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78화 (17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78화

    40. 사람, 음악, 돈⑵

    아는 척한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웃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인데?”

    “아.”

    마누엘 노이어 수석의 말에 너무나 기뻤다.

    네이즈의 김 팀장님도 재은이도 내 말은 무시했는데, 학교에서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용기 내서 말하기를 잘했다.

    “교향곡이겠는데? 인크리즈 때 만든 게 좋던데.”

    “난 가장 큰 희망. 근데 팬들 의견은 어떻게 모으지?”

    다들 자기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

    저 당당함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저럴 수 없을 것 같아서 물러서 있는데 승희 언니가 다가왔다.

    “잘했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작게 웃었다.

    “도빈이 입장에서 생각한 거지? 남을 생각하는 거 되게 멋져.”

    “그냥…… 기분 나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전 저렇게 자기 생각 말하는 분들이 더 대단한 거 같아요.”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 단원들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친해 보였고 정말 도빈이를 좋아한 다는 느낌이었다.

    “저 바보들이?”

    “아하하. 바보라됴.”

    이렇게 승희 언니의 거침없는 성격 도 너무 부럽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어? 나 방금 재밌는 말 했어?”

    “아, 죄송해요.”

    “뭐야. 농담한 거잖아. 그렇게 어려 워하지 마. 나 너 좋아하니까.”

    언니가 어깨로 날 슬쩍 밀면서 말했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가 날 좋아한 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정말요?”

    “뭘 그리 감격까지. 뭐, 그래 주니 기분은 좋네. 이 선배를 계속 존경 하도록.”

    “네!”

    승희 언니도 단원들도.

    그리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듣고 계셨던 것 같은 세프도 다들 너무 멋 져서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빈이도.

    ‘멋있어.’

    사무국장님과 대화하는 도빈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귀엽게만 생각했는데 도빈이가 무 척 크게 느껴졌다.

    ‘난 17살에 뭐 했지.’

    괜스레 비교하게 되었는데 바이올린을 연습한 기억밖에 없어서 그럴 수는 없었다.

    “부탁할게요, 국장님.”

    자기는 음악을 할 뿐이라고. 그 외 의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도빈이의 확고한 목소리와 올곧은 눈을 보고는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당당하고 자부심 강한 이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올 수 있어서 다행 이라고 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특별 자선 연주회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해 주세요]

    클래식 음악 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간 여러분의 성원으로 작년 한 해 콘서트홀 방문자 23만 명을 기록하였고 우리의 연주는 누적 4.2억 회 열람되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팬 여러분의 기 대에 부응하여 앞으로도 양질의 연주회를 열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 첫 번째 노력으로 오는 21일 특별 자선 연주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악장 도빈 배의 43곡 중 여러분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4곡을 마에스트 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여 베를린 필하모닉 또는 그 일부 연주 자들이 연주할 예정입니다.

    해당 특별 자선 연주회 티켓은 오는 3일부터 구매 가능하며 연주회의 모든 수익은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음악인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특별 자선 연주회는 앞으로 비정기 적으로 꾸준히 진행될 예정이며 팬 여러분의 음악 생활을 더욱 풍부히 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악장 도빈 배의 곡 중 4곡을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사무국 공동 주최

    독일연방 공영방송협회

    후원사 - 미시시피, 고글, WH전자, 워너비 클래식, 헤르타 BSC, 메르센-벤츠, 덴하이어, 독일 아리아, 슈피겔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선 하다는 평을 받았다.

    ㄴ 신선하네. 프로그램을 투표로 짜 다니.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희망을 듣고 싶은데.

    ㄴ 티켓 값 10유로 미쳤다.

    ㄴ 후원사 클라슼ㅋㅋㅋㅋㅋ 자선 연주회 맞냐?

    ㄴ 배도빈 진짜 괴물이었잖아;; 오케스트라 곡만 13곡인데 이걸 10살 전에 다 만들었다고?

    ㄴ 제목은 좀 낯설 수 있는데 대부 분 영화에 삽입되어서 들어본 사람 은 많을 거임. 참여한 작품은 모두 당해 최고 매출 작품이었으니까.

    ㄴ 티켓 가격 미쳤네. 진짜 싸다.

    ㄴ 객석 수 3만 미친 ㅋㅋㅋㅋㅋ

    나윤희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시 작한 특별 자선 연주회는 여러모로 나와 단원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버렸다.

    카밀라가 단원들을 모아놓고 특별 자선 연주회에 대해 20분간 설명을 하였고.

    그녀의 설명을 모두 들은 우리는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간 베를린 필을 사랑해 준 팬들 에 대한 보답과 자선 연주회라는 취 지는 좋았지만 너무 좋은 나머지 2,250석을 보유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로는 만족하지 못한 모양.

    카밀라 앤더슨과 사무국은 독일연 방 공영방송협회와 연주회를 함께 주최하기로 하여 부족한 중계 능력 과 음향 시설을 확보하였고.

    동시에 베를린의 축구 클럽, 헤르 타 BSC의 홈구장 ‘올림피아슈타디 온 베를린’을 빌리고 말았다.

    카밀라는 모든 관중석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3만 석만 활용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훔볼트 박스에 게시하기 위해 준비한 포스 터 시안까지 보여주었다.

    “다들 왜 그래요?”

    “아니. 일이 너무 커졌잖아•요, 카밀라.”

    콘트라베이스 수석 네빌라가 모두 의 마음을 대변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커 질 줄은 몰랐는지 나윤희는 딸꾹질 까지 하고 있다.

    “무슨 말이에요, 네빌라. 국장님! 그냥 7만 석 다 받아버려요! 우리가 누군데!”

    한스가 일어나서 소리쳤다.

    씩씩해서 좋지만.

    “넌 좀 가만있어, 이 녀석아.”

    케르바 슈타인이 한스의 팔을 잡곤 끌어다 다시 앉혔다.

    “한스 말이 맞다. 기왕 하는 거 제 대로 해야지.”

    푸르트벵글러마저 저리 말하니 다 들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좋아요. 다음 주에는 사전 리허설 있으니 준비들 해주세요. 배도빈 악 장은 잠시 사무국으로 와주시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카밀라를 따라나 서는데 푸르트벵글러가 곁으로 왔다.

    “어떠냐. 재밌을 것 같지 않냐.”

    “3만 명이라니. 그런 규모는 처음 이에요.”

    “다 안 올 수도 있지 않느냐.”

    “농담이죠?”

    베를린 필하모닉이 팬들이 선정한 내 베스트 곡을 연주하는데 만석이 아닐 리가 없다.

    “하하하하. 좋은 자세다.”

    그렇게 사무국실 문 앞에 이르자 푸르트벵글러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떤 놈들이 한 일인지 알아낸 모 양이다.”

    “ 뭘요?”

    “해먼 쇼익.”

    해먼 쇼익이라면 머리에 똥만 든 놈일 텐데 굳이 어떤 놈이 한 일인 지 알아냈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 뒤에서 누군가 사주를 한 모양 이다.

    사무국 사무실 안에 마련된 카밀라 의 개인 집무실에 들어서자 그녀가 자리를 권했다.

    내게 서류를 보여주었는데 대충 보 니 인터플레이라는 곳에 대해 이야 기하는 것 같다.

    “혹시 인터플레이라고 아니?”

    “처음 들어요.”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종합 콘텐츠 플랫폼이라고 보면 돼.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소설, 음악 등등.”

    정말 많은 예술 장르를 유통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겠다.

    “거기 경영자가 제임스 버만이라는 사람인데 클래식 음악 팬인가 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랑 런던 필하모닉의 소유주이기도 해.”

    돈 많은 사람인가 보다.

    “여러 가지로 알아봤는데 도빈이 너나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공격 적인 기사를 낸 곳이 전부 그 사람 과 연관이 있더라고. 해먼 쇼익을 비롯해서 그래모폰도.”

    “베를린 필하모닉을 견제하려고 그 랬단 말이에요?”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건만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뭐라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할 짓 없는 인간이네요.”

    “그렇지 않아.”

    카밀라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다른 분야를 차치하고서도 인터플 레이가 클래식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은 커. 독점 계약이 된 오케스트라만 5개에 유명 음반 레이블 3개 야.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제작사마 저 많아서 이권이라는 이권은 모두 독점 계약한 오케스트라에 주고 있어. 아마 인터플레이의 영향력은 더 커질 거야.”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아듣겠지만 카밀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그래서요?”

    “얼마 전에 인터플레이에서 연락이 왔어. 베를린 필하모닉과 독점 계약을 하고 싶다고.”

    “••••••네?”

    이건 무슨 헛소리인가 싶다.

    “내 생각에는 그쪽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준 것 같아. 경고 같은 거지. 자기들을 적으로 돌려서 좋을 거 없으니 함께하자고 말이야.”

    “빌어먹을 놈들.”

    푸르트벵글러의 말마따나 상종 못할 놈들이다.

    독점 계약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 짓 해선 안 돼요. 그런 계약 맺지 않아도 베를린 필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어요.”

    거대 자본에 굴복하여 그들이 떼어 주는 돈을 받아먹으며 음악을 하라 니.

    형태만 다르지 과거 권력에 예속되 어 그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했던 것 과 다를 바 없다.

    “회장님도 나도 그리고 세프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우리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야.”

    카밀라는 인터플레이의 영향력이 매해 급진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설 명하면서 내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하면 그들은 본인 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범법이 아 닌 선에서 움직이고 있고.

    설사 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효과 적이진 못하다고 말이다.

    “재판을 질질 끌 수도 있고 아니면 해먼 쇼익 같은 인간을 버릴 수도 있지.”

    돈에 미쳐 영혼을 판 평론가.

    인터플레이에서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도 힘을 키워야 해. ……찾아서 혼내주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약한 말을 해서 미안해.”

    “카밀라 잘못이 아니에요.”

    카밀라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중이야. 다행 히 인터플레이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은 곳과 접촉할 수 있었어.”

    카밀라가 내게 넘겨준 서류를 가져간 뒤 페이지를 넘겨 다시 돌려주었다.

    살펴보니 익히 알고 있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미시시피

    국제 클래식 음악 경연 조직위원회

    라이징스타 엔터테인먼트

    도빈 재단

    독일 아리아

    유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뮤직 그룹

    WH E&M

    워너비 클래식

    도이 체오퍼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빈 필하모닉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시카고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운영위원회 폴란드 음악 협회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협회

    크리크 운영위원회와 샛별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를 위 해 만들어준 재단이 눈에 띄었다.

    유명 오케스트라나 협회, 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 아리아는 가우왕이 소속된 곳 이라 예전에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몇 번 교류했다.

    유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어딘가 싶어 살펴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작업을 함께한 루드 캣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디자인 뮤직 그룹은 인크리즈 오리 지널 사운드 스코어 작업을 할 때 방문한 적이 있었고.

    WH E&M는 외할아버지가 이끄는 그룹사 중 하나다.

    워너비 클래식은 베를린 필하모닉 레코딩스와 협력 관계에 있는 업체 로 알고 있는데 자세히는 모른다.

    도이체오퍼는 오페라 극장이고…… 그 외에도 꽤 많은 집단 명이 적혀 있다.

    “이게 다 뭐예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하곤 물었다.

    “우리 편.”

    카밀라는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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