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56화
33. 지구방위대 가랜드(3)
“영빈아, 교회 가자.”
“아- 싫은데. ……도빈이 혼잔데 두고 가요?”
“얌전히 있겠지. 빨리 와. 늦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도빈이는 혼자 있었다.
이제 막 3살 먹은 애를 집에 두고 가도 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 면 엄마가 정말 너무했다.
오후 다섯 시쯤 교회에서 돌아오면 녀석은 형광등조차 켜지 않은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게 마음이 아파 불을 켜놓고 가 거나 책상 위에 도빈이가 배고프지 않게 먹을 걸 올려두었다.
그러다 언제는 일을 나가시던 작은 엄마가 도빈이가 혼자 있었다는 사 실을 알고 도빈이를 끌어안고 우신 적이 있었다.
작은엄마와 도빈이에게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빌고 싶었다.
“이거 오또케 해?”
도빈이는 항상 내 자랑이었다.
조금 이상한 녀석이긴 해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해서 매일 세 계를 놀라게 했다.
매일 무료했던 내게 도빈이의 소식은 새로운 활력소였고.
동시에 부러웠다.
도빈이가 가진 재능이 부러웠던 게 아니라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아빠는 성 공한 사업가였고 원하는 건 다 살 수 있었던 나로서는 시간을 보낼 것을 찾을 뿐이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도빈이가 태어났고 엑 스톤에서 연락이 온 뒤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도 무엇에 빠지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나도 꾸준히 했던 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애니메이션.
의지 없고 노력 한번 해본 적 없었던 내 가슴도 뛰게 하는 이야기.
도빈이가 일본에 간 뒤로 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조금 일이 틀어졌다.
“야, 공 차러 갈래?”
“아니. 난……
“거봐. 쟤 공부한다니까.”
“공부 아닌데? 만화 그리는 건데?”
“ 아.”
“억큭큭. 오덕 냄새. 뭐냐? 이거?”
“돌려줘.”
“쫌만 보고.”
“헐〜 이거 로보트냐?”
소중한 것을 빼앗긴 듯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었고 나는 녀석을 밀쳤다.
그 뒤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이 흘렀다. 학교에 가면 너무나 힘들어서 결국 졸업도 하지 않았다.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아니, 도망치는 방법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도빈이는 세계를 상 대로 음악을 했다.
여전히 자랑스럽고.
여전히 미웠다.
애써 무시하며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그러던 녀석이 미국에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곤 너무 놀랐다.
뭐든지 잘 해낸다고 생각했는데 녀 석도 무리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놀랐다.
다시 몇 년이 흐르고.
“안녕.”
입대하기 전에 만난 녀석은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같았다.
나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아빠와 엄마도 나를 안타깝게 바라 보는데 녀석만큼은 예전의 나를 보 듯이 바라보았다.
같이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처럼.
‘넌 안 힘드냐?’
묻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다.
작은엄마랑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배도빈 덕분에.
바뀌자고 마음먹었다.
군대는 너무나 힘들었다. 욕은 더 럽게 많이 먹었지만, 그러나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면서 도움을 받기도 그게 고마워서 보답을 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생겼다.
몸도 건강해졌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아빠와 엄마는 지금이라도 검정고 시를 보고 대학에 가라고 하지만 솔 직히 모르겠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것만 큼은 확실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곧장 취직을 해야 하 는지.
또는 다른 길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올려 봐.”
그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다시 만난 녀석은 내게 일단 시작하라고 말했다.
바보처럼 이것저것 재보고 계산하 고 있던 내게 일단 걷기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2악장까지 완성한 악보를 잠시 미 뤄두고 숨을 돌릴 겸 오랜만에 일렉 트릭기타를 잡았다.
검정고시도 합격했고 올겨울까지는 시간이 넉넉하기에.
배경음이 없는 녀석의 만화영화에 넣을 곡을 만들어, 마음을 다잡은 배영빈에게 선물해 주려 한다.
‘꽤 열혈이었지.’
도진이랑 같이 본 영상은 비장하고 빠른 템포의 곡이 어울릴 것 같았다.
적당히 코드를 잡고 일단 연주를 해보는데 마땅한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나이트위싱의 곡을 틀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인데 훌륭한 시도와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밴드다.
웅장하면서도 힘찬 느낌이 배영빈의 애니메이션에 잘 어울릴 것 같다.
‘밴드 음악으로 할까.’
해보지 않았지만 재밌을 것 같다.
‘어디.’
적당히 코드를 조합하니 들어줄 만한 느낌이 들었는데.
곡을 만드는 것이야 시간을 들인다면 문제없지만 가사가 마음에 걸린다.
가사를 적는 일은 많이 해보지 않았고 또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일인 데 애니메이션 곡에는 꼭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가사는 배영빈한테 적어보라 할까.’
다음은 연주할 사람이 필요한데, 드럼은 칠삼에게 부탁하면 될 듯하 고 남은 건 밴드에서 가장 중요하다 고 생각하는 베이스기타와 보컬.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나을까.
사카모토나 히무라라면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줄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이 원체 바빠 그러기엔 미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핸드 폰이 울렸다.
일렉트릭기타를 가르쳐 준 칠삼이다.
좋은 타이밍이다.
“네, 아저씨.”
-잘 지낸다냐?
“그럼요. 아저씨는요?”
-나야 항시 잘 지내지. 어제 좋은 물건 들어왔는데 한번 들어볼텨?
지루하던 차에 잘되었다.
칠삼이 좋다고 하니 분명 훌륭한 악기일 거다.
*
“어여 와.”
“이거예요?”
“이이〜 어뗘. 폼 나지?”
칠삼이 내게 꽤 고풍스러운 베이스를 넘겨주었다.
프렛이 없었는데 원래 이렇게 나오는 모델이라고 한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었는데 칠삼이 이런 식으로 여 러 악기를 소개해 준 덕분이라 대교 향곡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고마웠다.
같은 악기라도 음색은 여러 가지고 기타나 베이스, 드럼이 아니더라도 악기상인 칠삼은 구하기 어려운 악 기를 구해다 주곤 했다.
“내 조카 생일 선물로 왔는데 귀한 거라 함 보여주고 싶었지.”
“좋네요.”
잡아보니 확실히 느낌이 좋다.
베이스 기타는 많이 다뤄보지 않았지만 좋은 물건이라는 것쯤은 알아 볼 수 있다.
“어뗘. 하나 더 구해볼까?”
“아니에요.
“아, 마침 오는구먼.”
“삼촌! 왔어? 어?”
머리 반쪽을 밀어버린 노랑머리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소리쳤다.
녀석과 눈을 마주쳤는데 놈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너 뭐야?”
“뭐?”
“뭔데 남의 베이스를 가지고 있냐고.”
“밥 구녕 조심햐. 삼촌 손님한테 버릇없이 굴지 말고.”
조카를 다그친 칠삼이 내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혀. 쟈가 배운 게 없어서 그랴.”
“괜찮아요. 여기.”
칠삼에게 베이스를 넘겨주자 노랑 머리가 성큼성큼 걸어 칠삼에게서 베이스를 빼앗듯 받아갔다.
그러곤 그것을 살피는데 꽤 기쁜 듯하다.
“인사혀. 여는 배도빈. 모르진 않겠지. 도빈아, 니도 인사혀. 내 조카 달래여.”
“……배도빈?”
달래라니. 이상한 이름이다.
녀석이 나를 살펴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알아본 듯하다.
“와. 진짜 배도빈이네. 엄청 꼬맹이였는데.”
이 꼬맹이가.
칠삼과 눈을 마주친 달래가 금방 입을 닫았다.
칠삼의 조카라니 넘어가 준다만 아 까부터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놈이다.
“삼촌, 그럼 나 갈게.”
“오자마자 가는겨?”
“알바해야 해. 간다!”
시끄러운 녀석이 ‘페인 킬러’에서
떠났고 칠삼에게 물었다.
“연주할 사람이 필요한데 아저씨가 드럼 연주해 줄 수 있어요?”
“별일이네. 뭔 일인데 그랴?”
칠삼에게 사촌 형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거기에 사용될 곡을 만들 거라 말하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부탁인데. 걱정 붙들어 매고 맡겨봐. 그럼, 기타는 직접 하고?”
“네. 가사는 붙일지 말지 모르겠어요. 베이스가 필요한데……. 추천해 줄 사람 있어요?”
“ 흐음.”
칠삼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 인채 끙끙대다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갸가 솔찬히 혀.”
“뭐라고요?”
사투리가 심한 칡삼의 말은 가끔 못 알아듣겠다.
“달래 말이여. 하는 짓은 방정맞아 도 베이스는 잘혀.”
“일단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일단 거절하고 돌아와 4분 정도 되는 길이의 곡을 만들었고.
칠삼에게 들려주기 위해 다시 ‘페인 킬러’를 방문했을 때 달래라는 녀석의 베이스를 들을 수 있었다.
칠삼의 귀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건방진 꼬맹이라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만.
그렇다고 거두지 않기에는 아까웠다.
“달래라고 했지?”
“근데?”
“녹음 같이하자.”
어떤 곡인지 물어보거나 거절할 거 라 생각했는데 꽤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나 비싼데?”
“그래. 얼마면 돼?”
“어?”
“얼마면 되냐고.”
달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 뒤 끄응 댔다. 고민하는 모습이 칠 삼이랑 판박이다.
“하, 하루에 십만 원.”
비싸다며.
“너, 너무 비싸면 만 원 깎아줄 수 도 있어.”
“그게 아니라.”
“안 돼! 구만 원 밑으론 안 돼.”
눈을 돌려 칠삼을 보니 싱글벙글 웃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 니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다.
“그래. 구만 원. 삼 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일 아저씨랑 녹음실로 와. 돈은 녹음 끝나면 줄게.”
“삼촌이랑 아는 사람이니까 싸게 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국 물도 없어!”
국물도 없다니.
나도 안 쓰는 표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