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55화 (15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55화

    33. 지구방위대 가랜드(2)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다섯 시다.

    평소와 같은 컨디션이라 기지개를 켰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틀어줘.” 오디오에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주방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커피 원두를 하나씩 세 60알을 갈 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하암. 좋은 아침.”

    아침에 잠이 많으셨던 어머니도 이 젠 내 생활 패턴에 익숙해지신 듯하다.

    “커피 드릴까요?”

    “응.”

    다시 60알을 더 세어 갈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턱을 괴곤 커피를 내리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여기요.”

    “고마워. 참, 오늘 큰아버지네 가는 거 알고 있니?”

    “네. 큰아버지 생신이잖아요. 아버 지는 언제 도착하신대요?”

    “점심쯤 오실 것 같아. 10시쯤 출 발하면 될 거야.”

    인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서 아버 지와 함께 큰아버지 댁으로 가면 될 것 같다.

    “영빈이 형은 뭐 하고 지낸대요?”

    문뜩 입대하기 전 우울해 보였던 배영빈이 떠올라 물었다.

    “글쎄, 큰어머니도 걱정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질 못했어. 많이 힘든가 봐.”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녀석이 괴롭 힘을 당했고 그로 인해 대학도 가지 않은 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이 야기를 듣곤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본인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는 데.

    다행히 군대는 무사히 다녀와 우리 가족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 엄마아.”

    “도진이 일찍 일어났네?”

    눈을 비비며 어머니께 다가간 도진 이가 안긴 채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 오는 날이니까.”

    기특한 녀석.

    상으로 맛있는 아침을 차려줘야겠다.

    “도진이 일찍 일어났으니까 형이 아침 해줄게.”

    “싫어.”

    “도빈아, 아침은 엄마가 할게. 도진 이랑 놀아줘.”

    조금 슬프다.

    유독 내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도진 이를 위해 연주를 하고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을 먹은 뒤.

    가족끼리 가볍게 산책을 하다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시간을 잘 맞춰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께서 게이트 밖으로 나오셨다.

    “아빠!”

    “어이구! 우리 도진이. 엄마랑 형 이랑 잘 지내고 있었어?”

    “ 네.”

    “기특하다. 기특해. 자, 뽀뽀.”

    “싫어.”

    아버지께서 꽤나 낙담하셨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우리 도빈이도 그새 많이 컸네. 검정고시 합격 축하한다.”

    아버지께서 밝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키는 별로 안 자랐지만 16살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다정 하게 대하신다.

    “여보.”

    “여보.”

    그리고 어머니와 애틋한 것도 마찬 가지.

    도진이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머니께서 운전을 하시고 큰아버 지 댁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깜 짝 놀라셨다.

    “도진이가?”

    “네. 아버지랑 엄청 잘 맞나 봐요. 말씀하시기론 도진이가 그쪽으로 재 능이 있다는데 믿을 수 있어야지.”

    “이게 무슨 일이래.”

    조수석에 앉으신 아버지가 뒤돌아 도진이를 보는데 일찍 일어나고 아

    침에 산책까지 해서 그런지 잠들어 있다.

    아버지께선 피곤한 듯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녀석을 흐뭇하게 보셨다.

    “도빈이도 그렇고 도진이도 그렇고 우리가 복 받았나 봐. 하하.”

    “말도 마요. 도빈이랑 도진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얼마나 답답 한데요. 당신 말도 그렇고.”

    “하하. 하긴. 도빈이 어렸을 땐 많이 당황했으니까.”

    “도빈아, 기억나? 집 사서 나간다고 했던 거.”

    돈 벌어서 뭘 할 거냐는 질문에 그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했었어?”

    “그랬던 거 같아요.”

    “하하하하! 도빈아, 엄마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된다.”

    도진이가 있어서 지금은 나갈 생각이 없다.

    와인이야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커피도 이젠 어머니께서 포기하셔서 굳이 나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도진이는 그런 거 없어?”

    “도빈이 어렸을 때 비하면 도진이는 그래도 애예요.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행복하면 됐지.”

    아버지 말씀대로.

    비록 떨어져 살지만 우리 가족은 너무나 행복하다.

    “이야, 도진이 많이 컸네?”

    “어서 와, 동서.”

    “형, 살이 더 쪘는데? 형수님 피부는 여전하시네요.”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온 큰아버지의 집은 예전 느낌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다. 확실히 내 몸이 자라긴 한 듯.

    옛 생각에 예전에 우리 가족이 머물던 2층 방으로 향했는데 도진이가 따라 올라왔다.

    처음 와서 조금 불안한 듯 내 바지를 꽉 쥐고 주변을 둘러보는 걸 보니 역시 애는 애다.

    “왔어?”

    “형.”

    얘는 왜 볼 때마다 달라지냐.

    배영빈이 자기 방에서 나왔는데 뚱 뚱했던 어렸을 때와 삐쩍 말랐던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은 꽤 몸이 다부 져 보인다.

    “누구야?”

    도진이가 내 뒤에 숨어 얼굴만 내 놓고 묻는다.

    “영빈이 형. 사촌 형이야.”

    “형?”

    도진이랑은 나이 차이가 꽤 나니까 형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배영빈이 쪼그려 앉아 도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간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 들어 다행이다.

    “준비하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만화 볼래?”

    만화를 좋아하는 도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배영빈의 방으로 같이 들어갔는데 녀석이 영상 파일을 하나 틀었다.

    “어! 가랜드! 형아, 가랜드야.”

    “그러게.”

    내가 어렸을 적 배영빈과 함께 보던 만화였는데 도진이도 좋아해서 DVD를 사 주었을 정도로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

    “우와.”

    평소에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긴 해도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애다.

    녀석이 금세 만화영화에 빠지기에 한발 물러서 나도 함께 봤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나.’

    처음 보는 에피소드에 보다 보니 예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림이 라든지 목소리라든지 말이다.

    ‘음악도 없고.’

    싸움을 할 때의 박진감 있는 음악 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이 없어 아쉽다.

    “어땠어?”

    “재밌어.”

    도진이는 만족한 듯.

    나도 추억을 자극하는 정도로 재밌 게 봤는데 배영빈이 씩 하고 웃으며 놀라운 말을 했다.

    “다행이다. 재밌어서.”

    “무슨 말이야?”

    “이거, 내가 만들었어.”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차 다시 물었더니 배영빈이 직접 만든 것이 맞단다.

    도진이가 눈을 빛내며 배영빈이 하는 말을 듣는데 몇 년 전에 봤던 그 죽은 동태눈을 했던 녀석을 떠올 리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밥 먹자〜”

    “네〜”

    도진이가 어머니의 부름을 듣고 1 층으로 내려갔고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어 배영빈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이거.”

    혼자서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현대에 익숙해져 이런 작업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는 상식 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 가득한 모양.

    배영빈이 뒷머리를 잡으며 쑥스러 운 듯 말했다.

    “엄청 오래 걸렸어. 4년쯤 걸려서 겨우 20분이야.”

    그러더니 이내 진지해지더니 말했다.

    “나한테는 이것뿐이니까.”

    나는 녀석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다. 물어볼 이유도 없다.

    그러나 분명 녀석은 자신만의 영역 에서 해야만 하는,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내게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그렇다면 진심으로 녀석을 응원해 주고 싶다.

    이건 분명 또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려는 과정이라 생각하기에.

    “이거 그럼 어쩌려고?”

    “글쎄. 만들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가이녹스에 보내봤는데 답장이 없더라고.”

    “가이녹스?”

    “가랜드 만들었던 회사야.”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관심을 못 받은 듯하다.

    안타깝지만 이대로 저렇게 좋은 애니메이션을, 아니, 이 재능이 묻히는 일은 보고 싶지 않다.

    예전, 녀석이 내 곡을 인터넷에 올렸던 게 기억났다.

    “뉴튜브에 올려봐. 인기를 끌면 그 쪽 사람들도 연락하지 않을까?”

    “그럴까? 그런데 아직 편집이 덜 되어서. 아, 그리고 저작권도 문제가 있을 텐데. 동인 작품이라 괜찮을까.”

    갑자기 걱정이 많아진 듯.

    배영빈이 갖은 변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이거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을 거 아냐. 자신감을 가져.”

    “그야 아무도 재밌다고 해주지 않았으니까. 보여준 사람도 없었지만……. 가이녹스 사람들도 관심 없는 모양이고.”

    “나랑 도진이가 재밌다고 하잖아.”

    반응이 없어 다시 한번 말했다.

    “올려보라니까?”

    “……무서워.”

    “뭐가?”

    “재미없다고 하면, 욕하는 사람 있으면 어떡하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매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카모토도 신곡을 발표할 땐 무서워해.”

    배영빈이 여러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사카모토 료이치에 대해 모를 리가 없기에.

    그를 예시로 말했다.

    “하지만 욕먹는 게 두려워서 발표를 못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 저거 만드는 데 4년 걸렸다고 했지?”

    배영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4년 동안의 치열함과 즐거움은 어디로 간 거야. 형만 만족하려고 만든 거야?”

    “••••••아니.”

    “형이 저걸 만들 때 즐거웠다면 분명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걸로 포기하지 마. 멍청한 짓이야.”

    배영빈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어렸을 땐 네가 그렇게 미웠는데. 어쩜 더 그렇게 미워지냐.”

    “ 뭐?”

    “……너 천재잖아. 뭐든 하면 뚝딱 해버리고. 그런 네가 부럽기도 좋다 가 미워지기도 했는데.”

    배영빈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섰다.

    “고마워. 힘이 나네.”

    나를 미워한다고는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녀석은 이상하긴 해도 내게 한결같이 잘 대해주었다. 만일 녀석이 없었더라면 큰집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져 있었을 거다.

    그래서.

    녀석이 날 미워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고 그럼에도 결 국에는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려 노 력하고 이겨내려는 녀석의 투쟁에.

    조금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