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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60화 (16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60화

    36. 악마가 돌아왔다(1)

    베를린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만났다.

    도진이가 태어난 뒤로는 한 달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들었기에 어머니 도 나도 도진이도 무척이나 기뻤다.

    아버지는 울컥하셨는지 우리 가족을 끌어안고 한동안 어깨를 떨었다.

    새롭게 마련한 우리 가족의 집은 바로 앞에 슈프레강이 흐르는 옛 건 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인데 네 가족 이 살기엔 지나치게 넓게 느껴졌다.

    ‘왜 7층까지 있는 건데.’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을 몇 더 구 해야겠다.

    할아버지가 집은 알아서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셔서 사실 이 집에 직접 오는 것은 처음인데.

    막상 와보니 건물도 마음에 들고 근처에 베를린역이라든지 영화관, 대형마트도 있어 살기에는 쾌적할 것 같다.

    ‘신경 많이 써주셨네.’

    감사할 따름이다.

    “도진아, 내일은 아빠랑 소풍 갈까?”

    “응! 갈래!”

    “여보, 근처에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아침 사서 가자. 식탁보 하나 준비해서.”

    “그래요.”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적었던 탓인지 도진이는 아버지께 유독 매달렸는데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진 듯.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도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와! 다람쥐다! 형아, 다람쥐야. 다람쥐.”

    “그러게. 저기도 있다.”

    “우와.”

    며칠간 오랜만에 휴가를 내신 아버지와 함께 주변 공원을 산책한다든 가 여유롭고 따뜻하게 시간을 보냈고.

    꿈같은 며칠이 지나고 어머니는 왠지 분주해 보이셨고 아버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셨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배웅을 해주는 어머니와 도진이가 웃어서 나도 기분 좋게 베를린 필하모닉이 있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거리로 향했다.

    ‘여전하네.’

    요란스러운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 에 자리하고 있었다.

    누런 외관도 마찬가지였고 평범하 지 않은 구조도 예전과 같았다.

    4년 전에 연말 연주회를 듣기 위 해 찾았던 이후로는 처음이라 푸르트벵글러와 단원들을 보고 싶은 마 음에 연습실로 향했다.

    항상 그곳에 있었으니까.

    ‘아무도 없나?’

    막상 제1연습실 앞에 도착하니 연주 소리가 나지 않아 조심스레 문을 열었는데 안에 사람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어떻게 왔니?”

    그중 한 남자가 물었다.

    “세프를 만나러 왔어요.”

    대답하니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눈 뒤 내게 말했다.

    “그건 모르겠고 미팅에 방해되니까 나가줄래?”

    싸가지 없는 말에 울컥했지만 오늘 은 기쁜 날. 저런 사람도 지휘를 하게 되면 다뤄야 할 테니 일단은 참 고 넘어갔다.

    미팅 중이었다면 확실히 방해였을 테니 말이다.

    ‘2연습실에 있나.’

    발을 옮겨 제2연습실로 향하자 바순이나 오보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는 얼굴이 꽤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사람은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다.

    그사이에 주름이 조금 생긴 것 같다. 하나의 악장을 마친 그들이 쉬는 시간을 가졌을 때.

    “노이어.”

    노이어를 부르고 다가서는데.

    “……뭐야. 꼬맹이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글쎄.”

    “노이어 수석, 저 아이가 당신을 부르는데요?”

    노이어가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몰라. 저런 꼬마. 오늘은 이만 됐으니 정리들 하자고.”

    ‘저게 뭘 잘못 먹었나.’

    노이어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하고 말했다.

    “노이어, 나예요. 배도빈.”

    나와 눈을 마주하던 노이어가 시선을 돌린 뒤 악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무시를 당한 것은 처음이라 화가 뻗쳤다.

    “노이어!”

    “그래서.”

    “뭐라고요?”

    “여긴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네가 누구든 중요하지 않아. 나가.”

    처음에는 내가 자라서 알아보지 못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름을 밝히 고도 냉랭한 마누엘 노이어의 태도 에 충격을 받았다.

    “……누가 단원이 아니라는 거야.”

    노이어는 나를 무시한 채 짐을 챙겼다.

    “제2바이올린 부수석은 나라고 했잖아. 그 자리 비워둔다고 했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글쎄.”

    관악부가 모두 제2연습실에서 거짓 말처럼 나갔고.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일까.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그토록 친했던 마누엘 노이어의 차가운 눈과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화가 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덮쳐져 의자에 무 너지듯 앉았다.

    그러지 않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푸르트벵글러.’

    그라면 분명 대화가 통할 것이다.

    제1연습실과 제2연습실에 없었으니 자신의 집무실에 있을 터.

    힘겹게 발을 옮겼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고 푸르트벵글러를 불렀다.

    “세프. 나예요. 배도빈.”

    아무런 반응이 없어 한 번 더 두드리고 말했다.

    “세프. 나라고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는 순간 이대로 이렇게 그 소 중한 유대감을 잃을 수 없다는 생각 에 문을 열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집무실 이 비어 있었다.

    악보가 가득했던 그의 집무실은 빈 책장만이 남아 있었다.

    꽤 오래 방치되었던 듯.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순간 홍승일과 토마스 필스의 죽음 이 떠올랐다.

    푸르트벵글러 역시 사카모토와 함께 적은 나이가 아니다. 언제라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가슴 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게 무슨……

    복도로 나와 운영국 사무실로 뛰었다.

    문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운영국 사무실 안쪽에 자리한 카밀라의 방으로 들어서려 하자 한 남자가 날 저지했다.

    “무슨 짓이야? 너 누구야?”

    “카밀라! 카밀라! 이거 놔! 카밀라!”

    “보안원! 보안원!”

    “카밀라!”

    악을 쓰니.

    카밀라 앤더슨의 방문이 열렸다.

    “……도빈이구나. 데니스 씨, 그만하세요. 괜찮아요.”

    데니스란 남자의 손에 힘이 빠졌고 나는 그 손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낸 뒤 카밀라에게 다가갔다.

    “세프의 집무실에 갔어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카밀라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단 들어와.”

    카밀라의 방에 들어서 재차 다그쳤고 카밀라는 우선 앉으라고 했다.

    “네가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세프는. 세프는 지금 어디 있어요?”

    카밀라가 고개를 돌려 숙이곤 입을 떼지 못했다.

    “왜 말이 없어요! 왜!”

    제발. 그러지 말기를.

    내 음악을 진정 알아주던, 내게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던. 내 말을 이 해했던.

    친구이자 스승. 제자이자 지지자가 죽었다는 말만은 제발 아니길 바란다.

    “흐윽.”

    카밀라가 낸 신음에 나는 소리를 치는 것도 그녀를 흔드는 것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죽……었어요?”

    “크흠. 아, 아니.”

    정말. 정말이지 다행이다.

    “그럼 왜 말을 못 하는데요! 사람 놀라게!”

    “……짤렸어.”

    “……세프가요?”

    나조차 존중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세계 최고의 거장이 상임 지 휘자 자리에서 해고되었다니.

    ‘……그렇게 단원들을 막 굴리더니.’

    이해가 되기도.

    믿기지 않기도 했다.

    운영국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지 나쳤고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서 나와 숲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왜?’라든지.

    ‘어떻게?’라든지.

    ‘언제?’라는 질문 따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걷다가 문득 멈췄을 때 내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었음에 흐느 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돌아가자.’

    집에는 가족이 있다.

    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도 진이 사이일 것이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아버지의 재 미없는 농담에 웃고 어머니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도진이에게 책을 읽어주자.

    그리고.

    왜 연락조차 없었는지, 아니, 무심 했던 나를 탓하자.

    그렇게 걷기 시작했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다리도 무겁다.

    초인종을 누르자 집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가족께서 7층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마워요.”

    화장실에서 엉망이 된 얼굴을 씻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대체 왜……;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

    슬픔을 지울 수 없거늘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을 잃었다는 생각에 어지 러움을 느껴 엘리베이터에 기댔다.

    곧 7층에 이르렀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걸걸하고 정력적인 목 소리가 나를 재촉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지금 내리……. 어?”

    뭐야.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나를 보더 니 주름이 잔뜩 지도록 웃었다.

    팡파파팡!

    “짜잔!”

    동시에 푸르트벵글러 뒤로 폭죽이 터졌고.

    이승희와 카밀라 마누엘 노이어, 은퇴한 니아 발그레이 그리고 다른 단원들까지.

    웃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어서 와!”

    “늦잖아, 꼬맹아!”

    “잠깐. 나까지 짓눌리지 않나!”

    “도빈아, 울었어? 울었어? 미안 해~ 우구구구.”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예요?”

    진짜 푸르트벵글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주무르며 물었다.

    노이어가 나서서 말했다.

    “신고식이지, 짜샤. 베를린 필하모닉의 부수석이 되는 게 쉬운 줄 알았냐?”

    노이어의 말 뒤에 카밀라가 말 같지도 않은 하소연을 했다.

    “웃음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하하하하!”

    웃어?

    사람을 벼랑으로 밀어놓고 웃어?

    “하하. 썩을 놈들.”

    한국말로 말하자 이승희를 제외하 고 다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 했다.

    “뭐라 한 거야?”

    “ 반갑다고요.”

    내가 지휘봉을 잡으면 오늘의 일은 철저히 갚아줄 테다.

    내가 왜 19세기 빈에서 성질 고약 하기로 소문이 났는지 톡톡히 알려 줄 것이다.

    베를린 대학 입학시험은 꽤 공부를 했음에도 조금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학능력시험을 제외하곤 조금 헷 갈리는 문항이 있었고 열심히 풀어 냈다.

    “어땠어?”

    “조금 어려웠는데 그래도 못 풀 정 도는 아니었어요.”

    “그래. 고생했어. 씻고 와.”

    “나두. 나두 형아랑 같이 학교 갈래.”

    그러지 않아도 나를 한 번 경험해 보신 어머니는 도진이의 천재성을 염두하여 이것저것 알아보시는 것 같은데.

    ‘설마 10살 넘게 차이나는 동생이 랑 같은 학교를 다니겠어.’

    도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샤 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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