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50화 (15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50화

    31.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9)

    최지훈의 첫 곡은 쇼팽 에튀드 OP. 10 N.8 卜장조.

    타건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그 빠른 속도 때문에 음이 쉽게 뭉개져 연주에 의미가 없어진다.

    최지훈이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함.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연습곡으로서 그 영역은 최지훈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한 음을 누른 뒤 그 상태를 유지 한 채 다음 음계들을 연주해야 하는 아르페 지오 (Arpeggio).

    넓지는 않지만 매우 빠른 속도를 요하는 스케일.

    밀집된 음형에 따라 손가락 번호가 정확히 요구되는 등.

    연습만이 답인 그 곡을.

    최지훈은 너무나 훌륭히 소화해냈다.

    심사위원들은 대한민국의 어린 참 가자, 최지훈이 들려준 첫 번째 곡에 의아했다.

    ‘예선 통과가 운이 아니었단 말이지.’

    ‘이렇게나 정확하게 연주하려고 얼 마나 연습을 반복했을지.’

    심사위원들 역시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 왔던 사람들이라 저 나이 때에 저런 연주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배도빈이 비정상적으로 완벽, 아니, 무엇인가를 넘어서려는 듯할 뿐.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분명 크게 놀랐을 실력이었다.

    ㄴ 난 뭔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잘 하는 것 같다.

    ㄴ 개잘하는 거임. 저거 진짜 쳐보 면 손가락 안 꼬일 수가 없음.

    ㄴ 지훈이도 진짜 연습 많이 했나 보네.

    ㄴ 쓰러졌대잖냐. 오죽했으면 그랬 을까. 잘 됐으면 좋겠다.

    ㄴ ㅇㅇ.

    ㄴ ㅇㅇ. 진짜로.

    그러나 최지훈은 이런 응원을 듣고 자 참가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노력했던 결과가 ‘응원’을 받을 뿐이라면 그보다 최지훈이 좌절할 일도 없었다.

    응원을 하는 입장은 본인.

    연주를 통해 듣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 그것을 박수로 돌려주길 바라며 연습했던 것이다.

    최지훈이 두 번째 곡을 준비했다. 쇼팽 에튀드 OP. 10 N.12 C단조. ‘Revolutionary’.

    혁명.

    가늘게 치고 들어온 선율 뒤에 곧장 이어지는 선율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오른손의 화음 전개에서 느껴지는 의지.

    그것을 반주하는 왼손의 아르페지 오가 풍기는 절망적인 분위기 한데 어울리면서 곡은 점차 희미하게, 희미하게 차분해진다.

    그러나 다시.

    마치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듯 마지 막에 이르러 다시금 힘을 주게 되는 쇼팽의 혁명.

    이 비장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 해, 최지훈은 배도빈이 알려준 ‘깊이’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그간의 최지훈에 대해 알고 있었던 팬들과 심사위원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줄 수 있었다.

    ‘……제법이잖아, 부잣집 꼬맹이.’

    최지훈을 그저 건방진 꼬맹이라고 만 생각하고 있었던 가우왕도 이 두 번째 곡을 통해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으며.

    ‘저 어린 나이에 이런 표현력을 갖 추다니. 믿을 수 없군.’

    다른 심사위원들 모두 최지훈을 그 저 교과서를 빨리 익힌 수재에서 그 보다 한 발 앞선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ㄴ 와 좋은데?

    ㄴ 지훈이 연주 스타일이 뭔가 좀 더 풍부해졌네.

    ㄴ 슬슬 곡을 해석할 수 있게 된 건 가 봄. 예전처럼 밋밋하지 않네. 좋다.

    ㄴ 엉엉 지훈아 ㅠㅠ

    세 번째 곡, 네 번째 곡에서도 훌 륭한 연주를 한 최지훈이 피아노에 서 떨어져 인사를 하곤 퇴장하였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흡족했으나 최지훈은 쿵쾅대는 가슴을 어찌할 바 몰랐다.

    어서 빨리 대기실로 돌아가 짐을 챙겨 배도빈과 만날 생각뿐이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짐을 챙길 때야 자신이 떨고 있음을 깨달은 최지훈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쉽게 진정할 순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준비한 네 곡만큼은 무사히 연주했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대기실을 벗어난 순간.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1차 본선을 마친 소감이 어떠십니까!”

    “준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인터넷 생중계 반응이 좋습니다! 2차 본선 진출을 확신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 공세에.

    최지훈은 활짝 웃으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감추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질문을 한 기 자를 보며 답했다.

    “네, 전 천재니까요.”

    그 밝은 표정에 기자들이 더욱 신을 내 최지훈에게 달려들었다.

    “끄앙! 도빈아아아.”

    “잘했어.”

    휴식 시간.

    연주를 마친 최지훈이 한참을 안 오기에 뭘 하나 싶었더니 인터뷰를 하고 온 모양이다.

    날 붙잡은 손이 아직 파르르 떨리 고 있어 꽉 잡아주니 곧 멎었다.

    간이 이렇게 작아서야.

    “아들! 너무 잘하던데?”

    “히히힛! 정말요?”

    어머니의 칭찬에 해맑게 웃은 녀석 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장실 가셨어.”

    “ 아.”

    자기 아버지를 찾는 것 같아 말해 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어머니도 좋지만 역시 친아버 지와 함께하고 싶은 듯.

    당연한 일이다.

    이제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 멀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잠시 뒤, 콩쿠르 시작 5분

    전이 되어 다시금 관중석으로 향했는데 최지훈이 내 옆에 앉았다.

    “니나 누나는 언제야?”

    “마지막.”

    “엄청 잘하겠지?”

    “아마••••••

    최지훈이 말하는 ‘엄청 잘한다’라는 기준이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수 준과 차이를 보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그녀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 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담임 교수가 그러할까?

    니나 케베히리에게는 바라는 수준 이 있었다.

    음대에 진학하고 1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니나만으로 도 그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 그녀가 더욱 찬란한 빛을 낼 수 있는 보석이라 생각한다.

    멋대로 기대하여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만, 그녀에게 내 사비를 털어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흔한 일은 아니니까.

    내 피아노를 뛰어넘길 바라는 세 사람 중 한 명이고 그에 가장 근접 해 있기에.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는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1차 본선 첫 번째 날의 마지막 주자.

    니나 케베히리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서야 집중할 수 있었다.

    예선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찬란함.

    ‘오늘은 어떻게 할지……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팔짱을 끼고 그녀의 손가락에 의식을 집중했다.

    니나 케베히리의 첫 곡은 쇼팽 에 튀드 OP 25. N.2 F단조.

    무난한 난이도의 곡인데.

    ‘ 빨라.’

    속주에는 익숙한 나조차 빠르다고 인식할 정도로 빠르다.

    그런 주제에 악센트와 본래 약했다 고 하는 페달 활용도 완벽히 해낸다.

    1분은커녕 50초도 안 될 것 같은 시간 안에 도단조를 순식간에 연주 한 니나 케베히리는 뭔가 후련한 것 처럼 보였다.

    다음 곡은 쇼팽 에튀드 0P 25. N.3 도장조.

    본인의 활기찬 느낌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활달하게 움직이는 선율들을 가지 고 노는 와중에 정확함을 잃지 않고 음 표현의 완급 조절도 완벽.

    역시 내 귀는 정확했다.

    예선과 1차 본선을 통틀어 나는 이보다 활기차고 명확한 그리고 명 석한 연주를 들은 적 없다.

    단지.

    ‘너무 빠르잖아.’

    쇼팽의 연습곡이 짧긴 해도 두 곡을 연주하는데 2분 정도 흐른 느낌 이다.

    그 빠른 템포를 곡 연주에 잘 녹 여낸 게 대단하지만.

    적어도 홍승일이 내게 알려주었던 ‘콩쿠르 연주’와는 꽤 차이가 있었다.

    1차 본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심사위원들은 발표 전 마지막 미팅을 가졌다.

    참가자들의 점수를 확인한 그들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 곤욕 이었다.

    약속이라도 하듯 배도빈의 점수가 모두 24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심사위원이 같은 생각이었는 데 첫 번째 주자였던 만큼 만점을 주기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1점을 내려 준 것.

    그러다 보니 모든 참가자가 25점 만점을 받지 못한 결과가 나와 버리 고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2차 본선 진출자로 가장 먼저 선택받은 참가자는 배도빈.

    17명의 심사위원에게서 각 24점을 받아 총점 408점을 기록했다.

    바로 아래 점수를 획득한 다른 참 가자와의 점수 격차가 40점 이상인 지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적폐도 이런 적폐가 없는 평가표.

    그것을 확인하다 최지훈의 이름이 나왔다.

    총점은 311점.

    정말 아슬아슬한 점수였으나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자격이 있냐는 ‘YES or NO’에서는 모든 심사위원 으로부터 ‘YES’를 받았다.

    그리고 논란의 니나 케베히리.

    “그녀가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으음.”

    “하지만 그녀의 연주는 쇼팽이라기 보다는……

    “그녀 본인의 연주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미스터 배의 연주 또한 그렇습니다.”

    “배도빈의 연주는 쇼팽의 악보를 해석하는 영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와 니나 케베히리의 연주를 동일 한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저는 그녀의 진출이 왜 문제가 되 는지 모르겠군요. 여기 계신 분 모 두 공감하지 않습니까. 니나 케베히 리의 연주가 다른 어떤 진출자보다 훌륭했다는 것을요.”

    의견이 갈리는 와중 미카엘 블레하 츠가 니나 케베히리의 점수표를 확 인했다.

    총점 340점.

    낮은 점수는 아니나 다음 라운드 진출에 대해 반대하는 심사위원이 많았다.

    미카엘 블레하츠가 듣기에도 그녀 의 쇼팽은 쇼팽이란 느낌이 없었다.

    니나 케베히리의 곡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파격적인 연주였다.

    그래서 더없이 즐거웠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그녀의 실력에 감탄하고 매력을 느꼈지만 심사위원 으로서 어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 선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때 가우왕이 나섰다.

    “뭘 그리 고민들 하십니까.”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니나 케베히리의 총점은 결국 다른 참가자들보다 높습니다. 반대하시는 분들이 왜 그런지는 이해하지 만 총점이 높은데 떨어뜨리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진출시키는 게 맞습니다. 만약 그 녀가 정말 자격이 없다면 다음 라운 드에서 명확해지겠지요.”

    결국 그렇게.

    1차 본선 참가자 80명 중 2차 본 선에 오른 사람은 41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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