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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57화 (15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57화

    34. 지구방위대 가랜드(4)

    칠삼과 달래와 약속한 날.

    약속 시간에 맞춰 두 사람이 녹음 실에 도착했다.

    “뭐야, 꽤 넓잖아?”

    달래가 건들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반쪽만 남은 머리에 왁스를 바른 모양인지 더 정신없어 보인다.

    “이, 이게 다 뭐야. 이거 보세잖아?”

    “일단 앉아.”

    녀석은 녹음실에 들어오자마자 기 기를 보고 놀랐는데 신기한지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방에 장만해 준 스피커가 뒤집어져 있어 ‘3508’ 로 알고 있었던 BOSE의 오디오라 든지.

    콘솔 데스크(신디사이저, 건반 등을 수납하기에 용이하다)에 놓인 프 리소너스 사의 스튜디오 라이브라든 지 말이다.

    음악을 하는 녀석이라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는 것 같다.

    ‘고가는 아니지만 편리하지.’

    히무라와 사카모토가 왜 내게 컴퓨 터와 전자기기에 대해 배우라고 했는지 지금에 와서야 조금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물건이 결코 만능은 아니지 만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도 가능하다는 점에선 분명 메 리트가 있다.

    편리함에 빠져 본인의 역량을 닦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면 작곡을 할 때 나 연주를 할 때 꽤 유용하니까.

    예를 들어 작곡을 할 때면 여러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기 힘든데 그런 게 가능하다든지.

    또는 내가 썩 잘 다루지 못하는 악기를 연주할 때 보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평범한 연주자라도 그럴듯 하게 들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만.

    역시 본인의 실력으로 연주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잘 조정한다 해도 수준급의 연주는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 장점은 있어서 여러 악기와 프로그램, 기계를 사용하는 법을 익히느라 시간이 꽤 흘렀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와, 이건 또 뭐야?”

    달래가 오늘 녹음을 위해 준비한 기계를 발견했다.

    “야, 이거 쉐포드 채널이야?”

    “잘 아네.”

    “엄청 비쌀 텐데……

    “그다지.”

    마이크프리(마이크 음량 조절), 이 퀄라이저(소리 왜곡 보정), 컴프레서 (고음량은 압축, 저음량은 증폭) 기 능이 있어 샀는데.

    칠삼이 달래가 노래도 곧잘 한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 미리 주문했다.

    어차피 가사를 붙인다면 노래할 사람도 필요할 테니 미리 준비한 거라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말이다.

    “흐음. 잘 관리하고 있구나.”

    칠삼이 페인 킬러에서 구입한 소노 (Sonor)의 드럼을 살피며 말했다.

    적당히 둘러본 거 같으니 시간 낭 비하지 말고 진행해도 괜찮겠다 싶어 준비해 둔 악보를 꺼냈다.

    “자, 받아. 아저씨도요.”

    “흐음.”

    “……좀 쳐봐도 돼?”

    “물론.”

    달래가 악보를 살피더니 베이스를 목에 걸고 연습을 시작했다.

    어색하다.

    초연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 데 끝까지 연주한 녀석이 다급히 말 했다.

    “빨리 해보자. 삼촌, 빨리.”

    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은 곡.

    드럼이 정확한 박자 감각으로 종이를 펼치면 베이스가 스케치를 하고 기타가 채색을 한다.

    밴드 음악은 작은 오케스트라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콘트라 베이스 역할을 하는 베이스 기타.

    ‘제법이긴 한데.’

    곧잘 연주하는데 연습은 필요할 듯 하다.

    한 번 연주를 하고 난 뒤 문제점을 말해주려는데 달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제법이잖아? 원래 록도 했던 거야?”

    이게 누구보고 제법이라는 거야?

    “누구한테 제법이라고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 생각대로 말해주자 달래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너.”

    말을 말자.

    몇 번을 반복해 연습했다.

    연습을 하다 출출해져 다니던 곳으로 갔는데 칠삼과 달래가 잔뜩 긴장해 있다.

    한옥 건물인데 한식뿐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주문할 수 있어 괜찮은 장소다.

    “안 들어오고 뭐 해요?”

    “그…… 이런 곳은 부담시러운데.”

    “사, 삼촌은 왜 쫄고 그래?”

    정작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 말을 더듬는다.

    “미안. 다른 데 가면 소란스러워지 니까.”

    최근에는 조금 관심이 줄었지만 여전히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사진이나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에 게는 미안하지만 이동할 때나 일행 이 함께 있을 때는 곤란해지는 것도 사실이고.

    또 그들 모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도 미안해서 몇 년 전부터는 이렇게 할아버지가 다니는 곳을 위 주로 다니고 있다.

    특히 도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 머니께도 위험할 수 있어서 더욱이.

    “인기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닌가 보네.”

    맞는 말이다.

    적당히 음식을 주문했고 곧 식사가 준비되었다.

    “대박…… 너무 맛있어.”

    “난 체할 것 같은디.”

    우적우적 음식을 있는 대로 집어넣는 달래와 평소답지 않게 얌전한 칠 삼이 대조적이다.

    “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샤프란으로 주세요.”

    “난 됐슈.”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샤프란 향을 즐기며 포만감을 즐기고 있는데 달래가 운을 띄었다.

    “야, 너 오늘 보니 기타 잘 치더라.”

    “꽤 했으니까.”

    2〜3년 정도는 기타만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나랑 밴드 하지 않을래? 네가 기타랑 곡 쓰면 내가 노래 부를게. 베 이스랑.”

    “관심 없어.”

    “뭐? 왜?”

    달래가 정말 의외라는 듯 되물었는데 당연히 같이할 거라 생각한 모양 이다.

    대체 뭘 믿으면 저런 자신감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다.

    “그냥.”

    “너랑 나랑 밴드 하면 분명 엄청날 거야. 지상파에도 나갈 수 있을 거 라고.”

    “나가기 싫어.”

    “……치사하긴.”

    저걸 확 쥐어박을까.

    칠삼을 봐서 한 번 더 참아주기로 하고 화제를 돌렸다.

    “밴드가 없으면 지금은 뭐 하고 있는데?”

    “ 나?”

    “그래. 너.”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지 눈을 굴리던 녀석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평소에 뭐 하냐고. 공연을 하거나 뭘 하거나 할 거 아니야.”

    “아. 학교 다니지. 안 갈 때는 알 바 하고.”

    “……학생이었냐.”

    “고 1.”

    어려보인다곤 생각했는데 학생일 줄은 몰랐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후 1시.

    학생이라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이다.

    “그럼 이 시간에 왜 온 거야? 학교는?”

    “니가 일하러 오라며.”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아저씨, 미성년자를 학교도 안 보 내고 소개해 주면 어떡해요.”

    “하하하. 괜찮여. 워낙 돌대가리라 어차피 졸업도 못 할 거여. 이런 양아치도 없어.”

    “하하하! 맞아.”

    두 사람 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는 넌 왜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있는데?”

    “안 다녀.”

    “뭐야, 나보다 더 양아치잖아?”

    “되게 한심하게 보는 것 같다?”

    “제대로 봤어.”

    내 말에 달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두고 봐. 반드시 록커로 성공할 거니까. TV에도 나오고 세계 투어까지! 어때, 멋지지. 하고 싶지?”

    “그래 하고 싶네.”

    “그러니까 같이 밴드 하자니까. 나 원래 아무한테나 이런 말 안 해.”

    “그래. 다른 아무나 찾아봐.”

    “나중에 후회할걸. 실은 나 APOP 이랑 계약했거든. 곧 데뷔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한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먹었다.

    3일간 녹음을 끝내고 완성한 것을 들려주니, 배영빈이 닭똥 같은 눈물을 홀렸다.

    “그만 좀 울어.”

    “고마워. 고마워.”

    다 큰 녀석이 울기는.

    녀석이 편집한 영상에 녹음한 걸 삽입하는 일을 함께한 뒤 시간을 확 인하자 하루가 꼬박 지나 있었다.

    나도 배영빈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만들어져 흡족했다.

    “제목은 알아서 정해.”

    “그래. 고마워.”

    “고맙다는 말 좀 그만해. 몇 번째 야.”

    그러곤 녀석이 개설한 뉴튜브 계정을 통해 영상을 올리려고 하는데 배 영빈이 소개 제목에 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내 이름 빼.”

    “왜?”

    “내가 참여했다고 하면 이 만화 제 대로 된 평가 못 받잖아.”

    하이든이라면 적게 했겠지만.

    나는 다르다.

    내 이름을 팔아 배영빈의 만화영화 가 인기를 끈다면 그건 그것을 만들 기 위해 4년간의 노력을 기만하는 행위다.

    배영빈도 제대로 정신머리가 박혔 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는 유명세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마워.”

    “그러니까 그만 좀 말하라고.”

    배영빈과 눈을 마주하고 씩 웃었다.

    2021년 3월 8일에 게시된 영상, ‘지구방위대 가랜드가 좋아서 만들어 봤다’와 ‘제작 과정’은 한 달째 특별 한 반응이 없었다.

    섬네일과 제목 등 기본적인 홍보 방법에 대해서도 몰랐던 배영빈이었기에 조회 수를 많이 확보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영상을 본 몇 안 되는 사람 들이 남긴 댓글 평은 뜨거웠다.

    ㄴ 미친. 이걸 혼자 만들었다고?

    ㄴ 헐……. 연출 소름 돋는 거 보는...

    ㄴ 절 덕후로 만들려고 하셨다면 성 공하셨습니다.

    ㄴ 아니 이거 브금도 오리지널인데 진짜 퀄 미쳤네;;

    ㄴ 와 나 이거 어릴 때 봤었어.

    ㄴ 원작초월 cctzc

    이 영상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서 화제가 되는 것은.

    영상에 달린 응원 댓글을 보고 절 치부심한 배영빈이 1년 만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제작, 단편 애니메 이션 공모전에서 수상한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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