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28화 (12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28화

    30. 9살, 배도빈이 빈 필하모닉으로 고전을 노래했다(2)

    배도빈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관중 들은 방금 들었던 연주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이렇게 멋진 곡인 줄은 몰랐어요.”

    “역시 배도빈이야.”

    “프로가 연주하는 건 많이 못 들었는데. 오늘 들어보니 왜 연주하지 않는지 모르겠네.”

    기자들의 무례한 질문으로 심통이 난 푸르트벵글러의 얼굴도 어느새 활짝 폈다.

    “좋은 연주였네요.”

    아직 감상에 젖은 카밀라 앤더슨이 그의 곁에서 말했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푸르트벵글러는 언제 그랬냐는 둣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 꾸했다.

    “저 정도는 해줘야 내 제자지.”

    “솔직하지 못하시긴.”

    카멜라 앤더슨의 말에 푸르트벵글러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반응이 좋네요.”

    한편 히무라 역시 기쁜 기색을 감 추지 않고 옆자리에 함께한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말을 붙였다.

    “껄껄. 그럴 만하지. 하지만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남아 있지 않은가.”

    히무라는 배도빈이 빈 필하모닉과 연습할 때 연주한 베토벤의 카덴차를 떠올렸다.

    “네. 베토벤의 카덴차를 준비하더라고요.”

    “흐음. 글쎄. 어떨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네.”

    “네?”

    “도빈 군이 빈 필을 어떻게 이용할 지 궁금하단 말일세. 베토벤의 카덴 차는 모차르트의 D단조에 가장 잘 어울리지만…… 나는 뭔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하네.”

    히무라는 사카모토 료이치의 의중을 좀 더 묻고 싶었지만 곧 다음 무대가 시작하려 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연주회는 과연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축제라는 타이틀에 어울렸다.

    배도빈 이후에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음악이 관중들을 즐겁게 할 수록 대축전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오늘의 메인 이벤트.

    빈 필하모닉과 배도빈의 협연을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두 차례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1787년, 아직 봄을 맞이하기엔 이른 날.

    막시밀리안 프란츠 대주교의 도움으로 마침내 빈에 온 나는 내 앞에 기다릴 찬란한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위대한 음악가들이 지금도 숨 쉬고 있는 빈.

    이곳에서 명성을 떨치리라 다짐하 며 나는 매일 밤 지겹지도 않게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크라머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돌아가는 길인데.

    문득 어디선가 장중한 선율이 들렸다. 현악기가 과감하게, 구슬픈 가락을 곧이곧대로 들려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크라머와 함께 무엇에 홀리듯 발을 옮겼다.

    그곳에는 찬란히 빛나는 연주회장 이 있었고 돈이 없었던 나와 크라머는 조용히 그 건물 옆에 쭈그려 앉아 어렴풋이 들리는 그 작은 소리에 온갖 신경을 집중했다.

    ‘ 아아.’

    어찌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슬픔이란 감정이 이렇게나 솔직하 고도 추하지 않을 수 있다니.

    듣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크라머! 내가 이런 곡을 쓸 수 있을까?”

    “자네라면 가능하지.”

    글쎄.

    이보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연주회장 앞에 놓인 대자보를 본 뒤 발을 재촉했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볼프강 아마데 모차르트 연주회

    피아노 협주곡 D단조

    대축전극장을 찾은 청중과 생중계를 보고 있는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집중하는 가운데.

    빈 필하모닉이 연주를 시작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가 장 잘 이해했다는 베토벤의 카덴차와 함께.

    배도빈과 빈 필하모닉은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여 주었다.

    1악장 알레그로. 격렬.

    잘츠부르크 영주로부터 부당한 대 우를 받았던 젊은 모차르트는 약속한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짓는다.

    그의 천재성이 차마 인정받기 전, 궁핍했던 시절의 그가 가졌던 고뇌 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1악장은 모

    차르트를 대표하는 재기발랄함을 찾을 수 없다.

    바순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시작 한 도입부. 그 뒤를 첼로와 베이스 가 천천히 뒤따라 위협하는 와중에 등장하는 피아노 솔로.

    베토벤이 남긴 카덴차로 시작한 배도빈의 연주는 청중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조금씩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 들기 시작했다.

    빈 필하모닉이 예전을 바란다면.

    그렇게 어울려 줄 생각이다.

    나 또한 추억을 향수하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으니 말이다.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봤는데 역 시 예전의 내 스타일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 루트비히가 곧 고전이니.

    빈 필과 청중들에게 당시의 내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이번 기회에 제 대로 들려줄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억눌러 왔던 게 있었으니까.

    하나는 묘하게도 현대에는 즉홍 연주가 거의 없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 이었는데, 그 때문에 나 역시 즉홍 연주를 하지 않게 되었다.

    베를린 필과 협연을 할 때는 공연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또 푸르트벵글러의 뜻을 반영했어야 했으니까.

    두 번째 앨범을 작업했을 때 정도 만이 내 특기 중 하나인 즉흥 연주를 뽐냈다.

    둘은 지금의 연주자들이 감정 표현을 얼굴과 동작으로 하는 것에 의아 함을 가진 것.

    현대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것 같은 데, 눈을 현혹할수록 청중들의 귀는 막히게 마련이다.

    음악으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으려면 이렇게 지금 내 감정을 그 대로 전달해야 한다.

    ♪♫♬♪♫♬

    ♪♫♬♪♫♬

    셋은 묘하게 점잔을 떠는 모습.

    내 음악은 울고 웃으라고 존재하는 것이지 얌전 떨며 박수나 치라고 하는 게 아니다.

    오늘은 나를 위한 무대다.

    빈이여, 노래하라.

    이것은 폭력이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미칠 듯이 빨라 지기 시작하는 배도빈의 연주를 들으며 생각했다.

    베토벤의 카덴차를 그대로 연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하니 이런 속도로, 게다가 벌써 정상 적이라면 끝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즉흥해서 연주를 이어나갈 줄은 몰랐다.

    다른 연주자들의 비해 2배는 될까?

    마치 고장 난 메트로놈을 두고 연주하는 것처럼 급격히 빨라진 배도빈의 연주는.

    가슴을 때리는 듯했다.

    빈 필하모닉 연주자들의 얼굴을 보 면 그들도 놀란 듯. 분명 배도빈이 독단으로, 즉흥해서 판단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묘하게.

    점차 그러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영혼과 가슴을 때리는 듯한, 마치 고뇌에 찼던 모차르트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연주에 그저 넋을 잃을 뿐이었다.

    배도빈의 독주 파트가 끝나고 곧장 빈 필이 연주를 이어간 것은 기적이었다.

    뛰어난 지휘자 칼이 아니었더라면 빈 필은 자신들이 연주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악장이 끝나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특징대로 중간에 시간을 두지 않고 곧장 2악 장이 시작되었다.

    아직 그 폭력적인 연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중들은 우아한 느 낌의 2악장을 받아들이며 그제야 자 신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아사이(allegro ass ai: 매우 빠르게 연주).

    피아노 독주로 시작되는 3악장은 1악장의 충격은 그저 예고였다는 둣 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슬픔이 아니라 절규.

    매우 빠르게 연주한다는 표기가 무 색할 정도로 너무도 빠른 연주.

    마치 베토벤의 시대 연주를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배도빈의 타건은 너무나도 빨랐다.

    그런 주제에 베토벤이 남긴 카덴차를 즉흥해서 늘이고 반복하고 변형 시키며 그 처절함을 더욱 강조했다.

    아니, 각인했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포함한 음악가들이 배도빈을 괴물로 여긴 순간이었다.

    상식 밖의 속도로 연주를 하는데, 악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럼에도 건반을 누르는 속도와 깊이마저 조율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다른 해석 따윈 용납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감동하라는 그 폭력.

    과연 악마(루시퍼)라 불리는 배도빈다운 연주였다.

    ‘세상에나.’

    한편 지휘를 맡은 칼 에케르트는 배도빈의 격렬한 독주 때문에 빈 필을 어떻게 지휘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은 근거 없이 쌓 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는 곧 장 배도빈의 템포를 최대한 따라가도록 빈 필을 지휘했다.

    그럴수록 죽어 나가는 것은 오보에 연주자들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보에는 빠르게 연주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인데 특히 빈 오보에는 금속 키가 덜 붙어 있어 일일이 손가락으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템포가 이렇게나 빨라지면 자연스럽게 일정량을 숨을 참으며 조금씩 내뱉어야 하는 그들도 호흡 조절을 하기 힘들어지며.

    그러한 상황은.

    자연스레 배도빈이 바라는 효과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텅잉(호흡을 끊어 연주하는 방법) 이 어려운 상태에서 연주가 극한의 속도로 치닫자 자연스레 무리가 생 긴 오보이스트들이 숨을 빠르게 내 뱉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빈 오보에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배도빈의 격렬한 연주와 함께 묘하게 어울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것을 푸르트벵글러가 놓칠 리 없었다.

    배도빈의 빠른 연주가 빈 필하모닉의 연주 균형을 무너뜨렸고, 무리한 오보이스트들마저 호흠을 빠르게 내 뱉게 되면서 생긴 날카로운 소리.

    그러나 그 신경질적인 소리가 평소와 같은 음량이었다면 지금쯤 청중 들은 귀를 막고 싶어졌을 것이다.

    저들의 연주가 지금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내뿜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오보에의 음량이 줄어드는 현상 덕분.

    ‘설마.’

    배도빈이 이런 것까지 계산했을까.

    푸르트벵글러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저 괴물 같은 피아노 연주 실력만을 믿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신이나 악마를 본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대축전극장은 박수도 환호도 잊은 채 고요했다.

    지휘자 칼 에케르트가 독주자 배도빈을 앞세운 뒤 한발 물러났을 때야 해일과 같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폐막일에 빈 필하모닉과 협연을 한 배도빈은 또 한 번 증명해냈다.

    왜 전 세계가 그에게 빠져 있는지를 잘츠부르크 대축전극장에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마저 자신의 악기 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칼 에케르트

    그는 피아노의 신이자 악마다. 나는 그날의 충격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우왕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연주였다. 나는 그저 그의 음악을 얌전히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리 얀스

    빈 필하모닉이 배도빈을 만남으로 써 진정한 시대 연주를 한 것 같다.

    사카모토 료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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