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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59화 (15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59화

35. My medicine(2)

10월 말.

독일로 향하기 이 주일 남은 시점 에 우리 가족은 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이미 베를린에 살 집을 구해놓고 집사가 여러 준비를 해주었지만 나도 어머니도 나름 주변 사람들과 인

사를 나눠야 했기에 마냥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예상 대로 할아버지였다.

“어어어억. 도빈아, 도진아. 이 늙 은 할애비를 두고 꼭 가야 하느냐?”

“네.”

“도진아, 할아버지 서운해하셔.”

도진이의 즉답에 나도 할아버지도 할 말을 잃고 있는 와중에 어머니께 서 도진이를 안아 들곤 웃으셨다.

말로는 할아버지를 위하시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 할아버진 늙어서 이제 얼마 못 살아요. 응?”

단호한 도진이를 두고 내 손을 꼭 잡으신 할아버지에게 도진이와 달리 상냥하게 말씀드렸다.

“10년은 더 사실 것 같은데요. 뭘.”

내 다정한 말이 통했는지 할아버지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셨다.

다음 날.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들린 뒤 칠삼이 운영하는 페인 킬러로 향했다.

문을 열자 종소리가 났고 힘찬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서 오십쇼!”

진달래와 눈을 마주쳤는데 녀석이 후다닥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왔여?”

“네. 독일로 가기 전에 인사하려고요”

“한동안은 못 오겠구먼. 어여 와 앉아.”

칠삼이 냉장고에서 캔 콜라를 내 앞에 두었다.

“여기서 일하나 보네요.”

“누규. 달래?”

“네.”

“기획사에서 지 발로 나왔다는데 지 밥값은 지가 번다고 저러고 있어. 그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하면 좋을 텐디.”

콜라를 들이켠 뒤 시원하게 트림을 한 칠삼이 말을 이었다.

“……지지리 복도 없지. 열심히 허 믄 잘될 것 같은데 지 애비나 나 닮아서 글렀나 벼.”

드러머로 밴드 활동을 했던 칠삼은 인기를 얻지 못해 악기상을 하기 시 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함께 밴드를 했던 동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칠삼이 동생과 그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평소 말과 행 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생각은 좀 고쳤으려나.’

얼마 전에 녀석에게 한마디 해준 기억이 떠올랐다.

“니가 보기엔 어뗘?”

“뭐가요?”

“달래 말이여.”

“노력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 좋진 않은 모양이네.”

“네.”

베이시스트로서의 진달래는 사실 제법일 뿐.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 했다.

본인의 실력도 음악적 기량도 훌륭 한 칠삼이 녀석을 높게 평가하는 것 도 사실 의아했던 참이다.

“갸 노래가 참 좋은데 말여.”

“노래요?”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들었던 것 같다.

배영빈의 지구방위대 가랜드 OST 에는 가사를 붙이지 못해 결국 연주만 했고.

그 때문에 진달래의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다.

“음. 잘혀.”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넘겼다.

녀석이 무엇엔가 빠져 미칠 수 있다면 분명 언젠가 그 이름이 들리는 날이 있을 테니까.

“그럼 조심히 가고.”

“네. 가끔 연락할게요.”

건강하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페인 킬러를 막 나서려는데 뒤에서 진달래가 외쳤다.

“잠깐! 잠깐만!”

뒤돌아보니 녀석이 씩씩대고 있었다.

저번의 일이 진달래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끄러워 하는데도 억지로 말을 꺼내려는 듯 해 뭔가 달라졌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있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어머니 덕분이지.’

관찰력이 좋으신 어머니께 배운 좋은 ‘감’이다.

“독일 가는 거…… 진짜야?”

몰래 엿듣고 있던 모양이다.

“남의 대화 엿듣는 거 아니야.”

“아, 아무튼!”

“그래.”

“왜?”

“베를린 필하모닉에 가려고.”

“ 바이올린으로?”

“아니.”

“……오케스트라에도 피아노가 있어?” 없을 이유는 없다.

“피아니스트로 가는 게 아니야.”

“그럼?”

“지휘.”

진달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너 같은 꼬맹이가?”

“그래.”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돌아섰다.

* * *

‘말도 안 돼. 나보다 어리잖아.’ 배도빈이 돌아섰다.

배도빈에 대해서라는 조금 들은 적 있다. TV를 안 보는 나라도 이름은 들었는데 크게 관심은 없었다.

클래식이라는 고상한 음악을 하는 모양인데 나와는 관계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삼촌이랑 아는 사이인 줄은 몰랐는데 처음 본 녀석은 키도 작은 주제에 제법 근사한 음악을 했다.

어디에 쓰인 건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파워풀한 음악을 만들다니.

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잰 척이나 하고 거들먹거릴 줄로만 알았는데.

신기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정말이지 최악 이었다.

APOP에서 걸그룹을 짜라는 이야 기를 듣곤 열이 뻗쳤는데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돌아섰을 땐 눈물 이 앞을 가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묘한 강황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배도빈이 거기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다.

그땐 정말 누구에게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고.

녀석을 보자마자 울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최악이었다.

더 나쁜 게 없을 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게 있었다.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온 음악이 뭐 어떻다는 거야. 멍청하다 고? 그걸 욕하는 네가 록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뭐가 달라?’

그렇게 자부했는데.

나는 배도빈 앞에서 조금도 당당할 수 없었다.

억지랑 악밖에 남지 않아서 내뱉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이불을 걷어 차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

APOP도 나왔고 밴드는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삼촌이 같이 살게 해주었지만 공짜로 있을 순 없어 페인 킬러에서 청 소라도 하고 있지만.

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엄마랑 아빠가 이런 날 봤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 없다.

‘정신 차려, 이 철부지야. ’

빡쳐.

고개를 흔들고 잊으려 했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말. 곧은 눈.

그러는 넌 얼마나 잘나냐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을 했고 나는 그 수많은 기사와 사람들의 개인 글을 믿을 수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객원 연주자? 베를린 필하모닉이 뭔데?’

‘헐. 이 영화 OST를 걔가 만든 거였어?’

‘아, 바이올린도 잘하는구나.’

‘쇼팽 콩쿠르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클래식 인 코리아? 지산 락페 같은 건가?’

나보다 한 살 어린데도 녀석은 십 년 전부터 세계를 상대로 음악을 하 고 있었던 것 같다.

분해서.

목 놓아 노래했다.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저리고 어깨 가 아플 정도로 베이스를 쳤다.

그러다 세 번째. 오늘.

배도빈이 가게에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숨어버렸는데 한심한 일이다.

당당하지 못하니까.

초라하니까.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알바를 해서 가 아니라 최고가 될 거라 생각했던 음악에 대해 무지했던 날 혼냈던 놈을 볼 수 없었다.

‘나 진짜 찌질하다.’

그러고 가게 뒤에 있는데 배도빈이 독일로 간다고 한다.

‘왜?’

참지 못하고 녀석을 붙잡아 버렸다.

“지휘.”

녀석은 너무나 당당히.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겠다고 말했다.

저렇게 작으면서 어떻게 당당하게 곧은 눈을 할 수 있을까.

배도빈의 등이 너무 크게 보였다.

“삼촌.”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삼촌이 무심한 듯 돌아보았다.

“나도 쟤처럼 멋있어질 수 있을까?”

삼촌은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작게 웃는 걸로 날 응원했다.

‘지지 않을 거야.’

다음에 볼 때는 저 녀석과의 거리 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 력할 거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 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내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니까.

전용기에 오르자 도진이가 소매를 끌어당겼다.

“형아.”

“왜?”

“아빠 독일에 있어?”

“응. 도착하면 마중 나와 계실 거야.”

문득 다시 태어나고 처음 독일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길을 잃어버려 어머니께 엉덩이를 맞았는데 조금 놀려줄 생각으로 물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막 뛰어가면 안 된다? 길 잃어버리면 형이랑 어머니 못 볼 수 도 있어.”

“괜찮아. 아동보호소로 가면 돼.”

“아동보호소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음…… 표지판이나 일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돼.”

“독일 사람은 한국말 할 줄 모르는 데?”

“독일말로 하면 돼.”

똑똑하긴 해도 애기는 애기다.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당연하게 독일말을 한다고 하여 웃었는데.

진짜 한다.

발음은 부정확하고 억양은 없는 수 준이지만 분명 독일어였다.

“……어떻게?”

“혼자 배웠어.”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 데, 혹시 도진이가 나처럼 누군가 다시 태어난 걸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재밌는 책 전부 독일말로 되어 있어서 보려고 공부했어.”

도진이가 비행기에 탈 때부터 들고 있던 책을 보여주었다.

‘Der Teil und das Ganze?’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인데 처음 보는 책이다.

“이 책 너무 어려워. 근데 재밌어.”

도진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그럴 리 없지.’

내 망상일 뿐이다.

그렇게 도진이에게 벨트를 매주고 나도 자리를 잡았는데 녀석이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물었다.

“근데 형아.”

“응.”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혼자 있는데 나쁜 사람이 잡아갈 수도 있고. 그럼 어떻게 해?”

“그러니까 형 손 꼭 잡고 있어.”

도진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그럼 형아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야 하면 어떡해?”

“왼손엔 어머니 손 잡고 있어.”

잠시 고민하더니 납득한 모양이다.

다른 질문을 한다.

“그럼 형아랑 엄마랑 다 어디로 가야 하면 어떡해?”

“그땐 너도 같이 가야지.”

“그러기 싫으면?”

“형이랑 어머니 다시는 못 보는데 괜찮아?”

고개를 흔든다.

호기심이 많은 도진이는 이렇게 무 엇인가를 계속해서 물어볼 때가 많은데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시 태어나 모든 것이 신기했던 내게 하나하나 차 근히 다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를 기 억하면 참 좋았다.

귀찮아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도진이도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면 한다.

“우와. 움직인다.”

“그러게.”

“형아, 그거 알아? 비행기가 나는 데는 세 단계가 있대.”

“ 뭔데?”

또 하나.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의도와는 달랐지만 결국 채은이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는 성공 했으니 나름 검증된 방법이다.

“이륙 결심 속도 VI이랑 기수를 들 수 있는 최소 속도 "이랑.”

조금 힘든 일이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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