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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58화 (15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58화

    35.  My medicine(1)

    여름이 다가올 즈음에 채은이가 쓴 칼럼이 ‘관중석’에 처음 게시되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오빠, 진짜 내 글이 있어.”

    “있겠지. 줘 봐. 읽어보게.”

    “안 돼.”

    “사람들이 잘 못 썼다고 욕하면 어 떡해?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더 하고 한다 할걸.”

    내 곡을 열심히 해석하여 해설을 달았는데 꼭 이야기 하나를 넣어 쓰는 게 이해하기 쉬웠다.

    중요한 것은 내 의도를 꽤 정확히 짚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간 나에 대한 여러 칼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식이 부족해 표현에 있어서는 좀 더 개선의 여지 가 있다는 점.

    그러나 더 나아질 수 있기에 앞으로 어떤 글을 써낼지 기대되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샛별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베를린 필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또 이제는 재단과 함께 일하기 위해 형 식적으로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데.

    히무라에게 전화를 했더니 근처에 있는 모양이다.

    -어, 도빈아. 지금 미팅 때문에 용산에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근처겠네요. 녹음실에 있으니까 볼일 마치고 만나요.”

    -그래. 한 시간쯤 걸릴 거야. 연락할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싶다가 문득 배가 고파졌다.

    히무라를 만날 생각으로 운전기사 에게 나오지 말라 해서 이동하기 애 매했던 탓에 모자를 눌러썼다.

    거리를 걷는 건 오랜만이다.

    ‘분명 여기쯤이었는데.’

    돈가스 카레를 괜찮게 파는 곳이 주변이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이전을 한 모양이다.

    괜히 나왔나 싶어 돌아가려던 차 뒤에서 기억에 남은 목소리가 신경 질적으로 들렸다.

    “달래야,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니까?”

    “꺼져! 내가 이딴 짓 하려고 알바 하면서 버틴 줄 알아?”

    고개를 돌리니 머리 반쪽을 밀어버린 노랑머리 양아치가 양복 차림의 남자를 발로 걷어 차버렸다.

    그러곤 씩씩대며 이쪽으로 걸어오는데.

    ‘여자였어?’

    검정과 빨간색의 체크무늬 재킷과 같은 색의 치마 그리고 높은 구두를 신고 있다.

    목소리를 듣고도 몰랐다니.

    남자치고는 묘하게 높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허스키한 중저음에 생각 하지 못했다.

    ‘조금 충격인데.’

    귀에 문제가 없는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야! 진달래! 너 이대로 가면 진짜 끝이야!”

    “그래, 이 새끼야! 다신 보지 말자.”

    남자에게 욕을 쏟아낸 녀석은 다시금 돌아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오는데 하는 짓과 달리 울고 있었다.

    뭐라 말 걸기도 애매하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싸가지가 없었던 기억이 떠올라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누군가 등을 후려쳤다.

    코를 다져줄 생각으로 돌아서자 달 래가 씩씩대고 서 있었다.

    “뭐야?”

    “왜 못 본 척하냐?”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끄어어엉!”

    녀석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로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 기 시작해서 녀석을 끌고 녹음실로 가 앉혔다.

    “무슨 짓이야?”

    “끅. 꺽. 꺼어엉.”

    서럽게도 운다.

    17살 먹은 꼬맹이가 이토록 통곡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아 손수건을 넘겨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운 녀석이 진정할 때에는 손수건을 새로 장만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다 울었으면 가 봐.”

    “너 진짜 재수 없네.”

    “누구보고 하는 말이야?”

    “••••••너.”

    어이가 없어 녀석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애는 애다.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다 칠삼에게 연락하면 되겠지, 생각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

    “죄다 머저리들만 있잖아. 밴드 만 들어준다고 약속했으면서, 데뷔시켜 준다고 말한 주제에 이제 와서 걸그 룹 하재.”

    아무래도 녀석의 소속사인 APOP 으로서는 좀 더 시장성을 생각한 모 양이다.

    “멤버라고 온 애들도 다 머저리였어. 기타는 칠 줄도 모르고 드러머는 박자도 틀리고. 진짜 최악이야.”

    “걸그룹이라면서 구성은 일단 밴드잖아.”

    “그딴 게 밴드일 리 없잖아.”

    “싱글 앨범으로 내자던 곡도 무슨 진짜 들어줄 수도 없는 거였고. 대 체 난 뭐였지. 몇 년간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

    적당히 들어주고 있는데 달래가 갑 자기 소리쳤다.

    “너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뭘?”

    “왜 다들 시끄럽다고만 하는지 모 르겠어. 분명 록도 여러 장르가 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록은 망 한다고 지껄이는 인간들 진짜 이해할 수 없어.”

    “사랑 이야기라니. 왜 죄다 그런 노래만 하는 거야? 한심해. 나는 록을 하고 싶다고.”

    이 꼬맹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긴 한데 음악가로서의 글러 먹은 자세는 말해줘야겠다.

    “네가 말하는 그 사랑 이야기라는 거. 왜 만들 것 같냐?”

    “멍청한 애들이 좋아하니까 그렇겠지.”

    “누가 마음대로 그 사람들을 멍청 하다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이 철부지야.”

    “••••••뭐?”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온 음악이 뭐 어떻다는 거야. 그걸 욕하는 네가 록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뭐 가 달라?”

    “달라!”

    달래가 외쳤다.

    “니가 뭘 알아? 니가, 인기 많은 니가 언더에서 힘들게 음악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알아?”

    “글쎄. 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곡에 취해 남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사람 들이라면 모르겠는데.”

    “뭐?”

    진달래가 또다시 나서려 하기에 이 제는 더 이상 봐줄 수 없어 다가가 녀석과 눈을 바로 마주하고.

    천천히 똑똑히 말해주었다.

    “장르 때문에, 멍청한 사람들 때문 에 네가 버려진 것 같지?”

    한 치 앞에 놓인 진달래의 눈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네가 말한 그 한심한 노래를 만들 고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노래를 듣고 얼마 나 많은 사람이 위로받는지는 조금 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안타깝다.

    “주제 파악부터 해.”

    “가……

    나는 대중음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정말 어렸을 때 카레를 주 제로 노래한 2인조 가수 놀아줘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즐겁고 도전적인 그들의 음악은 내 영혼을 자극했다.

    록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 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넣은 것이 분명.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 사람에 비해서 이 아이는.

    그런 노력마저 비하하는 철없는 멍 청이일 뿐이다.

    “어려서 그런 거라 넘어가 줄 수 있지만.”

    “가••••••

    “음악가로서는 아니지.”

    음악가에 어리고 늙고는 없다.

    음악가는 음악가. 음악으로서만 판단할 뿐이다. 이 녀석은 그런 마인드가 썩어빠졌다.

    “어디 가서 음악 한다고 말하지 마라. 다른 음악가들에게도 민폐니까.”

    “가깝잖아, 멍청아!”

    진달래가 나를 밀치곤 숨을 들이마셨다.

    “승부해.”

    “네까짓 게 나랑?”

    하찮은 일.

    지렁이보다 못한 녀석과 일일이 어울려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용쓰지 말고 돌아가. 상대해 주기 귀찮다.”

    “네가 뭔데! 얌전 떠는 음악만 하는 놈한테는 절대 안 져!”

    “아아. 그래. 그래.”

    귀찮아서 손을 휘저어 쫓아내려니 악에 받친 녀석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무섭냐? 질까 봐 무서워?”

    어린애의 도발 따위 안쓰러울 뿐이다.

    대답조차 아까워 무시하고 커피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그래. 막상 싸우자니 무섭겠지. 키 도 쪼그만 한 게.”

    “뭐, 뭐야. 이제야 할 마음이 좀 들었냐?”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어린애라 해서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음악이니까.

    키가 작다는 말을 들어 화난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좌절한 녀석이 패배를 인정했다.

    “……졌습니다.”

    “돌아가.”

    세 두었던 커피를 갈기 시작하는데 녀석이 또 울기 시작했다.

    “난…… 쓰레기야. 구제불능이야.”

    “잘 아네.”

    “억. 흐윽. 끄윽……

    “나가서 울어.”

    슬슬 히무라와 만날 때가 되어 녀 석을 쫓아내려 하는데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정말 뜬금없는 아이다.

    “누가 선생이라는 거야?”

    “가르쳐 줘. 내가 뭐가 부족한지 알 려줘. 나는. 난!”

    하찮은 미물이라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인지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부탁한다.

    “썩어빠진 마인드부터 고쳐.”

    “어?”

    “장르가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이 네 음악을 듣고 감동한다면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아. 네가 인정받지 못하는 걸 장르 탓으로 돌리지 마.”

    “제법이긴 해도 한참 멀었어. 기교 만 익혀대니 그런 꼴이 나잖아. 어떤 밴드 좋아해?”

    “요 나 탱고랑 레이지 어게인 머신 이랑 뷰티렛이랑.”

    “그만.”

    진달래가 입을 닫았다.

    한 번 지고 나니 얌전히 말을 듣는다.

    “난 그 사람들 음악 들어본 적 없지만 너는 좋아하지? 왜 좋아해?”

    “막 가슴을 뛰게 해!”

    “그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음악을 해. 무작정 소리를 따라내려고만 하지 말고. 그럼 분명 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테 니까.”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녹음실 문이 열렸다.

    히무라다.

    “어? 손님이 있네?”

    “이제 나갈 거예요. 나가.”

    “••••••응.”

    터벅터벅 발을 옮기는 녀석의 어깨 가 축 늘어졌지만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음악가가 되고 싶다면 말이다.

    “어? 잠깐만요. 진달래 씨죠?”

    “나 알아요?”

    “승태 팀장님 알죠? 방금 만나고 왔거든요. 인사하는 순서가 조금 이 상해졌지만 반가워요. 히무라 쇼우라고 해요.”

    무슨 말이야.

    “난 아저씨 몰라요.”

    “APOP이 두 달 뒤에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될 거예요. 승태 팀장 님이 멋진 밴드가 있다고 소개해 줬 는데 미리 보게 되었네요.”

    “……전 쓰레기라서 안 돼요.”

    다시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올라간 녀석과 나를 번갈아 보던 히무라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무슨 실수했나?”

    “아뇨. 커피 드실래요?”

    “아, 부탁할게.”

    히무라가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원두를 꺼내 60알을 다시금 세 갈면서 물었다.

    “APOP을 인수한다고요?”

    “샛별 엔터테인먼트 최고 매출자와 계약을 해지하니까. 네가 나가서 생 기는 공백을 메우려고 이것저것 준 비하고 있었지.”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며 히무라 의 말을 계속 들었다.

    “아무래도 클래식 쪽으로는 너만 한 사람이 없으니까. 회장님께서도 장르 구분 없이 해보라고 하셨어.”

    사업이라면 할아버지와 히무라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샛별 엔터테인먼트도 여러 준비를 해온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회사의 매출액을 유지, 상승시키는 게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고마운 일 이다.

    내가 샛별 엔터테인먼트에서 나감 으로써 샛별이 어려워진다면 나도 불편했을 테니까.

    “그래서 APOP 쪽이랑 이야기했는 데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밴 드풍 걸그룹이라고 해서 프로필을 봤는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본인은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말 이다.

    “여기요.”

    “아, 고마워.”

    커피를 주고는 나도 테이블 앞에 앉았다.

    히무라가 서류 두 부를 꺼내 보인 뒤 계약 해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을 모두 들은 뒤 서명했다.

    “생각보다 쉽지?”

    “그러게요.”

    히무라와 다시 안 만날 것도 아니 고, 또 재단과 함께하기에 계속해서 일을 같이한다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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