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86화 (18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86화

42. 루트비히

“그러지 마요. 이제 겨우 여덟 살 이라고요!”

“가만있어! 이놈은 정신을 차려야 해. 어서 들어가지 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오르간이 있는 방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또 다투셨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버 지가 또 어머니를 때릴 테니까. 어 머니가 아픈 건 너무 싫으니까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아무것도 안 보인다.

밖에서는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났다.

“당신이 사람이야? 짐승도 이러진 않을 거야! 오오, 루트비히.”

“시끄러워! 루트비히, 연주를 제대 로 하기 전까지 나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손을 움직여서 오르간이 어디 있는 지 찾았다. 좁아서 어두워도 빨리 찾을 수 있다.

C음은 어디 있을까.

건반을 가늠하고 오르간을 쳤다.

그러자 밖에서 들리는 소리도 차츰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서워.’

괴물과 악마가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울어도 나아지는 건 없어.

내가 울면 어머니가 더 슬퍼하시니 까 동생들이 더 크게 우니까 더 나빠지기만 한다.

‘어려워.’

그런 생각은 너무 어렵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오르간을 연주하자. 그러면 조금 은 나아질 거야.’

한 곡을.

한 번, 두 번, 세 번 연주할 때마 다 소리가 가득 차서 이 방에 다른 어떤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되고.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연주할 즈음에는 조금씩 그 곡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거 불편해.’

‘나는 이게 더 좋아.’

그 목소리에 맞춰 다시 연주하면 좀 더 예쁜 곡이 된다.

음악은 무척 활달한 것 같으면서도 예민해서 내가 틀리면 엄청 불편해 한다.

그리고 나도 음악이 불편한 게 싫다.

가끔은 분명 악보대로 연주했는데 불편한 곡도 있다.

그럴 때면 고쳐주고는 하는데.

그러면 잔뜩 움츠러들고 있던 음악 이 활짝 웃는 것 같다.

‘대체 왜 그렇게 연주하는 거야!

누가 그러라고 했어!’

내가 맞아.

아버지는 그런 나를 혼내지만 나는 내가 맞다는 걸 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음악이 말해주니까.

마흔 번, 마흔한 번, 마흔두 번.

아버지가 원하는 연주는 알지만 그렇게 연주하면 나갈 수 있지만 그건 음악이 싫어해.

예순세 번, 예순네 번, 예순다섯 번.

아, 이제 정말 잘 치게 된 것 같아.

일흔일곱 번, 일흔여덟 번, 일흔아 홉 번.

주륵-

나가고 싶어.

1781년 루트비히가 11살이 되던 해.

“인사해라, 크리스티안 고틀릅 네 페. 궁정 오르가니스트시다.”

베토벤 가문에 얼마 전 본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한 크리스티안 고틀릅 네페가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그럼 들어가시죠.”

요한은 얼마 없는 살림으로도 네페를 극진히 대접했고 두 사람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때 네페가 슬며시 계속해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에 대해 물었다.

“부인의 오르간 실력이 무척 좋으시군요.”

“하하. 아닙니다. 제 아들 녀석이 치는 거지요.”

“아들이라 하면……

베토벤 가문의 사람들이 네페를 맞이했을 때 아이들이라고 해봤자 10 살 남짓의 루트비히가 장남이었다. 그러했기에 네페는 요한의 말을 쉽 게 믿을 수 없었다.

“루트비히. 루트비히!”

요한이 루트비히를 불렀다.

“선생님께서 네 오르간을 듣고 칭찬을 하시는구나. 인사드려라.”

“……감사합니다.”

“허허. 정말인가 보군요. 어디 직접 들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루트비히, 앞장서라.”

소년 루트비히의 연주를 들은 네페는 감탄했다. 저 어린아이가 하는 연주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뛰 어났다.

“요한 씨, 당신의 아들을 제가 가 르쳐도 되겠습니까.”

네페의 말에 요한은 뛸 듯이 기뻐 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영광입니다. 루트비히, 이리 와서 네 선생님께 인사드려라!”

루트비히의 연주를 들은 네페는 성 심성의껏 소년을 가르쳤다. 그에게 서 빛나는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 문이었다.

“루트비히, 여기를 왜 그렇게 연주 했는지 말해주겠니?”

“앞 소절과 대칭을 이뤄야 하니까요. 그러지 않으면 불편해해요.”

루트비히의 말을 듣고 악보를 살펴 본 네페는 고심 끝에 악보가 구조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악보를 필사하는 작업에서 표기 오류는 심심찮게 발 생했는데 네페도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을 발견한 소년.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네페는 크게 칭찬했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한편 훌륭한 음악가를 만난 루트비 히는 지금껏 그를 답답하게 했던 대 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요 한과 달리 루트비히의 생각을 먼저 묻고 솔직하게 자신을 대하는 네페를 소년 루트비히 역시 마음 깊이 존경했다.

항상 명쾌한 답을 주는 크리스티안 고틀롭 네페는 소년 루트비히에게 빛과 같았다.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루트비히와 함께할수록 크리스티안 고틀롭 네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 때마다 실력이 늘어 있는 루트 비히는 마치 자신을 흡수하듯이 성 장했다.

건반만을 가르치는 것은 루트비히 의 재능을 썩히는 거라 생각했고 네 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루트비히를 만나 작곡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결과는 매우 흡족스러웠다.

네페는 크라머의 이름을 빌려 ‘마 가진 데어 무지크(Magazin der mu sik)’에 루트비히에 대해 알렸다.

루이 반 베토벤은 11살로 아주 촉 망되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의 클라비어는 아주 훌륭하고 또 힘 있으며 악보를 보고 곧장 연주하는 실력이 뛰어나다.

(중략)

그는 지금처럼만 계속한다면 틀림 없이 제2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 르트가 될 것이다.1)

1) 제러미 시프먼, 「베토벤, 그 삶 과 음악』中 21p, 2010, PHONO 출간, 김병화 옮김.

그러나 그는 곧 그가 루트비히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루트비히의 재능에 반한 네페는 매 일 같이 소년을 접했고 곧 소년이 얼마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루트비히는 하나의 곡을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 마치 군인이 적군을 상 대하듯 맹렬히 연습에 뛰어들었다.

한번 의자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일어날 생각도 없이 그저 건반을 두 드릴 뿐이었다.

어떨 때는 아침에 시작하여 해가 모두 저문 밤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주를 계속할 때가 있어 네페가 다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또 고전에 대한 고집은 얼마나 강 한지 이미 그 어린 소년이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관이 있어 스승인 네페 조차 그것을 어쩌지는 못했다.

이러한 루트비히에 대해 일찌감치 알아본 네페는 소년을 연주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각 귀족들이 후원을

해야 한다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이제 막 11살의 루트비히에게 관 심을 가져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스승을 만난 성장기 의 루트비히는 급속도로 발전해 나 갔다.

네페에게 사사한 지 1년도 안 되 어 궁정 오르가니스트 네페의 조수 로 활동했고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보조 연주자가 되었다.

14살이 되기도 전에는 제2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었고 1786년에는 선 제후(황제 선거권을 가진 일곱 명의 제후)가 루트비히의 연주에 감명받 아 빈으로 여행을 갈 수 있도록 후 원을 해주기도 했다.

‘이제 조금만 더.’

루트비히는 마침내 인정받기 시작 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예술의 도시 빈에서 새로운 음악을 접할 생각을 하니 어린 루트비히의 가슴이 설렜다.

동시에 하루빨리 성공하여 병을 얻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그토록 바라던 빈에 도착한 지 2주 만에 저주하는 아버지 의 편지로 어머니의 부고를 듣게 된다.

‘꿈자리 한번 사납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잠들었던 모 양이다.

루트비히의 삶을 살았을 적을 꿈으로 꿨는데 요한의 지랄 떠는 모습만 나와 몹시 언짢다.

해가 질 무렵이라 하품을 하고는

일어난 뒤 아래로 내려갔는데 좋은 냄새가 계단까지 풍겼다.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카레를 하신 모양.

6층으로 갈 것 없이 곧장 7층으로 가니 아니나 다를까 진한 카레 향을 물씬 맡을 수 있었다.

도진이가 수저를 옮겨다 테이블에 놓고 있다.

“형아.”

“어머니 도와드리고 있었어?”

“응. 빨리 앉아.”

식사 시간에 어머니의 말투를 따라하는 도진이를 보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도울 만한 일이 있을까 싶어 어머 니를 찾았다. 그릇을 꺼내며 말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카레는 오랜만 이네요.”

“맛있다고 한 음식만 많이 먹으면 그것도 안 좋아. 할아버지가 얼마나 투정부린 줄 아니?”

“저도 그건 아쉬워요.”

접시에 밥을 담으며 물었다.

“도진이는 정말 대학에 보내시려고요?”

“응, 그렇게 원하니까.”

어머니께서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너무 부자라서 부담스러웠거든. 학생 때는 어딜 가 나 주목받고 그런 게 너무 싫고 그 랬어.”

어머니의 옛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래서 항상 평범한 삶을 바랐고 너도 그러길 바랐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

어머니께서 웃으면서 김치를 꺼내셨다.

“어느 삶이든 특별하고 한 번밖에 살 수 없잖아. 네가 음악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걸 보니 도진이도 조금

별나긴 해도 도와줘야지. 그게 엄마 랑 아빠가 할 일이니까. 아, 고마워.”

어머니께서 덜어 담은 김치와 밥을 쟁반에 올리고는 말했다.

“그런 어머니랑 아버지 덕분에 이 런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도진 이가 너무 어린 게 걱정되긴 하지만 분명 나중에는 도진이도 고마워할 거예요.”

“으이구. 너는 더 어렸을 적부터 그랬어. 가자.”

어머니께서 내 엉덩이를 두드리곤 웃으셨다.

인류의 보물. 세기의 천재.

베를린의 마왕, 베를린의 보석.

희망. 히어로.

그런 말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계속할 뿐인데 사람들은 점점 더 나 와는 동떨어진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딜 가도 파파라치가 따라 붙는 이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고.

내 음악을 할 수 있다면 단지 그 것으로 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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