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24화
29. 9살, 빈 필하모닉과 오보에(1)
히무라와 배영준이 SNS에 업로드 한 배도빈의 모차르트 코스프레 사 진, 동영상은 등록된 즉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와 진짜 졸귀탱 ㅋㅋㅋㅋ 둘이 왤 케 귀여워?ㅋㅋㅋㅋ
ㄴ 배도빈 심통난 거 봨ㅋㅋㅋ 저거 백퍼 짜증 난 거임 ㅋㅋㅋ
ㄴ 그 와중에 최지훈 해맑게 웃는 거 진짜 심장 폭행이다irmr
ㄴ 배도빈 진짜 너무 잘 어울리는 데? 하나도 안 어색한데? 진짜 모차 르트 환생 아님?
ㄴ 맞을 듯.
ㄴ 그런 듯.
ㄴ 애가 이상하게 천재이긴 함.
ㄴ 둘이 사이좋은 거 너무 보기 좋다.
ㄴ 난 이 커플 찬성일세.
잔뜩 노여워 인상을 쓰고 있는 배도빈과 그 옆에서 세상 다 가진 것 처럼 행복해하는 최지훈의 대조적인 모습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 시되기도 하며 결국, 뉴스 기사로도 올라오게 되었다.
뒤늦게 숙소에서 그 기사를 본 배도빈은 이불을 걷어찼고 최지훈은 그 기사를 고이 캡처했다.
다음 날.
히무라, 사카모토 그리고 최지훈과 함께 빈 필하모닉이 머물고 있다는 장소로 향했다.
구경하고 싶다고 징징대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왔는데 여기저기 구 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상임 지휘자가 없다고요? 그럼 누 가 지휘를 해요?”
그런 와중에 자연스레 빈 필하모닉 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히무라가 의외의 말을 해 주었다.
“객원 지휘자들이 돌아가면서 맡아. 수석 지휘자는 있지만 그렇다고 상주하는 사람은 없거든.”
상임 지휘자라 하면 관현악단에 소 속된 지휘자인데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느낌이다.
그처럼 오랜 세월 한 관현악단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외부 지휘자, 게다가 여러 사람이 오면 빈 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사카모토도 객원 지휘자였어요?”
“콘서트마스터로 있던 시기에 지휘 자가 마땅히 없어 잠시 맡았었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네. 곧 외부 지휘자를 받아들였으니 말이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유를 알 수 없다.
“껄껄. 뭘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구만. 지휘자가 매번 바뀌면 연주도 달라지지 않겠냐는 거겠지?”
“네.”
사카모토 료이치가 웃으며 히무라 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베를린 필이 특수한 경우라네. 보 통은 하나의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사람은 여럿 있지.”
푸르트벵글러를 중심으로 똘똘 뭉 친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푸르트벵글러가 힘들 때는 니아 발 그레이 같은 악장이 그 역할을 대신 했던 것과는 무척 다른 방식으로 운 영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스타일 이 바뀔 수밖에 없겠지만, 빈 필하모닉만의 독특한 특징만은 변하지 않지. 빈 필을 지휘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 점은 염두하고 지휘대에 오 른다네.”
“특징이요?”
“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 우선 악기가 다르지.”
악기가 다르다니.
뭔가 특별히 좋은 악기라도 쓰는 건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시대 연주를 하는 것처럼 완전히 옛것을 쓰는 건 아니지만 꽤 예전 방식을 고수한 악기를 사용한다네.”
보다 좋은 소리, 보다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한 현대의 개량품을 쓰지 않는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언뜻 듣기엔 잘 감이 오지 않아 좀 더 물었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지.”
사카모토가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검색하더니 내게 두 장의 사진을 보 여주었다.
하나는 지금의 오보에였고 하나는 내가 알던 오보에도, 지금의 오보에 와도 다른 형태였다.
“다르게 생겼네요. 운지법도 달리 해야 할 것 같은데.”
“정확히 봤네. 빈 오보에라는 건데 19세기 후반쯤에 사용하던 거지. 소 리는 좀 더 날카로운 편이고. 비브 라토도 없다시피 해서 처음 빈 필에 입단한 사람은 적응하는 데 꽤 고생
이야. 오보에 말고도 클라리넷이라 든가 호른도 경우가 비슷하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악기마다 장점은 있겠지만 빈 필하모닉이 굳이 개량되기 전의 악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체성이랄까. 빈 필은 전통을 지 키려는 성향이 강하지.”
전통은 중요하지만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발전이 없다는 것은 그것대로 문제라 생각했다.
“말이 많긴 하죠. 예전에는 유럽인 이 아니면 뽑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까요. 왜, 스기야마 야스히토 씨도 아시아인이라서 차별을 받지 않았습 니까.”
히무라의 말에 사카모토의 얼굴이 좋지 않아졌다.
“그랬지. 뭐, 지금은 클리블랜드에 서 잘 나가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그 친구도 무척 속이 상했을 거네.”
과거에 인종 차별이 있었던 모양.
“예전에는 더 했지. 빈 출신이 아 니면 안 되었으니까. 내가 어렸을 적엔 어지간히 욕을 먹었다네.”
사카모토가 어렸을 때라면, 역사적 인 관점에서 볼 때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뭔가 들으면 들을수록 폐쇄적인 단 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차별적 악단 운영은 부정할 여지 없이 잘못된 정책이었지. 물론, 그래 서 지금은 많이 변했다네.”
사카모토 료이치는 씁쓸하게 이야 기를 마무리했다.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독일어를 모르는 최지훈이 방금 사카모토와의 대화에 대해 물었다.
“빈 필이 좀 이상한 곳인가 봐.”
“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아니이?”
그렇게 인정받으면서도 악단 운영이라든가 내부 규칙은 무척 엄하고 불공평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불공평해.”
최지훈도 나와 같은 생각인가 보다.
“너무 안 좋은 이야기만 했는데 사 실 다 과거 이야기야. 지금은 그 비 판을 수용해서 개선했으니까.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미지를 생 각하면 좋을 것 같아. 분명 잘못이 긴 해도 지금의 빈 필은 예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고 악단 운 영에도 차별 없이 실력 위주로 돌아 가고 있으니까.”
바뀌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최지훈은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를 메모하였다.
“그런 것도 적어?”
“너도 메모 많이 하잖아?”
“악상이 떠오르면 적어둬야 하니까.”
“그래서 따라하는 거야.”
나쁜 습관은 아니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 덧 빈 필하모닉이 연주회를 준비한 다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사카모토.”
“이게 얼마만인가, 칼.”
역시 사카모토는 발이 넓은 모양.
코가 날카롭고 주름이 깊은 노인이 직접 건물 밖으로 나와 사카모토를 반겼다. 그러고는 내게 시선을 돌려 손을 내민다.
“환영하네, 도빈 군. 칼 에케르트라 고 하네.”
“반가워요, 칼 에케르트. 배도빈이 에요.”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잘 들었네. 그런 연탄곡은 처음이었어.”
“고마워요.”
“가우왕과 연주회를 한다면 꼭 들 으러 가고 싶네. 너무 오래 기다리 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보다시피 살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말이야.”
칼 에케르트의 농담에 나도 사카모토도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 제 친구예요. 견학하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흐음. 괜찮겠지. 자, 들어가세.”
“괜찮대.”
칼 에케르트의 말을 전해주자 최지훈이 고개를 꾸벅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빈 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칼 에케르트의 신경질적인 외모 때 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괜찮은 사람 인 것 같다.
문을 열고 연습실에 들어서자 연주 자들이 우리를 반겼다.
“반가워.”
“환영하지.”
“영광입니다, 마에스트로 사카모토.”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다.
절반은 사카모토와 비슷한 연령대 로 보인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 나 대부분 차분한 인상이다.
‘호른이 왜 저렇게 많지?’
드물게 호른이 여덟 대나 있다.
히무라와 사카모토에게서 들은 이 야기와 함께 유서 깊은 빈 필은 여 러모로 의아함을 많이 주었다.
“우선 지켜보겠나?”
“ 네.”
우선은 이들이 어떤 연주를 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먼저 제안
을 해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간이 의자에 앉으니 빈 필이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 듣는데.’
미묘한 화성 때문에 흐름이 조금 끊기는 느낌은 있지만, 미완성의 대 작을 접한 느낌이다.
D단조로 시작하는 조용한 울림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 데 1악장을 모두 들었을 때야 호른 이 여덟 대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광활하게 제시한 주제가 뒤섞여 묘 한 느낌을 주는데.
호른 주자들이 밸브에 오른손을 넣는 정도를 조절하며 약음을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가장 놀란 것은 현악기의 비 브라토(vibrato: 기악 또는 성악에서 음을 떨어서 내는 기법)가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아니, 정상적 이라면 이렇게까지 똑같이 연주할 수 없다.
1악장이 끝나고 박수를 보냈다.
“무슨 곡이었어요?”
사카모토에게 물었다.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이었네. 처음 듣는 모양이구만.”
브루크너라.
확실히 처음 듣는 이름이다. 꽤 후 대 음악에 대해 많이 접했다고 생각 했는데, 이만한 곡을 만든 음악가에 대해 몰랐다니.
아직 공부할 게 많은 듯해서 조금 은 기뻤다.
“네. 처음 들어요.”
“빈 필의 주 레퍼토리지. 빈 필의 브루크너는 꼭 한번 들어보게. 애석 하게도 방금 들었던 9번은 미완성이 지만.”
“미완성?”
“음. 3악장까지만 완성하고 브루크 너가 죽고 말았네. 왜, 그런 징크스 가 있지 않은가.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은 9번 교향곡 이상을 못 쓴 다는.”
이건 또 무슨 괴담이란 말인가.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조금 얼굴을 찌 푸리자 히무라가 설명을 더해주었다.
“말 그대로 베토벤 뒤에 나온 거장 들이 대부분 아홉 개의 교향곡 이상을 만들지 못했거든.”
“그럼 더 많이 작곡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잖아요.”
“응. 하지만 인정받는 음악가라 해 야 할까. 지금도 사랑받는 사람 중 에서는 쇼스타코비치를 제외하면 모 두 아홉 개 이하였어. 브람스, 차이 코프스키, 브루크너, 말러 등등. 아, 슈베르트나 드보르자크도.”
쉴 새 없이 유명 음악가의 이름을 읊는 히무라를 보니 정말 꽤 많은 사람이 그런 것 같다.
하기사 교향곡 자체가 음악가의 사력을 다해 만드는 일생의 대작이란 느낌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태어난 뒤 관현악 곡을 여럿 만들기는 했지만.
모두 ‘이야기’에 더해지는 곡이었고 제대로 된 교향곡은 아직 시도조 차 못 해봤으니, 다른 음악가들이 많은 양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조금 은 납득이 되었다.
사람의 삶은 유한하니까.
“연주에 대해서는 말이 없구만.”
그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칼 에케 르트가 다가왔다.
“어떤가. 소감은.”
“대단했어요. 비브라토마저 맞추던 데요?”
“하하하! 역시 귀가 좋구만. 완벽 과 전통. 빈 필이 추구하는 가치지.”
확실히 대단한 실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몇몇 현대 관 현악단을 접한 경험으로 비추었을 때 빈 필이 뭔가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함께해 보겠나?”
“조금 더 들어볼게요.”
사실 빈을 연고로 있는 곳이라 여 러모로 마음이 가던 악단이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 때처럼 마음이 썩 가지는 않았다.