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76화
39.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4)
피아노 협주곡 C단조, 베를린 환 상곡은 대학을 가기 위해 활동을 중 단했을 때 만든 곡으로.
베를린에서의 즐거운 추억과 다시 만나고 싶은 염원을 담아내었다.
박수 소리가 가득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이 이내 고요해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새삼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모두 오늘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음 이 전해져서 나 역시 설렌다.
푸르트벵글러와 시선을 교환하고.
차분히 눈을 감자 베를린 필하모닉 이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멀리 서쪽의 그리운 도시는 높이 올라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데.
싸늘한 공기만이 등을 밀어낸다.
1악장. 프레치피탄도(precipitando: 맹렬하게).
♪♫♬♪♫♬
케르바 슈타인의 제1바이올린이 맹 렬하게 치고 나오면서 주제를 확장 시키고.
이승희의 첼로가 그 아래를 묵직하 게 깔아낸다.
바이올린이 살을 에는 듯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서 있는 것조차 허용하 지 않고.
제1주제의 확장 아래.
첼로가 또 다른 주제를 시작하여
대조를 이룬다.
의지.
콘트라베이스가 첼로를 도우며 굳 은 의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고 이내 내 차례가 찾아왔다.
♪♫♬
♪♫♬
쏟아내는 감정 속에서 클라리넷이 작은 희망을 꽃 피운다.
미래를 갈망하는 내게 단 하나의 희망이었던 베를린.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거친 바람에 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의지는 꺾이지 않으며.
결국 클라리넷이 피운 꽃을 쫓아간다.
내 연주가 빨라질수록.
바이올린의 현이 진동할수록 클라 리넷은 더욱 앞선다.
이내.
클라리넷의 멜로디를 이어받아.
다시 한번 독주.
다음 악장으로 넘어간다.
2악장. 알레그레토 콘 푸오코(Alleg retto con fuoco: 조금 빠르고 정열적으로).
1악장 뒤에 곧장 열리는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리고 현악4중주의 스케 르초.
베를린 환상곡의 가장 특징적인, 나로서도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었다.
푸르트벵글러가 비상하는 두 목관 악기를 이끌고 바이올린은 때때로 돌출하여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리고.
카덴차.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음계를 높여 가는데, 박자도 음도 다르게 가야한다.
왼손 5번 손가락을 고정시킨 채 연주해야 하기에 손이 작았던 예전 에는 연주할 수 없었던 부분.
마음껏.
속도를 조절할 필요도 없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면 내 속도를 쫓아올 수 있다.
이제 힘이 부족해서, 팔다리가 짧 아서 억지로 몸을 이동시킬 필요도 없다.
페달을 밟기 어려워 억지로 편곡할 이유조차 없다.
오래 기다렸다, 세계여.
본디 내 피아노를 들려주마.
봄을 맞이한 베를린에게 배도빈의 신곡 ‘베를린 환상곡’은 너무도 반 갑고 값진 선물이었다.
3악장에 이르러 봄의 따스한 햇살을 느낀 관객들은 이어 묵직하게 울 려 퍼지는 첼로와 피아노의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고대했던 이가 돌아와.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있음을.
박수 소리가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 졌다.
이 얼마나 상냥한 마왕이란 말인가.
가슴을 있는 대로 뒤흔들어 놓을 때는 언제고 이렇게나 아름다운 멜 로디로 어루만진다.
감동 (感動).
객석에 앉은 마리 얀스는 깊이 감탄했다.
‘독창적인 구조를 선보이면서도 이만한 완성도를 보이다니. 역시 도빈군인가.’
배도빈의 곡은 선뜻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의 구조와는 전혀 달랐다.
구조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건들 수 있는지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바이올린의 불협화음을 이용한 날카로운 음으로 관객을 두려워 떨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응원하게 하여 결국에는 승리의 엑스터시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곡을 베를린 필이 연주하니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무대였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십 년 째 지휘봉을 쥔 마리 얀스조차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의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비록 마리 얀스처럼 깊게 이 해하진 못하더라도 팬들도 배도빈의 신곡을 듣고 감동하긴 마찬가지였다.
ㄴ 와 나 소름 돋았어.
ㄴ 배도빈, 배도빈 해서 들었는데 결국에는 신계 입시 수준이네.
ㄴ ㅋㅋㅋㅋ 신계 입싴ㅋㅋㅋ
ㄴ 이게 배도빈이지. 배도빈 알기 전에는 클래식 1도 안 듣던 내가 배도빈 음악은 듣는데 진짜 딱 울리는 게 있다.
ㄴ 좋긴 한데 구성이 좀 특이하다. 누가 설명 좀 해주라.
ㄴ 심장아 나대지 좀 마. 왤케 뛰니.
ㄴ 구성 설명하기가 좀 애매함. 전 통적인 1, 2, 3악장은 아님. 굳이 말하면 대중음악에서 가끔 사용하는 방식인 듯.
ㄴ 그래서 그게 뭔데.
ㄴ 보통 콘체르토는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인데 베를린 환상곡은 ‘매우 빠르게-빠르게-보통 빠르게’ 이런 느낌임.
ㄴ 그러면서 피날레는 빵 터뜨렸지.
ㄴ 그거 확실함? 난 들을수록 더 몰입되 던데.
ㄴ 그래서 배도빈이 대단한 거임. 초반에 확 몰아쳐서 잔뜩 긴장시켜 놓곤 조금씩 이야기 풀어내듯 구성 한 거야. 듣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돌출된 부분도 많고. 결국에는 3악장이 빠르지 않아도 긴 장감이 남은 채 들을 수 있고 피날 레가 저렇게 강렬하니 오르가즘을 느끼는 거지.
ㄴ 오르가즘이 아니라 카타르시스 잖아.
ㄴ 오르가즘도 틀린 말은 아닌 듯. 바지 갈아입고 왔다.
ㄴ 여기 정신병자들이 좀 있네.
배도빈의 베를린 환상곡은 초연 즉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매체인 TV와 SNS 그리 고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매체.
더불어 평론가와 기자들을 통한 칼럼 등을 통해 3월 한 달간 전 세계 최고의 화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은 ‘베를린 환상곡’을 정규 연주회의 프로그램으로 삽입.
실황 연주를 녹음한 음반과 블루레 이 타이틀을 판매하였는데 초동 41 만 장(미시시피 디지털 음반 판매, 26개 나라 동시 발매)이라는 경이로 운 기록을 세우며 베를린 필하모닉 레코딩스의 역사를 갈아치워 버렸다.
감동의 곡을 직접 듣기 위해 세계 각지의 음악 팬들이 속속들이 베를린을 찾았고.
모든 일이 순탄했다.
그러나 유명 소설가이자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기도 한 해먼 쇼익이 그 래모폰을 통해 베를린 환상곡을 비 판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타락한 천재와 안일해진 전통의 명문]
클래식은 바흐 이후 차분히 쌓아올린 탑과 같다.
바흐가 마련한 터전 위에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반석을 쌓고 베토벤이란 견고한 기둥이 올라 만들어진 완벽 한 건축물.
음악의 역사는 신을 향해 인류가 쌓아온 바벨탑의 역사다.
그러나 지난 3월.
가장 앞장서 바벨탑의 다시 한번 높게 쌓을 거라 예상했던 배도빈은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21세기에 태어난 고전파라 불리던 배도빈이 어처구니없는 구성으로 많은 클래식 팬들로 하여금 실망감을 안긴 것이다.
그가 발표한 베를린 환상곡은 지금 까지 빈 고전파가 세운 양식을 망가 뜨렸으며 그 멜로디는 저열한 신파에 가까웠다.
품위 없고 체면조차 없었다.
6년 만에 복귀한 그는 총명함을 잃었고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성 만을 가진 채 클래식을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음악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매주 연주됨에 통탄한다.
해당 칼럼은 발표됨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기 소설가, 또 런던 필하모닉 및 여러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던 쇼익이었기에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세력 이 적지 않았다.
여태 배도빈의 곡을 음악성으로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여러 말이 나 왔다.
ㄴ 늙은이가 미쳤구나.
ㄴ 양식을 망가뜨려?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저 병신은 아직도 지가 18세기 사람인 줄 아나?
ㄴ 배도빈의 곡이 신파라는 건 나도 같은 생각임. 울고 웃게 만들 뿐 음악적 깊이가 안 보임.
ㄴ 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소리도 가지가지네. 음악적 깊이가 없댘ㅋ
ㄴ 배도빈의 음악에 깊이가 없다는 말은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베를린 환상곡의 완성도는 파격적인 구성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완벽합니다.
ㄴ 지들이 이해 못 하면서 깊이가 없댘ㅋㅋㅋ 도빈이 곡이 다른 곡이 랑 다르게 감동하기 쉬우니까 쉬운 곡 같지? ㅋㅋㅋㅋㅋ
ㄴ 그래모폰 편집부는 뭐 등신들만 모였겠냐? 저게 사실이 아니면 왜 발표하는데?
ㄴ 깊이 운운하는 애들 혐오스럽다.
ㄴ 1악장 제1바이올린이랑 제2바이올린 불협화음 이용하면서 대칭한 부분 이해는 함?
ㄴ ㅇㅇ. 억지로 긴장감 조성하려는 거지. 애초에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득 채웠는데 좋은 음악이라 할 수 있나? 클알못들이나 좋아하지
ㄴ 별 미친 ㅋㅋㅋㅋ
이러한 논쟁 아닌 논쟁은 인터넷뿐 만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한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어졌다.
사카모토 료이치, 마리 얀스, 제르 바 루빈스타인과 같은 거장들은 베를린 환상곡의 새로운 시도와 완성도를 근거로 하여 음악적 가치를 주 장했다.
미카엘 블레하츠, 가우왕, 찰스 브라움 등은 해먼 쇼익의 ‘배도빈의 음악은 신파’라는 말을 음악이 아름답고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존재한 다는 주장을 내세워 강력하게 비난 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분노에 찬 사람은 바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였다.
“머리에 똥만 찬 늙은이가 되먹지 못한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을 보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은데 그 주변인들은 속히 그를 치료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배도빈을 옹호하는 세력들 이 해먼 쇼익을 비난하자 영국 음악 인을 주축으로 한 세력이 반격에 나섰다.
“배도빈의 지나치게 빠르고 복잡한 연주는 감정을 흔들어 놓을 뿐입니다. 이해는 없이 그저 자극적인 것을 찾아 클래식의 본질을 흩트리고 있어요. 본래 클래식이라 하면……
두 세력이 치열하게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와중에 언론과 음악 팬 들이 정작 바라는 것은 배도빈의 입장 표명이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질 문이 쇄도했으며 배도빈의 발언은 이 논란의 다이너마이트에 점화를 하고 말았다.
“개가 짖는다고 대꾸하진 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