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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46화 (14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46화

    33.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5)

    2008년 가을.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우리 아들 노래 어쩜 이렇게 잘 부를까?”

    “엄마 닮아서요!”

    “아하하. 그러게?”

    “히히 힛

    이지우는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선천적으로 건강이 안 좋았던 그녀 에게 최우철이란 남자가 다가온 것 은 행복이자 걱정이었다.

    “사랑합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도 열렬 히 구애하는 남자.

    이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마 음을 열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렇게 꿈같은 2년이 흐르고.

    이지우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조차 허락되 지 않았다.

    너무나 약한 그녀에게 출산은 목숨을 건 행위였고 최우철은 아이를 가 지는 데 반대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험에 내몰 수는 없었다.

    “입양합시다. 사랑으로 다독이면 그게 우리 아이예요.”

    이지우는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최우철의 설득으로 인

    해 임신을 포기하고 입양을 하기 위 해 돌아다니던 중.

    어느 한 영아원에서 돌조차 되기 전인 한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 맑은 눈.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매일 그 아 이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결국 영아 원을 다시 찾았다.

    그로 인해 얻은 아들 최지훈.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아이는 너무나 바르게 커주었다.

    어찌나 웃음이 많던지 우는 법이 없었다.

    “꺄르르. 까꿍!”

    “꺄아! 꺄! 꺄!”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최지훈이 조금씩 자람 에 따라 이지우는 조금씩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자의 행복을 막을 순 없었다.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 아들은 그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퇴근한 아빠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매일 눈에 담았다. 웃었다.

    그렇게 가족은 행복했다.

    “저도 피아노 쳐볼래요.”

    “그럴래?”

    최지훈은 곧잘 이지우의 피아노를 따라 했다.

    “아빠 왔다〜”

    “아빠!”

    “어이쿠. 엄마랑 잘 지냈어?”

    “네! 오늘 나비야 배웠어요!”

    “지훈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나봐. 너무 잘하더라.”

    “그래?”

    최지훈이 피아노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설프게 나비야를 쳤다.

    말 그대로 너무나 어설펐으나 부부 에게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이야! 우리 아들 천재네, 천재!”

    최우철이 크게 웃으며 최지훈을 들 어 안았고 최지훈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어머니와 마주보고 웃었다.

    “자, 그럼 오늘도 같이 잘까?”

    “당신은. 지훈이도 이제 혼자 자야 한다니까?”

    “뭐 어때. 지훈아, 아빠랑 엄마랑 같이 자는 게 좋지?”

    “네!”

    세 사람은 매일 함께 잠을 이뤘다.

    이지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매 일 밤 행복하게.

    이별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찾아올 것을 모른 채.

    “나비야- 나비야〜”

    착한 아들은 누워 있는 이지우 곁 에서 항상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쳤다.

    그 낭랑한 목소리와 청명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이 이지우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지훈아.”

    “ 네.”

    이지우가 나지막이 아들을 불렀다.

    피아노를 치던 최지훈은 엄마의 부름에 의자에서 내려와 침대 옆에 찰 싹 달라붙었다.

    “지훈이는 엄마랑 아빠 사랑해?”

    “네! 이〜만큼요!”

    “엄마도 아빠도 지훈이를 너무나 사랑해.”

    최지훈이 너무도 행복하게 웃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건 정말 멋진 일 이야. 아빠는 엄마가 아픈 것도 고 집이 센 것도 다 사랑해 줬어. 지훈 이처럼.”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린 내 아들이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지우는 분명 이해할 거라 생각하 며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는 지훈이의 목소리도 좋고 예쁜 눈도 좋아. 작은 손도 좋고 피아노 치는 것도 좋고 엄마를 꼭 안 아주는 것도 좋아.”

    “저도 엄마가 너무 좋아요.”

    “지훈이가 이불에 쉬 해서 얼굴 빨개진 것도 좋고 만화 보는 것도 좋아.”

    최지훈이 부끄러운지 이지우가 덮고 있는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하는 건 그런 거란다. 지훈이도 엄마가 매일 누워 있다고 싫지 않지?”

    “으으응.”

    최지훈이 고개를 들어 강하게 부정했다.

    엄마가 싫다니.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아빠는 되게 못된 사람이야. 나쁜 짓도 많이 했어.”

    처음 듣는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 쁜 사람이란 말을 마찬가지로 세상 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한다.

    “그래도 결국엔 자기 나쁜 점을 깨 닫는단다. 그러기까지 오래 걸릴 뿐 이야.”

    최지훈은 이지우와 눈을 마주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아빠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을 거야. 아빠는 그런 사람들에게 용서받 기 위해 어쩌면 평생 사죄해야 할지 도 몰라. 엄마가 그러라고 했거든.”

    “하지만 엄마랑 지훈이만은 그런 아빠를 사랑해 주자.”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떠나도. 아빠 많이 사랑해 줘야 해?”

    뭐라고요?”

    -도련님께서…….

    울먹이는 집사의 전화를 받은 순간 최우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아들이 있는 이 탈리아로 향한 최우철은 병실에 누 워 있는 최지훈을 본 순간 무너졌다.

    “사장님!”

    집사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아들 곁으로 향한 최우철은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곤 기어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아버지?”

    “지, 지훈아!”

    정신을 차린 최지훈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그런 아들이 자신을 부르자 최우철은 아들의 손을 꽉 쥐었다.

    “내일은…… 꼭 일어날게요. 걱정 마세요.”

    최지훈이 일어나자마자 꺼낸 말에 최우철은 말을 잃었다.

    그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아들을 보고 있자 집사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최지훈을 다시 재웠다.

    최우철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걸 바랐던 게 아니었다.

    지쳐 쓰러진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내일은 꼭 일어나겠다는 말을 할 정 도로 내몰려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겪었던 환경을 그대로, 저 어린 나이에 담고 있었다고 생각하 니 퍼뜩 그간 자신이 했던 말과 행 동이 뇌리에 스쳤다.

    “사장님, 일단 도련님께서 안정을 취하도록 자리를 비워주지요.”

    “……네.”

    집사에게 이끌려 병실 밖으로 나온 최우철은 충격으로 인해 멈췄던 눈 물을 다시금 쏟아냈다.

    “여태 버틴 게 기적이었습니다.”

    집사는 최우철 곁에 앉아 담담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촬영 시간이 8시간, 피아노를 연습하는 데 8시간. 연기 지도를 받는 데 2시간. 학교 공부를 하는 데 또 2시간. 어른이라도 쓰러질 일정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도련님은 웃었습니다. 몇 주씩 연습해 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면 사모님께서 좋아하실 까요? 하곤 물었지요.”

    집사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 작했다.

    “이번 영화가 개봉되면 사장님께서 봐주실까 물었습니다. 그 어린……

    잠시 목이 메어 말을 멈춘 집사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어린아이가 그런 일을 하면서 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대체.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최우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뼈저리게 가난했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넘어야 할, 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이었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자는 시간을 줄 여서라도, 때로는 상대를 끌어내서 라도 올라서야 했다.

    그런 본인을.

    막아서 준 사람은 이지우였다.

    그녀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지우를 사랑할수록 최우 철은 비로소 성공보다 큰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랬던 그가.

    어느새 다시 되돌아간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입이 있어도 무엇을 말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본인이 그렇게 진절머리를 냈던 그 상황에 아들을 밀어 넣었단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사모님이 보고 계시다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집사가 일어섰다.

    “저는 더 이상 사장님의 지시에 따를 수 없습니다. 도련님이 회복하면 그만두겠습니다.”

    집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갔고.

    최우철은 차마.

    아들이 있는 병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병실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사가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여전히 병원 복도에 앉아 있는 최우철을 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깨어나셨습니다. 들어가 보시죠.”

    집사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떠났고 최우철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문을 열었다.

    너무나 작은 아이가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최지훈이 고개를 돌렸고 최우철을 보자 활짝 웃었다.

    “아버지.”

    최우철은 말없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 보조의자에 앉았다.

    “아버지가 오신 것 같았는데 정말이었어요. 히히힛

    “몸은 좀 어떠냐.”

    “괜찮아요. 푹 잤더니 이제 멀쩡해 졌어요.”

    핼쑥한 얼굴로 밝은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보곤 최우철은 또다시 자신의 실수를 느꼈다.

    아들이 이 지경이 되어서야.

    이제야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본인의 어리석음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저보단 아버지가 더 안 좋아 보여요. 또 잠 못 주무신 거죠? 여기 좀 누우세요.”

    최지훈이 침대 끝으로 가 자리를 만들었다.

    “괜찮다. 그대로 있어.”

    최지훈은 어찌나 말랐는지 광대가 도드라지고 볼을 쑥 들어간 최우철을 보며 안타깝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 촬영이 거의 끝났어요. 이제 예전처럼 집에서 같이……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행복했던 예전을 그리워하며 아빠와 함께 자 기 전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최우철이 최지훈의 말을 끊고 물었다.

    “아빠가…… 밉지 않느냐.”

    최지훈은 답하지 않았다.

    “ 괜찮다.”

    최우철이 최지훈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 미움 받는다 해도 자신의 어리석 음을 탓할 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지훈은 말없이 최우철을 보다가 마침내 작은 입을 열었다.

    “매일 술 드시는 거 싫어요……

    “매일 무리해서 일하시는 것도 싫고 회사 아저씨들에게 소리치는 것 도 싫어요. 도빈이를 나쁘게 말하는 것도 싫어요. 저랑…… 비교하는 것 도 싫어요.”

    “••••••그래.”

    맞는 말이다.

    아내가 떠난 뒤에도.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아들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 아들에게 배도빈 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아들이 바란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아들은 마치 아내처럼.

    최우철을 부끄럽게 했다.

    꾸중이나 대립하는 게 아니라 너무 나 밝고 올곧은 태도로 최우철이 잘 못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아들이 이기적인 자신과 달리 아내를 닮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때.

    “그래도 사랑해요.”

    최우철이 고개를 들었다.

    “전 세상에서 아버지가 제일 좋아요.”

    울먹이는 아들을.

    최우철이 떨리는 팔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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