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52화
32. 세계를 거머쥔 손(2)
‘대체 이런 애들이 어디서 자꾸 나 타나는 거야?’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가우왕은 니나 케베히리의 연주를 듣고서 조금이지만 허탈해졌다.
사카모토 료이치, 크리스티앙 체르 만, 해리 베레조프스키, 디미트리 알렉스, 보리스 윈스턴, 미카엘 블레하 츠 그리고 배도빈.
가우왕은 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 히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스스 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 고 있었는데.
또다시 그 앞에 지금까지의 피아니스트들과는 전혀 다른.
그렇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훌륭하다.
만일 이 자리가 콩쿠르가 아니라 개인 콘서트였더라면 그녀의 연주는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런 가우왕의 생각은 뉴튜브 생중 계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인해 널리 퍼지는 중이었다.
ㄴ 쇼팽이 원래 이렇게 듣기 편했나?
ㄴ 와 진짜 지린다. 웃는 거 봐.
ㄴ 쇼팽 느낌이 아닌데. 곡 해석이 잘못된 듯.
ㄴ ㅇㅇ. 다른 사람들이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ㄴ 난 좋은데. 개성 있잖아.
ㄴ 배도빈과 같은 매니지먼트라고 하더니 히무라 쇼우 대표의 귀가 정확한 것 같네요. 이렇게 매력적인 연주자는 오랜만에 봅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니나 케베히리라는 피아니스트의 매력을 인지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비록 3차 본선에 진출 하지 못한 니나 케베히리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막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시 작한 그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하하하!”
“히히 힛!”
뭐가 좋다고 저리 웃는지.
최지훈과 니나 케베히리가 다음 라 운드에 진출하지 못해서 화가 난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요 며칠간 언짢았던 기분이 2차 본선 결과 발표 후 엉망이 되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피아노를 치며 즐 겁게 놀고 있다.
어제, 3차 본선에서 내가 연주했던 곡을 복기하는 둘은 죽이 잘 맞는 듯 깔깔대고 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피아노로 대화는 충분한 듯하다.
그 모습은 보기 좋고.
괜히 콩쿠르에서 떨어졌다고 속상 해하는 것보단 낫지만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 떨어지니 기분이 좋지만 은 않았다.
“결선 진출 축하하네.”
“사카모토.”
“두 사람이 떨어져서 속상한 모양 이구만.”
사카모토 료이치가 다가와 곁에 앉았다.
“지훈이는 어쩔 수 없어도 니나는 떨어질 실력이 아니었으니까요.”
“같은 생각일세.”
“역시 그렇죠?”
“하지만 어쩌겠는가. 심사위원단이 그리 판단했거늘. 니나 양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카모토의 말대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콩쿠르가 더욱 마음에 안 드는 거다. 기준이 있어 그에 부합 하는 연주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니까.
“난 말일세 ”
사카모토가 입을 뗐다.
“빌헬름이나 필스 경 등 정말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 네. 내 음악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았고 라이벌로서도 함께할 수 있었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나 역시 여러 천재들과 함께했으니까.
특히 로시니는 당시 그의 오페라가 너무나 인기를 끌어 나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당시에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에게 전했던 쪽지보다 명 확한 소감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기뻤다고 말이다.
“이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새 발전해 있는 나와 상대를 볼 수 있고 그 뒤에는 친구가 될 수 있었지.”
히무라는 원피스 같은 이야기라 하 지만 사카모토의 말에는 크게 공감 한다.
“그래서 조금 안타까울 때가 있네. 자네에겐 그런 존재가 많이 없을 것 같거든.”
“사카모토랑 푸르트벵글러가 있잖아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 맙지만 나와 빌헬름도 이제 늙었지.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아. 자네 와 함께 음악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쉽지.”
사카모토의 말대로 그럴 나이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지 조금 걱정되긴 하네. 자네도 그걸 알기에 지훈 군이나 니나 양에게 마음을 쓰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동료가 있든 없든 전 제 음악을 할 뿐이니까요. 다만 안타까울 뿐이에요. 유망한 음악가가 본인의 날개를 펼치지 못 하는 것 같아서요. 특히 이번 콩쿠르에선 니나가 그렇죠.”
“하하.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세. 전 에 내가 음악은 좀 더 솔직해지고 있다고 말한 거 기억나는가?”
“네.”
“니나 양에 대한 반응일세.”
사카모토가 내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보니 니나 케베히리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내용부터 그녀의 힘찬 연주에 감명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수백 개의 댓글을 보며 조금 안심 할 수 있었다.
“결코 실패가 아니었어.”
“네, 그렇네요.”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소와 함께 차를 마시는 와중에 박선영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마르코가 입단을 했다고요?”
“응. 오늘 오전에 연락되었는데 그 때문에 바쁜가 봐. 그래도 생중계로 응원하고 있다고 하더라.”
마르코 진이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에 합격했단 말은 최근 좋지 않았던 내 기분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아버지를 따라 빈 필하모닉의 오보에 주자가 되겠다던 꿈에 한발 다가 간 모양이다.
“통화해 볼래?”
“네.”
박선영이 마르코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내게 넘겨주었다.
“선영, 이거 맛있어.”
“버터 쿠키잖아. 밥 먹었는데 또 먹은 거야?”
“맛있으면 0칼로리.”
통화음이 몇 번 간 뒤 마르코가 약간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마르코 진입니다.
“저예요, 배도빈. 잘 지내죠?”
-와! 그럼! 잘 지내지! 너도 잘 지 내고 있어?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갔다.
마르코도 반가워하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에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축하해요.”
-아하하! 고마워. 참, 괜찮은 거야? 내일이 결선이잖아.
“걱정 말아요. 준비는 다 되었으니까.”
-하긴. 3차 본선 정말 잘 들었어.
현장에서 직접 듣고 싶었는데, 가지 못해서 아쉽다. 기껏 초대해 줬는데 미안해.
“그런 말 말아요. 꿈이 우선이니까.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
말끝에 작게 웃는 마르코의 목소리가 다시금 우울해졌다.
그토록 바라던 입단이었을 텐데 힘이 없는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나 싶다.
“무슨 일 있어요?”
—그…….
잠시 말을 흐린 마르코가 생각 끝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실은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따라 가는 게 힘들어서. 저번 주부터 따라 하는데 많이 혼나고 있어.
확실히.
작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느 꼈던 것을 마르코도 입단하면서 느낀 듯했다.
떨림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빈 필의 스타일에 맞춰야 하는데.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에 입단하 면서부터 그 훈련이 시작된 듯했다.
마르코뿐만이 아니라 많은 연주자 가 고생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훌륭하다 생각하면서도 그 철두철미한 연주에 정감을 느낄 수 없기도 했고 말이다.
-뭐, 내가 잘못한 거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잘못되었다.
니나 케베히리의 탈락도.
마르코 진의 ‘내가 잘못한 거니까’ 라는 생각도 잘못되었다.
“아니에요.”
-어? 뭐가?
“마르코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빈 필이 원하는 연주자가 있을 뿐. 마 르코의 오보에가 훌륭한 건 직접 들었던 제가 잘 알아요.”
-아하하. 이거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조금 쑥스러운데?
“진심이에요.”
부디 빈 필하모닉과 함께해 본인의 빛나는 재능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아버지를 발자취를 더듬어 걸어가 려 이제 막 발을 내디딘 그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는 없다.
내 오케스트라에 데려오고 싶다 해 서 그 역시 그걸 바란다곤 생각할 수 없으니까.
“빈 필의 느낌이라면 잘 알고 있어요. 콩쿠르 끝나고 찾아갈게요.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도와 달 라 해야죠. 꼭 해낼 거예요.”
마르코와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도빈아, 콩쿠르 끝나고 오스트리 아로 갈 거야?”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통화 내용을 들으신 것 같다.
“네, 마르코한테 가보려고요. 막힌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요.”
“그렇구나. ……어쩌지.”
어머니께서 조금 난감하시다는 듯 아버지를 보셨다.
“어쩔 수 없지, 뭐. 도빈아, 오스트리아에선 얼마나 있을 거니?”
“글쎄요.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께서 하하하고 웃으셨다.
묘하게 어머니도 아버지도 조금 쑥 스러워하시는 듯하다.
“영빈이 형 군대 간다고 하니까.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이려고 했지.”
“아.”
배영빈이 의무를 하기 위해 입대를 하는 듯.
군인이 되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니 축하와 응원 그리고 무사하길 바라는 자리를 마련하시려는 듯했다.
‘그 몸으로 군대에서 잘할 수 있으려나.’
배영빈의 산만 한 뱃살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가 당분간 한국에 가 있어야 해서. 도빈이랑 같이 가려했지.”
아버지와 함께 도란도란 잘 지내신 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국에 가셔야 한다고 하니 의아했다.
‘싸우신 것 같진 않은데.’
나란히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사이는 좋으시고.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여쭸는데 아직은 비밀이라 답하실 뿐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선영과 함께 있던 소소가 다가와 말했다.
“콩쿠르 끝나면 얼후 배우고 피아노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하는데?”
박선영이 그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할 일이 정말 너무 많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금 검 정고시 준비를 하려 하니 머리가 아 파온다.
“하하하! 이거 쇼팽 콩쿠르 결선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 군그래.”
사카모토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