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45화
33.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4)
최지훈이 무대 위에 올랐다.
눈을 감고 선율을 떠올린 뒤 부푼 가슴을 다잡아 건반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이 사뭇 비장했다.
‘ 흐음.’
반면 심사위원들은 5일 차 마지막 주자에 대해 그리 큰 감흥이 없었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예선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기본은 한다는 뜻이지만.
배도빈을 제외하고.
크리크 콩쿠르 전형을 거친 이들은 앞서 그리 큰 감흥을 남기지 못했다.
크리크 콩쿠르 2위 자격으로 참가 한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와 3위였던 자코 반 스토펠은 총점 425점 중 각각 210, 208점을 받으며 예선 탈락이 거의 확정된 상황.
그 두 사람보다 어리고 크리크에서 성적도 낮았던 최지훈에게 기대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1차 예선 지정곡인 쇼팽 연습곡 A플랫 장조는 절대 만만한 곡이 아니었다.
어린 연주자가 표현하기에는 기술 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그리고 음악 적 깊이에서도 무리가 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최지훈이 연주를 시작했다.
♪♫♬
♪♫♬
쉽게 드러나는 멜로디만 생각하면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른손과 왼손이 각기 달리 놀기 때문에 그에 따라 연주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상당히 힘이 들며.
무엇보다 강약조절이 안 되면 음이 뭉개질 수밖에 없는데.
최지훈은 놀랍도록 정석에 가깝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이건 제법……
‘연습을 많이 한 느낌이네.’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심사위원 들도 최지훈의 교과서적인 연주에 관심을 가졌다.
벌써 수십 차례 들은 지정곡이었지 만 최지훈의 연주는 충분히 합격선 에 이를 만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최지훈이 끝까지 훌륭한 연주를 해내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첫 곡부터 지구력을 요하는 곡인 데, 아직 다섯 곡이나 남은 상황.
저 어린 피아니스트는 수십 분간 연주를 이어가야 하는 체력적 문제 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1세기 최고의 천재라고 칭 송받는 배도빈마저 아직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다.
때문에 배도빈은 연주회에서 한 곡을 연주한 뒤 쉬는 시간을 자주 가 졌었고 이번 예선에서도 어느 정도 의 패널티를 안고 곡 사이마다 잠시 쉬면서 체력을 안배했다.
그럼에도 어린 몸에는 무척이나 부 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최지훈이라고 다를까.
‘5년 뒤에는 크게 되겠어.’
‘아쉽지만 이 정도라면 미래가 기 대되네.’
첫 곡을 들은 심사위원들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다섯 번째 연주까지 마친 최지훈은 땀을 비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여섯 번째 연주를 앞두고 손수건을 꺼냈지만 이미 축축해진 그것은 최지훈에게 큰 도움이 안 되었다.
‘필사적이군.’
심사위원석의 미카엘 블레하츠가 유심히 최지훈을 지켜보았다.
지쳐 포기할 만도 한데, (만)10살 의 아이는 여전히 자신만의 쇼팽을 성실히 연주해 왔다.
무엇이 저 아이를 지탱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미카엘 블레하츠와 심사위원들은 최지훈의 의지가 굳세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르카.
‘템포를 조절하는 방식이 부드럽 군. 과연 명석해.’
이미 체력적 한계를 맞이했음에도.
무너지지 않는 연주.
심사위원들은 최지훈이 이미 몇 년 간 하루에 10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비록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라는 권위와 심사위원으로서 앉아 있는 거장들 그리고 관객까지.
그러한 요소가 부담으로 작용되고 또 곡 자체가 체력을 요한다고는 하 지만.
좀 더 잘하고 싶어서.
단지 그뿐으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피아노를 쳤던 최지훈은 마지막 곡에 이르러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의 연주를 아름답게 이어나갔다.
‘대한민국에 또 다른 천재가 있었구만.’
디미트리 알렉스가 최지훈의 이름 옆에 20점을 주곤 ‘YES’라 적었다.
4월 25일.
예선이 끝나고 쇼팽 협회 홈페이지 에 본선 진출자 명단과 심사표가 공 개되었다.
Mr. Do-bean Bae
DA: 25 YES / MA: 25 YES
MB: 25 YES / KA: 25 YES
모든 심사위원에게서 최고점 25점을 받은 배도빈은 당당히 그 찬란한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Ms. Nina Keverich
DA: 24 YES / MA: 23 YES
MB: 24 YES / KA: 22 YES
니나 케베히리는 심사위원들 사이 에서 그 정체에 대해 화제가 될 만 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Mr. Ji-hoon Choi
DA: 20 YES / MA: 17 YES
MB: 15 YES / KA: 17 YES
총점 298점을 받은 최지훈 역시 예선을 통과해 10월에 있을 본선에 진출할 자격을 얻었다.
헤어지기 전 예선 결과를 기다리며 호텔 방에서 작게 파티를 하고 있는 데 니나 케베히리가 소리를 질렀다.
“오! 합격이야, 합격!”
당연한 이야기지만 꽤 기쁜 듯 박 선영을 얼싸안고 방방 뛰어댄다.
히무라가 방금 니나가 앉아 있었던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고개를 돌렸다.
“축하해. 역시 통과했네.”
“ 당연하죠.”
겨우 예선이라 큰 감흥이 없다만 히무라가 부모님과 할아버지에게 연 락을 드리라고 하도 보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안부 인사를 드릴 겸
핸드폰을 꺼냈다.
“ 여보세요?”
_ 아들〜
며칠 만에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정말로 쾌활하셨다. 유럽에서의 생 활이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는 듯해 서 기쁘다.
-잘 지냈어? 양치 잘하고 있니? 또 카레만 먹는 거 아니고?
“네. 골고루 잘 먹고 있어요. 양치 도 잘하고 있고요.”
그렇게 사소한 대화를 나누곤 대화를 마무리했다.
“네. 아, 그리고 쇼팽 콩쿠르 예선 통과했어요.”
-얘는! 엄마가 얼마나 궁금했는데 그걸 이제 말하니. 전화했는데도 이 야기를 안 해서 혹시 떨어졌나 싶었잖아.
‘별일 아니니까요’라고 말하려다가 순간 눈에 최지훈이 들어왔다.
아직도 차마 모니터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녀석은 행여나 주변 사람 들이 말할까 봐 소파에 앉은 채 귀를 꽉 막고 있다.
“그러게요.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그래〜 우리 아들 파이팅!
“파이팅.”
전화를 끊고 최지훈에게 다가갔다.
눈을 꽉 감고 귀를 막고 있어 톡 톡 건드리자 녀석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왜?”
“결과 확인 안 해?”
“뭐라고?”
녀석이 귀를 막은 손을 내렸다.
“결과 확인 안 하냐고.”
“무섭잖아……
“잘했잖아. 너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고.”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빨리 확인해 봐.”
최지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을 때 니나 케베히리가 소 리 쳤다.
“오! 도빈이 친구도 통과했네!”
“ 정말요?”
“정말!”
깜짝 놀란 최지훈이 후다닥 달려가 명단을 확인하였고.
아무 말 없이 모니터를 응시하기를 얼마 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으로 가 모니터를 보자 채점표가 눈에 들어왔다.
높은 점수는 없지만 중간 이상의 점수로 고른 평가를 받은 걸 보니 최지훈의 솔직하고 정직한 연주를 다들 알아들은 듯했다.
“뭐야. 확인했잖아.”
“끄윽.”
최지훈이 코를 한껏 들이마셨다.
“히익. 끄우욱. 칙.”
“……울어도 돼.”
“끄어어엉!”
전에 한 번 운다고 뭐라 했더니 꾹꾹 참는 거 같아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더니 쏟아내듯 울어버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녀석이 얼마 나 노력가인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 마저 녀석을 대견하게 보고 있다.
니나 케베히리가 그런 녀석을 꽉 안아주었고 녀석은 그녀의 품에서 그간 참아냈던 부담과.
자신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을 토해냈다.
다음 날.
니나 케베히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10월에 봐! 그땐 지지 않을 거야.”
“기대할게요.”
예선에서 들려준 그녀의 연주는 너무나 훌륭했지만.
아직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야 효과적인지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진심으로 기대했다.
“사장님도 바이바이! 선영, 가자!”
“나만 왜……
니나를 데려다줘야 하는 박선영은 전용기를 타고 돌아가는 나와 히무라를 너무나 안타깝게 쳐다보았지만 일은 일이다.
그렇게 비행기를 오르자 옆에 앉은 최지훈이 웃었다. 어제부터 계속 저렇게 웃고만 있다.
“히히힛
“힛
“그렇게 좋냐.”
“응!”
매일 연기 연습과 피아노를 병행했을 테니 그 피로가 말이 아닐 텐데, 어제 연주를 들으니 피아노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 도 될 것 같았다.
도리어 이젠 양쪽 모두를 하려는 녀석의 욕심에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피아노를 사랑하는 걸 알기에 말릴 생각은 없다.
“끄응! 그나저나 예선만 통과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본 선이 반년도 안 남았어. 어쩌지.”
본선을 생각하니 조금 답답했는지 최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10월 9일이 본선이기에 다섯 달하 고도 일주일 정도가 남았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연주를 하 면 돼. 그뿐이야.”
“응! 그럴 거야!”
1차 본선에서만 세 곡을 준비해야 했기에 최지훈은 잔뜩 각오를 다졌다.
* * *
【배도빈 만점으로 예선 통과!]
【예견된 우승자 배도빈. “우승이요? 제가 아니면 누가 하는데요?”]
[쇼팽 콩쿠르 역사상 최고 득점! 본선에서도 이어갈 것인가!]
【최지훈 예선 통과! 스스로 어려울 거라는 평을 뒤집다!】
【최지훈, “본선에서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최지훈 배우와 피아니스트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인터넷 여론, “어린아이들이 너무 나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배도빈, 7월 뉴욕 연주회 성황리 에 마쳐. 8월은 도쿄.]
【배도빈, 8월 도쿄 연주회에 역대 최고 인파가 쏠려.]
【속보. 최지훈, 영화 촬영 중 실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