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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83화 (18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83화

    41. 무뚝뚝한 비올라와 찌질한 바이올린 (3)

    대학 근처의 카페에 앉으니 사람들 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멀리서 지켜볼 뿐이라 대화 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파파라치는 여전히 거슬리지만 말 이다.

    “무슨 생각이야?”

    “ 뭘요?”

    “이렇게 친한 사이 아니잖아.”

    찰스 브라움이 이상한 말을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 이후 로 나는 그와의 앙금을 모두 풀었는 데 찰스 브라움은 아닌 모양이다.

    “불편해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찌질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쪼잔한 성격이다.

    비록 직접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알고 있던 인상과 너무도 다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브라움의 바이올린이 좋아요. 브라움도 제 음악을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잖아요.”

    찰스 브라움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이내 웃었다.

    “못 당하겠군.”

    그렇게 간단히 다과를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성격은 왜 그렇게 변한 거 예요?”

    “어떻게?”

    “찌질하게.”

    찰스 브라움이 인상을 쓰더니 이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 바이올린은 충격이었어. 고작 10살도 안 된 아이가 하는 연주라 고는 믿을 수 없었지.”

    오렌지 주스를 빨아들였다.

    “그때까지 내가 최고라는 데 조금 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자신 이 천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의 기분. 너는 모를 거야.”

    “아, 여기 주스 한 잔 더 부탁할게요.”

    고개를 돌려 찰스 브라움을 보았다.

    그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때부터였지. 연습과 부정을 반복 했어. 그러는 어느 날 문득 그런 생 각이 들더라고. 이 집착이 너에 대한 열등감인지 아니면 바이올린과 더 친해지고 싶은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웠지만 결국 솔직해질 수 있었지. 열등감이었다고. 천재는 따로 있고 그걸 받아들이자고. 그런 뒤엔 겸손해진 것뿐이야.”

    “찌질한 거예요.”

    “너.”

    “찰스 브라움.”

    그의 눈을 바로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의 첫 번째 문제는 천재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문제는 나와 자신에게 차등을 둔 것이다.

    “천재니 뭐니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아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바이올리니스 트예요.”

    그에게 확신을 줘야 하는 이야기였기에 단정하여 말했다.

    “……너는 몰라.”

    “알아요.”

    안다. 너무도 잘 안다.

    나는 철이 들기도 전부터 거대한 천재에게 가려져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그의 등을 쫓으라는 강제 속에서 살아왔기에 최지훈이 나를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찰스 브라움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너무도 잘 안다.

    “바이올린 얼마나 켰어요?”

    “••••••글쎄.”

    “시간이 나면 항상 쥐고 있었겠죠.”

    “그렇지.”

    “바이올린을 좋아하잖아요. 그러니 계속했고. 지금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는데 당신의 진가를 모르는 건 당신뿐이에요.”

    조금 회의적이었던 찰스 브라움이 피식 웃었다.

    “어린애에게 위로받을 줄은 몰랐네.”

    “위로가 아니에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에게 조금 화가 났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재능을 가 진 게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쉽게 천재라는 말로 이 해하려 하죠. 그건 이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노력에 대한 무시예요.”

    점원이 얼음을 띄운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에 시선을 한 번 준 뒤 다시 찰스 브라움을 보며 말했다.

    “타인은 몰라요. 당신과 온종일 함께 있는 게 아니니까. 당신이 일어 나서 잠들기 전까지 바이올린만 생 각하고 있는 걸 모르니까 당신을 천재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브라움 당신도 저에 대해 모르고요.”

    천재란 무엇일까.

    나는 저주라 생각한다.

    내가 피아노를 이렇게 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지난 평생을 함께했고 이번 생에서도 부단히 노력했다.

    언제나 피아노와 함께였고 카레를 먹을 때도 오렌지 주스를 마실 때도 커피를 내릴 때도 오직 피아노만을 생각했다.

    음악을 생각했다.

    단지 그것이 좋아서.

    찰스 브라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본 ‘천재’들은 항상 그랬다.

    넘을 수 없을 것처럼 여겼던 아마데조차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시간이.”

    내가 두 번의 삶을 살았다는 걸 모르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말로 정답을 줘봐야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께서 내게 했던 교육법이다.

    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지금의 제 바이올린이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아니.”

    이제야 조금 솔직해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천재는 누구죠?”

    “당연히 너지. 너야 작곡과 피아노에 주력하고 있으니 바이올린을 다 시 시작하면 나 따위 금방.”

    “말조심해요, 찰스 브라움. 전 제가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모욕당 하는 걸 참을 수 없으니까.”

    흔들리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제가 바이올린을 계속하지 않는 건 더 좋아하는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당신보다 못한 건 제가 당신보다 바이올린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요.”

    이슬 맺힌 오렌지 주스 잔을 들었다. 적당히 녹은 얼음이 깔그락 하고 움직였다.

    “만약 천재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재 능을 말해선 안 돼요. 그 사람이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게 기준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평생을 바이올린만 생각한 당신은 분명 천재예요. 그 누구도 당신도 그걸 부정해선 안 돼요.”

    ‘누가 더 훌륭한 천재인가.’

    그보다 무례한 질문이 또 있을까.

    바흐와 헨델.

    나와 모차르트.

    슈베르트, 리스트, 쇼팽, 슈만,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마흐마니노프 등등.

    비교와 대조는 이해를 돕는 좋은 수단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차등을 두게 된다면 그것은 평생을 바친 자 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짧은 생.

    천재라는 저주와도 같은 단어에 매 몰되어 자신을 잃기에 삶은 너무도 짧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그 이름에 집착하여 좌 절하기도 눈물을 쏟기도 하면서 끝 끝내 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형제를 사랑한다.

    찰스 브라움이 만약 언젠가 내가 다시 자신을 추월할 거라 생각하며 산다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기에는 당신의 빛나는 삶이 너무나 아깝잖아요.”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얼음이 너무 녹아서 맛이 조금 밍밍하다.

    잔을 내려놓으니 찰스 브라움이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너 엄청 부끄러운 말도 잘하는구나?”

    ‘이 사람이.’

    기껏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헛소리나 하고 앉았다.

    찰스 브라움이 웃었다. 조금 전까 지와는 달리 후련하다는 느낌이라 조금은 안심했다.

    “그러게. 그렇지. 그런 것 때문에 망칠 수는 없지.”

    “ 맞아요.”

    찰스 브라움이 커피를 마신 뒤 혼 잣말을 했다.

    “……덕분에 후련해졌네. 고마워.”

    “별거 아니에요.”

    대충 그의 생각은 고쳤으니 본론을 꺼내야겠다.

    “그래서 말인데 오케스트라에 들어 올 생각 없어요?”

    “오케스트라? 베를린?”

    “아뇨. 루트비히 필하모닉.”

    “그런 곳도 있었나?”

    “생길 거예요.”

    그에게 루트비히 필하모닉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데에는 가기 어려워.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인터플레이가 계속 이야기를 해오고 있거든.”

    또 개자식들이다.

    “무슨 말이에요?”

    “소속사가 인터플레이에 합병될 것 같아. 인터플레이와 소속사는 내가 인터플레이 전속 바이올리니스트로 개인 활동과 런던 필하모닉의 악장 직을 맡아서 해주길 바라고. 제시하는 금액도 좋은 데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개인 활동이 가능한 악장이라니. 흥미롭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에요.”

    “글쎄.”

    잠시 티격태격한 뒤에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벌써 테이블에는 7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거절할 입장도 아니야.”

    영국 왕실의 왕자 찰스 브라움.

    영국과 영국의 음악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자본을 앞세운 독재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국을 외면하기도 어려 운 그의 입장을 들으니 그가 얼마나 고뇌하고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실은 여기서 교수 활동을 하는 것 도 조금씩 안 좋은 말이 나오고 있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나였다면 그런 개소리 무시했을 테 지만 그에게는 그의 입장이 있을 것 이다.

    그것을 답답하거나 찌질하다는 말로 욕할 수는 없는 법.

    묵묵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 대학 음대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베를린 예술 대학도 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건데. 봐서 알겠지만 이곳 음대는 대부분 유학생이야.”

    “ 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유럽 내에선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어. 유럽에 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적응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그래 서 난 그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편 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가능하다면 말이야.”

    ‘왕자라더니 꽤 품격 있는 생각을 하잖아.’

    멋진 사람이다.

    “오케스트라 건은 다음에 해요.”

    서로를 위해 잔을 들고 보인 뒤 찰스 브라움과 헤어졌다.

    음료수를 4잔이나 마셔서 그런지 배가 불러 그대로 집으로 향하는데 마침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집 앞에 있었다.

    “히무라, 나카무라.”

    “지금 오는 거야? 늦었네?”

    “찰스 브라움이랑 만났어요. 이것 저것 이야기하다 보니 늦었네요.”

    “……원피스 같은 성격은 여전하구나.”

    히무라가 이해 못 할 말을 했다.

    예전에도 몇 번 한 것 같은데 중요한 일은 아니라 넘겼다.

    “아, 그리고 학교에서 료코 만났어요”

    “그래? 어땠어?”

    “바빴나 봐요. 인사만 하고 강의실 로 들어가더라고요.”

    “너한테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구만. 하하!”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밥 한번 먹어요.”

    “글쎄. 료코가 올지 모르겠네. 말해 볼게. 아, 고마워.”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들어서자 도 진이가 걸어와 팔을 벌렸다.

    이제는 안기가 조금씩 버거워지고는 있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만 안아주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품에 얼굴을 파묻어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그대로 답이 없어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어머니께서 웃으면서 다가 오셨다.

    “시험에 떨어져서 속상한가 봐.”

    “시험이요?”

    “형이랑 같은 대학 가고 싶다고 졸 라서 알아봤거든. 도진아, 노력하면 다음에는 합격할 수 있어.”

    “흐으윽.”

    내년에는 정말 같이 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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