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42화 (14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42화

33.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1)

2015년 상반기.

대한민국을 뜨겁게 한 몇 가지 키워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단어는 콩깍지 신드롬이었다.

2014년 하반기에 명명된 이 사회 문화적 현상을 뜻하는 단어는 배도빈의 팬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콩깍지(배도빈의 영어 표기 Dobean의 빈(bean: 콩)을 따서 만든 이름)’란 이름과 신드롬(syndrome) 의 합성어였는데.

이를 기자들이 연일 배도빈과 관련한 기사를 적을 때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피아노 판매율 480% 경신! 콩깍지 신드롬에 행복한 비명]

【배도빈이 다니는 단골 카레집 사장. “너무 많이 오셔서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할까 무서워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앨범 판매량 30만 장 돌파!]

[배도빈 책가방 품절 현상!]

【음악 영재 교육열 화끈!]

【2014년 음대 진학률 20% 증가. 콩깍지 신드롬의 영향인가?]

WH그룹과 샛별 엔터테인먼트의 노력에도 파파라치들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배도빈의 사생활이 서서히 공개되었는데.

배도빈이 사용하는 물품이 품절 현상을 겪는다든지.

2000년 이후 음반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진 대한민국의 음반 시장에서 클래식 부문에서는 유일하고 압 도적인 기록을 보인 일이라든지.

배도빈과 관련된 일은 마치 유명 연예인의 전성기를 보는 듯했다.

자연스레 배도빈의 이미지를 활용 해 마케팅을 하기 위한 업체들이 손을 뻗는 일이 잦아졌고 그들이 제시 한 조건은 날로 치솟았다.

그러나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CF, 드라마 출연, 예능 출연을 모두 거절하였다.

명목상의 이유는 곧 있을 쇼팽 국 제 피아노 콩쿠르에 집중하기 위해.

기업은 기업대로.

팬은 팬대로 외부 활동을 줄어든 배도빈앓이를 할 뿐이었다.

다니던 카레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졌다.

향긋하고 깊은 풍미를 조용히 음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건만, 정말이지 애석한 일이다.

‘이제 갈 곳도 없는데.’

밖에 나가는 순간 대체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모를 인간들이 여기저 기서 사진을 찍어대거나 몰려들어 도통 다닐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카레를 더 이상 못 드 시는 몸이 되어버렸는데, 쉐프는 카 레를 만들 뿐, 따로 내면 된다고 말 했지만.

할아버지가 카레 냄새만 맡아도 눈 썹이 꿈틀꿈틀하여 되도록이면 나와 먹고 있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너무나 통탄할 일이었다.

‘대작은 슬픔 속에서 태어나는 법 이지.’

그런 애처로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위로하며 대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악기를 다루는 일에 매 진했는데 큰 소득이 있었으니.

바로 얼후(三胡, Chinese Fiddle) 라는 중국 전통 현악기였다.

이 연약하고도 잘 짜인 악기는 동 양과 서양 악기의 사이에서 음을 내 는데 내가 생각했던 대교향곡의 서 곡의 분위기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얼후를 알게 된 후로는 그것으로 연주된 음악을 듣는 게 일상이 되었고 결국 나는 서곡의 주인공을 얼후 로 결정하게 되었다.

CF라든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이야기가 하루에도 몇 번이 나 들어왔지만 그딴 일에 시간을 허 비할 수 없었던 이유.

전문가에게 얼후를 배우고자 히무라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 결과.

가우왕이 자신이 아는 중국의 유명 얼후 연주자를 소개해 준다고 연락을 주었다.

이름은 소소. 중국 내에서는 15살 부터 여러 녹음을 맡았다고 한다.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구했네요.”

-그건 괜찮은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갑자기 얼후를 찾고.

“새로 지을 곡에 쓰려고요. 잘 다 뤄야 잘 활용하죠.”

-모든 작곡가가 너처럼 생각하진 않겠지만……. 뭐, 실력은 보증해. 중국에서 제일 잘하는 애야.

“가우왕이 그렇게 말하면 정말 잘 하겠죠.”

-성격이 좀 이상하지만.

“가우왕보다요?”

-이 꼬맹이가 누구보고 성격이 이 상하다는 거야?

잠시 웃은 뒤 다시 대화를 이어나 갔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개 해 준 거예요?”

-동생이니까.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했더니 자기 동생이란다.

-아무튼 쇼팽 예선이 얼마 안 남았잖아. 다른 데 정신 팔려서 망신 당하는 일 없게 해.

내가 예선에서 떨어지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괜히 한 소리 한다.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 듯.

이런 사람이 말하는 ‘성격 이상한 사람’은 어떨지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하다.

“걱정 마요. 그러면 저한테 진 사람이 불쌍하게 되니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가우왕에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번 쇼팽 콩쿠르 에는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어요.”

- 네가?

“네. 니나 케베히리라고 대단한 사람이 나오거든요. 기대해도 좋아요.”

-심사위원에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이제 콩쿠르 끝날 때까지 개인적인 연락은 안 할 테니까 또 날 놀라게 해봐.

“그래요.”

가우왕과 통화를 마치고 사홀 뒤.

얼후 연주자 소소가 고맙게도 한국 까지 찾아와 주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까.

샛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앳된 처자가 들어왔다.

‘닮았잖아.’

남매라더니 정말 닮았다.

가우왕을 닮아 눈이 크고 눈썹이 짙고 코는 오똑한데 입은 작다.

“반가워요, 소소.”

서로 통하는 언어가 없는가 싶었는 데 히무라가 중국어로 인사를 전해 주어도 ‘니하오’라는 말만 할 뿐.

과묵한 친구인 듯하다.

‘히무라는 대체 몇 개 국어를 쓰는 거지.’

문뜩 자국어인 일본어를 포함해 한국어, 영어, 중국어, 독일어를 하는 히무라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멀리 와줘서 고마워요. 가우왕에 게 이야기 들었죠? 잘 부탁해요.”

히무라가 내 말을 전달했고 소소는 대답은 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연 습실에 있는 피아노를 가리켰다.

성격이 이상하다더니.

숫기가 없다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과묵하고 표정 변화도 없고.’

피아노를 가리키는 행위가 무슨 뜻 인지 알 수 없어 히무라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잠깐만.”

히무라가 뭐라 한참을 이야기했고 소소는 한참을 가만있다가 마침내 한마디 내뱉었다.

“얼후를 가르쳐 주면 피아노를 알 려달라고 하는데?”

“왜요? 가우왕에게 배우면 될 텐 데.”

나야 한국에 얼후를 다루는 사람이 매우 적고 또 실력자는 더욱 드무니 부탁한다지만.

중국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내게 알려 달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매인 가우왕에게 배워도 될 테고.

“오빠. 재수 없어.”

소소가 말을 내뱉자 히무라가 조금 당황한 듯 순간 말을 못 하고 입만 뻥긋댔다.

“뭐래요?”

“……가우왕 씨랑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야.”

그런 것치고는 가우왕의 부탁을 받 아 한국까지 찾아와 줬으니 사이가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해요. 저도 공짜로 배울 순 없으니까.”

히무라가 내 말을 전하고 소소가 고개를 끄덕여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소소.”

“부탁해.”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마주 잡아 악수를 나누었으니 나쁜 뜻은 아닐 거다.

“그럼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이야 기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소소 씨, 서 있지 마시고 앉으세요. 커피 괜찮으시죠?”

“커피 안 마셔요.”

히무라가 조금 당황스러운 듯 여러 이야기를 묻더니 박선영에게 보이차를 사오라 시켰다.

편의점에서 사온 보이차를 마신 소 소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변화가 생 겼다.

무척 실망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불 평은 없어 박선영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입에 안 맞는 모양이네요. 다음에 오실 땐 준비해 놓을게요.”

“괜찮아요.”

그렇게 매우 불편하게 미팅을 시작 했고, 한동안 한국에 머물러 있기로 한 소소와 몇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이틀에 한 번 서로에게 악 기를 가르쳐주는 일정 약속. 일요일은 쉬기로 했다.

둘은 4월 13일부터 24일까지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예선이 있기에 해당 기간에는 레슨을 하지 않는다는 양해였으며.

마지막은 소소가 한국에 머무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 준다는 약속과 13일부터 24일까지는 관광을 시켜준다는 이야기였다.

미팅 후, 히무라와 박선영에게서 그녀가 얼마나 무례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가우왕이 소소의 성격이 이상하다 고 미리 말한 이유를 알게 되었던 나는 그럼에도 그가 소소를 내게 추 천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보석이었다.

♪♫♬♪♫♬

덩리쥔이 불렀다는 월량대표아적심 이란 곡을 연주하는 그녀는 마치 아 버지께서 내게 읽어준 전래동화에 나오는 선녀 같았다.

그 구슬픈 가락에는 강단이 있고.

부드러운 음색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게 귀를 간지럽혔다.

내가 구상한 대교향곡에서의 쓰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만 이 사람에게서라면 얼후의 활용법을 충분 히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연주를 마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 해봐.”

“뭐래요?”

“해보라는데?”

뜬금없이 실전 교육이라.

내 스타일이다.

소소와 서로 사사하다 보니 시간이 부쩍 흘렀다.

미리 이야기는 해두었지만 나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까지 온 그녀가 관광도 거부하여 혼자 두기 미안했는 데.

WH호텔 침대에 누워 보이차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그녀를 보곤 조금 안심했다.

그렇게 4월 10일.

쇼팽이 태어난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향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전용기에 탔다.

“으으으.”

재단과 샛별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돌봐야 했던 히무라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쓰러지듯 앉았다.

“나 좀 잘게.”

최지훈과 집사 할아버지도 함께했는데 연습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최지훈도 히무라와 비슷한 느낌이다.

평소 같았으면 조잘조잘 쇼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텐데 의자에 누워 금방 곯아떨어졌다.

나도 버튼을 눌러 의자를 완전히 일 자로 만들곤 적당히 자리 잡았다.

‘편하단 말이지.’

할아버지의 비행기는 확실히 편하다.

일행만 있는 거라든지 넓은 자리 그리고 서비스까지 역시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니나는 어떻게 되었어요?”

히무라에게 물었다.

“DVD 예선 통과했어. 바르샤바에 서 만나기로 했는데 선영이가 잘 데려올지 모르겠네.”

나와 히무라가 확신한 대로 잘 통 과한 모양이다.

쇼팽 콩쿠르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서는 참가 자격을 얻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자신의 연주 영상을 콩쿠르 운영위원회에 보내는 일이라고 한다.

거기서 통과를 한 160명만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예선에 참가할 수 있다.

160명이라는 정원에는 유명 콩쿠르의 상위 입상자 특전도 포함되고 이번 대회부터는 크리크 결선에 오른 인원도 추가로 포함된다고 들었다.

그 안에.

내가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얼마나 노력했을지 뻔히 보이는 친구와.

내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니나 케베 히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간 얼마나 정제가 되었을지.

니나의 피아노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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