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27화
30. 9살, 배도빈이 빈 필하모닉으로 고전을 노래했다(1)
8월 22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축전회장 은 이례적인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지라고는 해도 이렇게나 많은 유명 인사가 몰려들기는 90년 가까이 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역 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
긴 시간 연주회를 갖지 않았던 배도빈이 바로 오늘, 잘츠부르크 페스 티벌의 폐막일에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배도빈의 피아노 독주.
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과 배도빈의 협연을 기대한 사람들 중에는 유명 인사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기자들마저 대체 어떤 사람에게 먼 저 인터뷰를 따야 하는지 갈팡질팡할 정도였다.
“가우왕! 가우왕이다!”
“배도빈과의 협주곡 연주회는 대체 언제 하시는 겁니까?”
가우왕은 그의 긴 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도도하게 말했다.
“샛별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여러 번 부탁을 했던지라 저도 독일 아리아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스케줄이 있다 보니 빠른 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유롭게 기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뭇 클래식 음악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년 쇼팽 콩쿠르 예선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셨습니다. 배도빈의 참 가가 확실시되었는데 경연에서 본인을 이긴 상대를 평가하게 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뭐, 뭐라고요?”
그러나 그 여유로움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파보 예르비앙! 대축전극장을 찾은 이유는 배도빈 때문입니까?”
“은퇴 후 마에스트로를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한편 1980년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의 피아노 거장 파보 예르비앙이 은퇴 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가우왕에게 쏠렸던 관심은 금세 파보 예르비앙에게 쏠렸다.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가 연주를 한다기에 찾아왔습니다. 베를린 필 에서 그가 지휘했던 신세계로부터를 잊을 수 없었는데, 그의 모차르트라 니. 아내의 생일에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네요.”
배도빈의 연주를 기대하는 노부부 의 다정한 모습은 곧장 여러 언론을 통해 거장의 오랜 팬들에게 전달되었다.
“미카엘 블레하츠다!”
“찰스 브라움이야!”
“필스 경! 배도빈의 콘서트에는 빠 짐없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기저기서 거물들이 나타나니 기 자들은 도무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대체 누구한테 붙어야 하는 거야?”
“어엇! 사카모토 료이치다!”
“사카모토 료이치! 오늘 배도빈의 연주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말 씀 부탁드립니다!”
“흐음. 글쎄요.”
“크리크 콩쿠르 이후 쭉 함께 지내 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 말씀 부 탁드립니다!”
“그렇긴 하지만 특별히 물어보질 않아서 말이지요. 지난 일주일간 오 늘을 위해 참고 있었으니 충분히 즐 길 생각입니다.”
“예전에 배도빈보다 빈 고전파를 깊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 하신 바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십니까?”
“네. 첫 음부터 하나도 놓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기자들은 기어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서야 사카모토 료이치를 놓아주었다.
“마리 얀스다! 암스테르담의 마리 얀스야!”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가운데,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기 자들은 각자 무리를 지어 음악계 거 장, 유명 인사를 상대했다.
그리고.
“맙소사.”
“세상에나……. 카메라! 빨리!”
21세기가 낳은 클래식계의 폭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을 무려 18년간이나 독재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위대 한 지휘자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자들은 순식간 에 그 앞에 몰려들었다.
“ 껄껄.”
인터뷰를 마치고 극장 안으로 들어 가려던 사카모토 료이치가 오랜 친구가 잘츠부르크에 온 것을 보곤 너 털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어쩔 수 없구만.’
사카모토 료이치는 연주회가 끝나 고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배도빈의 연주를 안주 삼아 맥주잔을 기울일 생각을 하며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마에스트로! 오늘의 연주회 참석 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에는 18년 만에 처음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푸르트벵글러가 헛기침으로 목을 푼 뒤 대수롭 지 않다는 듯 점잖게 말했다.
“우리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왔을 뿐이오.”
그가 언급한 ‘우리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배도빈을 지칭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현재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제2바이올린 부수석 자리는 공석이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 이지에는 객원 연주자란 이름과 배도빈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폭군 푸르트벵글러에게 이런 점잖고 감동스러운 스 토리를 바라지 않았다.
“칼 에케르트 지휘자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빈 필하모닉의 연주에 실수가 있다면 어떤 루트로 발언하실 계획이 십니까?”
“오늘 하실 말씀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식 입장입니까?”
기자들이 바라는 것은 베를린 필과 빈 필의 대결 구도.
그도 그럴 것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두 악단의 경쟁은 80년대, 30대의 두 ‘세기의 천재’가 베를린 필과 빈 필의 악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는데.
바로 푸르트벵글러의 베를린 필 악장 시절과 사카모토 료이치의 빈 필 악장 시절이 일치했던 그 시기였다.
‘오케스트라의 황금기’라 불리던 그 시절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 로 큰 방향을 이끌었고.
당시의 영향으로 지금도 그 경쟁관 계가 유지되며 두 악단은 발전해 왔다.
“잠깐! 그런 질문은 삼가주세요. 마에스트로는 그저 제자 배도빈 군 의 연주회에 개인적으로 참가했을 뿐입니다. 결코 베를린 필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동행한 카밀라 앤더슨은 벌써부터 눈을 부릅뜨고 무례한 질문을 한 기 자들에게 호통을 치려는 푸르트벵글러의 호통을 막아내려고 애썼다.
“칼은 내 대학 후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려 왔냐고? 자네 어디 기자 인가! 뭐? 빈 필에 실수가 있으면 어쩌고 저째? 내가 평론가들이나 하는 헛짓거리를 할 거라 묻는 건가!”
“아••••••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역정을 내버렸고 카밀라는 고개를 숙이곤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눈은 더욱 초롱초롱 빛났다.
음악평론가, 음악사 석•박사 등 전 문가들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사카모토 료이치, 두 거장이 없었더라 면 현재의 클래식 음악도 없었을 거 라 평했을 정도로 베를린과 빈의 관 계는 언제나 화제를 이끌었다.
그러했기에 사카모토 료이치가 록 밴드를 하기 위해 빈 필을 떠날 때는 많은 클래식 음악 팬들이 이를 애석하게 생각했고.
푸르트벵글러가 사카모토 료이치를 ‘배신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 이었는데.
이후.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을 집권 하면서부터 언론은 빈 필의 전통성 과 푸르트벵글러의 진취적 음악 세 계를 비교하였다.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두 관현악단이 서로에게 가졌던 라이벌 의식을 부추기기에는 아주 안성맞춤 이었고.
그렇게 라이벌 의식을 키운 두 단 체가 드디어.
빈 필하모닉이라면 이를 갈았던 폭 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무려 18 년 만에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에 참석했으니 기자들이 이런 반응을 기 대하여 푸르트벵글러를 자극하는 것 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진 마르코는 어머니를 모시고 대축전극장을 찾았다.
“으아아. 이게 웬일이야? 엄마, 보 세요. 저기 푸르트벵글러가 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 니? 비쌀 텐데……
“네. 배도빈이 표를 줬어요. 보세요. 자리도 바로 정면이라고요.”
“난 네가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지.”
“엄마도 참. 빨리 가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첫 번째 무 대를 장식할 배도빈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관중들은 아낌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어 그들이 얼마나 이 연주를 기대하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 조, K.331.
다양한 악장 구성으로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하던 시절 유행하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담긴 이 곡은 연주자의 음계 표현이 무엇보 다 중요한 곡이었다.
소나타지만 소나타가 아닌 곡.
눈을 감고 있던 배도빈이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
♪♫♬
현대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입부.
마치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듯, 살 롱에서 웃음을 나누듯 우아한 멜로디가 아름답게 시작되었고 조금씩 변형되어 반복된다.
이 여섯 번의 변주를 달리 들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연주자의 음악적 감수성과 그 표현력에 있기에.
청중들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단순한 멜로디를 이토록 절절하 게 표현하다니.
집요하게 변형되는 주제는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또 초조 하게 관중의 마음을 희롱했다.
조금씩, 조금씩.
청중들은 배도빈에게 마음을 사로 잡히기 시작했다.
베토벤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괴팍했던 천재 모차르트가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배도빈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은 이제 시리어스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화음이 많이 사용된 것도.
곡이 빠른 것도 아닌데.
그 공백마저도 인식할 수 없을 정 도로 음계 하나하나가 영혼을 충족 시켜주었다.
‘괴물 같은 놈.’
가우왕은 배도빈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음을 실감했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것은.
그와 같은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는 더 이상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곡을 해석하고 듣는 사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가.
그것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일 터인데.
순전히 기교적인 면으로만 보면 어 린 학생이라도 연습만 하면 칠 수 있는 수준의 곡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래서 가우왕이 배도빈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만 이 아니라, 곡 사이마다 드러나는 깊은 사색은 ‘잘한다’라거나 ‘대단하 다’라는 감상보다는 ‘좋다’, ‘감동이 야’라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연주는 마침내 피날레에 이르러 템 포가 빨라졌다. 쉴 새 없이 춤추는 무용수의 발끝처럼 이어지는 전개.
그 터키풍의 열정적인 무대는 과하 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잘츠부르크 대축전극장을 채운 사람들의 가슴속 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주가 마무리되고 배도빈의 손이 건반에서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오늘 이 저녁을 행복하게 해준 피아니스트에게 감사와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집사님, 집사님. 들으셨어요?”
“네. 무척 따뜻한 연주였네요.”
“그쵸? 집사님도 느끼셨죠? 기분이 너무 좋아요.”
최지훈이 그의 집사와 행복하게 이 야기를 나눌 때, 그 옆자리에서 진 마르코가 그의 어머니에게 감탄을 늘어놓았다.
“엄마, 전 내일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요.”
“엄마도 정말 오랜만에 따뜻해지는 구나. 천재라더니 정말 멋진 아이야.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 같은 피아노 구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재 모차르트. 그 곡을 연주하는 하늘로 올라간 천 사 배도빈. 시적인데요?”
모자는 실로 오랜만에 행복을 느끼 며 다음 연주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