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79화 (17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79화

40. 사람, 음악, 돈(3)

카밀라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을 공격하는 세력이 인터플레이라는 정황을 포착한 뒤로 고민이 깊어 졌다.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그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베를린 필과 그곳의 보물 배도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상대는 거대 자본과 막강한 인프라를 구축한 범세계적 기업.

그런 곳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베를린 필을 압박하고 시장을 점유해 나 간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얻는 직접 수익과 광고 등의 간접 수익은 현재 여러 악단의 주 수입원이었는데 인 터플레이가 등장하면서 각 악단이 직접 운영하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찾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너무나도 부드러운 고화질 영상과 음향을 갖추고 무료로 및 캐시 지원을 해주는 등 이용자에게는 너무도 편리했고 클래식 음악 팬들은 인터 플레이를 이용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당연히 인터플레이에 악단의 영상 이 게시되고 프로모션을 받는 일도 중요해졌다.

베를린 필하모닉 운영진과 사무국 은 앞으로도 점점 더 가속화될 이러 한 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고심했으나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카밀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맞춰 인터플레이에서 연락이 왔다.

“좋은 조건이에요. 연주회 프로모 션이나 음반 작업, 웹 서비스 모두 만족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인터플레이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사업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조건이 상세 할수록, 결국에는 런던의 악단과는 차별을 두겠다는 내용으로 비칠 뿐 이었다.

악단주인 귄터 부르비츠는 분노했다.

운영진과 사무국 그리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모두 이 불명예스러운 계약에는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음악인이 스스 로가 세워 번영한 불굴의 역사의 결 정체였다.

그 고귀한 정신을 잃는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은 더 이상 그들로서 존재 할 수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친 몸과 정신적 압박 그리고 적잖은 와인은 카밀라를 약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카밀라가 한탄했다.

맞은편에 앉은 푸르트벵글러는 말 이 없었다.

그 역시 현 상황에 분노하고 답답 했으나 해결책을 강구해내진 못했다.

그저 이 상황을 카밀라와 함께할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카밀라가 가장 사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그 음악을 지키기 위해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 그 리고 단원들이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베를린 필의 팬들이 앞으로도 베를린 필의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카밀라가 할 일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아 군을 찾는 일이었다.

홀로 감당해낼 수 없었기에 혹시 베를린 필하모닉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카밀라조차 깜짝 놀랄 정 도로 많은 집단이 인터플레이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보다 먼저 꽤 오랜 시간 압박을 받았던 빈 필하모닉이 그러했고 로열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그러했다.

모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였다.

그 역사와 전통, 실력, 명성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절대적인 그들도 거대 자본이 압박하며 들이미는 부 적절한 조건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카밀라는 자신이 이렇게나 둔한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아니, 빈 필하모닉과 로열 콘서트 허바우 오케스트라 측에서도 카밀라처럼 놀랐다.

베를린 필하모닉도 그러했냐고.

소통의 단절.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말할 것도 없이 라이벌 관계에 있는 빈 필하모닉과의 접점은 거의 없었다.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과도 마찬 가지였다.

인접한 오케스트라가 그러할진대 암스테르담은 더욱 그러했다.

각자의 자부심이 너무 강했던 탓에 이런 사업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 교류는 없었던 것이었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밀라 앤더슨의 이러한 생각은 곧 여러 악단으로부터 공감을 살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지금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수가 불어나자 두 가지 아이 디어가 생겨났다.

하나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지켜줄 울 타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었고.

둘은 또 다른 외부 세력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었다.

정말 짧은 시간 안에 각 악단의 운영진과 사무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인터플레이를 견제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졌고 악단들의 자율성을 지 켜줄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은 쉽 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계에 ‘진실’을 전달해 줄 언론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들을 지지해 줄 강력한 연합체를 찾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카밀라 앤더슨은 기적을 경험했다.

“오랜만입니다, 카밀라 앤더슨 씨.”

“반가워요, 히무라 씨. 이분은?”

“나카무라 이데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랜만에 또 갑작스럽게 방문한 히무라 쇼우와 그의 친구 나카무라 이 데는 카밀라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라이징스타 엔터테인먼트와 도빈 재단 그리고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돕겠다 고 나선 것이었다.

“라이징스타와 도빈 재단은 그렇다 해도 일본에서는 왜……

카밀라 앤더슨이 물었다.

베를린 필과 유럽의 악단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그들 이 왜 이런 무모한 일을 자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카무라 이데는 웃었다.

“희망이니까요.”

무너져가는 일본의 클래식 음악계를 되살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배도빈의 음악은 재앙으로 인해 실 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살아갈 희 망을 안겨주었다.

터전을 잃은 그들은 매일 밤 배도빈의 바이올린을 들으며 희망의 끈을 이어나갔다.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와 집권 세 력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배도빈에 게 한 만행을 사죄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이들이 더 이상 클래식 음악계를 함부로 흔들지 않도록 힘을 보태고자 했다.

나카무라 이데의 말처럼 배도빈은 그들의 희망이니까.

나카무라는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의 명단을 카밀라 앤더슨에게 넘겼다.

사카모토 료이치를 비롯한 일본의, 아니, 세계의 저명한 음악인들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을 위한 후원금을 마련한 명단이었다.

“약소하지만 구상하는 바에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저희와 아사히 신문, NHK 역시 다른 방법으로 지 원하겠습니다.”

나카무라의 말대로 일본의 뜻있는 세력들이 보도, 기사, 칼럼 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반갑습니다. 월드 디자인 뮤직 그 룹의 다비드 바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베를린 필 사무국의 카밀라 앤더슨이에요.”

얼굴보다 목이 더 두꺼운 남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사 중 하나인 월드 디자인 그룹에서 나온 다비드 바론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뜻하지 않은 제안을 했다.

“네?”

“향후 10년간 월드 디자인 그룹에 서 제작하는 영화의 녹음을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계 약 내용은 서류로 검토해 보시죠.”

표준 계약. 우대 사항은 없었다.

그러나 인터플레이의 사업 압박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10년간 계약은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있어 너무나 소중한, 재정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카밀라 앤더슨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어안이 벙벙했다.

“단 미스터 배의 곡이 하나는 들어가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 아.”

다비드 바론의 말에 카밀라는 자신 이 행운이라 여겼던 이 이야기가 운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계의 거장 크리스틴 노먼의 ‘블랙나이트 인크리즈’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오리지널 스코어 작업을 통해 배도빈과 인연을 맺었던 월 드 디자인 그룹이.

손을 뻗은 것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업체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접 근을 시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뿐만 아니라 인터 플레이로부터 사업적 압박을 받고 있는 여러 명문 오케스트라 역시 마 찬가지였다.

카밀라로서는 버만 그룹과 인터플 레이의 콘텐츠 사업 독주를 막고자 하는 웹플릭스, 미시시피, 뉴튜브 그 리고 이들을 움직이게 한 유장혁 회 장의 움직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이렇게나 많은 단체가 한뜻으로 움 직일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중심에는 배도빈이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유럽의 여러 음악인이 느끼기에 그 것은 그저 기적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특별 자선 연주 회의 프로그램 투표 결과가 결정되었다.

최대 네 곡까지 중복 투표를 할 수 있었던 해당 설문조사의 총투표 수는 약 470만 건.

그 자체만으로도 기록이었다.

1. 베를린 환상곡

2. 가장 큰 희망

3. 인크리즈

4. 용감한 영혼

또한 투표 결과는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에 큰 힘이 되어주었는데 많은 평론가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베를린 환상곡이 최다 득표를 하면 서 여러 언론에서 떠드는 것만큼 팬 들의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을 응원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기에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팬들이 전해준 응원에 보답하여 최 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공연을 시작하기 전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리가 멀리까지 전달되기 위한 각 종 장비와 중계를 위해 모여든 언론 그리고 3만 명의 관객.

3만 명이라니.

연습할 때만 해도 실감이 잘 안 났는데 막상 3만 명을 눈앞에 두니 이 나도 조금은 긴장되는 것 같았다.

축구 경기장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이들은 평소 연주회와 달리 편안 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렴한 티켓값과 또 넓은 객석 수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이 쉽게 찾아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아 졌다.

그리 생각하자 의욕이 생겼는데.

“우웩.”

“헉. 윤희야, 괜찮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나윤희가 속을 게워냈다. 이승희와 제2바이올린 단원들이 그녀를 도왔다.

그렇게 쾌활하던 베테랑 연주자 마누엘 노이어도 손을 파르르 떨었다.

한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푸르트벵글러가 단원들 앞에 섰다.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를 시기하는 사람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봐라.”

푸르트벵글러가 돌아서 대기실 밖 관객들이 앉아 있는 방향을 보았다.

“저들이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일 따 위 운영진과 사무국에게 맡겨라. 그 런 것에 신경 쓰기에는 우리가 맡은 책임이 너무도 막중하다.”

다시 단원들을 둘러본 푸르트벵글러가 힘주어 말했다.

“최고의 음악을 하러 가자. 우리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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