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41화 (14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41화

    32. 서곡, 비바체(3)

    할아버지와 미팅을 마친 뒤 샛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돌아왔다.

    박선영은 꿈만 같다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히무라가 인수합병에 필요한 문서를 준비하라 하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표님, 저 뭔가 지금 너무 얼떨떨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뭐부터 해야 해요?”

    “나도 그래. 우선은 미뤘던 문서화 작업부터 하자.”

    그렇게 충격적인 일인가 싶지만.

    히무라와 박선영은 갑작스러운 일 에 당황하면서도 조금은 의욕적으로 보였다.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듯해서 다행이다.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일이 내게 큰 도전인 만큼 저 두 사람에게도 큰 전환점이 될 터인데.

    겁먹지 않고 나아가려는 자세에 다시 한번 믿음이 갔다.

    “그러고 보니 도빈아, 내년부터 히무라가 나와 할아버지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네. 정해진 일만 하고 그 전에는 유학 준비랑 작곡만 할 거예요.”

    “유학 준비?”

    박선영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알아봐 주셨는데 시험을 봐야 한대요.”

    “그렇지. 분명 독일어 어학시험을 봐야 할 텐데, 너라면 프리패스지 않을까?”

    히무라가 내 말을 거들었다.

    독일 대학으로 유학 가는 사람에게는 만 16세라는 조건 이외에 기본 적인 소양이 요구되는데.

    그중 하나가 방금 히무라가 언급한 독일어 어학시험 (Deutsche Sprachp rüfung für den Hochschulzugang DSH) 이다.

    할아버지의 비서실장은 이 부분을 걱정했지만.

    히무라의 말처럼 내겐 식은 카레를 먹는 일보다 쉽다.

    “네. 그건 굳이 준비 안 해도 돼요.”

    “그럼 연주자 과정은 아닐 테니 입 시 연주를 준비하는…… 네가 입시 연주를 준비하다니. 말이 안 되네.”

    말을 이어가던 히무라가 헛웃음을 지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독일 음대의 연주자 과정을 수강하 기 위해서는 독일어 자격시험과 시 대별 연주(악기별로 다르다. 예시로는 바로크, 고전, 현대 각 1곡) 그리 고 청음과 이론 시험을 봐야 하는데 솔직히 그리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뭘 준비하는 거야?”

    박선영이 물었다.

    “우선 진로를 오해하고 계신 거 같은데 음대로 가는 거 아니에요.”

    “어?”

    히무라와 박선영이 놀라 되물었다.

    “음악사 전공으로 가려고요. 음악 학이나 피아노과 중에서 부전공을 늘릴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생 각이에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구나.”

    히무라가 상황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사 전공은 음대가 아니라 일반 대학교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비서실장이 알려주었는 데 초등학생이 검정고시를 보는 일 은 꽤 조건이 각박하다고 한다.

    만 12세 즉, 초등학교를 6년 다닌 나이와 동일해야 하는 법이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다니겠다만.

    그 뒤,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졸업 증을 검정고시로 얻는 일은 꽤 빈번 하다고 한다.

    내가 준비할 일은 이 일.

    되도록 17살이 되기 전에 고등학 교 학력을 취득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증을 가지 고 유학을 가면 디폴름[Diplom: 8 학기 학사 과정, 2016년부터는 바첼 러 (Bachelor)로 이름이 바뀌었다]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음대의 일반 연주자 과정은 ‘음악 적 재능이 있는 자에게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라는 식의 예외가 있는 반 면.

    내가 대학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음악학이나 음악사의 경우에는 음대가 아닌 일반 대학교에 개설되어 있어 그에 준하는 대학 입학 자격이 요구 되기 때문이었다.

    가방끈이 짧은 나로서는 꽤 준비를 해야 할 텐데, 되도록 음악만 공부 하고 싶은 나로서는 최대의 고비라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비서실장은 턱없이 쉽다고 했지만 사실 필수과목(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선택과목은 음악으로 할 예정이다)만으로도 꽤 공부를 해야 했다.

    모르는 게 너무나 많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그때는 활동을 잠시 멈출 거예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으음. 그럼 도빈이가 할 일이……

    한일 합동 콘서트랑 쇼팽 콩쿠르. 연주회 정도 남았네?”

    “네. 그 두 일정만 끝나면 샛별 엔 터테인먼트의 일도 끝날 거예요.”

    사실 한일 합동 콘서트와 쇼팽 콩쿠르는 샛별 엔터테인먼트와 관련이 없다.

    2015년 올해 6월까지 예정되어 있는 여섯 번의 연주회 정도가 샛별 엔터테인먼트와 내가 준비할 일의 전부다.

    요즘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게 즐거워서 중간에 기타 앨범을 한 번 정도 낼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정하지 않은 일.

    그 뒤에는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니나 케베히리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 이다.

    또는 히무라가 영입할 다른 음악가라든가.

    “그래.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 준 비하기 좋네. 선영이는 내일 구인공고 올리고.”

    히무라가 박선영에게 사람을 구하 자고 하자 박선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난 멋진 연주자들을 찾아야겠네. 혹시 네가 만들 오케스트라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는데?”

    “히무라라면 잘 뽑을 거라 생각해요.”

    히무라도 이제 나만이 아니라 본업으로 돌아가 여러 재능 있는 사람들을 발굴, 계약, 육성하는 일을 준비 해야 할 테고.

    나는 당장 지금부터 선행 학습과 콩쿠르, 연주회 일정을 동시에 진행 해야 하니.

    서로 바빠질 것 같다.

    “……놀리는 거지.”

    “아니야!”

    내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

    현대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 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선행 학습을 위해 펼친 중학교 교과서 내 용은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최지훈이 내게 대륙이 이동을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해주었다.

    “땅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야!”

    “움직여! 진짜란 말이야! 봐봐, 여기랑 여기가 같은 지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잖아. 예전엔 붙어 있었다구!”

    “예전에도 떨어져 있었어!”

    “네가 어떻게 알아!”

    이런 식으로 며칠을 반복한 결과.

    최지훈은 내게 과학을 가르치는 걸 포기했고 나는 할아버지가 붙여준 친절하고 교양 있는 가정교사에게 내 상식을 폭행당하는 경험을 매일, 매시간 당해야 했다.

    나도.

    내 가정교사 역할을 맡은 그녀도 서로에게 적응하기까지 꽤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와 당시 유럽인들이 얼마나 무지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학의 경우에는.

    “도련님, 169 곱하기 3을 틀리지 않게 된 일은 기쁩니다만 언제까지 169를 세 번 더하실 건가요?”

    “그 도련님이란 말 좀 어떻게 해보 세요. 간지러워서 못 듣겠다고요.”

    “안 돼요. 제 월급 까여요.”

    “수익 계산은 그렇게 잘하시는 데……. 그럼 이렇게 하죠. 도련님의 앨범 정산액이 매달 169만 원 들어 오고 이것을 은행에 3년간 저축한다 고 하죠. 매달 복리 이자고 이율은 1.7퍼센트입니다. 3년 뒤에는 얼마 가 모여 있을까요?”

    “일반과세에요? 비과세?”

    “……일반과세로 하죠.”

    “이자에 15.4% 세금이 붙으니까 62,211,526원이요.”

    “……정답입니다. 그…… 방금 암 산으로 하신 거 맞습니까?”

    역사의 경우에는.

    “최초의 인류는 300〜350만 년 전 에 출현하였습니다.”

    “ 네?”

    “뭔가 이상한 거라도?”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유물, 유적을 조사한 결과니까요.”

    “골동품을 보고 어떻게 안다는 거예요? 누가 적어놓은 것도 아니고.”

    과학의 경우에는.

    “인간이 원숭이었다고요?”

    “네.”

    “재밌는 농담이네요. 그러고 보니 지훈이네 개도 예전에는 늑대였다고 하나 봐요.”

    “도빈아.”

    저녁 식사를 하는 와중에 할아버지 가 나를 불렀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 난감한 표정이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실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김 실장이 그러는데 네 선생님이 울었다고 하더구나. 무슨 일 있었느냐?”

    “모르겠어요.”

    “흐음.”

    “정말이에요. 인간이 원숭이었다는 농담도 주고받는걸요.”

    “아, 할아버지. 그거 아세요? 대륙 이 사실 이동하고 있대요.”

    “하하! 그거 참 신기하구나.”

    그렇게 내가 ‘지식’을 쌓아가는 도중에 봄이 다가왔다.

    겨울방학 동안 공부를 하며 한일 합동 콘서트와 피아노 연주회를 가 졌는데 그 때문에 그래미상을 포함 한 7개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다시 한번 최고의 앨범상을 수상했는데 본상 수상자가 시상식에 참여 하지 않은 일은 처음이라며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기자들이 샛별 엔터테인먼 트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몇 날 며칠을 버티고 있었다.

    바빠서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유 없다고 말하 려는 걸 박선영과 히무라가 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아파서 참가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겁하게 거짓이 알려진 게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만 정정 기사를 내는 것도 귀찮고 그 일은 지금도 가 끔 시끄럽게 울리는 ‘신의 장난’처 럼 아예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개학.

    3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애매하게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최지훈이 결국 ‘모차르트의 산책’

    오디션에 최종 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어찌나 기뻐하던지 녀석은 곧장 촬영을 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기 전 에 내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그리고 며칠 뒤 분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원래 검은 눈을 가졌던 최지훈의 눈 이 파랗게 되어 있었다.

    [눈이 파랗잖아.]

    [응! 렌즈 꼈어.]

    [렌즈?]

    [렌즈 몰라? 눈에 끼우는 거야. 눈 이 안 좋은 사람이 잘 보이게.]

    눈에 무엇인가를 끼우다니. 어려서 그런지 겁이 없다.

    [한일 합동 콘서트는 어땠어?]

    [재밌었어. 일본에 유리코라는 사람 이랑 바이올린 협주곡을 했는데 잘 하더라.]

    [생방송으로 봤지롱.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라니. 완전 최고잖아.]

    [봤으면서 왜 물어.]

    [ㅠㅠ]

    [사카모토가 밴드로 축하 공연 한 것도 봤겠네. 록도 재밌어 보이더라.]

    [요즘 너 일렉 기타 친다고 사람들이 걱정하던데. 그쪽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냐면서.]

    [너야말로 연기한다고 사람들이 걱정하더라. 어쩔 생각이야?]

    [히힣. 당연히 둘 다 해야지!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예선 탈락할 거 같으니까.]

    [헐.]

    [진심이야.]

    [실은 연기 배우면서 쇼팽 피아노 콩쿠르 준비도 하느라 엄청 힘들어. 살려줘 ir-rr]

    [그러니까 그건 왜 한 건데? 연습 할 시간도 없으면서.]

    [연기가 재밌는 걸 어떡해. 그리 고…… 모차르트 되어보고 싶었단 말야.]

    요즘에는 ‘천재니까’라는 말을 잘 안 해서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고 생 각했거늘, 아직 그 ‘천재’라는 부담이 녀석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했다.

    연기를 좋아할 뿐이라면 좋았을 텐 데. 조금 속상한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천재라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응...]

    [음악가는 자기 음악을 하는 것만 으로도 그 이름이 무거워. 그러니 누가 뭐래도 그런 부담 가지지 마.]

    [ㅋㅋㅋ 응!]

    대답은 잘한다.

    [그래서 예선은 어떻게 할 건데기

    [지금은 미팅이랑 대본 읽고 있어. 진짜 촬영은 여름에 시작되니까 곧 서울로 갈 거야.]

    [그래. 그럼 그때 보h]

    [그때 봐아아~]

    16화

    미안하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이미 다 본 뒤였다.

    제우스는 화를 쏟아내는 대신 물 끄러미 다가오는 그를 보았다. 황제 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황제가 단단 히 화가 났음을 안 모양이었다. 얼른 다가온 그가 깊게 머리를 숙이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래 자리를 비웠습니다.”

    “치료를 왜 받지 않았지? 전쟁에 서 가장 아프지 말아야 할 사람 중 한 명이면서.”

    “아파하는 기사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세바스챤이 제 속의 말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제우스는 힘들었을 그를 타박하고 싶진 않았다. 멀찍이 떨어졌던 치유 마법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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