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54화
33. 지구방위대 가랜드(1)
2020년 10월 26일.
‘해냈어.’
두 번째 참가하는 쇼팽 콩쿠르.
폴란드 유학을 와, 크리크 우승자 자격으로 참가해 마침내 결선에 올랐다.
5년 전 도빈이와 같은 레파토리로 준비했는데 피아노를 칠수록 당시의 도빈이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도빈이는 이곳에 없지만.
벌써 저 멀리 다른 곳을 향해 달 려가고 있지만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최선을 다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도단조.
조금은 도빈이에게 닿고 싶은 심정으로 절절히 쇼팽이 남긴 슬픔을 전 달했다.
“축하한다. 멋진 연주였어.”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대기실로 내 려오니 아버지께서 미소로 나를 반 겨주셨다.
“고마워요, 아버지.”
“최고더구나.”
“히히힛. 아버지는 항상 제가 최고 라고 하시잖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모니터를 통해 다른 참가자들은 어떻게 연주 하는지 보았다.
우승할 수 있을까.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도빈이처럼 날 감동시켜 주진 않는다.
‘너는 어디쯤 걷고 있니.’
내 연주는 들었을까.
지금 도빈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21년 2월 14일.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히무라 대표님.”
사카모토 선생님의 제자 툭타미셰 바와 계약을 마쳤다.
5년간 너무나 바빴지만.
4년 전에 발족한 배도빈 재단 운영이 궤도에 올라섰고 샛별 엔터테 인먼트도 이제는 제법 구색을 잘 갖췄다.
피아니스트 4명, 바이올리니스트 3명 그리고 성악가 2명을 관리하는 데 그에 따라 직원도 상당히 늘어났다.
그리고.
“오빠!”
“수고했어.”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온 박선영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달려들었다.
“컥.”
“들어봐. 내가 무슨 계약을 따냈게?”
“설마.”
“조르조 모더가 니나한테 곡을 써 준대! 대박이지!”
젊음인지 사랑인지.
엑스톤 시절부터 유독 날 잘 따라 주었던 그녀는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해 주고 있다.
“ 멋진데?”
“그치! 그럼.”
그녀가 눈을 감고 입을 내민다.
“ 뭐야?”
“상. 빨리〜”
무엇을 바라는지 뻔한 일이다만 이 젊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어떻게 대하고 싶은지.
너무도 잘 자각하고 있기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남자가 치사하게.”
그녀가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매번 이렇게 자제력을 흔들고 만다.
“오빠가 안 해주면 내가 하면 되지.”
“이제 내려와.”
박선영이 날 쏘아보곤 일어섰다.
“조금 이따 땅 보러 가봐야 하는데 같이 갈래? 30분이면 되니까 끝나고 저녁도 먹고.”
“말 돌리는 거 봐. 싫네요.”
“도빈이도 오는데.”
“으음. 그러게. 꽤 오래 못 봤으니 까. 검정고시는 잘 봤대?”
“겨우 합격했나 봐. 공부하느라 스 트레스 많이 받았어.”
“음악은 그렇게 잘하면서. 검정고 시가 그렇게 어렵나?”
“다른 분야니까.”
“그럼? 베를린으로 바로 간대?”
“올해 겨울에.”
차 키를 챙기자 박선영도 따라나섰다.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열기 전 확인하는 차 물었다.
“그걸로 돼?”
“뭐가?”
“상.”
“안 되지. 그게 얼마짜리 계약인데. 두고 봐. 니나가 이걸…… 이게 뭐야?”
“ 선물.”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평소 좋아 하는 가수의 한정 앨범을 어렵게 구 해 초콜릿과 함께 담은 상자를 건넸다.
박선영이 그것을 뜯었고 곧 활짝 웃어 내 가슴도 따뜻해졌다.
“ 오빠.
“못 구했다고 들어서.”
“뭐야, 진짜.”
박선영이 내 가슴팍을 때렸다.
평소답지 않게 수줍어했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 가고 만다.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 中 ‘밴쿠오의 자손’에 대해1
-작성자 체르니
-조회 수 117,381
-댓글 418개
“오. 12만 가겠는데?”
취미 삼아 도빈 오빠의 곡을 분석 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번 글은 반응이 좋다.
다들 좋다고는 하는데 도빈 오빠가 어떤 의도로 곡을 지었는지.
화성은 왜 그렇게 배치했는지에 대 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나라도 이야기하자고 마음먹었는데.
다들 재밌게 봐줘서 기쁘다.
최근에는 관중석이라는 클래식 음악 잡지사에서 글을 연재해 볼 생각이 없냐고 메일을 보냈는데.
내 글이 관중석에 연재된다니.
솔직히 말해서 못 믿겠다.
ㄴ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구나…….
ㄴ 좋은 글 보고 가요.
ㄴ 아, 이게 맥베스 이야기였구나. 이거 처음 나왔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ㄴ 배도빈 활동 안 한 지 4년 넘지 않았음?
ㄴ 17년 10월에도 연주회 했잖아요.
댓글을 살펴보는데 역시 오빠가 언 제 활동하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실 나도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 는지 잘 모르겠다.
뭔가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예전처 럼 작곡에 몰두하진 않았다.
예전에는 소소 언니한테 얼후를, 칠삼 아저씨한테 일렉트릭기타를 배 웠고 그 뒤에도 꽤 여러 악기를 다 뤘는데.
언론에서는 자기들 멋대로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 부담을 가졌다’라
거나 하는 식으로 오빠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거라 떠들었다.
나도 도빈 오빠가 새 곡을 만들면 좋지만.
모든 사람이 ‘이제 악상이 안 떠오 르나?’, ‘대체 연주회도 안 하는 이유가 뭔데’, ‘배도빈도 이제 끝이야.’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괴롭히는 데.
나까지 오빠에게 부담을 주긴 싫어 굳이 묻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는 도진이한테 푹 빠져 있어서 세상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도 없는 얼굴을 보면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채은아, 관중석이란 곳에서 전화 왔는데? 이필호 편집장님이시라고.”
“네?”
엄마가 이상한 말을 해서 나가보니 집 전화기가 내려 놓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집전화로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나 싶은데, 관중석이라니.
게다가 이필호 기자라니.
설마 그 메일이 정말이었나?
“여보…… 세요?”
-배도빈의 곡 해설 연재하는 체르니 님이시죠?
아빠 정도 될까?
나이 먹은 남자가 멋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요. ……왜 그러세요?”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관중석의 이필호라고 해요. 블로그 게시글 잘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실은 우리 잡지에 채은 씨 글을 연재해 볼까 싶어서요. 만나보고 이 야기하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을까요?
“자, 잠깐만요.”
쪽지. 쪽지.
아저씨의 말을 받아 적긴 했는데 정신이 없었다. 내가 당황한 것 같자 엄마도 걱정이 되었는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니?”
“아니야. 아니야.”
- 네?
“아, 아니에요. 그…… 집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글이 너무 좋아서 도빈 군에게 보여주었죠. 그러니 말해주더라고요.
못 들으셨나요?
헐.
-그럼 그때 봐요. 부모님과 함께 오시면 좋겠네요.
“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전화기를 끊고.
“꺄아아악!”
“얘, 얘가 왜 이래?”
엄마를 끌어안았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형아.”
칠삼 아저씨를 만나고 귀가하자 어 머니께서 평소와 같이 상냥하게 반 겨주셨고.
도진이 역시 아장아장 걸어와 내게 안겼다.
“읏쌰. 뭐 하고 있었어?”
“만화 보고 있었어.”
“무슨 만화?”
“몰라.”
거실로 가자 큰아버지 집에 얹혀살 때 배영빈이 보던 로봇 만화가 나오 고 있었다.
“재밌어?”
고개를 끄덕인 도진이가 내려달라고 몸을 비틀었다.
녀석을 내려주자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크면 안 돼.”
녀석이 눈을 반짝인다. ‘왜냐고 물 어줘’라고 말하는 걸 알기에 웃으며 말했다.
“스케일. 길이가 두 배 늘어나면 넓이는 제곱으로 들어나. 부피도 마 찬가지. 새로운 소재 없으면 저런 크기 의미 없어. 불가능해.”
뭔 말인지 모르겠다.
“도빈아, 저녁 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도진이랑 놀아줄래?”
“네. 도진아, 형 씻고 올 테니까 방에 가 있어.”
"음."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서자 도진 이가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책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왕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대. 코끼리를 삼 킨 보아뱀으로 보여?”
"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딜 봐도 모자인데 어딜 봐서 코 끼리를 삼킨 뱀이라는 건지.
게다가 보아뱀이라는 구체적인 종 까지 말이다.
“독립 확률 변수가 부족해. N이 적당히 크면 정규분포가 될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께 서 이런 기분이셨을까 싶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녀석의 귀여움은 세계 최고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책 재미없어. 이거 읽어줘.”
도진이가 어디서 구했는지 ‘스케 일’이란 제목의 책을 이불 아래서 꺼냈다.
-꺄아아악!
‘채은이 목소리가 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밖에서 채은이 와 어머니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오빠!”
“누나다. 안녕.”
“오빠! 나 글 쓴다고 말했어?”
무슨 말이지.
“몰라?”
잠시 생각을 해보니 관중석의 이필 호 기자가 채은이에 대해 물어본 것 이 떠올랐다.
“이필호 기자님?”
“어! 그런 이름이었어!”
“아, 말해주면 안 되는 거였나?”
“안 되긴! 최고야. 진짜 최고야!”
“야, 야. 잠깐.”
채은이가 달려들었다.
나보다 키가 커서.
이제 이럴 때마다 조금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