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89화 (18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89화

43. 도전(3)

‘클래식도 괜찮잖아?’

배도빈이 독일로 떠나고 어느새 나는 녀석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그렇게 확고한 눈으로 미래를 바라 보는 녀석은 대체 어떤 음악을 하는 지 궁금했다.

음악가 배도빈은.

딥 퍼플만큼이나 박력 있었고.

섹스 피스톨즈만큼이나 펑키했고.

미스터 빅만큼이나 세련되었다.

지루한 음악이라던 클래식에 대한 생각은 배도빈의 음악을 듣는 순간 잊히고 말았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달래야, 정말 다시 생각할 수 없겠니. 네가 하고 싶은 음악 나중에 하면 돼.”

“미안해, 아저씨. 아이돌이 이상하 거나 저급해서 싫은 게 아니야. 난 음악 할 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그뿐이야.”

“고마웠어. 미안.”

걸그룹 데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었지만 역시나 무리.

그래도 나를 생각해 주는 김승태 아저씨한테는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음반을 내려면 뭐가 필요 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내 곡을 써줄 곳을 찾아보 긴 했지만 그럴 리가.

‘없으면 내가 만들지 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내 음악을 듣고 기뻐해 줄 거라 생각했다.

‘히익.’

CD 앨범을 만드는 데 이것저것 알아보니 최소 500만 원. 녹음을 하는 데에 대부분 다 들었다.

나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돈이라 서 깜짝 놀랐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진열하려면 발품을 엄청 팔아야 했고 오프라인 매장은 턱없이 적었다.

이런 식으로 앨범을 내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자기만족일 뿐, 수입은 거의 없다고 했다.

현실이었다.

하지만 꿈은 다르니까.

노래하고 싶으니까 현실 따위 중요 하지 않았다. 비틀즈도 처음에는 퇴 짜를 맞았다.

“아저씨! 제발! 제발 한 번만 하게 해줘요.”

“미성년자가 어딜 자꾸 기어들어 와? 너 이러는 거 부모님이 알아?”

처음에는 무작정 카페를 돌았다.

사장 아저씨들에게 사정하고 베이 스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를 한 달 내내 하니까 마음씨 좋은 지터의 사장 아저씨가 매주 수요일에 두 곡씩 부르게 해주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 르면 3만 원을 택시비 하라고 쥐여 줬다.

너무 기뻤지만 앨범을 내기에는 무리였다.

“나 학교 그만둘래.”

“헛소리하지 말고 자라.”

“헛소리 아니야. 많이 생각했어. 들 어줘, 삼촌.”

끈질기게 삼촌을 설득해 고등학교는 결국 그만두었다.

삼촌은 끝끝내 졸업은 하라고 말렸지만 언제까지나 신세를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혀!”

“응!”

그리고 일을 시작했다.

“힘들 거야. 힘들면 아저씨들한테 꼭 말하고. 한눈팔면 안 되고. 알았지?”

“ 옙!”

“이 아저씨가 잘 가르쳐 줄 거야. 시키는 것만 하면 돼. 잘하려고 안 해도 되고.”

“걱정 마세요!”

어렵게 얻은 공장 일은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사장 아저씨도 반장 아저씨도 어린 게 기특하다며 시급 이외에 만 원씩 더 얹어 주었다.

밥도 조금 짜긴 하지만 맛있었다.

학교를 그만두면 베이스를 연습하는 시간이라든지 작곡이라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퇴근하고 삼촌 집에 오면 7시쯤 되었는데 그때부터 시작하면 6〜7시 간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6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그래도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답 답함은 조금도 없었다.

조금씩 느는 연주 실력을 자각하면 서, 매달 삼촌에게 30만 원이라도 주면서 통장에 조금씩이지만 쌓이는 돈을 보면 영혼이 충족되는 것만 같았다.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몸이 지쳐서 아빠가 생각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퇴근길에 떡볶이랑 순대를 사서 삼촌이랑 먹었다.

“맛있다. 그치?”

“네 아빠 닮아 떡볶이는 드럽게 좋아혀. 이?”

“이히히 힛

튀김도 시' 올걸.

“있잖아, 삼촌.”

“이.”

“어렸을 때 이렇게 아빠가 떡볶이 사 오면 엄청 좋았거든.”

“좋았겠지. 지금도 그리 꾸역꾸역 먹는디.”

“아, 쫌!”

“크헤헤헷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떡볶이 사‘ 오는 날이 아빠가 힘들었던 날인 거 같아.”

삼촌은 잠깐 간격을 두고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한댜?”

“그냥. 힘드니까 삼촌이랑 웃으면 서 맛있는 거 먹고 싶었거든. 아빠 도 그렇지 않았을까?”

“……별생각을 다 허네. 먹었으면 어여 자.”

“응. 먼저 자.”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일도 익숙해지고 곡도 두 개나 만 들어서 올해가 지날 즈음이면 내 손으로 만든 앨범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떠 있을 때.

멍청한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

왜 전날 밤에 무리해서 베이스를 쳤을까.

왜 하필 그날 베이스를 더 치고 싶었을까.

어쩌자고 졸았던 걸까.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잠깐 조는 사이에 장갑이 기계에 얽혀 들어갔다. 손을 빼낼 틈도 없었다.

“아아아악!”

“다, 달래야! 꺼! 기계 멈춰! 멈추 라고! 달래야!”

놀란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차츰 멀 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오른 손을 잃었다.

손상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 말을 의사한테 들은 것 같다.

아빠가 죽은 날에도 울지 않고 날 감싸줬던 삼촌이 그렇게 우는 건 처 음이었다.

“에이. 울지 마, 삼촌.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다.”

“끄으으으으윽”

“나 괜찮아! 숟가락으로 밥 먹으니 까 엄청 편하던데 뭐!”

친구들이 다녀갔고 김승태 아저씨를 포함해 옛 소속사에서 몇 명이 들렸다.

공장 아저씨들이 먹지도 못할 만큼 떡볶이랑 순대랑 튀김을 사와서 간 호사 몰래 조금 먹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가끔씩 들렸고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배를 깎아 주었다.

그리고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이제야 베이스를 만질 수 있었고 피크를 쥘 수 없었을 때.

그때야 참을 수 없었다.

“허끄윽.”

절단면으로 줄을 튕기자 너무나 쓰라렸다.

“끄이익. 까윽.”

소리도 뭉툭했다.

“허어억끅헉허어어엉.”

붕대에 붉게 젖기 시작했다.

“달래야, 너 지금……

눈앞이 울렁거려서 문을 열고 들어 온 삼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사암촌……

아파서.

너무 아파서 눈물 너머 삼촌의 얼 굴을 보자 참을 수 없었다.

“끄허어어엉나헉끅. 나끄윽. 나 어떡흑. 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심코 찾아오는 환각통과 갑자기 멈춰버린 일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배운 적도 없는데 그것을 버텨야 하는 일은 너 무도 어려웠다.

일은 못 하니까 방에 혼자 있으면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짓이냐?”

“보고만 있지 말구. 이거 테이프로 여기 좀 감아봐.”

“이게 이런다고 되나?”

“ 모르잖아.”

손목에 어떻게든 피크만 고정시킨 다면 손가락이 없어도(연주법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떻게든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을 제대로 튕기지 못했다.

몇 번을 반복했지만, 손을 대신할 순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이제 된 거야.’

받아들일 수 없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무대를 내주었던 지터의 사 장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날 보는 것 같아 나가기 싫었는데, 아저 씨는 막무가내로 나오라고 했다.

“죄송해요. 저 이제 노래 못 할 것 같아요.”

“왜?”

“처음 여기 왔을 때 그렇게 사정하 더니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저씨가 뭘 알아! 무대에 서면. 무대에 서면 다 날 볼 거 아니야! 누가 손도 없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거야! 수군대고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 아저씨가 알아? 아냐고!”

손을 잃은 뒤 누군가에게 그렇게 소리친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터진 감정들이 마구잡 이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 말을 모두 들은 지터 사장 아 저씨는 사과하지 않았다. 변명도 하 지 않고 다시 한번 내 등을 떠밀었다.

“다들 네 노래를 기다리고 있잖아.”

그 말이 나를 다시 무대에 오르게 했다.

칠삼이 토해내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지 금의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기에 그저 함께 있어 줄 뿐이었다.

아래에서 여전히, 아니, 전보다 훨 씬 밝게 웃고 떠드는 진달래는 아마 아직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 했을 것이다.

갈망이 클수록.

그것이 막혔을 때 인간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어린 마음속에 웃는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분노를 감추고 있을지.

그것을 아는 이상 극복할 수 있다는 말 따위 할 수 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똑같이 대해주는 것 이 최선의 길이라고.

그러고 만약 그녀가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한다면 그때 등을 떠밀어 주는 게 진달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가자 도진이 가 진달래 앞에 책을 펼쳐 놓고 있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표정은 너무 나 대조적이었다.

“너무 어려운데?”

“아냐. 하나도 안 어려워.”

도진이가 책 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무척 불만이라는 듯 토라졌다가 나를 발견하곤 뛰어왔다. 어 제보다 더 무거워진 것 같아 쑥쑥 크고 있구나 싶다.

“좋은 아침!”

“그래.”

“아침부터 우중충하네?”

“수면 부족.”

“잠은 많이 자야지! 어?!”

진달래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그래야 하는데 공연 준비가 다가 와서.”

“공연? 무슨 공연?”

“투란도트.”

푸르트벵글러가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진달래가 얼굴 가득 물음표를 채운 채 물었다.

“그게 뭔데?”

“오페라. 푸치니의 유작이야. 이것 저것 다른 시도를 구상 중이라 생각 할 게 많아.”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구경해도 돼?”

..알아보겠어

“와! 너 나 무시한다? 음악 공부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했다고!”

그렇게 말하기에 작업실로 가 악보 꾸러미를 바닥에 놓고 펼쳐주었다.

“음음!”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진달래가 웃었다.

“히히히힛. 한 개도 모르겠다. 이게 뭐야?”

그 웃음이 무척 밝아 나는 그녀가 절망 속에 빠져 있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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