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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87화 (18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87화

    43. 도전(1)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이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새 로운 일을 제안받았다.

    적극적인 베를린파이기도 한 오페라 극장 도이체 오퍼는 그들이 준비 하고 있는 대규모 야외 오페라 무대 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함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 논하기 위해 사무국에 모였다.

    카밀라가 나누어준 서류에 자코모 푸치니란 사람이 만들었다는 투란도 트란 오페라가 간단히 소개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오페라라 물었다.

    “투란도트?”

    그러자 도리어 푸르트벵글러와 악 장단이 날 이상하게 보았다.

    “몰라?”

    “네.”

    “……세상에.”

    마치 교양 없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에 기분이 나빠 인상을 쓰자 다 들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정기 연주회가 당분간 힘들 어진 지금 음악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다른 악장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다만 도이체 오퍼와의 콜라보라는 점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걱정하는 듯했다.

    ‘자존심 센 친구니까.’

    정확한 방식은 미팅을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함께했을 때 우리 방식으로만 일을 진행할 순 없을 테고 그건 고집스러운 푸르트벵글러에게 무척 껄끄러운 일일 것이다.

    “세프는 어때요?”

    푸르트벵글러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서류를 쥔 그의 억센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야지.”

    원래 정력 넘치는 사람이지만 유난 히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푸르트벵글러가 심술궂게 악다문 입가를 씰 룩이며 웃었다.

    악귀 같은 표정이다.

    “세프 왜 저래요?”

    카밀라에게 슬쩍 물어보니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라이벌 때문이겠지?”

    “라이벌?”

    “응. 자코모 푸치니에 대한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마에스트로 헤르베르 트 카라얀이거든. 그가 지휘한 투란 도트도 명반으로 남아 있고.”

    카밀라의 말을 듣고 보니 카라얀을 싫어하는 푸르트벵글러가 왜 저리 타오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게다가 그거, 빈 필에서 연주한 거거든.”

    “하하하하!”

    너무 재밌어서 크게 웃었는데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말 그대로 정말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 * *

    “반갑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카밀라 사무국장도 오랜만이군요.”

    “흥. 격식 따위 집어치우게, 구스타프. 안 본 사이에 수척해졌군.”

    도이체 오퍼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미팅 자리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 시간 교류가 있었던 만큼 그는 도이체 오퍼의 총감독 구스타프 제르너를 인정하고 있었다.

    구스타프 제르너가 슬쩍 웃으며 푸르트벵글러의 손을 마주 잡았고 두 단체의 미팅은 그렇게 편안히 시작 되었다.

    도이체 오퍼의 사무국장 아서가 입을 열었다.

    “어떠십니까.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께서 직접 나와 주시니 기대해 도 될까요.”

    “네. 세프도 단원들도 긍정적인 방 향으로 생각 중입니다. 오늘은 세부 조항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으면 하고요.”

    아서와 카밀라의 대화에 푸르트벵글러가 끼어들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위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시작될 듯했기 때문이었다.

    “시시한 이야기 그만두게. 아서, 카밀라.”

    푸르트벵글러가 구스타프 제르너를 보며 물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우리를 초청했다는 말 따위 말게, 구스타프. 때 마침 우리가 일정이 비어 있었다는 우연도 말이야. 갑자기 이런 요청을 한 이유가 뭐지?”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날카 로운 질문에 아서가 당황했지만 구스타프 제르너는 웃었다.

    “알고 계셨군요.”

    “……역시 그랬나.”

    고개를 끄덕인 구스타프 제르너가 카밀라 앤더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앤더슨 국장이라면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역시 유능 하시네요. 맞습니다.”

    구스타프 제르너가 꺼낸 도이체 오 퍼의 상황은 카밀라와 푸르트벵글러 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처참했다.

    도이체 오퍼는 전속 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벤트가 아닌 이상 도이체 오퍼의 오페라는 모두 전속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주요 단원들이 최근 몇 달 안에 이직을 하기 시작.

    지금에 들어서는 단원 이탈이 너무 나 많아져 제대로 된 운영이 불가능 할 정도에 이르렀다.

    “인터플레이인가.”

    “추측만 할 뿐이죠.”

    “흐음.”

    이자벨 멀핀의 조사를 통해 최근 1년간 도이체 오퍼 오케스트라를 탈퇴한 연주자 중 8할이 런던으로 향 했음을 알고 있던 푸르트벵글러와 카밀라 앤더슨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도이체 오퍼라고 하면 베를린의 가 장 큰 오페라 극장이면서 또한 전통의 강호였다.

    그런 곳이 이제 유지마저 어려울 정도라고 하니 새삼 인터플레이의 자본력이 어떠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끈끈한 연대를 알고 있는 푸르트벵글러가 물었다.

    “돈 때문이라 하던가.”

    “그들의 선택을 말릴 순 없지요.”

    도이체 오퍼의 총감독이자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지휘하기도 했던 구스 타프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푸르트벵글러는 더는 묻지 않았다.

    “좋아. 하지.”

    “마에스트로!”

    전전긍긍하던 도이체 오퍼의 사무 국장 아서의 얼굴이 활짝 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할 것 이다. 구스타프 제르너, 자네가 우리 에게 맞춰야 할 것이네.”

    “그럼요. 저는 단지 베를린 필하모닉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드리겠습니다.”

    “하하. 이 친구 농담하고는.”

    “농담일 리가요. 하하.”

    선후배 사이의 신경전에 아서의 가슴은 바짝 말라 들어갔다.

    공연 일정이 잡혔다.

    두 달 뒤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얼마 전 3만 명과 함께한 무대였기에 생각보다 빨리 그곳에서 다시 연주할 수 있음에 반가웠다.

    투란도트라는 오페라에 무지한 나는 서둘러 여러 자료를 구해 감상을 반복했고 이 동양적 판타지에 깊이 매료되었다.

    서사는 조금 당황스러운 전개도 있지만 그 음악만큼은 그 비극적 상황을 너무도 잘 표현하였다.

    내가 사용하지 않았던 기법이나 악 기가 사용되는 등 투란도트는 잠시 지루하던 일상에 자극이 되어주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일주일 정도가 홀러 있었고 공부한 것을 가지고 푸르트벵글러를 찾아갔다.

    “이 녀석아! 일주일이나 출근을 안 하는 놈이 어디 있냐!”

    “공부하느라 바빴어요

    “공부는 무슨! 내 악단에 무단 불참하는 놈은 모가지야! 모가지!”

    “어차피 연주회도 연습도 없었잖아요.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아요.”

    “뭐라고!”

    실은 나도 이렇게까지 집중할 줄은 몰랐는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 도 했다.

    어찌 되었든 불같이 화내는 푸르트벵글러를 달래고 청음해 작성한 악보를 보여주니 푸르트벵글러가 그것을 한참이나 살폈다.

    “네가 해라.”

    “뭘요?”

    “이번 공연 지휘.”

    “뭐 잘못 먹었어요?”

    “이 녀석이! 기쁘면 기쁘다고 할 것이지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반갑게 받 아들이겠지만, 카라얀을 의식하며 의 지를 불태웠던 모습이 떠올랐다.

    “카라얀보다 더 멋진 연주를 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그런데요?”

    푸르트벵글러가 심드렁하게 되받아 쳤다.

    “김이 새버렸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가만있자 푸르트벵글러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가 있으니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런다. 네 음악 이야말로 베를린 필의 음악이다.”

    “또또.”

    “뭐가 또란 말이냐.”

    “영화도 안 봐요?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금방 죽는다고요.”

    “이 녀석이 전부터 누굴 자꾸 죽이려 들어?”

    “아악!”

    내 머리를 쓰다듬던 푸르트벵글러가 머리카락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불길한 말 좀 그만하라 고요!”

    “그런 말 안 해도 너보다 오래 살 거다!”

    “그럼 안 되죠!”

    그렇게 투란도트의 지휘를 맡았다.

    이틀 뒤 베를린 필하모닉과 도이체 오퍼에 공식으로 이번 연주회의 지휘자가 나라는 게 공지되었다.

    단원들은 푸르트벵글러에게 뛰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사무국 과장대리 이자벨 멀핀이 문 자를 보냈다.

    도이체 오퍼에서 방문했으니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사무국 미팅실로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세프. 시간 되었어요.”

    “아. 그래.”

    “세프! 세프! 진짜 왜 그러는 겁니 까! 이제 좀 살 만해졌는데 왜 그런 결정을 한 거냐고요!”

    “악보 보셨어요? 3막 마지막 부분 은 아예 다시 연습해야 할 판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투란도트가 아니라고요!”

    “도빈아! 아니, 악장! 도이체 오퍼 랑은 이야기한 내용이야? 악보가 대 체 왜 이래?”

    다가오는 푸르트벵글러 양옆으로 수석들이 달라붙었다.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는 것에 반해 악기 수 자체는 비교적 적기에 당연 히 수석과 부수석을 우선으로 참가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 당황하는 듯하다.

    “지금 막 이야기하러 가는 거예요.”

    “하지 마! 굳이 이야기까지 나누면 서 바꾸려는 이유가 뭔데!”

    “더 좋은 음악을 하려고요.”

    할 말이 없는 듯.

    더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 고통을 수반해야 함에 이견이 있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이기 전에 음악가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걱정 말아요. 노이어 혼자 힘들진 않을 테니까.”

    “그건 무슨 말이야?”

    “야외에서 하는 거니까 악기 편성 도 두 배 이상으로 하려 해요. 전 단원이 나서야 할 거예요.”

    “뭐라고?”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평단원들도 일어섰다.

    그렇게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미팅 실로 향했는데 콧수염이 멋진 남자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도이체 오퍼의 총감독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구스타프 제르너.

    푸르트벵글러와는 같은 선생에게 수학한 선후배 관계라고 들었다. 나와 인사하기 전에 두 사람이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구스타프 제르너.”

    “반갑네, 배도빈.”

    그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오페라에 지휘를 맡는다고 들었네.”

    그가 곧장 본심을 밝혔다.

    “네.”

    “나와 도이체 오퍼는 배도빈이란 음악가의 팬이지만 이번 일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의뢰한 거였네. 헤르베르트 카라얀과 함께 푸치 니 해석의 최고 권위자에게 말일 세.”

    툭 _

    구스타프 제르너가 말하는 와중에 푸르트벵글러가 악보를 그에게 던졌다.

    내가 주석을 단 청음 악보다.

    구스타프 제르너가 그것을 본 뒤 푸르트벵글러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우리 악장이 청음한 악보일세. 그 것부터 보고 이야기하지.”

    푸르트벵글러가 시가를 태우기 시 작했다.

    “꺼요.”

    “꼬맹이는 이 깊은 풍미를 모르지.”

    “일찍 죽는다고요.”

    “아, 글쎄 안 죽는다니까!”

    “내놔요. 안 그러면 오렌지 주스를 뒤집어쓸 테니까.”

    “……마누라가 따로 없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구스타 프 제르너가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좀.”

    “••••••크흠.”

    “네.”

    그가 다시 악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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