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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48화 (148/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48화

31.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7)

10월 8일.

1차 본선을 앞두고 바르샤바로 향 했다.

본선과 결선까지는 꽤 오래 걸리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 할아 버지께 부탁해 괜찮은 호텔 한 층을 모조리 빌려 사람들을 초대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

“안 돼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께서 자연스 럽게 입을 맞추려 하시기에 서둘러 막았다.

“이젠 컸다고 아빠한테 뽀뽀도 안 해주는 거니?”

“전부터 싫었어요.”

좌절한 아버지를 뒤로하고 어머니 께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셨다.

“이탈리아에선 푹 쉬었어?”

“네, 재밌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쉰 듯하다. 쌓여온 피로와 계속된 공부 에 지쳐 있던 터라 내겐 정말 소중 한 휴식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 몸은 좀 괜찮아?”

“네!”

최지훈도 잊지 않고 챙기신 어머니 께선 아버지와 함께 히무라와 대화 하기 위해 발을 옮기셨다.

본선에 초청한 사람이 꽤 많아서 파티장이 꽤 북적인다.

“도빈.”

고개를 돌리니 소소가 불편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채 그녀의 매니저 와 함께 서 있었다.

“ 소소.”

“도빈 나쁜 학생. 얼후 아직 못 해. 빨리 배우자.”

“콩쿠르 끝나면 부탁할게요. 한국 에선 잘 지냈어요?”

“한국 좋아. 닭갈비 최고.”

서로 합의는 했지만 불편하면 어쩌 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국에서 빈 둥대며 잘 노는 것 같다.

“쇼팽 콩쿠르 끝나면 가우왕하고

재밌게 놀아요.”

“왜?”

왜라니.

“오빠랑 안 만나는 게 최고.”

대화를 마치고 소소가 매니저와 함께 음식이 준비된 곳으로 향했다.

“무섭게 생긴 누나다. 누구야?”

옆에 있던 최지훈이 물었다.

“소소라고 내 얼후 선생님.”

“ 얼후?”

“그런 게 있어.”

“아, 니나 누나다. 나 인사하고 올게.”

다들 편히 놀고 있는데 초대한 사람 중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박선영이 먹성 좋게 뷔페 음식을 입 가득 넣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음식을 찍고 있기도 한 데 또 인터넷 방송을 하는 모양이다.

“누나, 마르코는 안 왔어요?”

박선영이 음식을 대충 넘긴 뒤 물었다.

“누구?”

“오스트리아의 마르코. 오보에 연주자요.”

“뭔가 사정이 있나 봐. 못 온다고 하던데?”

“무슨 사정이요?”

“글쎄?”

큰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마르코는 미래의 소중한 단원이다.

할아버지의 직원에게 부탁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아, 도빈아, 가기 전에 시청자들한 테 인사 한 번만 해줄래?”

“싫어요.”

사카모토에게 가려는데 소소가 다가왔다.

“선영, 그거 맛있어?”

“아, 소소 씨. 드셔 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 맛있다.”

“아, 이분이요? 중국의 얼후 연주 자인 소소 씨예요. 예쁘죠?”

박선영의 개인 방송에 나와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 소소는 케이크를 먹을 뿐이다.

박선영이 이것저것 다른 음식을 가 져다주는 걸 보니 시청자 반응이 좋은 것 같다.

“그새 친구를 많이 사귄 모양이로군.”

“사카모토.”

사카모토 료이치가 먼저 다가왔다.

한 손에 와인을 들고 있다.

“왜 그러는가?”

“와인 마시지 마세요.”

“음?”

“일찍 죽어요. 사카모토는 오래 살아야 해요.”

“하하하. 이거 걱정을 해줄 줄이야. 걱정 말게. 와인 한 잔 정도야 건강에 좋다는 말도 있으니.”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그가 들고 있는 와인 잔을 노려보는데 사카모토가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콩쿠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출전하게 되었나?”

“친구랑 약속했거든요.”

“ 친구?”

최지훈을 바라보자 사카모토가 빙 그레 웃었다.

“최지훈이라는 친구였지? 꽤 유망 한 피아니스트 같더군.”

“네, 크게 될 아이예요.”

“흐음. 좋은 일이지. 신기한 일이 야. 살면서 이렇게나 어린 유망주가 많은 적은 처음이거든. 실은 툭타미 셰바라는 친구를 문하로 들이기로 했네.”

크리크 피아노 부문에서 2등을 한 러시아 꼬맹이가 사카모토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느끼지 못한 어떤 부분에 대 해 발견한 모양이다.

“잘 되면 좋겠네요.”

“음음. 참으로 멋진 세대야. 십 년 뒤가 기대되지. 아, 그러고 보니 나카무라의 딸도 음악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이야기 들었는가?”

“아니요.”

그러고 보니 최근 나카무라와 소원 했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나카무라 도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을 운영하기 위해 꽤 바빴을 테니까 말이다.

히무라가 혼잣말로 ‘이거 원 통화 하는 것도 힘들어서야’라고 중얼거린 게 떠올랐다.

“일본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을 했다고 들었네. 나카무라 그 친구가 얼마나 기특해하던지.”

“좋은 일이네요.”

“암. 좋은 일이고말고. 재능 있는 음악가가 많아진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

맞는 말이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 오케스트라에 들어올 후보가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어서 빨리 다들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싶다.

“그건 그렇고. 쇼팽 콩쿠르 준비는 어떤가.”

“재밌어요. 알수록 깊은 피아노더 라고요. 멋진 음악가예요. 쇼팽.”

“하하하. 그렇지. 자네다운 말이 야.”

“저 답다고요?”

“보통은 열심히 했으니 우승할 거 라든지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지 않나.”

“그렇죠?”

“그런데 쇼팽의 곡을 준비하면서 쇼팽에 대해 평하니 자네답다는 거지.”

“우승이야 어차피 제가 하는 거니까요.”

박선영, 소소와 함께 입안 한가득 음식을 넣고 웃고 있는 니나 케베히 리를 보며 답했다.

다음 날.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차 본선이 시작되었다.

쇼팽 협회가 예고했던 대로 본선 참가자 80명의 모든 연주가 뉴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피아노 콩쿠르를 보기 위해, 또는 배도빈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해당 채널에 접속했다.

도빈이 언제임?

ㄴ 첫 번째임 ㅋㅋㅋㅋ

ㄴ 서버 개느려. 뉴튜브 일해라!

ㄴ 역사적인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배도빈의 피아노는 이미 여러 번 검증되었지만 공식적인 타이틀은 없어 아쉬웠죠. 이번 콩쿠르를 통해 그마저 확보할 것 같습니다.

ㄴ 저 미국인 뭐라는 거냐? 누가 해석 좀.

ㄴ 배와 최 덕분에 한국 사람들도 많이 들어온 모양이네.

ㄴ 도빈이 빨리 베를린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ㄴ 와 채팅 속도 실화? 이거 쇼팽 콩쿠르가 인기 있는 거냐 아님 배도빈이 인기 있는 거냐?

ㄴ 배도빈 유독 첫 번째로 많이 나오네.

ㄴ 왜 이렇게 끊겨. 연주할 때도 이러면 차라리 나중에 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ㄴ 도빈이가 처음이라 본선 점수 전 체적으로 짤 것 같다.

ㄴ ㅇㅇ?

ㄴ 원래 이 정도 수준의 콩쿠르는 상대평가를 할 수밖에 없음. 상위권은 미스가 거의 없으니까.

ㄴ 정확히 말하면 첫 번째 주자를 기준으로 삼는 거지. 그래서 도빈이가 기준이면 뒤에 연주하는 사람들 점수가 평소보다 박할 수밖에 없다는 뜻임.

ㄴ 아, 나왔다.

ㄴ 배도빈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해 애석합니다. 현장에 있는 분들이 부럽네요.

ㄴ 오늘 몇 곡 연주함?

ㄴ 연미복 넘 잘 어울린다 ㅠㅠ

ㄴ 도빈이 얼굴 일 잘하네.

ㄴ 에튀드 2곡, 녹턴 1곡, 발라드스 케르초•판타지•바카롤 중에 1곡. 총 4곡임.

ㄴ 엌ㅋㅋㅋㅋ 심사위원에 가우왕 ㅋㅋㅋㅋ

ㄴ 가우왕 도빈이한테 지지 않았음? 근데 심사위원으로 있넼ㅋㅋ

ㄴ 둘이 사이좋은데 이간질 해.

ㄴ 정작 둘이 서로 디스하면서 놀던데 뭘.

ㄴ 아 채팅 개빠르네 진짜. 그래서 뭐뭐 연주한다고?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참가했지만 쇼팽 콩쿠르는 내게 꽤 의미 있는 대회였다.

니나 케베히리라는 천재와 경쟁할 수 있고 최지훈과의 약속을 지킬 무 대이자.

홍승일이 부탁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이유가 없더라도 쇼팽을 알아가는 과정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남긴 피아노를 그가 들었을 테고.

다시금 두 세기에 걸쳐 그가 남긴 음악을 탐미했던 시간은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듯했다.

쇼팽과의 대화.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천재의 피아노를 연주할 시간이다.

쇼팽 에튀드 0P. 10 N. 3. E장조.

‘Tristesse(슬픔)’.

♪♫♬♪♫♬

♪♫♬♪♫♬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이다.

다성부를 다채롭게 다뤄야 하는 이 곡은 악보를 살펴볼수록 그 깊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잔잔하게 이어가다 화성과 함께 전조를 보이고.

다시금 애절하게.

음과 음 사이의 공백에 대한 사색을 통해 부드럽게 이어갈수록 이 멜 로디는 더욱 애잔해진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노을처럼 연주한다.

그는 무엇을 슬퍼했을까.

대체 그의 가슴에 무엇이 박혔기에 이다지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아낼 수 있었던 걸까.

알고 싶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가 남긴 악보를 연주하는 것만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다가가야지.

격렬함과 슬픔이 대비되며.

마지막에 이르러 눈물을 홈치는 쇼팽.

그는 진정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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