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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90화 (19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90화

    43. 도전(4)

    “아, 완전 대박이었어. 봐봐!”

    “그러게.”

    “그치!”

    칠삼과 함께 베를린을 구경한 진달 래가 사진을 보여줬다. 저녁 식사 자리가 무척 떠들썩해졌다.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소소를 억지로 끌고 구경할 게 많은 베를린 시내를 다니는 게 즐거운 듯했다.

    덩달아 어머니도 도진이와 함께 재 밌게 지내시는 것 같다.

    “매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달래가 와서 사람 사는 것 같은데요.”

    “철없는 녀석이라 폐는 아닌지 모 르겠습니다.”

    달래가 어색한 억양의 표준어로 인 사하는 칠삼의 등을 퍽퍽 때렸다.

    “아니에요. 정말 즐거워요. 그치?”

    “네! 저도 엄청 재밌었어요.”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모레는 돌 아가려 하는데 그간 감사해서 이거 라도 받아주세요.”

    칠삼이 아버지께 꽤 좋아 보이는 코냑을, 어머니께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성의라고 생각해 주세요.”

    부모님도 한 번 거절하시다가 마냥 거절하는 것도 칠삼의 성의를 무시 하는 일이라 기쁘게 받아들이셨다.

    “형아, 누나 이제 가?”

    도진이가 물었다.

    “그런가 봐.”

    “누나, 가지 마. 더 놀자.”

    박선영, 소소도 도진이 뒤에 진달 래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좀 더 놀다 가.”

    “너 웃겨. 더 놀자.”

    “하하하핫! 웃기대. 맞아, 내가 재 밌긴 하지.”

    “달래야, 그러지 말고 좀 더 놀다 가. 칠삼 씨도 괜찮으시면 함께요.”

    어머니께서도 권유했지만 칠삼이 고개를 저었다.

    “가게를 오래 비워서 돌아가야 합니다.”

    페인 킬러에서 구하지 못하는 밴드 음악 악기는 우리나라에서 못 구할 정도니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이 2주가 무척 답답했을 거다.

    슬쩍 고개를 돌려 진달래를 보니 녀석도 많이 아쉬운지 표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렇게 즐거워했으니 좀 더 있고 싶겠지만 아마 성격상, 입장 상 고 집을 부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돈 걱정하는 거겠지.’

    솔직한 녀석 같으면서도 그런 부분 에 있어서는 답답한 녀석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

    도진이에게 미트볼을 먹여주며 입을 열었다.

    “도진이도 아쉬워하는 것 같고. 아 직 구경 못 한 것도 많잖아. 돌아가 서 할 일 없으면 좀 더 있어. 여기 서 지내면 칠삼 아저씨도 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그렇죠?”

    “흐음.”

    “그래요. 달래 걱정은 마시고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자 칠삼이 진 달래에게 물었다.

    “어쩔래?”

    “……그래도 돼요?”

    진달래가 조심스레 물었고 어머니는 대답 대신 웃어주셨다.

    “감사합니다!”

    몇 차례의 미팅을 나누고 오늘부터 투란토드를 연습하기 위해 단원들이 모였다.

    도이체 오퍼와 함께하기에 그들의 연습실에 모였는데 물론 소소와 그 녀의 매니저 박선영도 함께했다.

    단원들에게 소소를 소개했다.

    “중국의 얼후 연주자 소소예요. 5주 뒤 우리와 함께 투란도트를 연주할 사람이에요.”

    예상대로 다들 생소한 눈빛으로 그녀를 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악장 케르바 슈타인이 나서서 악수

    를 청했다.

    본래는 레몽 도네크가 투란도트 때 악장으로 나설 예정이었는데 그가 일 신상의 문제로 휴가를 내 이번에도 케르바 슈타인과 함께하게 되었다.

    “반가워요, 소소. 19년 연초 베이 징 연주회 잘 들었어요. 악장 케르 바 슈타인이라고 합니다.”

    박선영이 케르바 슈타인의 말을 전 달해 주었고 소소가 고개를 숙여 인 사했다.

    평소대로 무표정했고 케르바 슈타 인의 손이 무안해지자 박선영이 소 소의 허리를 쿡 찔렀다.

    “ 아.”

    그제야 케르바 슈타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는데 정말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다.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이 내가 최 고라 인정한다.

    ♪♫♬♪♫♬

    소소가 짧게 얼후를 연주했고.

    그녀를 보는 베를린 필과 도이체 오퍼 오케스트라의 눈이 달라졌다.

    그 뒤에는 차례로 베를린 필과 도이체 오퍼 사람들에게 서로를 소개 했다.

    사실 어지간하면 다들 얼굴과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이 번거롭고 작은 과정이 하나의 연주를 위한 시작으로서 중요함은 다들 인지하고 있다.

    “시작하겠습니다.”

    케르바 슈타인에게 시선을 주자 그가 단원들에게 연습 준비를 시켰다.

    악기 편성은 실외의 대무대를 고려하여 확대 편성하였는데.

    이만한 규모를 지휘하는 것은 처음이라 솔직히 무척 긴장되었다.

    현악부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등 현악5부의 수가 기존 베를린 필의 1.5배에 달했으며.

    하프는 다섯 대나 동원했다.

    거기에 1막과 3막에 등장하는 소 소의 얼후까지 하니 그것만으로도 벌써 인원으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오케스트라급 규모가 되었다.

    관악기의 경우도 현악기와 마찬가 지로 수량도 종류도 많았다.

    특히나 내가 다루지 않았던 악기도 많아 악보를 만들고 고치는 데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플루트가 여섯, 오보에 넷.

    코랑글레(잉글리시 호른) 둘, 클라리넷 다섯, 베이스 클라리넷 하나.

    바순 넷, 콘트라바순 하나, 호른 열, 트럼펫 여섯, 트럼본 다섯, 튜바 와 팀파니가 각각 한 대.

    타악기는 큰북이 셋 작은 북이 아 홉 대로 그 외 심벌즈(1), 공(1), 종 (3), 첼레스타(1), 글로켄슈필(1) 등 이 자리했다.

    야외라 오르간을 어찌 대체해야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과감히 배제.

    악기별로 악보를 따로 만드는 데에 만 꼬박 2주가 걸렸으니 과연 예전 과 지금을 통틀어 내 일생 최대 규 모라 할 수 있었다.

    도이체 오퍼에서 준비한 연습실이 충분히 넓지 않았다면 연습마저 인 원을 나누어 했을 판이다.

    ‘거기다 가수들까지 있으니까.’

    지휘봉을 들어 올린 후.

    힘주어 내뻗자 연합 오케스트라가 C단조의 서곡을 비장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첫날 연습을 마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같은 대학 출신인 베를린 필의 케 르바 슈타인과 도이체 오퍼의 바이올리니스트 노마 앨런이 중심이 되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오전, 오후에 걸 쳤던 연습에 관한 이야기로 굳어졌다.

    노마 앨런이 맥주를 들이켠 뒤 말 했다.

    “베를린 필의 연습이 빡빡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마왕이 괜히 마왕으로 불리는 게 아 니더만?”

    “하하하! 배도빈 악장이 깐깐하게 보는 편이지.”

    케르바 슈타인의 말에 일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인류의 보물 취급을 받는 배도빈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이번 공 연은 그 난이도가 전혀 달랐다.

    여태껏 없었던 규모의 투란도트를 기획했기에 도이체 오퍼는 극장의 사활을 걸고 전력을 다했고 배도빈 은 그에 호응해 주었다.

    앞선 몇 차례의 미팅에서 받은 새 로운 투란도트의 악보는 거의 모든 부분에 주석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는 추가된 부분과 수정된 부분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얼후처럼 새롭게 추가 된 악기도 있었고 오르간처럼 배제 된 것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악보 처음 봤을 때는 당황했죠. 이게 푸치니의 투란도트 인지 아니면 배도빈의 신곡인지 말 이에요.”

    누군가의 말에 다들 웃었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막상 연습을 통해 한 번 맞춰보니 그런 생각은 조금도 들 지 않았다.

    푸치니가 만약 살아 돌아와 이와 같은 대규모 무대를 준비한다면 현 대 음악 팬들의 취향과 다양하게 발 전된 악기를 이처럼 적극적으로 쓰 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투란도트의 서사를 완벽하게 아우 르고 있었다.

    “악기별 악보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케르바 슈타인이 말했다.

    노마 앨런이 그 말을 받았다.

    “단편만 놓고 보니 수정된 부분이 많아 원곡과 너무 달라지진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하지만 막상 연주를 해보니까 알겠더라. 왜 그렇게 수정 했는지.”

    단 하루뿐이었지만 도이체 오퍼 오케스트라는 배도빈이 편곡한 투란도 트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오페라 음악을 평생 해 왔던 이들로서 프로 중의 프로였기 때문이었다.

    “전 너무 신기했어요. 될까? 싶은 게 막상 연주를 해보니 맞물리는 느낌이 더라고요.”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도 느꼈어. 연주하는데 불안한 게 없더라고. 뒤에 어떤 음이 들릴지 너무 기대되는데 정말 딱 바라는 소 리가 들리더라.”

    “맞아. 유기적이라고 해야겠지. 그 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어.”

    대화를 나눌수록 그들은 배도빈의 천재성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간 피부로만 느꼈던 것이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보다 명확해진 덕 분이었다.

    케르바 슈타인은 열띤 토론을 시작 한 지인들을 둘러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대단하긴 하지.’

    각기 자기 파트의 악보를 먼저 확 인하기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전 체 곡이 어떠한지에 대해 파악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적인 요소를 배제하더라 도 오케스트라 곡을 악보만으로 완 벽히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은 음악가 들 사이에서도 드문 재능이었다.

    왜 위대한 지휘자가 존재하는가.

    일부 팬 중에서는 연주는 결국 연주자들이 하는데 지휘자가 왜 중요 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연습을 하면 지휘자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거 아니에요?’

    ‘빈 필하모닉 같은 곳에 무능한 지 휘자가 있다 해도 빈 필의 연주가 나쁠까요?’

    그러나 그 말들은 지휘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정확히 모르 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조각나 있는 수많은 악보와 그것을 연주하는 악기를 아울러 ‘음악’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지휘자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독주가 아니기에.

    수십 대의 악기가 하나처럼 노래하기 위해서는 지휘자의 조율이 필요했고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이해하 고 있어야만 그것을 악보에, 지휘봉 에 담을 수 있었다.

    배도빈이 투란도트의 악보를 단 3 주 만에 세밀한 주석을 포함한 편곡으로 악기별 악보를 작성한 것은 불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배도빈을 제외하고 케르바슈타인이 알고 있는 음악가 중에서는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레몽 도네크 악장은 괜찮은 거예요?”

    케르바 슈타인이 잠시 사색에 잠겨 있을 때 단원 중 한 명이 또 다른 악장의 안부를 물었다.

    본래 투란도트 때 악장 역할을 하 기로 내정되었는데 그것을 케르바 슈타인에게 넘기면서까지 휴가를 내 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글쎄. 개인적인 일이라 굳이 물어 보지 않았어. 큰일이 아니길 바라지 만 급한 일이 생겼겠지.”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대 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도네크 악장의 아들 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아.”

    그 말에 다들 탄식했다.

    평소에도 단원들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미소 짓는 레몽 도네크였기에 그가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잠시 우울해진 분위기를 뒤로하는 데 도이체 오퍼의 노마 앨런이 그의 친구에게 물었다.

    “케르바, 그나저나 우리가 이렇게 찬양하고 있는데 배도빈 악장은 어 디에 간 거야?”

    “하핫. 알아볼 게 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배도빈 악장은 아직 미성년자라고. 맥주를 마시기엔 이르지.”

    “뭐? 이런. 한잔하려면 아직 멀었구만.”

    노마 앨런이 아쉬운 듯 맥주를 들 이켜 잔을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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