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40화 (14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40화

    32. 서곡, 비바체(2)

    새로운 악기와 사귀는 일은 무척이 나 가슴 설레면서도 고달픈 과정이다.

    익스플로러는 무게감 있는 소리를 내면서 앰프가 없어도 그럴싸한 소 리를 내는 명품이 틀림없는데.

    다루는 법은 대충 익혔다만.

    내 생각과 달리 이건 현악기를 형 태를 했을 뿐, 다른 존재였다.

    문제는 이게 재밌다는 거다.

    다른 악기도 다뤄봐야 하는데 매일 느는 내 실력에 스스로 감탄한 지 벌써 일주일째다.

    “세상에. 대체 이 책들은 다 무엇 인가?”

    언제 왔는지 사카모토 료이치가 다 가오며 말을 걸었다.

    내가 죽은 뒤 어떤 악기가 생겨났 는지, 기존의 악기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내가 모르던 악기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책을 잔뜩 샀는데.

    내가 봐도 연습실이 엉망이다.

    “미팅은 어땠어요?”

    “훌륭했지.”

    며칠 전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연 사카모토 료이치는 서울에서 머물며 연주회나 강의, 팬미팅 등 여러 행 사에 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체류기간이 길었고 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와의 미팅.

    예전에 통화를 나누었을 때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것과 연관된 이야기였다.

    “그래. 합동 콘서트는 생각해 보았나?”

    한일 합동 콘서트.

    지난 크리크 국제 콩쿠르 이후 국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는데.

    기존 인물들이 유지하는 협회와 사카모토 료이치를 주축으로 모인 뜻 있는 음악가들이 만든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으로 갈린 모양이었다.

    일본 내 반응은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을 지지하는 것 같고, 나 카무라가 그곳의 운영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당연히 첫 번째 조합장은 사카모토였으며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 (All Japan classic music associatio n: JCMA)은 크리크 국제 콩쿠르 당시 일본의 과업을 사과하고 수습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굳이 한국까지 와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이 한 일도 아닌데 일본을 대표해 사과 했던 것과 여러 활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일 합동 콘서트도 그러한 취지의 일인 만큼 나도 내 스승이자 벗을 도와주고 싶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취지도 좋고요. 일본에서는 누가 나오는데요?”

    “피아노에서는 유리코 씨가 나오고.”

    “네?”

    다른 부문은 몰라도 피아노에서 사카모토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카모토는요?”

    “하하.”

    사카모토가 웃은 뒤 내가 들고 있는 기타에 눈짓을 주었다.

    “너무 뚱하게 보지 말게. 자네와 어울리지 못하는 건 나도 무척 애석 하니까.”

    사카모토는 그렇게 멋진 연주를 하 면서 매번 나를 치켜세운다.

    물론 내 연주는 누구든 감동받아 마땅하지만 사카모토 료이치만큼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지금도 네 살 때 들은 ‘Rain’의 감 동은 잊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의 경연은 관심 없는 나로서도 사카모토와의 최선을 다한 경쟁만큼은 기대했건만.

    아쉽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꽤 고생하는 것 같네 만. 아까 연주했던 건 화이트 사바 스였던 것 같은데.”

    “네. 칠삼 아저씨가 추천한 밴드인 데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 히 좋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강해요.”

    “ 흐음.”

    세상에 있는 모든 악기를 다뤄보고 작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공부.

    그 첫 시작이 일렉트릭 기타였는데 다루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이 악기를 가장 잘 다룬 음악을 찾아 들어 보고 직접 연주해 본 결과.

    오케스트라의 한 요소로 사용하기 에는 전기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기 타의 음색이 너무나 독보적이었다.

    특유의 속도감을 살리고자 하려 해 도 다른 악기들이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일렉 기타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선택한 이 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것부터 명 확히 하는 게 좋을 듯한데.”

    사카모토의 말이 맞다.

    “리드할 악기를 찾고 있었어요.”

    “ 리드?”

    “네. 서곡을 이끄는 악기를 찾고 있는데 멜로디를 강조해야 하거든요. 빠르고 여러 음을 내고 한 대가 있어도 충분한 음량을 낼 수 있는.”

    “어려운 일이로군.”

    “실은 피아노로 거의 정했어요. 그 이상 어울리는 악기를 아직 찾지 못 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이것 저것 찾아서 직접 다뤄보고 있어요.”

    “다른 후보는 무엇인가?”

    여기 어디 적어둔 게 있을 텐데.

    책들을 치우다 보니 후보 악기를 적어둔 것을 꺼냈다.

    “밴조, 오카리나, 색소폰, 파이프오 르간, 클래식 기타, 포크 기타, 일렉 트릭 기타, 피아노요.”

    “왜요?”

    사카모토가 조금 황당해하는 듯하다.

    “난 자네가 무슨 곡을 만들려 하는 지 모르겠군.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방대해.”

    “저도 어떤 식으로 완성될지는 모 르겠어요. 모티프 들어볼래요?”

    사카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얹 어 그에게 모티프를 들려주었다.

    “어때요?”

    “부드럽군. 원래 자네가 쓰는 모티 프야 단순하니까. 그걸 늘이고 줄이 고 쪼개고 바꾸는 걸 귀신같이 하니 사실 이것만으로는 감이 잘 안 오 네. 다만.”

    “ 다만?”

    “후보로 정한 악기를 보면 너무 부 담을 가지는 듯하네. 마치 모든 음을 다 사용하려는 것처럼.”

    맞는 말이다.

    “무슨 일 있었는가?”

    UN의 날 콘서트에서 내 D단조가 가장 많이 연주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사카모토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저마다의 고통으로 괴로워했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는데.

    나는 음악으로 나를 이겨냈으며 투 쟁 끝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혹자는 나를 철없는 노인네라 할 수도 있겠지만.

    평화.

    인간의 가치를 사회가 억누르지 않으며 노력하는 자에겐 밝은 미래가 주어지는 환경.

    그것을 노래했던 나로서는 그 일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리하여 사카모토의 말대로 어쩌 면 나는 무리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 도 모르겠다.

    세계와 시대의 악기를 다루는 대교 향곡(Grand Symphony).

    되도록이면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싶었다.

    “UN의 날 콘서트에서 베트호펜의 D단조가 가장 많이 연주되었대요.”

    “그런가?”

    “멋지잖아요. 세계 평화를 기리는 자리에서 울리는 D단조. 가급적 여 러 악기를 사용해서 그보다 멋진 음악을 지휘하고 싶어요.”

    내 말을 들은 사카모토 료이치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웃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인가.”

    “네?”

    “자네 지금 스스로 베토벤을 뛰어 넘겠다고 하지 않았나.”

    “슈베르트, 브람스, 바그너, 슈만. 그 외에도 베토벤 이후 음악가들은 모두 그와 비교되길 두려워하거나 그 발자취를 따랐지.”

    사카모토가 말한 음악가들 모두 찬 란히 빛을 냈다고 생각하나 우선은

    그의 말을 들었다.

    “내가 알기로 베토벤을 뛰어넘는다는 말을 자네처럼 당당히 한 사람은 없었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건투를 비네.”

    “고마워요.”

    * * *

    연습을 마치고 샛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들렸다.

    어느 정도 마음을 먹었기에 히무라 에게도 말을 해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6살이 되면 독일로 갈 거예요.”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간다는 뜻 이겠지?”

    “네. 오케스트라를 배우고 싶어요. 음악감독으로서의 일도 푸르트벵글러 곁에서 보고 싶고요.”

    “설마 베를린 필에서만 있을 생각 은 아니지?”

    “그럼요. 베를린 대학에도 들어갈 생각이에요. 학생들도 만나고 싶고 음악사나 여러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뒤에는?”

    “제 오케스트라를 만들 거예요.”

    내 말을 들은 히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 16세.

    우리나라 나이로 17세가 되면 샛 별 엔터테인먼트를 떠나겠다는 말을 이해한 것이다.

    니나 케베히리라면 내 빈자리를 충 분히 잘 채워줄 거라 생각하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고.

    그도 위로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고 그 결정 에 대해 나는 히무라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히무라는 나를 응원할 테니까.

    “전에 했던 약속이 구체화되었구 나. 진심으로 응원하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히무라와 눈을 마주했다.

    나도 히무라도 웃지는 않았지만 내 가 그에게서 믿음을 느끼는 만큼 그 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리라 믿었다.

    “굶어죽을 거야……

    그때 느닷없이 박선영이 고개를 떨 어뜨린 채 중얼거렸다.

    “도빈이가 없으면 사무실 임대료는 어떻게 내지……? 7년 뒤면 임대료 도 엄청 뛸 텐데……

    “그렇잖아요! 도빈이를 위해 만든 회사인데 도빈이가 없으면 어떡해 요!”

    나와 히무라가 어이없이 보고 있자 박선영이 소리쳤다.

    “선영 누나가 아쉬워서 하는 말인 지 알지?”

    “요즘 상황극을 너무 자주하는 거 같아요.”

    잠깐 웃은 뒤 히무라가 결론을 지었다.

    “조만간 계약일자를 조정할게. 할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되지?”

    “네. 그리고.”

    내 말에 히무라와 박선영이 의아하 다는 듯 눈을 평소보다 크게 떴다.

    “제안할 일이 있어요. 내일 할아버 지가 같이 보자고 하시는데 시간 괜찮아요?”

    “회장님이?”

    다음 날.

    할아버지로부터 제안을 받은 히무라는 눈을 크게 뜨고 두 손과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당황해하는 히무라는 처음 본다.

    “아, 아, 아, 아닙니다. 회장님. 제 가 어떻게 그런 일을.”

    “도빈이에게는 이야기 들었네. 자 네에 대해서는 따로 알아볼 만큼 알 아봤고.”

    뒷조사를 했다고 저렇게 당당히 말 하는 할아버지를 보면 확실히 가족을 대할 때랑은 영 딴판이다.

    “성실하고 유능하다 들었네. 작은 회사라곤 하나 기업체에서 부장으로 몇 년 재직하기도 했다고?”

    엑스톤이 작은 회사라.

    할아버지와 히무라의 대화는 밥을 먹으면서 듣기에는 심심하지도 않고 꽤 즐겁다.

    “그렇습니다만 제겐 너무 큰 역할이라 감당할 수 있을지.”

    “그걸 판단하는 건 자네가 아니라 날세. 자네에게 전권을 줄 리도 없고. 허투루 했다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예.”

    당황하던 히무라가 각오를 다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은 올해 준비기간을 거쳐 내 년에 설립할 예정이네. 운영실장으로서 부디 도빈이를 위해 잘해주길 바라고.”

    할아버지가 박선영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히무라를 보았다.

    “운영실 인사권은 주도록 하지. 단 이사회의 결정에는 따라야 할 것이 야.”

    그 말에 히무라와 박선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

    “도빈이가 베를린에 가기 전까지는 샛별 엔터테인먼트 업무도 유지해야 할 테니 손이 부족할 걸세. 김 실 장.”

    “네.”

    비서실장이 다가와 히무라에게 서 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히무라가 천천히 읽기 시작했고 궁금함을 못 참은 박선 영이 슬쩍 같이 보는데 두 사람 다 깜짝 놀라버렸다.

    “ 인수••••••

    “기존 업무 동일하네. 자네 직함과 역할도 같고. 지원도 있을 테니 재 단 운영 때문에 도빈이 관리를 느슨 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네.”

    “그게••••••

    “사람 더 뽑으라는 말일세.”

    두 사람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인 수합의서와 나 할아버지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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