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39화 (13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39화

    32. 서곡, 비바체(1)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D 단조 교향곡(합창)을 만들 때 에만 10년 이상을 투자하였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시간은 정 확히 몰라도 나는 꽤 오래전부터 그 것을 만들기 위해 심열을 기울였는 데, 실은 아직 그조차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의도했던 연주는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까.

    당시의 D단조가 연주자들의 수준 과 악기 성능 등 여러 요소로 제대 로 연주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아직 D단조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현대에 연주되는 D단조는 후대 사람들의 편곡과 수정 과정이 거쳤기에 온전히 나의 교향곡이라 할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그리고 있는 교향곡이 얼마나 길고 장대한 싸움이 될지 언뜻언뜻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것을 연주해 주길 바랐지만 세계를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직 접 만난 이후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 졌다.

    베를린도 빈도 로스앤젤레스도 모 두 뛰어난 오케스트라지만 내 것은 아니다.

    내 음악을 할 오케스트라를 직접 꾸리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렴풋이 그리고 있는 열 번째 교향곡을 비롯해 내 다른 곡을 연주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서둘러 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하물며 나는 아직도 현대가 어떤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지, 단체를 만 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것은 할아버지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야 두말할 필요 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 중에 한 명이시니까.

    우선의 목표는 16살이 되면 곧장 베를린 필하모닉에 정식 단원으로 들어가는 것.

    관현악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배울 것이다.

    그렇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 개인이 갖출 수 있는 현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은 수행할 수 있다.

    할 일이 태산이다.

    기존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할 생각 은 조금도 없었기에 오케스트라의 구성마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악기와 장르가 너무나 많다.

    그뿐인가.

    적어도 악단을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음악사에 대한 지 식조차 나는 단절되어 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악단을 꾸리는 것도 막막하다. 세계 어디에 내가 원하는 연주자가 있을지 어떻게 안 단 말인가.

    푸르트벵글러가 왜 사람을 안 뽑는 지 이해할 수 있다. 안 뽑는 게 아 니라 못 뽑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기타는 어디서 사요?”

    히무라에게 물었다.

    “기타는 스페인 물건이 좋아. 마누 엘 콘트레라스 쪽을 추천하는데, 어 디 보자.”

    히무라가 검색을 하더니 내게 손짓을 했다. 그의 책상으로 가 모니터를 보았다.

    “클래식 기타 말고요.”

    “어?”

    “일렉트릭 기타요.”

    쨍그랑-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을 정리하던 박선영 발아래 쟁반이 떨 어져 있었다.

    “도, 도빈아, 안 돼.”

    왜 저래?

    “넌 클래식을 해야 해! 갑자기 일렉 기타라니!”

    박선영이 다급히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이거 놔요. 어지러워요.”

    “안 된다니까!”

    “서, 선영아 진정. 진정해. 도빈이 말 좀 들어보고.”

    간신히 박선영을 진정시킨 히무라 가 물었다.

    “선영이가 당황했나 봐. 조금 갑작 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취미로 하는 거지?”

    “취미는 아니고 공부예요. 여러 악 기를 다뤄보려 해요.”

    “공부?”

    “네. 교향곡을 만들 생각인데 활용 할 수 있는 악기는 모두 다뤄보고 시작하려 고요.”

    “네가 그렇게까지 할 정도면 엄청 큰 작업이겠네.”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교향곡에 일렉트릭 기타가 개입할 게 있을까?”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예요.”

    “흑흑. 도빈이가 록스타가 되어버려……

    나와 히무라가 짜증스럽게 눈을 홀 기자 청승맞게 좌절하고 있던 박선 영이 머쓱한 듯 등을 돌렸다.

    “다른 장르를 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히무라가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난 항상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 네가 이렇게 까지 할 정도면 분명 엄청난 곡을 만들 생각이겠지?”

    “10년? 어쩌면 2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열 살 먹은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다.”

    “그럴 거라 생각해오?’

    마주하고 웃었다.

    “그래. 이번에도 네가 옳을 거라 믿어. 기타는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소개해 줄게. 같이 갈래?”

    “요즘 앨범 판매액 말곤 수입이 없죠?”

    “ 아하하.”

    박선영이 난리를 치는 것도 조금 이해는 된다.

    앨범이 100만 장 가까이 팔렸지만 실상 내게 들어오는 돈에 비하면 한 사무실이 운영되기는 많이 빠듯했을 것이다.

    연주회를 하긴 했지만 한 번뿐이기도 했으니까.

    반년 넘게 수입이 없는 이들에게 예전에 엑스톤이란 큰 회사에게 바랐던 것처럼 요구할 수는 없다.

    히무라가 굶어죽으면 안 되니까.

    ‘사카모토가 하자고 한 작업을 할 걸 그랬나.’

    예전에도 다른 몇 개의 작업을 병행했던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텐데, 의욕이 앞선 듯하다.

    오케스트라를 세우려면 돈도 많이 필요할 테니 생각을 잘못한 것이리라.

    조만간 연주회든 뭐든 알아보도록 해야겠다.

    “할아버지랑 갈게요. 주소는 어디에요?”

    그날 저녁.

    저녁을 먹으며 할아버지에게 부탁을 드렸다.

    “사고 싶은 악기가 있어요.”

    “뭘 사 달라고 하는 건 오랜만이구나. 그래. 뭐든 사 주마.”

    할아버지가 입가를 닦으신 뒤 나와 눈을 마주하는 것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물으셨다.

    “기타요.”

    “기타라. 좋은 악기지. 할아버지랑 같이 보러 갈까?”

    “네. 히무라한테 좋은 곳 소개 받았어요.”

    “그래. 저녁 먹고 곧장 가보자꾸나.”

    역시 할아버지.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망설임도 지 연도 없으시다.

    그렇게 히무라가 추천해 준 악기상을 찾아갔다.

    “여기가 맞느냐.”

    “페인 킬러…… 네. 맞아요.”

    요상한 영어 이름의 간판을 보고 확인했지만 나도 외관을 보곤 히무라가 소개해 준 곳이 맞는지 의심되었다.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는데 간판은 곧 뜯어질 것처럼 보였고 입구는 정 말 좁았다.

    ‘잘못 알려줬나?’

    조금 의심하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좁지만 한쪽 면에는 악기로 가득한 매장은 끝이 아득할 정도로 길었다.

    “기타라고 해서 클래식 기타를 생각했는데 전자기타를 사고 싶었던 게냐?”

    “네.”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소개받은 뒤 다뤄보지 못한 악기니까.

    실은 가장 배워보고 싶은 악기이기도 했다.

    “어떻게 오셨슈?”

    매장을 둘러보자 끝에서 한 남자가 나와 할아버지 그리고 비서실장을 경계하며 다가왔다.

    머리는 짧고 턱은 두 개고 배는 보름달인데 말투가 왠지 모르게 구수하다.

    “히무라한테 소개를 받고 왔어요.”

    “아.”

    내 얼굴을 확인한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밝게 웃으며 악수를 청해 나도 손을 뻗었다.

    “무라 형님이 꼬마 손님이 올 거라 했지만 배도빈일 줄은 몰랐네. 잘 왔슈. 칠삼이라 해유.”

    ‘무라 형님? 칠삼? 유?’

    이상하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기타를 보러 왔어요. 여기 물건이 좋다고 해서.”

    “그럼유. 자자, 그럼 기타는 좀 쳐본 적 있슈?”

    “일렉트릭 기타는 처음이에요.”

    “그럼…… 이건 어떠슈?”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다.

    “소리 좀 들려줄 수 있어요?”

    내 말에 칠삼이 기타를 들고 이동 해 엠프에 연결했다. 적당히 연주를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카모토의 기타 소리와 질 차이가 컸다.

    “하품이 네요?”

    “역시 귀가 좋네. 흐흐. 첨 배우는 사람들이 가지고 놀기 딱 좋슈. 가 격도 싸고.”

    “가지고 놀 생각 아니에요.”

    칠삼이 나를 보았다.

    서글서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 피할 이유가 없기에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리슈.”

    잠시 뒤 칠삼이 매장 안쪽에서 가 지고 나온 한 대의 기타는 한눈에 봐도 고급품으로 보였다.

    “깁슨 레스폴. 슬래시 시그니처 모 델이유.”

    호랑이 등 같은 무늬다.

    지잉- 지이잉-

    칠삼이 직접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소리는 확실히 좋다.

    “살펴보슈.”

    칠삼이 레스폴을 건네주어 받았는 데 꽤 묵직하다.

    “왜요?”

    칠삼이 내 손을 빤히 보기에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암 것두 아니유. 잠깐 기다려보슈. 다른 것도 가지고 나와 볼 테니.”

    잠시 뒤 칠삼이 요란하게 생긴, 전 투적인 모양의 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닿으면 찔릴 것처럼 생겼다.

    “그건 뭐예요?”

    “이것도 깁슨. 익스플로러로 62년 식이유. 없어서 못 파는 아주 귀한 놈이유.”

    62년식이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 데 상태가 매우 좋았다. 칠삼이 연주하는 소리는 무척 묵직하다.

    “중저음이 좋네요.”

    “바디가 큰 덕분이유. 거, 진짜 귀가 좋구만.”

    생긴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앞선 물건들보단 이 익스플로러란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할게요.”

    칠삼에게 기타를 넘겨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비서실장에게 손짓을 하자 그가 나서 칠삼에게 다가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다행이 구나.”

    “네. 소리가 마음에 들어요. 관리도 잘 되어 있고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는데 비서실장 아저씨가 드물게 소리를 크게 냈다.

    “뭐라고요?”

    “2억이유.”

    2억?

    생각보다 큰 금액에 나도 좀 놀라고 말았다.

    이런 매장에 2억짜리 악기가 있다니, 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 가입니까?”

    “못 믿겠으면 그냥 가슈. 이 기타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팔고 싶진 않슈.”

    잘은 몰라도 저 기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그러나 나조차 저 기타의 가치와 합리적인 가격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데.

    믿는 것은 하나.

    저 기타의 소리가 훌륭하고 히무라 가 소개해 준 사람이기에 다가가 물었다.

    “좋은 악기를 소개해 줘서 고마워요, 칠삼 아저씨.”

    “자랑하려고 가지고 나온 건 아니죠?”

    “.손.”

    “기타 한 번 안 쳐봤다면서 손이 얼라 손이 아니잖슈. 귀도 좋고. 이 녀석이 어떤 아인지 알 거라 생각했슈.”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좋게 표현해 말하는 법을 모 르는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엇 하나에 빠진 사람들은 많이 만나왔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지 금 칠삼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주세요.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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