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70화 (17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70화

38. 노력하는 사람(4)

오늘 연주할 곡은 요하네스 브람스 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푸르트벵글러에게 시선을 보내자 곧 베를린 필하모닉이 장엄히 곡을 시작했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곡은 여러 면에 서 나를 닮았는데.

연주자를 고려하지 않는 이 고집스러운 난이도가 그러했다.

이 독창적인 대화.

브람스가 만들어낸 이 폭탄은 그가 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잘 뒤흔드는 자였는지 알려준다.

나는 이를 타오르는 숲으로 여겼다.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 너무 빠르지 않게).

절제된 감정선을 점차 뚫어내기 시 작한 베를린 필하모닉.

관악기 사이에서 플루트가 아름답게 선율을 이어나가기 시작하고 이윽고 오보에가 다시 그것을 이어받아.

장중한 분위기를 더한다.

잠깐의 정적.

타오르는 고목처럼 브람스만의 긴 장감이 피어오르고 이어 화마가 숲을 덮쳤다.

그 불길 사이에서.

내 차례가 왔다.

치솟는 슬픔.

터전을 잃은 산새처럼 주변을 맴도는 선율.

새는 이내 불붙은 숲으로 낙하한다.

관객들이 아름다웠던 한때를 꿈꾸 며 아기 새가 살아 있길 바라는 산 새의 불안과 아픔을 느끼도록.

활을 쓸어내듯 움직인다.

너무 빠르지 않게.

이 얼마나 훌륭한 지시란 말인가.

절제되었으나 이 작고 여린 선율은 수직적 움직임의 변화만으로도 충분 히 감정 전달한다.

그리고.

‘좋은 악기야.’

캐논의 음량은 이 슬프고 여린 음 률마저 정확히 노래한다.

이미 죽은 아기 새를 발견한 산새.

음악이 잦아들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파르르 떨리는 날갯짓을 연주한다.

날카로운 슬픔.

두 주제적 동기가 가진 독특한 리듬을 변화하고 변화하여 폐부를 찌 르는 듯하다.

베를린 필과 함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비극을 알린다.

‘녀석.’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이 혹시나 바이올린 소나타 때의 판정 에 불만을 가질 것을 걱정했다.

1차와 순번이 같았기에 배도빈이 자신 뒤에 연주할 찰스 브라움이 제 평가를 받게 하기 위해 연주에 힘을 빼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선곡 자체도 평소 배도빈의 스타일이었다.

독주는 그야말로 격렬.

배도빈이 넘긴 악보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곡이 가진 장점을 더욱 극 대화하여 보다 명확히 전달하였다.

지금까지의 배도빈의 음악처럼 말 이다.

워낙 고집이 강한 놈이고 이상한 부분에서 원칙을 지키려는 녀석이기 에 걱정했거늘.

그것이 기우에 불과했음에 푸르트벵글러는 안심했다.

‘아니지. 도빈이가 본인 스타일을 버릴 리가 없나. ……나도 늙었나 보군. 쓸데없는 걱정이 늘었어.’

애초에 배도빈은 작곡과 피아노에 집중했고 바이올린은 어렸을 적, 1 집 행사와 베를린 필에서 활동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정확성은 세계적인 수준 이었다. 그 음색과 폭력과도 같은 표현력은 세계 제일이었다.

배도빈의 바이올린이 기교적으로는 찰스 브라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 도 바이올린만을 탐구한 찰스 브라움 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그저 자신의 음악을 이어감에 푸르트벵글러는 흡족했다.

악장, 아니, 자신을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할 배도빈에게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독보적 위치보다.

이렇게 확고한 음악적 세계관과 뛰 어난 자를 인정할 줄 아는 아량 그 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합격이야.’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을 자신의 후계자로 확신했다.

한편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 의 2022년 버전이라는 이번 오디션을 관음하기 위해 극비리에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찾은 가우왕은 객석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변장까지 해가며 ‘자신을 이긴 남 자’와 찰스 브라움의 대결을 확인하 고자 했던 가우왕은 두 사람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고 충격에 빠졌었다.

찰스 브라움이 완벽하게 깨질 것을 바랐기에.

찰스 브라움의 극에 달한 절제미를 듣곤 이를 빡빡 갈았다.

그런데 오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배도빈이 왜 세계 최고의, 21세 기 최고의 음악가인지 다시금 상기 시켜 주는 듯했다.

‘그래. 진즉에 이랬어야지.’

가우왕은 예전 배도빈과의 경연을 떠올렸다.

분명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지금은 도리어 나을 거라 자신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 아니, 대부분 이 배도빈의 음악에 손을 들었던 이 유는 이 풍부한 감성에 있다고.

가우왕은 판단했었다.

곡을 이해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 하는 데에 있어서 배도빈은 세계 그 어떤 지휘자, 연주자보다 뛰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찰스 브라움이 배도빈보다 뛰어날 순 있지만.

악단을 운영하는 면에 있어서는 역 시 배도빈이 독보적이었다.

‘훌륭하다, 꼬맹이.’

자신의 가슴을 뒤흔든 배도빈에게 가우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배도빈이 연주를 마치자.

가우왕과 마찬가지로 벅찬 감동을 받은 관객 모두가 일어서 베를린 필 과 배도빈에게 박수를 보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도 엄마 손을 잡고 멋모르고 따라온 아 이도 배도빈의 연주를 들을 때면 항 상 가슴이 벅차올랐다.

배도빈이 무대를 떠나고.

잠깐의 간격 뒤에 찰스 브라움이 무대에 올라섰다.

‘멋진 연주였다.’

그는 앞선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하모니를 듣고 나서는 크게 감 동했다.

이 쉽고 직관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연주를 위해 얼마나 깊이 악보를 파 고들었을지.

찰스 브라움은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정교한 작업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음악의 내적 부분과 연주자와 청자 그 외 다른 외적 사항을 모두 고려 해야 했기에.

찰스 브라움은 다시 한번 배도빈의 천재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자신이 왜 배도빈에게 집착했고 또 넘어서 고 싶었는지를 말이다.

이미 바이올린의 황태자라 불리던 그가 정상에 가까운 위치에서도 매 일 14시간 이상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였던 이유는.

배도빈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

‘저 아이와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

그와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 문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찰스 브라움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시선을 교환하였다.

그가 선택한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바이올린의 거장 요제프 요아힘은 네 명의 위대한 음악가가 남긴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독일에는 네 곡의 바이올린 협주 곡이 있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가장 위대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브람스는 진중하여 그와 필적하고. 막스 브루흐는 그중에서도 가장 고혹적이 며.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가공된 보석이다.’

베토벤처럼 극적이지도 브람스처럼 진중하지도 막스 브루흐처럼 매력적 이지는 않지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매 우 균형 잡혀 있었다.

때문인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로 부터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 데, 그의 독창적인 음악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선 뒤였다.

낭만적인 멜로디와 정제된 형식미.

그러면서도 독주자가 1주제를 연주 되거나 카덴차를 기입한 것으로도

새로운 시도와 음악적 정체성을 고 집했던 음악가 멘델스존.

천재적인 재능, 유복한 가정, 유려 한 외모를 가졌던 그는 살아생전 수 많은 찬사를 듣기도.

또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 위대한 음악가의 음악에 찰스 브라움은 동질감을 느끼고 그가 남 긴 우아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선율.

정제된 카덴차.

섬세한 파이어버드의 음색.

그가 연주를 듣는 내내 관객들은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 * *

뜬금없이 가우왕이 집으로 찾아왔다. 최지훈은 난리법석을 떨며 이제 조금 말문을 튼 독일어로 인사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그냥. 근처에 놀라왔다가 이사했다기에 와봤지.”

연주회 일정 때문에 바쁜 양반이

그럴 리가 있나.

“찰스와의 오디션이 그렇게 신경 쓰였어요?”

“아니야, 인마!”

놀리려고 한 말인데 정말인가 보다.

“형아, 책 읽어줘.”

가우왕과 인사를 나누는데 도진이 가 다가왔다.

도진이는 가우왕을 올려다보더니 내 뒤로 숨었다.

“뭐야. 네 동생이냐?”

“네. 도진아, 형 친구야. 인사해.”

“반갑다, 꼬맹아.”

가우왕이 자세를 숙여 도진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도진이가 고개를 훼 돌리곤 작게 말했다.

“이상하게 생겼어.”

“부끄러운 모양이네. 몇 살이냐?”

“다섯 살이에요.”

“낯가릴 때네. 너랑 다르게 귀여운 면이 있구만?”

최지훈을 보자 고개를 짧게, 좌우 로 저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굳이 전할 필요 없다는 뜻인 것 같다.

나도 가우왕을 놀리는 건 재밌어 한다만 상처받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일단 들어와요.”

“실례하지.”

그렇게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가우왕과 저녁을 함께하곤 옥상 라운지 에서 차를 마셨다.

“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 건물 전체를 집으로 쓰다니.”

“원래 호텔이었대요. 할아버지가 리모델링을 해줬어요.”

“빌어먹을. 부럽잖아?”

확실히 옥상 라운지는 정원이 가꿔 져 있어 여러모로 자주 찾게 된다.

“그래서. 만족은 했어요?”

“뭐가?”

“오디션이요.”

“신경 안 쓴다니까 그러네.”

가우왕을 빤히 보니까 코웃음을 치 더니 작게 말했다.

“뭐, 평소대로 하더만.”

그 말에 웃고 말았다.

그 뒤로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주고받았다.

그는 최근 중국 내수 시장을 노린 피아니스트 영화에 기술 감독을 하 고 있다고 했다.

연주회로 바쁜 줄 알았는데 그런 일까지 하고 있어 놀라 물으니.

그 영화를 보고 중국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기특한 대답을 하였다.

“소소는 어떻게 지내요?”

“걔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해요?”

대답을 못한 가우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해. 걔는 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고. 난 걔가 무서워서 피해 다니고 있다고. 명절에도 안 만나.”

“무슨 일 있었어요?”

“예전에 실수로 걔 얼후를 망가뜨렸거든.”

안 맞은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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