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35화 (13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35화

    31. 10살, 부러진 의자(7)

    달아오른 열기가 15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 진정되었다.

    대한국립교향악단이 무대 위에서 준비를 마쳤고 이내 배도빈이 지휘 자 최명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청중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한국대 음대 출신으로 본래 피아니스트였던 최명운은 벌써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젊었을 적부터 두각을 드러낸 그는 파리 국립 오페라(당시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 뉴욕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세계 유 명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활동했고.

    2006년, 고향 땅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국립교향악단의 총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은난새가 대한민국 지휘자로서 선구자적인 인물이라면.

    최명운은 서구권에서 대한민국 출 신 지휘자로서는 최초로 ‘마에스트 로’로 인정받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최명운과.

    2009년 아무런 전초도 없이 등장 한 천재 배도빈의 만남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의 시작과 현재를 아우르는 듯했다.

    ㄴ 이걸 보네.

    ㄴ 진짜 신기하다. 내가 배도빈 이름 들은 지가 이제 2년밖에 안 되었는데 최명운이랑 같이 있는데도 이름이 안 꿇린다.

    ㄴ 님, 도빈이 그래미 위너임.

    ㄴ 비하하는 건 아니고 클래식 음악 이랑은 좀 거리가 있는 상이잖아.

    ㄴ 솔직히 지휘자로 30년 활동한 세계급 거장이랑 같이 있는데 무게 감에서 안 밀리는 게 이상하지. 신 기해하는 게 당연함.

    ㄴ 배도빈이 진짜 개뜬금포긴 했음. 보통 저런 천재들은 예대나 못해도 음대 시절에 유명해지는데 얜 그런 거 없이 다이렉트로 떴잖아.

    ㄴ 시밬ㅋㅋㅋㅋ 난 아직도 그 일화 믿기지가 않는다. 클래식 천재가 보컬라이드로 발굴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음ㅋㅋㅋㅋ

    ㄴ 그거 루머일걸?

    ㄴ 믿는 놈이 있네.

    ㄴ 근데 곡이 이상한데.

    ㄴ 어? 살리에리네? 왜?

    ㄴ ㅇㅇ. 최명운이랑 배도빈 둘 다 레퍼토리 괴물이라서 기대했는데 솔까 난 들어보지도 않은 곡임.

    ㄴ 첨 보는 곡인데.

    시청자들이나 콘서트홀을 찾은 청중이나 의외의 선곡에 의아함을 가졌다.

    살리에리 피아노 협주곡 C장조.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유명한 곡이 너무나 많은데, 그중에서 특히 안토 니오 살리에리와 같이 덜 알려진 인 물의 곡을 선정함에 아쉬움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마음은 연주 가 시작되고 씻은 듯이 사라졌다.

    최명운과 배도빈이 시선을 교환하 고 위대한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빠르고 장엄하게).

    힘 있게 치고 나오는 현악기들을 받쳐주는 금관. 생기 넘치는 시작에 사람들은 금세 영혼을 빼앗겼다.

    현악기의 완급 조절이 되는 와중에 어울리는 콘트라베이스의 존재감은 살리에리의 섬세함이 잘 표현된 부 분이었으며.

    최명운의 섬세한 지휘에 멋들어지게 어울려 최고의 연주로 청중들에게 전해졌다.

    급격하게 분위기가 고조되고.

    대한국립교향악단이 남긴 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배도빈이 그 음을 잡아챘다.

    다소 느긋하게 시작한 배도빈의 피아노는 앞선 연주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의 평소 격렬했던 연주와는 상당 히 다른 느낌으로 맑고 우아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마치 대화 하듯, 짧게 연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환희.

    1악장의 마무리는 종결음이라고 하 기엔 뒤가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배도빈이 곧장 그 음을 따라 연주하며 2악장이 곧장 연결되었는데.

    2악장 라르게토 (Larghetto: 조금 느리게).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피아노로 시 작한 2악장은 뒤이어 현악기가 파트 별로 현을 튕기며 분위기를 잡아냈다.

    그 음을 피아노가 다시 이어받으며.

    청중들은 마치 눈앞에서 새벽이슬 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봄비로 이어지듯 아침이 찾아오는 전개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고상함 이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청중들의 가슴에 편안함이 깃들어 어느덧 미소가 걸렸다.

    3악장 안단티노(Andantino: 안단 테보다 조금 빠르게) 론도(Rondo: 주제 반복 형식).

    마침내 배도빈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배도빈의 격렬한 연주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듯, 보다 더 깊게 보다 더 멀리 음을 보낸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피아노 협주곡 C장조는 그렇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

    짝짝짝짝-

    연주를 마치고 최명운이 돌아서자 청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경의를 표하는 것만큼 생중 계로 연주회를 듣던 사람들도 그들의 협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ㄴ 생각보다 훨 좋은데?

    ㄴ ㅇㅇ 좋다.

    ㄴ 원래 배도빈 연주랑은 좀 다른 듯.

    ㄴ 절제가 되어서 그럼. 곡이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네. 도빈이는 다 쏟아붓잖아.

    ㄴ 난 원래 도빈이 연주가 더 좋은데

    ㄴ 솔직히 저 정도 클래스면 곡에 따라 취향이 갈리는 거지. 난 부담스럽지 않아서 듣기 좋았음.

    ㄴ ㅇㅈ.

    한편 대기실에서 대한국립교향악단 과 배도빈의 협연을 들었던 출연진도 한마디씩 했다.

    “쟤는 진짜 못 하는 게 없네.”

    배도빈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잠 깐 만난 걸로 배도빈을 알게 된 이승훈이 혀를 내둘렀다.

    “그럼. 어디 연주자인데.”

    이승희가 자랑스레 말했다.

    “어디 연주자라니?”

    “어디긴. 베를린 필이지.”

    “어? 나온 거 아니었어?”

    “나가긴 누가! 누가 뭐래도 도빈이는 우리 악단 연주자야.”

    “……토마스 필스 경도 노리고 있던데.”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자 토마스 필스도 배도빈을 노리고 있다는 말에 이승희가 깜짝 놀랐다.

    배도빈 같이 홀륭한 음악가라면 어 떤 오케스트라라도 탐을 낼 만하지 만 신경 쓰지 않았다.

    배도빈이 다른 오케스트라로 가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OST 작업으로 친분 이 있는 토마스 필스가 러브콜을 보 낸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이승희는 괜히 동생을 타박했다.

    “야, 너 진짜 그거 안 된다? 우리 지금 연주자 없어서 죽어나가는 거 몰라?”

    “그건 푸르트벵글러가 사람을 안 뽑아서 그런 거잖아. 우리라고 도빈이한테 연락 못 할 이유 있어?”

    남매가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남궁 예건과 최성신도 배도빈의 연주를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 차례 배도빈의 연주를 접했지만 실제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던 그들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운드가 전할 수 있는 음에는 한 계가 있는데, 직접 들은 배도빈의 연주는 정말이지 탁월했다.

    기교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곡이 아님에도 오케스트라와 어울려 너무나 귀를 즐겁게 해준 실력은 이미 천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대단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주할 때 좀 찾아다닐 걸. 형은 어땠어요?”

    “야, 말도 마. 하. 미치겠네.”

    남궁예건이 헛웃음을 내며 한 말에 최성신이 의문을 가졌다.

    “무슨 말이에요?”

    “나 전에 센다이 콩쿠르 때 쟤한테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했단 말이야. 진짜 얼마나 우스웠을까.”

    “뭐 그런 걸로 그래요. 킥킥.”

    “웃지 마.”

    “옙, 선배님.”

    한편 개인 대기실이 주어진 박건호 역시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한 대기실로 들어와 잠시 후 곧 장 다음 연주를 준비해야 했던 최명 운은 크게 감격했다.

    연습 과정에서도 이미 그 재능을 알 수 있었지만 실제 무대에서 배도빈이 보여주는 집중력은 정말 놀라 웠다.

    ‘볼 때마다 놀라게 하는군’

    방금 그 만족스러운 협연을 떠올리며 최명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를 따라 대한국립교향악단의 악장 이진수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객석 반응이 재밌네요.”

    “그럴 만 하지요. 좋은 곡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네. 그 기분 잘 알죠.”

    이진수가 땀을 닦은 뒤 물을 마시 려 할 때 최명운이 뭔가 고민에 잠 긴 듯하다 말을 꺼냈다.

    “10월 말에 도빈 군과 함께하면 어떨까요?”

    “푸흡!”

    너무나 갑작스러운 발언이라 이진 수가 놀라 사레에 들렸다. 간신히 속을 달래는 모습을 걱정스레 지켜 본 최명운이 이어 말했다.

    “도빈 군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하지만 총회장 무대는……

    UN Day 콘서트.

    매년 뉴욕 맨해튼의 UN 총회장에 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교 사절이 모이는데, 모든 UN 회원국의 대사, 국제 NGO,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 하는 정계, 재계 인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런 무대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유명 악단이 초청을 받는데 1995년 과 2007년에 이어 한국의 대한국립 시향이 가게 된 것이었다.

    최명운으로서는 세 번째 경험이었고 대한국립시향으로서는 두 번째 경험이었는데.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미 가 짙게 깔린 무대였다.

    “도빈 군이라면 자격은 충분하니까 문제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그거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걱정되는 게 없진 않죠.”

    “들어보죠.”

    “정말 많이 연습을 해야 하니 도빈 군의 개인 스케줄도 문제가 될 수 있고.”

    “그건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네요.”

    “특권……. 아니, 차별대우란 구설 수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저도 도빈 군을 좋아해서 자주 찾아보곤 하 는데 가끔씩 어린 도빈 군의 성공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 군요.”

    “WH그룹이나 협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말인가요?”

    “네.”

    “그런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아요. 떳떳하면 될 일입니다.”

    “문제는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흐음.”

    확실히.

    UN 데이 콘서트는 금전적이나 커 리어적인 면에서 이득인 무대는 아니었다.

    도리어 악단 전체가 움직일 항공 료, 숙박비 등을 따지면 가는 게 손해였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가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를 대표해 세계기구에서 평화를 바라며 연주를 했다는 명예.

    대한국립교향악단으로서 수 년, 수 십 년간 일한 사람들 중에는 그 소 속이 아니었음에도 재능이 있단 이 유로 갑작스레 합류할 배도빈에 대 해 안 좋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거 란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그런 생각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 해 고려하지 않을 순 없었다.

    악단과 협연자의 불화가 생겨 그게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보다 최악인 상황도 없었다.

    “그건 생각 못 했네요.”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 까요.”

    “그럼 단원들과 이야기를 해보죠. 내일은 쉬고 모레 미팅을 잡아주세요. 악장.”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명운은 단원들에게 배도빈이 UN의 날 콘서트에 함께해야 하는 이 유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다.

    이내 머리를 젓고 당장 눈앞에 있는 청중들에게 최고의 연주를 들려 주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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