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62화 (16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62화

    36. 악마가 돌아왔다(3)

    “특별대우는 없다.”

    첫 출근 일에 푸르트벵글러가 모든 단원 앞에서 단언했다.

    악단의 기강을 세우고 또 불공평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아주 올바른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그럼 복귀 무대에선 뭘 연주하고 싶으냐.”

    나도 단원들도 무심코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적법한 절차를 걸쳐 정해진 연말 연주회, 즉 내 복귀 무대에서 연주할 곡이 정해졌다.

    총 두 곡이었으며 언제나 그러하듯 9번 교향곡(합창)은 마지막 순서였다.

    남은 하나는 현악 4중주 C샵 단조.

    내가 후대에 남겼던 곡 중에 최고라 자부했던 14번이었다.

    “……왜 하필.”

    “그중에서도 14번이라니.”

    잘할 거면서 엄살을 부리는 단원들이 몇 있었다.

    내 곡은 연주하기 까다롭고 난해해 연주를 꺼려한다고는 들었지만 그거 야 하는 말이 그럴 뿐.

    모두 나 루트비히의 음악을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그러한 점에서 복귀 무대에 서 연주할 곡은 푸르트벵글러가 잘 선정해준 듯하다.

    ‘감이 좋다니까.’

    나도 모르게 조금 들뜬 듯.

    연습실에 도착하니 꽤 일찍 도착해 버렸는데 아무도 없어 바이올린을 켜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음?’

    최근까지 바이올린을 잡지 않았다 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녀석이 무척 불편하다.

    성장기라 그런 탓일까.

    어렸을 적에는 꽤 버겁던 51cm 바이올린이 지금은 꽤 말썽이다.

    ‘이거 새로 하나 사야겠는데.’

    예전 히무라가 사 주었던 이 바이올린을 10년이나 가지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봐라. 이 몸은 착실히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벌써 머리 하나 차이가 나게 커버 린 최지훈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크는 것이다.

    그렇게 아쉬운 대로 오랜 친구를 다루고 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연주를 하다가 눈을 떠보니 단원들이 모두 모여 조금 떨어진 곳 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와아!”

    “브라보!”

    난데없이 박수를 보내주어 고개를 숙여 받았다.

    “왔으면 왔다고 티를 내지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좋으니까.”

    “정말 어쩜 그렇게 천사 같니?”

    연주를 들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자니 베를린 필하모닉의 남 은 3명의 악장 중 한 명인 헨리 빈 프스키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연습을 시작하기 위해 각자 악기를 조율하는데 헨리와 함께 들어온 남자가 누군지 생각났다.

    예전에 이승희에게 치근댔던 한스라는 멍청이다.

    ‘결국 정식 단원이 되었구나.’

    한심한 놈이긴 해도 노력한 듯.

    베를린 필에 합류한 모양이다.

    “마에스트로?"

    연주자들이 준비를 마치고 얼마 안 지나 푸르트벵글러가 들어왔고 본격 적으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

    주변에 사람들이 몰렸다.

    “바이올린이 좀 작은 거 같은데?”

    “네. 아무래도 빨리 하나 구해야겠어요.”

    “좋은 가게 소개해 줄까?”

    잡담을 떨고 있는데 멀리서 푸르트벵글러가 손짓을 해 그에게 다가갔다.

    “왜요?”

    “오늘 연습이 끝나면 갈 곳이 있으니 먼저 가지 말고 기다리거라.”

    “갈 곳이요?”

    “왜. 할 일이라도 있느냐?”

    “바이올린 사려고요. 어릴 때 쓰던 거라 좀 작아요.”

    “흐음. 그런 거라면 잘 된 일이지.

    걱정 말고 기다리거라.”

    “사 주게요?”

    “마음에 들 거다.”

    무슨 일인가 싶지만 푸르트벵글러 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기대해 봐 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다시 연습을 시작했고.

    미팅을 시작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만의 방식으로 실제 연주 뒤에는 항상 이런 식의 미팅을 가져 그 날의 연주를 평하는 자리를 가진다.

    연습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한 마디라도 발언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만 푸르트벵글러만은 이 야기에 참여하지 않아서.

    사실상 단원들에게는 푸르트벵글러 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여기 음 표현이 좀 덜 되었어요. 애절한 클라이맥스니까 대를 좀 더 누르는 쪽이 좋겠네요.”

    이승희가 1악장 첫 번째 악절에 있는 부점 딸린 이분음표를 짚으며 말했다.

    A 음이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평소에는 정신없어 보여도 역시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답다.

    “저는 A장조의 에피소드가 조금 죽은 듯했어요.”

    “어디?”

    “여기요. 여섯 마디 뒤부터.”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함께 코랄풍 주제를 유지하는 부분이다.

    ‘푸르트벵글러가 의도한 걸 모를 리 없을 테니 말이나 우선 들어봐야겠지.’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자 신의 의견을 어필하였고 그중에서는 꽤 날카로운 의견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 모든 사람이 진지했고 이런 점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했다.

    “그럼.”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모았다.

    예전에 있을 때 워낙 지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조금은 긴장한 듯한 눈 치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좋았어요.”

    “어?”

    “세프의 해석이 잘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1악장은 동기가 중요한데 그 부분 연주가 특히 좋았고요.”

    현악 4중주 C샵 단조의 경우엔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푸르트벵글러는 이 두 주제의 모티프를 훌륭히 해석했다.

    전개 자체가 동기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시부의 앙상블을 강조하려면 이 모티프를 어떻게 연주하는지가 가장 중요했고.

    그것을 베를린 필하모닉의 현악부는 훌륭히 소화해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아, 그런데 닐스 씨는 23마디와 25마디 A음 소리를 다르게 내셨어요.”

    “어?”

    젊은 연주자 닐스를 보며 말했다.

    악보를 짚으며 말해주자 누군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여기 4분음표요. 루트비히가 두 음을 대치한 이유는.”

    “억제된 느낌을 주려 했겠지.”

    “ 정확해요.”

    악장 헨리 빈프스키가 내 말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제2바이올린.”

    제2바이올린의 케르바 슈타인을 보았다. 현재 제2바이올린 수석이다.

    "응."

    “여기.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 부분은 힘을 더 주는 게 좋아요. 슬픔을 표현하긴 했지만 절망은 아니에요. 엄숙하게. 뒤에 이어지는 첼로와 어 울리기 위해서도 힘을 좀 더 주는 게 맞아요.”

    내 말을 이해한 듯하다.

    역시 인재 중의 인재들만 모인 곳이라 그런지 한 번만 말해도 잘 알 아듣는다.

    “또 네빌라 씨.”

    “응.”

    “1악장 마지막 마디 C샵이랑 G샵 화음 이어지는 부분에서 음 놓치셨죠?”

    “••••••응.”

    첫 날 연습이 끝나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현악부 연주자 들은 삼삼오오 모이거나 개인 연습 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베를린 시내의 한 펍에는 제2바이올린 수석 케르바 슈타인과 닐스, 네빌라 그리고 제1바이올린 주자 한스가 모여 맥주를 마셨다.

    “도빈이 엄청 조곤조곤 말했지.”

    “……한 시간이나.”

    “대체 걔 귀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모르겠어.”

    역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칭찬하면서 오늘 연습한 1악장부터 2악장까지.

    모든 파트에 대해 무려 한 시간이 나 코멘트를 한 배도빈 덕분에 네 사람은 진이 빠져 버렸다.

    곡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고 연주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도 없는 실수를 남김 없이 꼬집었다.

    “저는 정말 창피해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닐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도빈이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건 잘 알잖아. 그러 기 위한 미팅이고.”

    “그렇긴 하지만……. 제가 베를린 필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내일 연습 때는 더 잘하면 되지.”

    네빌라가 닐스에게 잔을 들이밀었고 닐스가 씩 웃으며 건배로 응수했다.

    “한스, 넌 좀 괜찮아?”

    한스와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닐스 가 걱정스레 물었다.

    오늘 가장 많이 지적을 받은 두 사람이 있다면 닐스와 한스였다.

    사실 케르바 슈타인과 네빌라가 이렇게 자리를 만든 이유는 한스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에 오래 있었던 두 사람은 한스가 아직 견습이었을 당시 배도빈과의 마찰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배도빈에게 호되게 지 적을 당했으니 그 마음이나 풀어주 고자 했는데.

    한스가 입을 열었다.

    “뭐가?”

    “그……

    “많이 틀렸다고?”

    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 때 틀리는 거야 당연하지. 뭐 그런 걸로 괜찮냐고 물어.”

    한스는 땅콩을 까서 먹곤 축구가 중계되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 나만 신경 쓰는 거였어.”

    그런 한스를 보곤 닐스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의 오랜 꿈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한 지 이제 1년이 되었지 만 자꾸만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 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케르바 슈타인과 네빌라는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고개만 살짝 돌려 엎어져 있는 닐 스를 본 한스가 완전히 몸을 돌려 닐스에게 말했다.

    “닐스, 일어나 봐.”

    “어?”

    “우리는 자랑스러운 베를린 필의 단원이야. 완벽해야 하고 세계 그 어떤 연주자보다 멋진 연주를 해야 하는.”

    “으으으.”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닐스는 더욱 괴로워했다.

    하지만 한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케르바 슈타인이 한스를 말리려 했으나 네빌라가 고개를 저어 그를 저지 했다.

    “그러기 위한 과정이 쉬울 거라곤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난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오려고 11년을 바치 지 않았을 거야.”

    “배도빈이든 세프든 신이든 얼마든 지 뭐라 하라 그래. 난 반드시 다 해낼 거야.”

    한스가 남은 맥주를 모조리 들이켰다. 잔을 소리 내어 내려놓곤 단언 하듯 말했다.

    “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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