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63화 (16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63화

    36. 악마가 돌아왔다(4)

    한스의 말을 들은 케르바 슈타인과 네빌라가 작게 웃었다.

    “제법인데?”

    악장 케르바 슈타인의 말을 한스가 애써 무시하곤 맥주를 하나 더 주문 했다.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그 모습마저 자랑스러웠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882년에 설립된 이곳은 세계 최 고의 악단이라는 자부심으로 그 역 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베냐민 빌제라는 악독한 인간으로 부터 독립했던 그들은 비록 빌제 관 현악단 시절처럼 궁핍하고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저명한 사업가였던 헤르만 볼프와 당대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었던 한스 폰 뷜로를 만나면서 점차 바뀌 기 시작했다.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들의 열정은 거리에서 펍으로.

    펍에서 오페라극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본인들만의 무대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가장 위대 했던 상임 지휘자를 만나니.

    첫 번째가 사이먼 래틀.

    두 번째가 바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다.

    사이먼 래틀의 다양한 레퍼토리와 세련된 음악.

    카라얀의 다이나믹한 곡 해석과 청 중을 휘어잡는 현악 표현력은 지금 의 베를린 필이 있을 수 있는 반석 이 되었다.1)

    1)실제 베를린 필하모닉 역대 상임 지휘자 재임 순서, 기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스 폰 뷜로(1887-1892), 아르투 르 니키슈(189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22-1934, 1952-1954), 헤르베르트 카라얀(1955-1989), 클 라우디오 아바도(1989_2002), 人!■이 먼 래틀(2002-2018)

    오로지 실력.

    음악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이르렀기에 베를린 필하모닉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이는 곧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신이 되기도 했다.

    최고.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 은 140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어져 오고 있던 것이다.

    “세프.”

    “왜 그러느냐.”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그렇게 헤르베르트 카라얀을 싫어해요?”

    “끄응.”

    미팅을 끝내고 푸르트벵글러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물었다.

    옆자리에 앉은 그는 불편하다는 기 색을 감추지 않았는데 그의 이름조 차 언급하길 싫어하는 걸 봐선 분명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기 위해 지난 4년간 여러 방법을 통해 그 역사를 탐구했는데.

    많은 객원 지휘자와 소수의 상임 지휘자 중에서도 최고는 푸르트벵글러와 래틀 그리고 카라얀이었다.

    그렇기에.

    우연히 접한 칼럼에서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보곤 꼭 한번 묻고 싶었다.

    “K의 연주를 들은 적 있느냐.”

    “그럼요.”

    “그렇다면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묻는 이유라도 있는 게냐?”

    “세프도 카라얀도 훌륭한 지휘자니 까요.”

    내가 푸르트벵글러의 베를린 필하모닉을 사랑한 이유는 푸르트벵글러의 지휘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면 곡은 마 치 다른 옷을 입은 듯 새롭게 다가 온다.

    특히 나 루트비히나 브람스, 브루 크너 등의 곡을 연주할 때면 그 면 모가 부각되는데.

    음악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최지훈에게도 예전에 가르쳐 줬지 만 음악은 이동이다.

    음표의 수직적, 수평적 이동을 통 해 생기는 흐름이 전하는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꽤 많은 음악가는 음악을 해석할 때 종종 단편적인 것에 집중할 때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푸르트벵글러는 곡의 깊이를 더해주고 곡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곤 하는데.

    그것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일부 사람은 ‘모호 하다’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쉰 푸르트벵글러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난……

    “도착했습니다.”

    푸르트벵글러가 막 본심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운전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이렇게 끊기는 거 싫은데.’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드라마도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내서 사람 답답 하게 만들었다.

    “내리자꾸나.”

    “하던 말이나 빨리 계속해 봐요.”

    “뭘?”

    “모른 척하지 말고.”

    “……끄응. 눈치 빠른 꼬맹이 같으니라고.”

    차에 내린 뒤 푸르트벵글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방금 하려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K의 연주회를 부정했고 지 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는 언제나 똑같지. 아름답고 정 교하며 훌륭하게.”

    “모르는 인간들이 여러 말을 떠들 어댔지만 난 K의 그런 연주를 인정 할 수 없다. 그뿐이야.”

    푸르트벵글러는 말을 아꼈다.

    그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고 호사가들이 말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말 따위 푸르트벵글러라면 무시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아쉬운 건 푸르트벵글러의 가슴 벅찬 지휘만큼이나 카라얀 의 섬세함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푸르트벵글러가 벨을 눌렀다. 그 순간 상 념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는 장소였다.

    “음? 온 적이 있느냐?”

    “그럼요. 발그레이의 집이잖아요.”

    마침 문이 열렸다.

    니아 발그레이의 아내 제인 에스터가 상냥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푸르트벵글러 씨. 도빈 군.”

    니아 발그레이와는 거지 같은 신고 식에서 만났지만 그녀와는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그간의 안부를 간단히 나누고 집으로 들어섰다.

    “세프, 도빈아.”

    “ 악장.”

    청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지만 귀가 좋지 않은 니아 발그레이를 위해 그를 정면으로 보고 말했다.

    내 경험상 상대의 입을 보는 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에게도 그럴거라 생각했다.

    “악장은 무슨.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니아 발그레이가 웃었다.

    “그러는 악장도 세프라고 하잖아요.”

    “한 번 들어오면 끝까지 단원이라 하지 않았나. 자넨 여전히 베를린 필의 악장일세.”

    푸르트벵글러의 말에 니아 발그레 이가 작게 웃곤 자리를 권했다.

    전형적인 독일식 가정 요리가 차려 져 있었다.

    “요즘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직접 한 거예요?”

    “응. 어서 먹어봐.”

    니아 발그레이가 직접 준비했다고 하니 체면을 차릴 필요는 없지.

    마음껏 포식해 주었다.

    그중 날 위해 준비했는지 카레로 덮은 크뇌델이 있었는데 무척 내 취 향이었다.

    “솜씨가 정말 좋은데요?”

    “하하. 넌 카레라면 다 좋아하잖아.”

    “그거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훌 륭한 요리를 좋아할 뿐, 카레라면 다 좋은 게 아니라고요.”

    대체적으로 카레가 들어가면 맛있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담소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제인 에스터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는 데 니아 발그레이가 일어났다.

    “잠깐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곧 그가 바이올린을 가지고 왔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연주를 할 때 사용하던 그의 바이올린이었다.

    자세를 잡은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오기 전 솔로로 활동했을 때 주 레퍼토리였던 니콜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no. 24이다.

    정열적인 선율.

    몇 년의 공백과 그의 청력이 무색 할 정도로 힘 있고 멋진 연주였다.

    그가 내는 소리는 올곧고 굳세면서 도 열정적이라 차마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있었을 때는 듣지 못 했던.

    니아 발그레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 의 진면목을 접했다는 느낌이었다.

    손에도 마비가 왔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다.

    연주를 마친 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맛있는 식사와 커피. 그리고 니아 발그레이의 연주까지. 오늘 무슨 날 이에요?”

    농담 삼아 한 말인데 니아 발그레 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제인 에스터는 조금 슬픈 표정이었고 고개를 돌려 푸르트벵글러를 보 자 담담해 보였다.

    니아 발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돌아오면 전해주고 싶었어.”

    그가 자신의 바이올린을 내게 향했다.

    그 고풍스러운 고동색 뒤로 니아 발그레이의 금발과 청안이 상냥하게 나를 향했다.

    “하지만.”

    “ 캐논.”2)

    2)Cannone: 파가니니의 유언, ‘내 영혼과 내 바이올린을 영원히 제노 바에 기증하노라’에 따라 제노바 시 청에서 보관 중이다. 파가니니 콩쿠르 입상 시 연주해 볼 기회가 주어 진다.

    거절하려는 내 말을 니아 발그레이가 가로막고 나섰다.

    “이걸 맡아줄 사람은 너뿐이라 생각했어. 베를린 필하모닉을 더 빛내 주길 바랄게.”

    그가 캐논을 내게 쥐여주며 말했다.

    “받아줄래?”

    그는 이 순간을 위해 몇 년을 기다린 걸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또 내게 전달하기 위해 무 슨 생각을 했을까.

    “악장, 전 받을 수 없어요.”

    니아 발그레이는 내 말을 기다렸다.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이렇게나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잖아요. 방금 연주를 들었는데 어떻게 발그레이의 바이올린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난 캐논이 노래하지 못하게 되는 걸 원치 않아. 더 욱이 다른 사람에게서 연주되는 것 도 바라지 않고.”

    어깨를 통해 그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가 받아주었으면 해. 다시, 캐논이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해줘.”

    니아 발그레이가 전한 의지를.

    그가 전한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경 의로 그리고 함께했던 동료의 부탁 에 나는 캐논을 꽉 쥐었다.

    “잘 받을게요. 발그레이가 앉았던 자리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할게요.”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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