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68화 (16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68화

    38. 노력하는 사람(2)

    ‘너는 희망이니까.’

    홍승일뿐만 아니라 히무라도 나카 무라도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내 음악이 그들의 삶에서 힘이 된다면 기쁜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까 지 내 음악을 생각해 줌에 조금 난 감할 때도 있다.

    아니, 부담스럽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일은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 일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말이다.

    ‘걱정이네.’

    배도빈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온 니나 케베히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는 단 연 베토벤과 배도빈이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만큼은 걱정이 되었다.

    3주 전, 니나는 찰스 브라움으로부 터 악장 오디션의 반주를 부탁받았는데, 배도빈이 참가하기에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찰스 브라움 측에서 끈질 기게 부탁을 하여 직접 얼굴을 보고 거절할 생각으로 그와 만났는데.

    니나 케베히리 앞에서 무작정 연주를 시작한 찰스 브라움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버렸다.

    그가 대체 언제 이런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니나 케베히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바이올린의 황태자라 불 리던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 이었다.

    적어도 니나 케베히리가 듣기로는 그보다 훌륭한 연주는 없었다.

    예전 배도빈의 연주보다 훨씬 정교 했다.

    결국에는 배도빈이 참가하는 오디 션에서 다른 사람의 반주를 해줄 수 없었기에 의뢰는 거절했지만.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알고 있기에 니나 케베히리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찰스 브라움의 바이올린 이 낫다고 말하기엔 배도빈의 자존 심이 상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자신 있는 거야 좋은 일인데. …… 역시 그냥 평소대로 응원이나 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했지만.

    결국에는 배도빈이 마음을 단단히 먹길 바라여 조금 강하게 이야기했는데 역시 마음에 편치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만이 훌륭한 악장의 요건은 아니지만 분명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니나 케베히리는 한숨을 내쉬는 일 이 잦아졌다.

    2022년 1월.

    눈 덮인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만은 열기로 가득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이례적으로 정기 연주회를 한 달간 쉬고 이번 오 디션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개방

    할 정도로 악장 오디션에 성의를 다 했다.

    그런 베를린 필하모닉의 열정만큼 이나 팬과 지원자들 역시 크게 호응 하였는데.

    니아 발그레이 은퇴 후 처음으로 악장을 뽑는 자리였고 그 기다림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원자들의 면면은 대단했다.

    배도빈과 찰스 브라움을 필두로.

    시카고 심포니 악장 출신의 자니 갤럭키.

    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악장이 자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 출신의 제임스 파슨스.

    최근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나윤희 등 어느 이름 하나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서류 심사에서 떨어진 인원들조차 호평을 받는 이가 대부분이었기에 빌 헬름 푸르트벵글러 체제의 베를린 필하모닉의 위상을 참가자들의 이름으로 알 수 있었다.

    “이야. 역시 베를린 필이라는 건 가? 엄청 모였는데?”

    “당연하죠. 빨리 자리 잡지 않으면 사진 못 찍을걸요?”

    “걱정 마. 미리 알아봤으니까. 오늘 이 아니라도 수요일까진 기회가 있잖아.”

    “그러다 배도빈이 오늘 나오면 어 쩌려고요.”

    “어……

    그리고 오늘.

    그 정상들이 자웅을 겨룰 첫 번째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정말 엄청난 규모네요. 이런 적이 있었나?”

    “글쎄. 한 달이라니. 이거 응원하러 왔는데 도중에 돌아가게 생겼는데.”

    배도빈을 응원하기 위해 잠시 베를린을 방문한 히무라와 박선영이 팜 플릿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세 단계에 걸친 테스트의 합산 점수로 악장을 선출 한다고 공표하였는데.

    첫 번째 심사는 바이올린 연주였다.

    과제는 두 곡.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中 택 1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슈 만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中 택 1 곡이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독주자로서의 개인 기량을 평가하고,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곡 이해도와 하 모니 등 전반적인 평가를 하려는 의 도였다.

    피아노 반주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상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맡으나 따로 반주자를 구할 수 있었고.

    협주곡의 경우에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직접 함께하였다.

    앞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자리였기에.

    푸르트벵글러나 단원들은 최선을 다하였고 참가자들은 미래의 동료들 로부터 직접 평가받는 시스템에 긴 장할 수밖에 없었다.

    “형아, 힘내.”

    “오늘 연주도 기대할게.”

    어머니께서 내 머리에 입을 맞추신 뒤 웃으셨다.

    “히무라 씨와 선영이가 근처라고 하는데. 인사는 못 하겠네.”

    “끝나고 하면 되죠.”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도진 이가 손을 흔들어 나도 응해주었다.

    “가자.”

    “응.”

    도진이와 어머니가 관중석으로 향 하신 뒤 나도 최지훈과 함께 대기실 로 향했다.

    고맙게도 바쁜 일정 중에서도 내 반주를 해주기로 하였는데 이젠 제 법 성숙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연습 하는 와중에 만족스러웠다.

    “으으. 역시 조금 떨리네.”

    “네가 떨어서 어쩌자는 거야.”

    엄살을 떠는 건 여전한 듯.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제 기량을 다 보일 수 있는 녀석이라 크게 걱 정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첫 번째야?”

    “왜?”

    “유독 처음이 많은 것 같아. 콩쿠르든 이런 오디션이든.”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이지. 아, 거기 송진 좀.”

    “난 가끔 네 그런 무신경한 점이 부러워. 긴장 같은 거 해?”

    “그럴 리가.”

    무대에 오르기 전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첫 번째 지원자 무대 위로 올라가 시겠습니다.”

    안내자가 대기실로 들어와 나를 호 명했다.

    조율을 겸한 점검도 완벽했고 캐논을 챙겨 일어섰다.

    최지훈과 함께 무대 위로 오르자 정면에 앉아 있는 푸르트벵글러와 단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라면 나와의 관계 때문에 평 가에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 믿기에 안심하고 연주를 준비했다.

    최지훈과 시선을 교환하고.

    활을 길게 꺾어 내리며 왼손으로 충분히 떨림을 주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조.

    1 악장.

    충분히 끌어서 느리게 또한 매우 빠르게 (Adagio sostenuto - Presto).

    헌정하려 했던, 헌정했던 인간을 생각해도 그리 유쾌한 기억은 없지 만 곡만큼은 애착이 가는, 곡이다.

    중후히 진입하여 단조로 서주를 끝 내고.

    약간의 간격.

    피아노가 강렬히 치고 들어온다.

    피아노 소리가 잦아들고 다시금 캐 논의 청명하고 곧은 소리를 뽐낸다.

    그렇게 대화하듯 번갈아가며 연주 하다 다시금 간격.

    달아오른 열기가 차분히 내려앉기 전에.

    다시 한번 열정을 노래한다.

    빠르게. 격렬하게.

    연주의 가감을 줄수록 뒤이어 딸려 나오는 음률은 더욱 극적이게 된다.

    ♪♫♬♪♫♬

    ♪♫♬♪♫♬

    스타카토와 악센트.

    불같은 멜로디.

    타오르는 사랑과 사별 그 뒤의 절 규를 노래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프 레이징의 변화에 주력하며 극적인 표현을 비롯한 기교에 주력한다.

    그러한 내 연주에.

    최지훈의 피아노가 적절히 어울려 주니 내가 의도했던 A장조가 완벽 히 구성됨을 느꼈다.

    ‘괴물이라니까.’

    관중석에 앉아 배도빈의 연주를 듣던 이승희가 슬쩍 미소 지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 조, 크로이처는 유명한 만큼 여러 연주가 연주했지만.

    오늘만큼 격렬한 연주는 드물었다.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아니, 절규하면서도 음 표현에 있어서는 무서울 만큼 정확했다.

    배도빈의 연주는 다른 크로이처 연주보다 훨씬 빨랐는데.

    프로 바이올리니스트도 저만한 속 도로 연주를 하면 음정이 무너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악센트와 스타카토를 정확히 표현하 면서 프레이징의 강약까지 능숙하게 조절하니 극적인 크로이처의 멜로디 가 더욱 부각되었다.

    ‘ 역시.’

    한스 역시 배도빈의 연주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에게 크게 망신을 당했던 그는 창피함을 느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더욱 정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배도빈의 연주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배도빈의 연주는 한스가 생각한 ‘완벽한 연주’ 자체였다.

    과거 어린 나머지 신체적인 문제로 힘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 데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캐논이 더하여 예전보다 더욱 힘 있는 연주가 가능해져 연인을 잃은 슬픔의 절규가 그대로 가슴에 새겨지는 듯했다.

    이승희와 한스의 감상대로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을 찾은 사람 들은 모두 배도빈의 연주에 감탄하였다.

    ‘역시. 이 정도는 해줘야지.’

    잠시 무대 옆으로 나와 있었던 찰스 브라움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으곤 배도빈의 연주에 집중했다.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방향이었다.

    찰스 브라움은 걱정하였다.

    그간 작곡이나 피아니스트로 활동 하고 또 공백도 길었기에 혹시나 배도빈의 바이올린이 퇴화하진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오늘의 연주를 들으니 전혀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어렸을 적보다 나은 연주였기에 내심 안도했다.

    자신이 목표로 할 만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수고했어.”

    “흐아아. 잘된 거 같네.”

    최지훈이 숨을 크게 내쉬며 가슴을

    쥐었는데 눈을 마주하곤 나도 녀석 도 웃었다.

    만족스러운 연주였기 때문이었다.

    서류를 통과한 사람이 총 40명.

    그들이 모두 한 곡을 완주해야만 했기 때문에 심사 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느긋하게 다른 참가자들이 어떤 연주를 하는지 감상하면서 1차 심사 두 번째 곡을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이미 연습은 마친 상태라 실수를 줄이는 정도겠지만 말이다.

    휴식 시간을 틈타 관중석으로 향하자 히무라와 박선영이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히무라. 누나.”

    “멋진 연주였어. 지훈이는 이제 못 알아보겠던데?”

    “하하. 아직 멀었죠.”

    짧게 인사를 나누자.

    다음 참가자가 무대 위에 올라섰다.

    찰스 브라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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