 수 있을 거야. 베이스.”
갈등하고 있는 거다.
자존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역시 아직 어리다.
“역시 그래도……
답지 않게 거절하려 하기에 말을 가로챘다.
“그거밖에 안 돼?”
“어?”
“그거밖에 안 되냐고. 베이스 다시 치고 싶은 마음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 하다가 잠시 후 진달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가 뭘 알아!”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떤다.
“네가, 네가 내 마음을 알아?”
“몰라.”
“네가 알긴 뭘 알아! ……모른다고?”
진달래와 눈을 마주하며 차분히 말 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피아노를 못 치 게 되었을 때 누가 내게 손을 뻗는 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잡을 거야. 피아노를 못 치면, 음악을 못 하면 내가 아니니까.”
박선영이 진달래를 달래며 앉혔다.
“네가 미안해서, 혹은 자존심 때문 에 거절한다면 단단히 착각하는 거 야. 그건 자존심이 아니야. 미안한 것도 아니야. 나는 이런 말 꺼내기 전에 생각 안 했을 것 같아? 네 자 존심이 상할 거라고 걱정 안 했을 것 같냐고.”
진달래는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그래도 말한 건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서야. 그게 뭔지는 너도 잘 알 거야.”
진달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 했다.
하던 말을 계속했다.
“도빈 재단과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서 널 관리할 거야. 노래를 하고 싶으면 하고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으면 해. 다만 확실히 해야겠지.”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진달래의 얼굴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어쩔 거야?”
“ 끄으으윽.”
“ 대답해.”
“끄으흐억. 윽. 응.”
“똑바로.”
진달래가 소소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푼 뒤 말했다.
“노래하고 싶어. 베이스 치고 싶어. 나도 투란도트 부르고 싶어.”
“그래.”
진달래가 날 꽉 끌어안았다.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