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75화 (17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75화

    39.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4)

    “이게 뭐야.”

    배도빈의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 조, 베를린 환상곡을 본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첫 마디였다.

    1 악장부터 프레 치 피 탄도(precipitant do: 맹렬하게)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는 베를린 환상곡은 세계 최고 수준의 그들이 보기에도 선뜻 연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너 혹시 아직 화나 있냐?”

    신고식을 주도적으로 기획했던 마 누엘 노이어가 배도빈에게 물었고.

    배도빈은 말없이 씩 하고 웃었다.

    복수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 따위 마누엘 노이어가 할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마누엘 노이어 역시 농담이었을 뿐 이내 악보를 차분히 살펴보았다.

    배도빈이 베를린 환상곡을 연주할 단원들 앞에 섰다.

    “우선 개괄부터 시작하죠.”

    곡을 만든 의도와 강조할 부분, 주 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것은 푸르트벵글러의 좋은 버릇 이었고.

    배도빈은 그의 방식을 따라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먼저 곡을 이해시키고 자 했다.

    악보를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난 색을 표하던 단원들은 배도빈이 설 명을 시작하자 곧 어느 때보다 진지 하게 자리에 임했다.

    “그럼 일주일간 개인 연습을 한 뒤 에 연습을 시작할게요. 의문 사항은

    언제든 물어보세요. 이상.”

    배도빈이 설명을 끝내자 단원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자연스럽게 베를린 환상곡이 화제 가 되었다.

    “이거 좀 터프하겠는데.”

    “이 부분은 재밌는 것 같아. 연주 해 봐야 알겠지만 클라리넷이랑 바이올린이 활용이 좋은 것 같은데.”

    “어디?”

    “여기. 스케르초.”

    “망할 꼬맹이. 괴물 같은 곡을 만들었구만.”

    그런 와중에 이승희가 홀로 짐을 싸고 있는 나윤희에게 다가갔다.

    “어때? 잘 적응하고 있어?”

    “아, 네, 네!”

    다급히 대답했던 나윤희가 이승희 의 얼굴을 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요. 인사 말고 오늘 처음 이 야기해 봐요.”

    “하핫! 너 재밌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 도빈이네 집에 갈 건데.”

    “네?”

    나윤희가 고개를 돌려 배도빈을 보았다. 면접 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조금 무서워 함께하기 부담스러웠지 만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재벌 중 하나인 WH 그룹의 유장혁 일가가 어떻게 사는 지 말이다.

    “그래도…… 되나요?”

    “그럼. 도빈아.”

    이승희의 부름에 배도빈이 고개를 돌렸다.

    “윤희랑 같이 놀러 가도 돼?”

    “ 네.”

    “봐. 된다고 하잖아. 어서 준비해.”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마에스트로. 천재 작곡가. 재벌 3세. 한국에서만 80만 명의 콩깍지를 거느리고 있는 마왕.

    나윤희는 그런 배도빈을 친근하게 대하는 이승희를 존경스럽게 보았다.

    주차장으로 나온 세 사람이 이승희 의 차 앞에 멈추었다.

    “ 타.”

    이승희가 나윤희에게 조수석에 앉을 것을 권했고 나윤희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도빈이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기에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저…… 타세요.”

    나윤희가 뒷문을 열고 조심스레 말 했다.

    “안 타는 게 좋을 거예요.”

    “ 네?”

    “위험해요.”

    배도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윤희가 당황해서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승희가 운전석에 앉아 배도빈 에게 말했다.

    “뭐 해? 안 타?”

    “차 있어요. 집에서 봐요.”

    “아, 그럴래? 그럼 윤희만 타.”

    나윤희는 이승희와 배도빈을 번갈 아 보았다.

    배도빈이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지만 눈치가 느린 나윤희는 그것 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빨리〜”

    “아, 네. 네!”

    조수석에 앉은 나윤희가 안전벨트를 하고선 배도빈을 보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 저러지.’

    이승희가 차를 몰기 시작하고 3분.

    나윤희는 배도빈이 왜 위험하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언니, 나 왔어〜”

    “어서 와. 어머. 손님이 한 분 더 오셨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집에 도착해서 막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이승희의 목소 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차분했던 나윤희의 머리카락이 누 군가 헤집어 놓은 것처럼 엉망이 되 어 있었다.

    여섯 살 때 나를 영입하기 위해 ‘베토벤’으로 찾아온 그녀의 차를 얻어 타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에 말렸건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승희의 난폭한 운전에 고생깨나 한 듯했다.

    “우읍.”

    헛구역질까지.

    “몸이 안 좋았어? 말을 하지. 저기 소파에 좀 누워.”

    “그래요. 창백한 거 봐. 집사님, 여 기 담요 좀 가져다주세요.”

    “죄송합니다.”

    나윤희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소파 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조금 걱정했는데.

    어머니께서 솜씨를 발휘하신 그륜 콜(채소를 끓여 만든 요리. 시래깃 국과 유사하다) 냄새가 은은하게 퍼 질 즈음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우와아. 언니, 잘 먹을게.”

    “많이 먹어. 윤희 씨도 괜찮으면 들어요. 차린 건 많이 없지만.”

    “아니에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륜콜과 오리주물럭을 메인으로 한 오늘 저녁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나도 한국 사람이 다 된 모양인지 점심으로 독일 음식만 먹다 보니 물리는 감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쉐프 가 해주시는 한식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승희도 한국 음식이 그리워 자주 찾아오는데 아마 나윤희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조금씩이긴 해도 열심히 먹는 걸 보니 이승희가 잘 데려온 듯하다.

    “와. 언니 고추장은 직접 한 거야?”

    “그럴 리가. 샀지. 한인 마트가 있더라고. 주인도 친절하고.”

    “형아, 매워.”

    “자, 물.”

    워낙 조용해서 이승희도 어머니도 나도 도진이는 당연하게도 굳이 나윤희에게 말을 시키지는 않았다.

    식사 시간이 무르익자 나윤희도 스 스로 뭔가 친해지고 싶은지 이승희나 어머니께 이것저것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보기 좋다.

    “그러고 보니 너 네이즈랑은 어떻게 되었어?”

    도진이에게 오리를 덜어주는데 이 승희가 나윤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카밀라도 한 번 언급 한 적 있어서 궁금하던 차였다.

    “아…… 국장님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했어요. 흐흐.”

    “정말이지. 네가 있던 곳이니까 심 한 말은 안 하겠지만 거기 정말 질 안 좋은 곳이야. 순진한 애들 데려다가 계약 조건 사기 치면서 굴려 먹잖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곳이야. 얼마 전에는 인터플레이랑 MOU도 했던데. 선배들이 안 알려줬어?”

    심한 말 안 한다면서 다 한다.

    “그러게요. 제가 너무 숫기가 없어서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나윤희는 조금 씁쓸하게 정확한 답을 피했다.

    분명 네이즈 엔터테인먼트라는 곳과 헤어지면서 상처를 받은 것 같은데 부디 자신의 길을 차분히 걸었으면 한다.

    “아. 그보다 오늘 악장의 곡 정말 대단했어요. 2악장에서 목관과 바이올린이 피아노랑 대화하는 부분이 특히요.”

    신경 썼던 부분이다.

    “말 편하게 해요.”

    “아……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 피아노의 엇박자랑 바이올린의 불협화음이 어울리는 날카로 움이 되게 좋았어. 템포가 빨라서 실제로 연주했을 때 어떻게 들릴지 너무 궁금한데요. 어…….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완충되기도 할 테 니까 결국에는 빨리 듣고 싶어.”

    말하는 도중에 존대를 섞는 걸 보면 조심성이 많은지 아니면 이러한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

    우선은 순수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내가 고려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었기에 나윤희가 제2바이올린 부수석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얼마나 정확하게 연주하는지가 중 요하겠지. 이렇게나 빠른 곡을 한 달 뒤에 연주하려면 엄청 고생할 거 야.”

    이승희가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저는…… 되게 기대돼요. 언젠가 저도 연주할 수 있겠죠?”

    뭐라는 거야.

    이승희를 보자 그녀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로 나윤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에 물었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에요?”

    나와 이승희의 질문에 도리어 나윤희가 당황했다.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 당장 다음 주 정기 연주회 나가야지.”

    “ 네?”

    “도빈이 베를린 환상곡도 당연하고. 그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윤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렇게 바로 실전에 투입될 줄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손이 부족한 베를린 필하모닉에 예 비 전력 따위 없다.

    사람을 뽑는 데 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곧장 실전투입이 가능한 사람을 받기 때문이다.

    그걸 몰랐던 것 같다.

    “여, 연습하러 갈래요.”

    어머니께 서둘러 인사를 하고 일어 서려는 나윤희를 이승희가 잡았다.

    완연한 봄이 베를린을 찾을 무렵.

    전 세계 음악 팬들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찾았다.

    배도빈이 무려 5년 만에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데 그 초연을 무려 베를린 필하모닉이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그의 신곡을 기다렸던 음악계 거장들을 포함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들마 저 배도빈 피아노 협주곡 C단조, ‘베를린 환상곡’을 듣고자 발을 옮겼다.

    독일 내 4개 방송사와 2개 라디오 채널에서 중계하였고.

    전 세계 57개 나라에서 오늘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를 들려주기 위해 준비를 하였고.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는 오늘 초연을 녹화하여 DVD로 판매할 계획을 이행하는 중이었다.

    관객들은 잔뜩 부푼 가슴을 간신히 붙잡으며 객석을 채워나갔으며 기자 들은 회장을 찾은 유명 인사들로부 터 인터뷰를 따기 위해 분주했다.

    ㄴ 좀 나가봐라. 버퍼링 때문에 화 면 끊기잖아.

    ㄴ 배도빈의 신곡을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들을 수 있는데 못 가다니.

    ㄴ 오늘 배도빈 신곡만 연주함?

    ㄴ 첫 곡이 배도빈 신곡이고 다음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임.

    ㄴ 악장 취임했는데 피아노는 도빈 이가 치나 보네?

    ㄴ 그걸 어떻게 알아?

    ㄴ 악장 자리에 케르바 슈타인이 앉아 있잖아. 도빈이 없고.

    ㄴ 올ㅋ

    ㄴ 도빈 이다.

    ㄴ 푸벵옹이네.

    ㄴ 도빈이 얼굴 일 잘한다 ㅠㅠ

    ㄴ 얼굴 천재 ㅠㅠ

    ㄴ 진짜 배도빈 얼굴은 개연성 하나 도 없이 생김.

    ㄴ ??

    ㄴ ㅋㅋㅋㅋ 비현실적이란 말임.

    ㄴ 음악 듣는데 와서 얼굴 얘기 좀 하지 마라. 얼굴 칭찬하는 거 도빈이 음악 모욕하는 거임.

    ㄴ 아닌데. 도빈이가 팬카페에 잘생 겼다는 말 좋다고 했는데.

    ㄴ ㅇㅇ. 맞는 말이니까 계속하라고 했었음.

    ㄴ 와. 베를린 필에 한국 사람 3명 인데 악장, 수석, 부수석이네.

    ㄴ 헐. 그러게.

    ㄴ 저기 직접 가서 보는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임?

    ㄴ 보면 모르냐. 마리 얀스. 사카모토 료이치. 미카엘 블레하츠. 다 음악계 거장들이잖아. 오, 찰스 브라움 도 있네.

    ㄴ 내 생각엔 가우왕 또 변장하고 갔음.

    ㄴ 아니네. 그냥 갔네.

    ㄴ 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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