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72화
39.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1)
악장이 되고 나서는 정말이지 이렇게 바빴을 때가 또 있었나 싶었다.
나, 케르바 슈타인, 레몽 도네크, 파울 리히터로 구성된 악장단은 매 연주회를 함께 준비했고.
미팅 시간은 치열했다.
푸르트벵글러의 악보를 분석하여 연습에 앞서 단원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업무였는데.
악단의 의견을 수렴하여 푸르트벵글러에게 전달하는 반대 경우도 악 장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단원, 사무국, 상임 지휘자 사이에 서 활동하는 게 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간 니아 발그레이 없이 버틴 악 장단에 경의를 표하였다.
“악장, 방금 변경한 점 말인데.”
“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지 납득이 안 되어서 말이야. 비브라토를 끌면 뒤이어 나오는 플루트를 방 해하지 않을까?”
“세프는 자연스러운 연결을 원하고 있어요. 덕분에 플루트도 시작부터 비브라토를 넣어서 곤란해졌죠. 하 지만 효과는 분명할 거예요.”
다들 똑똑하고 음악에 대해서는 이해가 빨라서 단원과의 대화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사무국과의 대화는 언제나 나를 난감하게 했다.
“미스터 배, 잠깐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스케줄 때문에 그런데. 혹시 2주 뒤에 하루 더 가능할까요? 파리 행 사에 인원을 파견해야 하는데 레몽 도네크가 포함되어서요.”
“다다음 주라면 제 차례로 두 번 있잖아요. 설마 세 번이나 하라는 건 아니죠?”
“정말 미안해요. 케르바 슈타인은 다음 주에 세 번 잡혀 있고 파울 리히터는 한 달 내내 잡혀 있어요.”
‘이 상태로 어떻게 버틴 거야?’
이승희를 비롯해 베를린 필하모닉 이 지난 몇 년간 불평을 한 것도 납득이 되었다.
대체 그간 어떻게 버텼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그래도 미스터 배가 악장이 되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당신이 없었을 때는 세 악장이 과로사 할 거 라 생각했어요.”
푸르트벵글러가 왜 폭군이라 불리 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인력은 충분하게.’
그렇지 않으면 연주회 스케줄을 줄 여야 한다는 말인데 그 점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었다.
사실 3일 간격으로 한 번씩 정기 연주회를 가지고 그사이에 레몽 도네크 처럼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는 일도 있으니까.
사실상 베를린 필하모닉은 무리한 일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운영할 때 확 실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 또요?”
사무직원이 울 것 같아서 고개를 흔들고는 물었다.
“아뇨. 어려워 말고 얘기해 보세요.”
“같은 주에 면접도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스터 배가 빠진 제2바이올린 부 수석 자리를 채워야 해서. 세프도 꼭 참가하라고……
“어쩔 수 없죠.”
사람을 뽑는 일도 내가 배워야 할 일이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파 악하려면 직접 면접도 보는 게 도움 이 될 테니까.
푸르트벵글러도 날 위해서 이런 자 리에 참가시키려고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부탁해요, 멀핀.”
미래를 위해 배울 생각으로 들어온 거니까.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미팅, 연습 시간을 제외하고는 푸르트벵글러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보통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이 어지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도빈아, 이 곡 어떻게 생각하느냐.”
“슈만이네요.”
푸르트벵글러가 넘겨준 악보는 로베르트 슈만의 2번 교향곡 C장조였다.
“고민한 흔적이 많아요. 긴 서주라 든지 첫 번째 교향곡과 다르게 상당 히 차분하게 분위기를 형성한다든지요. 악기가 늘어나면서 고조시키는 점이 좋네요.”
“이걸 만들 때의 슈만은 꽤 힘든 상태였다지. 지휘자에게 보낸 편지 에 반쯤 병든 상태에서 만들었다고 했었다. 마지막 악장을 적을 때야 자신을 찾았다고 말이야.”
알 것 같은 느낌이다.
푸르트벵글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발전부가 참 마음에 들지 않니. 첫 주제를 활용하는 방법이 독특해. 하지만 부점 리듬 주제는 불필요하 게 느껴지는군.”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있었기에 발전부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흐음. 그럼 어떻게 연주하면 좋겠느냐.”
“뒤에 따라오는 응용구를 강조하면 좀 더 의미가 생기겠죠.”
부점 리듬을 응용한 부분을 짚어 설명하자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관악기가 힘을 써줄 부분이다.
“좋은 생각이다.”
이렇게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내게 먼저 의견을 물었고.
나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상당히 진취적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부분은 확실히 푸르트벵글러를 본받아 나중에 내 악단의 악장 이나 단원들을 상대할 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아, 그리고 숙제는 어떻게 했느냐.”
“여기요.”
푸르트벵글러에게 서류를 넘겼다.
다른 악장과 달리 푸르트벵글러는 내게만 한 가지 임무를 더 부여하였는데.
바로 연주회 별로 각 악기에 대해 분석해 지면으로 보고하는 일이었다.
푸르트벵글러 본인에 대한 것도 함께 제출하라고 하여 늦은 밤까지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곤 했다.
채은이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원고를 집필할 수 있는지 궁금 해질 정도였다.
“흐음. 좋아. 코멘트는 내일 해주 마.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꾸나.”
“전 조금 더 있다 갈게요.”
“음? 벌써 9시인데.”
푸르트벵글러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얼마 안 남았잖아요. 발표.”
“그렇군.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푸르트벵글러가 귀가한 뒤 휴식하 며 만들었던 피아노 협주곡을 다듬 기 시작했다.
C단조, 3악장으로 구성했는데 만 들 때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을 염두 에 두고 쓴 거라 그리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없지만.
악장 오디션 이후로 보다 나다운 음악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 하나 더.
찰스 브라움을 독주자로 한 협주곡 또한 욕심을 내기 시작하여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봄이 다가와 버렸다.
2월 마지막 주.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컴퓨터는 꽤 익숙해졌는데 베를린 대학의 수강 신청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리가 남아서 클릭을 했건만 자리가 없다는 메시지가 떴고 새로 고침을 하면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정기 연습과 연주회가 있는 요일을 제외하고 이 틀간 수업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시간표를 출력해 달라고 집사에게 부탁하고 출근했는데.
귀가해 보니 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곤 시간표를 넘겨주었다.
“도빈아, 혹시.”
“네.”
“이 시간표 잘못 짠 거 같아서. 밥은 언제 먹으려고?”
눈을 깜빡이곤 시간표를 보자 화요일과 목요일이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날에는 강의를 들을 수 없으니 최대한 가득 채웠는데, 막상 시 간표를 보니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음악사와 음악학에 대한 것만 두고 나머지는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5년 전 유럽으로 건너온 바이올리 니스트 나윤희(27세)는 얼마 전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에 참가했다.
그녀의 매니저는 무리한 도전이라 며 말렸지만 나윤희로서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유럽에서 조금씩 인정받고 있었는데 특이하게 지휘과를 졸업하기도 했고 작곡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휘자.
그 끝에 서 있는 마에스트로.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이 스네 이더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꿈을 키 워온 나윤희는 그와 같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도 그 일환으로 그녀에게는 중요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오디션은 1차부터 그녀에게 커다란 벽을 느끼게 해주었다.
배도빈, 찰스 브라움, 제임스 파슨 스의 바이올린은 사람인가 싶을 정 도로 어마어마했다.
나윤희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었던 1차전에서 아쉽게 4위에 그쳤고 남 은 2차전과 3차전에서 점수를 만회 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는 최종 순위는 16위.
내로라하는 인재들 사이에서 분전 한, 그녀 역시 충분히 세계적인 기 량을 갖췄음이 증명되었지만.
그녀가 바랐던 최고의 결과는 아니었다.
특기였던 연주와 달리 곡 해석과 지휘에서는 아쉬움이 보였고 베를린 필하모닉 전체를 상대로 한 질의응 답에서는 소심한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매니저는 나윤희에게 그럴 줄 알았다며 괜히 시간을 낭비해 연주회 일 정이 밀렸다며 투덜댔고.
소심했던 나윤희는 그 때문에 더 크게 상심했다.
그럴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입단 응시 권유는 너무나 달콤한 제안 이었다.
‘으아아.’
깔끔하게 정장을 입은 나윤희는 조심스레 베를린 필하모닉을 방문했다.
악장 오디션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 이 터질 듯이 뛰었다. 청심환을 꺼 내 먹고서도 진정되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베를린 필하모닉 제2바이올린 부수석.
전임자가 그 유명한 배도빈이었기 에 나윤희는 더욱 긴장되었다.
기껏 불러주었는데 기대에 부응하 지 못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떨린 나머지 실수라도 하면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은 그녀의 소심함과 걱정 많은 성격마저 이겨 냈다.
‘가자. 열심히 했잖아.’
그렇게 문을 열었는데 대기실에 아무도 없었다.
‘어? 여기가 아닌가? 맞는데?’
핸드폰을 꺼내 면접 장소와 날짜를 확인한 나윤희는 대기실에 아무도 없음에 당황했다.
‘1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왜 아무도 없지? 혹시 무슨 일 생긴 건가?’
그렇게 초조하게 대기실에 서 있던 나윤희는 30분이 흐른 뒤에야 조심 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면접 시간에 되었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무직원 멀핀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멀핀이라고 해요. 준비 가 되셨다면 곧장 시작해도 괜찮을 까요?”
“아, 네. 네! 그런데……
“네.”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신…… 건 가요?”
“아뇨. 오늘 면접자는 윤희 씨뿐이 에요.”
“네?”
상냥하게 웃고 앞장서 걷기 시작한 멀핀을 따라가며 나윤희는 혼란에 빠졌다.
‘아아. 혼자라니. 더 긴장되잖아.’
청심환을 하나 더 준비해 오지 않았음에 낙담하며 나윤희가 면접실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